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강한 '결혼의 힘' (上)
13세기 이후 적극적 결혼정책 통해 영지 확장
독일·스페인 등 지배…신성로마제국 제위 독점
아래턱·아랫입술 나온 프리드리히 3세 이후
반복된 근친혼으로 기형적 외모 나타나
13세기 이후 적극적 결혼정책 통해 영지 확장
독일·스페인 등 지배…신성로마제국 제위 독점
아래턱·아랫입술 나온 프리드리히 3세 이후
반복된 근친혼으로 기형적 외모 나타나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전적으로 꾸며낸 것이기도 했다. 막시밀리안 1세는 건강한 중년의 모습으로 묘사됐다. 실상 그는 관을 준비하고 여행을 떠나야 할 정도로 갖은 병마에 시달리는, 희끗희끗한 수염이 난 노인이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부인과 아들(미남공 필리프)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다. 부인인 마리 드 부르고뉴가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은 죽음을 암시한다. 초상화에 등장하는 세 아이는 서로 만나본 적도 없었다. 할아버지의 팔을 껴안고 있는 페르디난트는 스페인에서 자랐고, 한가운데 그려진 겐트의 카를은 저지대 국가에서 성장했다. 카를의 유명한 주걱턱은 상당히 완화된 채 묘사됐다.
심지어 금발인 세 번째 아이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피가 흐르지도 않았다. 야기에우워 가문 출신 헝가리 국왕 러요시 2세는 1515년 이중 약혼에 힘입어 합스부르크가와 인연을 맺었지만, 이듬해 아버지 브와디스와프 2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고아가 됐다.
막시밀리안은 후견인으로서 그를 가족 초상화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마치 마법처럼, 러요시가 약관의 나이에 오스만튀르크와 전투에서 사망한 탓에 그의 왕국은 고스란히 합스부르크 가문의 품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수다한 결점과 거짓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일군 최대 업적을 한눈에 보여준다. 바로 혼맥으로 유럽을 제패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혼정책’의 하이라이트가 담겼기 때문이다. “남들은 싸우도록 놔둬라. 그대 축복받은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Bella gerant alii, tu felix Austria nube)”라는 널리 알려진 라틴어 문구처럼 합스부르크 가문은 ‘혼(婚)테크’의 달인이었다. 그중에서도 15세기 일련의 결혼정책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을 유럽 최고의 헤게모니 세력으로 키운 막시밀리안 1세는 유독 두드러지는 인물이었다.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인 아르강 유역에 있던 ‘독수리의 성’이란 뜻의 하비히츠부르크(Habichtsburg)라는 작은 성에서 출발한 귀족 가문인 합스부르크 가문은 그 출발은 미미했지만 잇따라 결혼정책을 성공시킨 덕에 유럽 대륙 대부분과 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하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가는 전통적인 ‘성장 수단’인 전쟁보다 결혼을 활용해 세력을 키웠다는 데 놀라운 독창성이 있다. 대대로 장가 잘 가고, 시집 잘 보내서 거둔 가문의 성과는 눈부셨다. 13세기부터 20세기 사이에 합스부르크가는 오늘날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체코·슬로바키아·유고·루마니아·폴란드·헝가리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던 여러 제국과 왕국, 공국 그리고 여러 영주령을 지배했다. 1452년부터 1806년까지의 기간에는 비텔스바흐 가문이 잠시 제위를 차지하던 짧은 시기(1740~1745년)를 제외하곤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를 계속해서 독점했다. 1848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즉위했을 때 그는 오스트리아 영지와 헝가리 국왕령뿐 아니라 보헤미아 왕령, 갈리치아 왕국, 크라쿠프 대공령, 부코비나 공작령, 달마티아 왕령, 잘츠부르크 공작령을 지배하고 있었다. 제국의 규모가 줄어든 19세기에도 합스부르크가는 375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25만7478㎢의 영지를 보유해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지역을 지배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결혼을 통해 영지를 확장해나갔고, 마치 오늘날의 다국적 기업처럼 제각기 다른 왕국들로부터 필요한 옵션을 뽑아 적극적으로 결혼정책에 투자해 과실을 거둬나갔다. 결혼을 통해 합스부르크가 성장한 기원은 상당히 오래됐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15세기 후반 합스부르크가를 이끌던 프리드리히 3세에 의해 결혼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본다. 이후 아들 막시밀리안 1세 때 전성기를 맞았고, 증손자인 칼 5세 시대에 최대 효과를 발휘했다.
프리드리히 3세는 생물학적으로 합스부르크가의 특성을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아래턱과 아랫입술이 유난히 튀어나온 인물이었다. ‘하악 돌출형’인 프리드리히 3세의 외모는 이후 일종의 근친혼이 반복되면서 합스부르크가의 유전적 특질로 자리 잡는다. 가문의 상징인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입술’이 탄생한 것이다. 사실 프리드리히 3세의 신체적 특징은 어머니인 마소비아의 공주 침바르카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이후 합스부르크가의 후손들은 튀어나온 아랫입술 탓에 비가 오면 입안으로 빗물이 흘러 들어갈 정도가 됐다고 전해진다.
![[김동욱의 세계를 바꾼 순간들] 합스부르크가문, '혼테크'로 유럽 최강자 지위에](https://img.hankyung.com/photo/202510/01.41157276.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