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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기타

    뷔페·스타벅스 등…바이킹이 잉글랜드 접수하며 확산

    영화 흥행을 점칠 수 있는 팁 하나. 개봉 전 주연배우나 감독이 홍보 차 세계를 돌면 제작진이 전망한 흥행 가능성이 밝지 않다는 증거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인데 ‘터질 영화’는 이런 구질구질한 마케팅 안 한다. 어차피 입소문으로 관객이 들 게 확실한데 뭐 하러 홍보비를 허투루 쓸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가 그랬다. 여든 살이 된 감독을 주요국 순방까지 시키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현재까지 스코어를 보면 제작비 회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잘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퓨리오사>는 well-made 영화다. 다만 너무 지적(知的)인 게 흠인데 영화에는 성경, 그리스신화, 북유럽신화, 로마제국 이야기가 사방에 촘촘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건 먹물들이나 하는 얘기다. 관객들은 머리를 식히러 극장에 가지 머리를 쓰러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영화의 기저에 깔린 게 북유럽신화로, 키워드는 대사에 등장하는 ‘발할라’다. 그리스신화에만 익숙하다 보니 북구의 신이라면 오딘과 토르 정도만 알고 있지만 사실 북유럽신화는 대단히 방대하며 유럽만 놓고 보면 인지도 면에서 그리스신화를 압도한다. 수요일에 뷔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치자.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북유럽 바이킹에 기원한 문화 세 개를 소비한 셈이다. 추위를 피해 남하하던 바이킹 일족이 갈대가 무성한 개울을 보고 자기네들 말로 stor(갈대)+bek(개울)이라고 부른 것이 스타벅스의 어원이다. 뷔페는 바이킹의 식사 습관으로, 이들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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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입체적으로 이해하면 의미와 재미 다 가져

    역사는 왜 배울까.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건 학교 시험지에나 쓰는 답. 십수 년 역사를 공부했지만 단 한 번도 선택을 위한 기준 같은 걸 역사에서 구한 적은 없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현재는 미래를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면 역사 공부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거나.문제를 살짝 바꿔보자. 그렇다면 더 이상 시험 같은 걸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솔직한 답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네 찐 맛집은 절대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이유와 같다. 답은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재미를 혼자만 독차지하려고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 공부에는 특별히 지능이 필요하지 않다. 대학 시절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알았다. 내 머리가 신통찮다는 것을. 이후 철학으로 종목을 바꾸면서 더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 머리는 신통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역사로 방향을 틀었다. 잘한 선택이었다.역사는 (대체로) 정직하고 공부한 보상을 반드시 돌려준다. 주변을 보면 역사가 재미없다는 사람이 태반이다. 일단 수험 공부로 토막 역사를 읽었고 그러다 보니 실제 역사와 별 상관없는 연도만 지겹게 외운 탓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역사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공부가 없으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공부가 안 된다. 악순환이 역사 문맹을 만든다. 미리 말하지만 인생의 막심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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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지폐 모델 교체…한국선 언제 새 인물 나올까

    일본의 국왕 얼굴은 몰라도 이 사람 얼굴은 다 안다. 작년만 해도 700만 명 가까운 한국인이 일본 여행을 가기 전 환전 창구에서 이 사람을 만났다. 1만 엔권 지폐의 주인공인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 후쿠자와 유키치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가자며 조선을 재촉하더니 갑신정변 주역의 가족들이 연좌제로 몰살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런 야만스러운 종족과 동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병합에 동의한 사람이니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다.그래서인지 왠지 심술 맞아 보이는 이 사람의 얼굴을 오는 7월부터는 보지 않게 됐다. 일본이 자국 지폐 인물을 전면 교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후임자가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다. 여우 피하니 호랑이가 온다더니 우리에겐 딱 그 꼴이다.그 나라에서 뭐라 불리던 뭔 상관이냐고 할 문제가 아닌 게, 이 사람은 대한제국 시기에 발행된 제일은행권 앞면을 제 얼굴로 장식한 인물이다. 당시 일본 제일은행은 외국 돈 유통을 금지한 대한제국을 압박해 제일은행 지폐를 유통시켰고 시부사와는 그 은행의 총재였다. 악연으로 엮여 있다 보니 일본이 근대화를 강조할수록 우리에게는 스트레스가 되는 셈이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지폐에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을 내세우면 된다. 이봉창은 일왕을 노렸고, 윤봉길은 관동군 수뇌부를 반토막 냈으며,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그러나 배려 없는 나라에 맞대응한다며 유치한 나라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라도 주변에 이런 발언하시는 분 있으면 뜯어말리시라.현재 5000엔권과 1000엔권의 얼굴은 히구치 이치요와 노구치 히데요다. 겹치는 글자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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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전락은 피했지만…태국 등거리 외교의 '득실'

    어려서부터 여름도 겨울도 싫었다. 더울 때는 시원한 나라에서, 추울 때는 그 반대인 나라에서 지내는 게 꿈이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가 여러 번 맞았다. 딱 한 분만 나를 격려해주셨다. “짜식, 돈 많이 벌어야겠구나.” 돈을 못 벌었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뤄보겠다고 지난달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선택부터 시행착오였다. 그 나라는 따뜻한 나라가 아니라 더운 나라였다.태국에는 계절이 세 개 있다. 여름, 조금 더운 여름 그리고 아주 더운 여름이다. 다만 습도가 높지 않아 쪄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도 땀을 들이고 나면 뽀송뽀송까지는 아니더라도 끈적거리는 불쾌감은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는 관광지 말고는 한 번도 세계의 주목을 받아보지 못한 나라라고 한다. 한 번 있다. 여러 차례 뮤지컬로 선보이다가 1956년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은 물론 오스카에서 5개 부문 수상 대박을 터뜨린 <왕과 나>다. 약간 태국 왕실 버전의 <사운드 오브 뮤직>인데, 영국 여성이 왕실에 교사로 취업한 사실을 빼면 죄다 허구다. 마치 왕과 가정교사가 고차원적인 플라토닉 러브를 나눈 것처럼 설정했지만, 당시 라마 4세는 통치자로서 외교 문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가정교사의 얼굴이나 제대로 봤는지 의문이다.태국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한 번도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절반만 사실이다. 직접 식민 통치를 받지 않는 대신 현재의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리고 미얀마 일부를 열강에 넘겼다. 그 시기 영국은 서쪽에서, 프랑스는 동쪽에서 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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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의 대륙봉쇄, 자신을 겨눈 총구 됐다

    예술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을 주저앉히는 방법은 간단하다. “호모사피엔스 역사 이래 최고의 재능” 같은 찬사를 안겨주면 스스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대부분 다음 작품에서 망한다. 최악의 경우 데뷔작이 대표작이자 은퇴작이 되기도 하는데, 대중음악에서는 이런 경우를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라고 부른다. 악취미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중견 이상부터는 쉽지 않다. 칭찬도 제법 받아본 터라 매체에서 하는 소리도 가려들을 줄 알고 어느 정도 깜냥도 계산된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확실하게 통하는 필살기가 있으니 ‘거장’ 타이틀을 달아주는 거다. 증세는 심각하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뭐든 거장답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끝에 닭 잡을 때 소 칼을 쓰고, 가벼운 패스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강슛을 날린다.얼마 전 개봉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을 보며 든 생각이다. <나폴레옹>은 러닝타임이 무려 158분인 방광 압박 영화다. 시작하고 한 시간 동안 끔찍했다. 프랑스대혁명을 다루고 있는데, 아는 사람에게는 아는 얘기라 지루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몰라서 수면제다. 집에 갈까 생각할 무렵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나왔다. 프랑스 대 오스트리아·러시아 황제가 한판 붙어 ‘삼제회전(三帝會戰)’이라 불리는데, 한겨울 날아든 포탄이 호수의 얼음을 깨면서 말과 사람이 무더기로 빠져 들어가는 장면은 압권이다. 속으로 소리쳤다. “이거라고요, 감독님.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관객들이 기대한 것은 인간 나폴레옹에 대한 ‘거장다운 성찰’이 아니다. ‘전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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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日에 전해진 유럽 시계…어떻게 두 나라 운명 갈랐나

    시간은 내 편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뭐가 돼도 될 거라 믿고 있던 20대 초반이다. 판단이 명료해지는 불혹에 이르자 믿음이 흔들렸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계시 같은 깨달음이다.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제는 확신한다. 시간은 절대 내 편이 아니다. 시간은 시간의 편이고, 내 편이라고는 집에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아내뿐이다. 산소 같던 그녀는 이제 산 소(牛) 같은 여자가 됐고, 풀 대신 나를 뜯는다.시간은 인간에게 영감을 준다. 큰아이는 소해, 소월, 소시에 났다. 그리하여 아명을 남소삼이라 했는데, 1950~1960년대 남파 여간첩 이름 같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용의 해인 올해는 용띠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준다. 때가 되면 왔다 가는 시간의 뭉텅이일 뿐인데도 왠지 반갑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태어난 해가 돌아오면 각별히 조심하며 1년을 보낸다. 인간은 시간을 구분한다. 똑같은 시간인데도 2023년 12월 끝 날의 12시와 2024년 첫날의 1시는 다르게 느낀다. 마치 100m 달리기의 출발선에 새로 서는 느낌이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72시간 만에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시간은 위대한 교사다.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 이유를 설명한 것 중 철학적·현상학적·심리학적 설명은 하나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나마 설득력 있는 게 모래시계 이론이다. 매일 한 번씩 뒤집는다는 전제하에 시간이 지나면서 병목 구간의 유리가 닳아갈수록 모래의 낙하 속도가 빨라진다는 얘기다. 뭐, 위로는 안 된다. 시간을 기계 안에 가둔 게 시계로 해시계, 물시계, 불시계(양초)에 이어 나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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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종할 씨앗까지 털어가 수백만명 아사 '지옥'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졌을 때 가장 속상했을 사람은 아마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뉴스에서 항상 ‘원톱’이었고, 세계 각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등 그 자신도 록 스타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제는 중동전쟁에 밀려 단신으로 취급되거나 다른 뉴스 분량이 넘치면 그나마도 생략이다. 잊힌다는 것은 얼마나 서러운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우크라이나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작고 선한 나라 이미지로 조국을 포장하면서 푸틴을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당으로 만들었다.그러나 국제정치의 측면에서 보면 진짜 문제는 그분이다. 국민들에게 헛된 꿈을 불어넣었고(“EU에 들어가네”, “NATO에 가입하네”라고 말하지만 현실성은 별로 없다. 주변에 외교관이 있으면 물어보시라) 계속해서 러시아를 도발했다(때려봐, 때려봐). 조금 심하게 말해 ‘장군놀이’를 즐기는 그를 볼 때마다 대통령 역할은 그가 대통령으로 출연한 드라마에서 끝냈어야 모두에게 해피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의 고난은 그들이 90년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두 종류의 부모가 있었다. 자기 살을 자식에게 양도한 부모와 자식의 살로 삶을 이어간 부모.인류 역사에는 모쪼록 사실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사건들이 있다. 그중 압도적 1위가 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다(끝까지 읽고 나서 반박할 사례를 든다면 정말 고맙겠다).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자리를 계승했을 때 그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자유시장경제를 뛰어넘고 말겠다는 신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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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만 '대약진'한 中 경제개발…굶주림은 일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는 중국군을 농민군이라고 불렀다. 사람 깔보는 게 취미였던 맥아더의 고질병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는 중국 혁명의 본질이 농민 반란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맥아더에게 중국과의 전쟁은 농민들과의 싸움이었고 어찌 보면 정확한 표현이었던 것이다.1921년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당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소련 첩자에게 200위안을 받아 썼을 때부터 마오쩌둥은 크렘린에 쥐여살았다. 제자를 가르치려는 혁명 스승의 주문은 집요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에 따라 스탈린은 줄기차게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주문했고, 이는 마오에게 스트레스의 원천이었다.게다가 중국에 파견된 코민테른의 군사 고문관 오토 브라운은 스탈린의 말이라면 똥을 된장이라고 해도 믿는 인간이었다. 그는 스탈린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마오를 노이로제 상태에 빠뜨린다. 전술 회의에서 기어이 마오는 폭발한다. “눈을 까뒤집고 봐라. 중국에 무슨 프롤레타리아트가 있다는 말인가.” 이어 마오의 정치적 싸움 개 덩샤오핑은 가장 젊고 혁명적인 병사를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불려온 청년 병사는 낫을 들고 있었고 거기에 쇠꼬챙이를 연결한 자신의 참신함을 자랑했다.덩샤오핑은 브라운에게 물었다. “댁의 눈에는 저게 프롤레타리아트로 보이냐.” 이 에피소드는 실화가 아니라 마오파와 반대파 사이에 오간 논쟁을 짜깁기해 재구성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오가 농민을 무시했다는 얘기는 아니다.그 자신 역시 농민이었던 마오는 그들을 신뢰하고 사랑했으며, 중국 혁명의 동력이 농민인 동시에 자신이 건설할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