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대형여행사' 베네치아市

교황청 허가증·이슬람청 통행증부터
교통·숙박·통역·가이드 등 패키지 제공

"면벌부 사면 친척도 구원받는다"
성지 순례 미어터지며 베네치아 '돈방석'
교회 부패로 흔들릴 때 마틴 루터 등장
1979년 아일랜드의 한 성지에서 성수(holy water)를 병에 담고 있는 사람들. 영성과 미신 사이 어느 지점에 놓인 이 행동은 절대자에 의지하려는 인간 심리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1979년 아일랜드의 한 성지에서 성수(holy water)를 병에 담고 있는 사람들. 영성과 미신 사이 어느 지점에 놓인 이 행동은 절대자에 의지하려는 인간 심리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북촌한옥마을은 고풍스러운 한옥과 복잡한 현대 도시가 공존하는 곳으로 국내외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 숫자가 연간 수백 만이라니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거의 100% 북촌을 방문한다고 봐도 되겠다. 국제 공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지만 북촌 주민들 입장에서는 하나도 반가울 게 없다. 고즈넉하던 골목의 풍경을 바꾼 바글바글한 인파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불법 주차로 인한 통행 불편과 밤늦도록 이어지는 소음 그리고 사생활 노출은 삶의 질을 엉망으로 만든다. 주민들과 관광객 사이의 갈등은 깊어졌고 고민 끝에 종로구청은 일부 주거 지역에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관광객의 통행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주민들은 당연히 반긴다. 관광객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주변 상인들은 매출 감소를 우려하며 반발했다. 누구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주민들은 동네가 전쟁터로 변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관광객 중에는 대문이 열려 있으면 태연히 들어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는데, 자기 집 앞마당에 낯선 사람이 서성이는 광경을 떠올려보라. 통행 제한이 아니라 아예 통행금지가 필요해 보이지만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북촌은 서울의 핵심인 경복궁과 창덕궁을 잇는 관광 코스다. 북촌이 죽으면 서울 도심 관광객 수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 상인들 입장도 자기 이익만 고집한다며 무시할 수만은 없다. 상권이 죽으면 동네가 죽고 동네가 죽으면 동네의 경제적 가치가 하락한다. 해법은 쉽지 않다. 베네치아 관광객 2000만 명, 현지인의 400배거주지의 관광지화로 인한 갈등은 북촌한옥마을만의 고민이 아니다. 여행객이 많이 찾는 도시란 도시는 같은 이유로 다 몸살을 앓는다. 지난 4월부터 베네치아는 관광객 방문을 제한하기 위해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5유로의 입장료를 징수했다. 인구 5만 남짓의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은 한 해 2000만 명이 넘는다. 베네치아에서 만나는 사람 300명 중 현지인은 불과 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누가 도시의 주인인지 모를 상황에서 그저 놀러 왔다 가는 사람이 저지르는 소소한 무례와 폭력에 현지인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자고 나면 생기는 카페와 호텔로 임대료와 집세는 계속 오른다. 현지인에게 베네치아는 사는 곳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곳인 셈이다. 소중한 삶의 터전에 낯선 타인이 몰려오는 끔찍한 경험은 그러나 시계를 중세 말로 돌리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 성지순례로 가외 수입에 일자리까지예루살렘은 기독교인의 성지다. 1300년에서 1600년 사이 매해 수천 명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그러나 단독 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절차는 복잡하고 체계적인 여행 시스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성지순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로마 교황청에 가서 ‘가도 됩니까’ 하는 순례 허가증을 발급받는 일이다. 다음으로 이교도인 이슬람 관청에서 역시 ‘가도 됩니까’ 하는 통행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앞에 있는 것을 생략하면 파문당할 수도 있다. 후자가 없으면 안전보장이 안 된다.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나 까다로운 이 모든 절차를 패키지로 묶어 상품화한 곳이 베네치아다. 순례 허가증과 통행 허가증은 물론 교통편, 지중해 항해 안전보장, 숙박, 통역, 가이드까지 하나로 묶어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베네치아가 챙긴 것은 투어 비용뿐이 아니다. 베네치아로 몰려드는 수천 명의 순례자에게 숙박과 식사를 제공했으며, 여행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을 팔았다. 가외 수입과 부업이 없던 시대다. 한 명이라도 더 와주기를 바란 것이 베네치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순례자 수송 선단은 고용 창출로 이어졌다. 관(官)은 물론이고 민간에까지 고루 이익이 돌아가는 게 순례 선단 운용 사업이었다. “성(聖) 안나를 아십니까”…중세 기독교 신앙의 위기성지순례는 기독교 신자들의 로망이다. 그러나 그거 말고도 이유가 하나 더 있었으니, 교황청의 면벌부(免罰符) 발부다. 성지순례에서 얻은 면벌부는 순례자의 죄뿐 아니라 연옥에서 신음하는 친척까지 구해줄 수 있었다. 지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런 주장이 통한 것은 중세 기독교가 갈 데까지 갔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 1505년 5월 쏟아지는 폭우와 벼락에 놀란 한 법대생이 자기도 모르게 서언을 했다. “도와주세요, 성 안나여. 살려주시면 제가 수도사가 될게요.” 창조주도 아니고 예수도 아니고 성 안나? 논리는 이렇다. 당시 심판자 예수는 좀 무서우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니 인자한 마리아에게 부탁하면 예수에게 대신 전해줄 것이라는 미신이 팽배해 있었다. 그럼 대체 안나는 누구? 안나는 마리아의 어머니다. 그러니까 안나에게 부탁하면 안나는 마리아에게 그리고 마리아는 다시 예수에게 부탁한다는 황당한 사고가 작동하고 있었다. 무지렁이도 아니고 12세에 라틴어를 마스터한 영특한 학생까지 이 지경이었으니, 중세 신앙이 얼마나 참담하게 망가지고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 어이없는 서언을 한 학생의 이름은 마르틴 루터였다.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바로 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