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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식민지 전락은 피했지만…태국 등거리 외교의 '득실'
어려서부터 여름도 겨울도 싫었다. 더울 때는 시원한 나라에서, 추울 때는 그 반대인 나라에서 지내는 게 꿈이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가 여러 번 맞았다. 딱 한 분만 나를 격려해주셨다. “짜식, 돈 많이 벌어야겠구나.” 돈을 못 벌었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뤄보겠다고 지난달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선택부터 시행착오였다. 그 나라는 따뜻한 나라가 아니라 더운 나라였다.태국에는 계절이 세 개 있다. 여름, 조금 더운 여름 그리고 아주 더운 여름이다. 다만 습도가 높지 않아 쪄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도 땀을 들이고 나면 뽀송뽀송까지는 아니더라도 끈적거리는 불쾌감은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는 관광지 말고는 한 번도 세계의 주목을 받아보지 못한 나라라고 한다. 한 번 있다. 여러 차례 뮤지컬로 선보이다가 1956년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은 물론 오스카에서 5개 부문 수상 대박을 터뜨린 <왕과 나>다. 약간 태국 왕실 버전의 <사운드 오브 뮤직>인데, 영국 여성이 왕실에 교사로 취업한 사실을 빼면 죄다 허구다. 마치 왕과 가정교사가 고차원적인 플라토닉 러브를 나눈 것처럼 설정했지만, 당시 라마 4세는 통치자로서 외교 문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가정교사의 얼굴이나 제대로 봤는지 의문이다.태국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한 번도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절반만 사실이다. 직접 식민 통치를 받지 않는 대신 현재의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리고 미얀마 일부를 열강에 넘겼다. 그 시기 영국은 서쪽에서, 프랑스는 동쪽에서 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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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대륙봉쇄, 자신을 겨눈 총구 됐다
예술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을 주저앉히는 방법은 간단하다. “호모사피엔스 역사 이래 최고의 재능” 같은 찬사를 안겨주면 스스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대부분 다음 작품에서 망한다. 최악의 경우 데뷔작이 대표작이자 은퇴작이 되기도 하는데, 대중음악에서는 이런 경우를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라고 부른다. 악취미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중견 이상부터는 쉽지 않다. 칭찬도 제법 받아본 터라 매체에서 하는 소리도 가려들을 줄 알고 어느 정도 깜냥도 계산된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확실하게 통하는 필살기가 있으니 ‘거장’ 타이틀을 달아주는 거다. 증세는 심각하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뭐든 거장답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끝에 닭 잡을 때 소 칼을 쓰고, 가벼운 패스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강슛을 날린다.얼마 전 개봉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을 보며 든 생각이다. <나폴레옹>은 러닝타임이 무려 158분인 방광 압박 영화다. 시작하고 한 시간 동안 끔찍했다. 프랑스대혁명을 다루고 있는데, 아는 사람에게는 아는 얘기라 지루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몰라서 수면제다. 집에 갈까 생각할 무렵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나왔다. 프랑스 대 오스트리아·러시아 황제가 한판 붙어 ‘삼제회전(三帝會戰)’이라 불리는데, 한겨울 날아든 포탄이 호수의 얼음을 깨면서 말과 사람이 무더기로 빠져 들어가는 장면은 압권이다. 속으로 소리쳤다. “이거라고요, 감독님.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관객들이 기대한 것은 인간 나폴레옹에 대한 ‘거장다운 성찰’이 아니다. ‘전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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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에 전해진 유럽 시계…어떻게 두 나라 운명 갈랐나
시간은 내 편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뭐가 돼도 될 거라 믿고 있던 20대 초반이다. 판단이 명료해지는 불혹에 이르자 믿음이 흔들렸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계시 같은 깨달음이다.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제는 확신한다. 시간은 절대 내 편이 아니다. 시간은 시간의 편이고, 내 편이라고는 집에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아내뿐이다. 산소 같던 그녀는 이제 산 소(牛) 같은 여자가 됐고, 풀 대신 나를 뜯는다.시간은 인간에게 영감을 준다. 큰아이는 소해, 소월, 소시에 났다. 그리하여 아명을 남소삼이라 했는데, 1950~1960년대 남파 여간첩 이름 같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용의 해인 올해는 용띠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준다. 때가 되면 왔다 가는 시간의 뭉텅이일 뿐인데도 왠지 반갑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태어난 해가 돌아오면 각별히 조심하며 1년을 보낸다. 인간은 시간을 구분한다. 똑같은 시간인데도 2023년 12월 끝 날의 12시와 2024년 첫날의 1시는 다르게 느낀다. 마치 100m 달리기의 출발선에 새로 서는 느낌이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72시간 만에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시간은 위대한 교사다.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 이유를 설명한 것 중 철학적·현상학적·심리학적 설명은 하나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나마 설득력 있는 게 모래시계 이론이다. 매일 한 번씩 뒤집는다는 전제하에 시간이 지나면서 병목 구간의 유리가 닳아갈수록 모래의 낙하 속도가 빨라진다는 얘기다. 뭐, 위로는 안 된다. 시간을 기계 안에 가둔 게 시계로 해시계, 물시계, 불시계(양초)에 이어 나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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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할 씨앗까지 털어가 수백만명 아사 '지옥'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졌을 때 가장 속상했을 사람은 아마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뉴스에서 항상 ‘원톱’이었고, 세계 각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등 그 자신도 록 스타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제는 중동전쟁에 밀려 단신으로 취급되거나 다른 뉴스 분량이 넘치면 그나마도 생략이다. 잊힌다는 것은 얼마나 서러운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우크라이나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작고 선한 나라 이미지로 조국을 포장하면서 푸틴을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당으로 만들었다.그러나 국제정치의 측면에서 보면 진짜 문제는 그분이다. 국민들에게 헛된 꿈을 불어넣었고(“EU에 들어가네”, “NATO에 가입하네”라고 말하지만 현실성은 별로 없다. 주변에 외교관이 있으면 물어보시라) 계속해서 러시아를 도발했다(때려봐, 때려봐). 조금 심하게 말해 ‘장군놀이’를 즐기는 그를 볼 때마다 대통령 역할은 그가 대통령으로 출연한 드라마에서 끝냈어야 모두에게 해피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의 고난은 그들이 90년 전에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두 종류의 부모가 있었다. 자기 살을 자식에게 양도한 부모와 자식의 살로 삶을 이어간 부모.인류 역사에는 모쪼록 사실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사건들이 있다. 그중 압도적 1위가 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다(끝까지 읽고 나서 반박할 사례를 든다면 정말 고맙겠다).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자리를 계승했을 때 그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자유시장경제를 뛰어넘고 말겠다는 신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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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만 '대약진'한 中 경제개발…굶주림은 일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는 중국군을 농민군이라고 불렀다. 사람 깔보는 게 취미였던 맥아더의 고질병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는 중국 혁명의 본질이 농민 반란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맥아더에게 중국과의 전쟁은 농민들과의 싸움이었고 어찌 보면 정확한 표현이었던 것이다.1921년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당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소련 첩자에게 200위안을 받아 썼을 때부터 마오쩌둥은 크렘린에 쥐여살았다. 제자를 가르치려는 혁명 스승의 주문은 집요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에 따라 스탈린은 줄기차게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주문했고, 이는 마오에게 스트레스의 원천이었다.게다가 중국에 파견된 코민테른의 군사 고문관 오토 브라운은 스탈린의 말이라면 똥을 된장이라고 해도 믿는 인간이었다. 그는 스탈린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마오를 노이로제 상태에 빠뜨린다. 전술 회의에서 기어이 마오는 폭발한다. “눈을 까뒤집고 봐라. 중국에 무슨 프롤레타리아트가 있다는 말인가.” 이어 마오의 정치적 싸움 개 덩샤오핑은 가장 젊고 혁명적인 병사를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불려온 청년 병사는 낫을 들고 있었고 거기에 쇠꼬챙이를 연결한 자신의 참신함을 자랑했다.덩샤오핑은 브라운에게 물었다. “댁의 눈에는 저게 프롤레타리아트로 보이냐.” 이 에피소드는 실화가 아니라 마오파와 반대파 사이에 오간 논쟁을 짜깁기해 재구성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오가 농민을 무시했다는 얘기는 아니다.그 자신 역시 농민이었던 마오는 그들을 신뢰하고 사랑했으며, 중국 혁명의 동력이 농민인 동시에 자신이 건설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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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왕국 악단이 더 뛰어나냐"…경쟁이 모차르트 낳아
생전에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지난해 8월 미국 시카고 초대형 록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7만 관중을 쥐락펴락하며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준 걸그룹 ‘뉴진스’ 이야기다. 세 번 놀랐다. 중간중간 관중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무대 매너가 당당해서, 그리고 도무지 우리나라 여자아이들 같지 않아서(한 명은 호주, 베트남 이중 국적이지만 뭐). 일찍이 선각 이수만 선생께서 고등학생 시절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을 보며 “외국 가수에게 한국 팬들이 열광하는 것이 가하다면 그 역 또한 불가할 것이 없지 않은가” 각오를 다지신 지 반세기, 그리고 그걸 실현하겠다고 클론과 H.O.T의 손을 잡고 그것도 외국이라고 중국 음악 시장으로 출격하신 지 불과 20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를 안방 드나들 듯하는 모습이 당연해 보이는 10대들에겐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겠지만, 나 같은 ‘아재’ 입장에서는 뉴진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경천동지할 일이다.예술에 필요한 게 재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상에 재능만큼 흔한 게 없다. 그리고 더 흔한 게 실패한 재능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 예술을 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운은 사람과 때다. 마이클 잭슨이 200년 전 미국 남부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라. 그저 재롱 잘 떠는 ‘검둥이’ 취급받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 운도, 활동 시기도 죄다 나빴던 게 모차르트다.신을 찬미하는 게 음악 예술가들의 유일한 활동 영역이던 중세가 저물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세속 음악이 종교음악과 헤어지는데, 이어지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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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상승한 예술가들 뒤엔 고리대금업자가 있었다
원시 시대 배경의 영화를 보면 인간과 유인원 중간쯤 되는 존재들이 동굴 안에 모여 구질구질하게 살아간다. 오래된 편견으로 근거 없는 설정이다. 빙하시대 절정기를 제외하면 인류는 대부분 넓게 트인 곳에서 생활했다. 그럼 동굴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저장소이자 집회나 예식을 치르는 장소, 그도 아니면 별장이었다. 동굴은 오랫동안 사물을 보존하는 데 적합하다. 자연히 원시 인류 유산의 대부분이 동굴에서 발견됐고(들판에서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 때문에 우리는 선사시대 인류가 동굴로 주택 문제를 해결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동굴마다 빠지지 않는 게 벽화다. 보통은 동물이 오브제인데, 몸통마다 돌로 찍은 흔적이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와 너무나 잡아먹고 싶은데 사냥감의 속도며 중량에 절망한 끝에 군침만 흘리며 벌인 정신 승리였다는 가설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이 음향적으로 가장 울림이 깊은 곳에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동굴의 용도가 주거가 아니라 예식 등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곳에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무리 중에 가장 귀가 예민하고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 즉 예술가였을 것이다. 보통 2인 1조로 작업했을 텐데(가정이다) 음향 담당이 미술 담당에게 동굴 이곳저곳에서 소리를 질러보라고 한 뒤 장소를 확정하면 미술 담당이 벽에 들소를 그렸다. 가장 큰 역할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공간은 예술가의 것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제사장이었고, 예술가는 하잘것없는 무대와 소품 책임자였다(이문열의 소설 <들소>에는 원시 예술가가 어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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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식민지에 공짜로 '독립'을 주지 않았다
멀리서 봐야 예쁘다. 대충 봐야 사랑스럽다. 세상도 그렇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 출장을 갔을 때다. 동행한 장관이 멀리 보이는 언덕 위 초가를 보며 말했다. “정말 목가적인 풍경입니다요.” 박정희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살아봤습니까?” 여름이면 벌레가 들끓고 겨울에는 냉풍이 문풍지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드는 삶에 박정희는 진저리를 쳤던 사람이다.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놀러 갔을 때다. 가보고서야 왜 그들이 해상 제국에 만족하지 않고 육상 영토를 개척하다 오스만제국을 맞아 붕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녀온 이들은 다 안다. 관광으로 며칠 지내다 오면 모를까 거기가 사람 살 곳인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물비린내가 진동하는 운하에다 옆집에 놀러 가려고 해도 배를 타야 한다. 당시 베네치아 귀족들은 주말에 정원이 딸린 별장에서 우아하게 지내는 것이 로망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욕심을 부렸고 화를 불렀을 것이다. 현재 베네치아를 찾는 한 해 평균 관광객은 2000여만 명이다. 베네치아 인구가 6만 정도니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300명 중 한 사람만 현지인이다. 다들 거기서 살기 싫은 것이다.멀리서 봐야 멋지다. 대충 봐야 아름답다. 사람도 그렇다. 얼마 전 미국에서 벌어진 흑인 혐오 총격 사건으로 세 명이 사망했을 때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연설이 다시 불려 나왔다. 백인을 타도하는 것도 아니고 노예의 한을 푸는 것도 아닌, 주인의 아들과 노예의 아들이 형제애를 품고 식탁에 둘러앉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연설이다. 할아버지의 꿈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킹의 귀여운 손녀까지 말을 보탤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