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베네치아의 정치 유산 '도제'

지도자 '도제' 선출, 공정·투명하게 진행
평의회 전체 매수하지 않는 한 당선 힘들어

가장 유명한 도제는 십자군 참가한 단돌로
콘스탄티노플 함락해 동로마 땅 절반 얻어
흑해 무역 장악 … 베네치아를 해상제국으로
그리스 반도의 동, 서, 남 세 바다는 이름이 각자 따로 있다. 에게, 아드리아, 이오니아 셋인데 아드리아 쪽만 장악하고 있던 베네치아는 4차 십자군전쟁을 통해 에게해와 흑해 쪽까지 확장하며 무역 거점을 완벽하게 확보했다.
그리스 반도의 동, 서, 남 세 바다는 이름이 각자 따로 있다. 에게, 아드리아, 이오니아 셋인데 아드리아 쪽만 장악하고 있던 베네치아는 4차 십자군전쟁을 통해 에게해와 흑해 쪽까지 확장하며 무역 거점을 완벽하게 확보했다.
고대 아테네 디오니소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비극(悲劇) 경연이었다. 기성 또는 신인의 차별이 없었고 새로운 작품만 출품할 수 있었는데, 이때 채점 방식이 오묘하고 절묘하다. 먼저 아테네의 10개 부족이 각각 약간 명을 추천한다. 이를 밀봉해 보관했다가 경연 전 집정관이 무작위로 10명을 추첨했다. 이 10명이 경연 심사를 하는데 집정관이 이 중 5개를 골라내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왜 전부가 아니라 5개만 골랐을까. 일단 부정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10표 모두 개표 시 6명만 매수하면 끝이다. 그러나 5표 개봉 시 8명을 매수해야 확실하게 우승이 보장된다. 아테네는 법에 대한 순종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가장 중시한 도시국가다. 8표 매수, 절대 쉽지 않다. 그래도 어딘지 시시하다고? 5표 개표는 단순한 숫자상 의미가 아니다. 절반 개표는 선정의 우연성과 판정의 불가피한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경연 참가자 A, B, C가 있다고 치자. 세 사람은 순서대로 각각 2표, 3표, 5표를 얻었다. 그런데 집정관이 고른 5표가 하필 A와 B를 선택한 거였다면? 결과적으로 미개봉 5표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따라서 우승자는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자만심을 억제하게 된다. 탈락자 역시 열패감이나 자괴감에서 벗어난다. 그러니까 패자에게는 위로를, 승자에게는 겸손을 느끼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경연에서 우승한 사람은 아마 이런 소감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운이 좋았지요. 하하하.”
엽기에 가까운 도제 선출 방식
연극 경연 평가는 자의성, 우연성을 장점으로 할 수 있지만 정치 지도자를 그렇게 뽑았다가는 큰일 난다. 무엇보다 그 프로세스를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하고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도록 해야 했다. 이 부분에서 독보를 넘어 엽기적 선출 방식을 고안한 국가가 베네치아다. 베네치아의 국가원수는 ‘도제(Doge·통령)’다. 1268년에 확정된 도제 선출 방식을 보자. 도제는 대(大)평의회에서 선출하는데, 평의회는 20세 이상의 귀족 남자들로 구성된다. 일단 평의회 위원 중에서 30명을 추린다. 금색 공 30개와 은색 공을 섞어놓고 거기서 금색을 고른 사람만 뽑는데 당연히 100% ‘운’이다. 다음에는 이 30명을 역시 뽑기로 9명으로 줄인다. 이 9명이 40명을 선출한다. 40명을 다시 뽑기로 12명으로 줄인다. 이 정도면 공정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12명이 또 25명을 선출한다. 25명 중 다시 뽑기로 9명으로 줄인다. 이 9명이 45명을 선출하면 또 11명으로 줄인다. 이들이 41명을 선출하면 그제야 비로소 투표를 했고 이 중 25표 이상을 획득해야만 도제가 된다. 평의회 위원 전체를 매수하지 않는 한 당선이 불가능한 것이 베네치아의 도제였다.

무거운 책임과 자기 절제 필요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를 총괄하는 도제는 꿀맛 자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6명의 보좌관은 보좌인 동시에 감시자였다. 이들의 동의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 편지는 모두 검열받았다. 정보 유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고 심지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검열 대상이었다. 시어머니 여섯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의 삶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거기에 10명으로 구성된 임기 1년의 임시위원회라는 사정 기관까지 눈을 부라리고 있어 부정행위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도제의 임기는 종신이다. 그러니까 철저히 국가의 종으로 살다가 죽으라는 얘기였다. 죽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사망일부터 바로 생전 업무 평가가 시작되고 사소한 법 위반까지 다 찾아내 유산에서 해당 벌금을 차감했다. 처음부터 안 하겠다고 하면 되지 않으냐고? 그것도 처벌 대상이다. 하긴 자기 하나를 뽑기 위해 그 복잡한 공정에 참여한 동료 귀족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고사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 선출 방식과 업무는 1797년 공화국이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베네치아, 동(東)지중해 여왕으로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베네치아 도제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4차 십자군에 참가했던 엔리코 단돌로다. 무려 80대 중반 나이에 도제에 선출된 그는 십자군의 맹주 노릇을 하며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했고 그 대가로 동로마제국 영토의 8분의 3을 얻어냈다. 아드리아해에 접한 코르푸, 크레타를 비롯한 에게해의 주요 섬 그리고 흑해 무역을 통제할 수 있는 아드리아노플에서 갈리폴리 사이의 영토였는데, 이들 지역은 전부 베네치아 상선이 지나다니는 곳에 있다. 실속 있는 국익의 실현으로 그는 중세 베네치아를 해상 제국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복기해보면 애초에 베네치아가 십자군을 실어 나르는 조건으로 받기로 한 것은 은화 8만5000마르크였다(지금의 은 약 20톤에 해당). 당시 가장 부유한 나라이던 프랑스의 2년 치 예산인데 십자군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베네치아는 이 돈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대신 이후 더 많은 것을 챙겨 300년에 달하는 전성기를 누렸다. 진정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무역 외에 또 하나 베네치아 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성지순례 사업이다.
‘그깟 몇 명 태워 보내서 얼마나 번다고’ 하며 무시할 게 아니다. 유럽 지역에서 몰려드는 수천 명의 순례자 행렬은 베네치아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다발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