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종교개혁의 시작

당시 가톨릭, 지옥 공포 이용해 막대한 수익
성인 기념 휴일만 100일…부르주아들 '부글'

"교황 영적 계급 아냐"…성직자 권위 무력화
루터, 1차 타깃 면벌부 폐지 내세워 개혁전쟁
독일어로 성경 저술 反가톨릭 서적 급속 확산
마틴 루터 /구글 이미지
마틴 루터 /구글 이미지
“역사는 신비에 가득 찬 신의 작업장이다.” 괴테가 한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역사는 그다지 신비롭지도 않으며 신의 작업장이라는 표현에는 신념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몰된 광부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무수한 사람이 기꺼이 팔을 걷어붙이고 목숨을 건다는 데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는 카뮈의 경구는 울림이 크다. 그보다 “역사는 자연과학적 필연 + 확률적 우연의 결과물”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데,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다만 그 일이 누구로 인해 일어날 것인지만 확률적이라는 얘기다.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을 때 자연과학적 필연, 그러니까 객관적 환경은 충분히 무르익은 상황이었다.1000년 가톨릭 세계관, 부르주아 이익과 충돌
도피 중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경. 15년 동안 20만 부가 팔렸는데, 책값 1.5굴덴은 노동자 몇 주 치 임금에 해당한다. 참고로 필사본 성경은 500굴덴. 인쇄술은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Getty Images
도피 중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경. 15년 동안 20만 부가 팔렸는데, 책값 1.5굴덴은 노동자 몇 주 치 임금에 해당한다. 참고로 필사본 성경은 500굴덴. 인쇄술은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Getty Images
일단 1000년 동안 지속된 가톨릭의 세계관은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의 이익과 심각하게 충돌했다. 당시 일을 하지 않는 주일과 각종 성인(聖人)을 기리는 축일이 1년에 무려 100일이었다. 사람이 놀아도 밀은 자라지만 사고파는 게 일인 부르주아에게 100일의 강제 휴무는 징벌과 다름없다. 이들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한편 로마 가톨릭은 구원에 대한 희망과 지옥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지옥의 저주를 피하려고 했고 현세와 내세의 일시적 형벌은 면벌부라는 종교적 공채를 통해 기간을 단축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루터다. 루터는 교황, 주교, 사제들이 전혀 영적 계급이 아니며 동일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 사이에서 다만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만인사제설이다. 구원에 대해서도 선행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라는 말로 교리를 역전시켰다. 심지어 선행으로 구원을 노리는 것은 인간이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증거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좋은 나무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설령 나쁜 나무에 좋은 열매가 달렸다 하더라도 그 열매는 나무를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다.” 성직자의 권위를 무력화하고 선행이 구원의 이유가 아니라 결과라는 루터를 통해 부르주아들은 개혁의 명분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초강력 군주들의 시대 … 루터에 유리하게 작용국제정치 지형의 팽팽함도 루터에게 유리했다. 종교개혁 시기 유럽의 지배자들을 보자.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 국왕 중 유일하게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에 출마한 인물로 탁월한 전략가다. 오스만제국의 술레이만 2세는 수많은 정복 사업을 통해 제국을 전성기에 올려놓은 명군이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로 로마 교황청과 불화의 싹을 키우고 있었다. 교황인 레오 10세는 종교적 사명 대신 정치적 야망을 불태운 이른바 ‘괴물 교황’ 시대의 마지막 주자다. 하나같이 강적들인 이 징그러운 인간들과 정신적·물리적 신경전을 벌이느라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1세는 ‘루터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인, 무슬림 그리고 교황이 황제의 권력을 속박해 종교개혁을 순조롭게 궤도에 올려놓은 셈이다.면벌부 찍던 인쇄기, 면벌부 타파 메시지 찍다구텐베르크가 고안한 인쇄술은 유럽 역사를 바꾼 획기적 발명품으로 15세기의 인터넷이다. 혁명적으로 발전한 서적 인쇄술은 루터의 양손에 잘 드는 칼과 창을 안겨주었다. 루터는 독일어로 글을 썼고, 이는 라틴어라는 장벽에 막혀 신에게 다가가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구텐베르크가 인쇄술로 돈을 번 사업이 바로 면벌부 인쇄였다는 사실이다. 면벌부는 기한이 정해져 있어 주기적으로 발행해야 했고, 교회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 품위 있고 고급스럽게 만들어졌다. 구텐베르크가 만든 면벌부는 인쇄 품질이 좋았고, 독일 전역의 교회에서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구텐베르크가 사망한 지 15년 후 출생한 루터가 이 면벌부를 1차 타깃으로 개혁 전쟁을 시작하고 자신의 반(反)가톨릭 저작을 이 인쇄술로 퍼뜨렸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15세기 말 창설된 제국 우편 제도는 루터에게 자신의 말(言)을 옮기는 최고의 말(馬)이었다. 그는 우편 제도의 유익을 충분히 누렸으며 당대에 가장 서신을 많이 쓴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기독교를 살린 루터라는 구명보트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내적·외적 상황과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까지 모든 정세는 급변하는 세상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루터가 아니었더라도 종교개혁은 시작되고 급물살을 탔을까. 여기에 확률적 우연의 묘미가 있다. 확률은 0과 1 사이의 값으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다. 0이 될 수도 있고(안 일어난다) 1이 될 수도 있는(일어난다) 이 상황을 결정짓는 것은 문제적 개인이다. 사고를 칠 인물이 등장해야 비로소 그 일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루터는 상습적 불평꾼이었고, 언제든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농부의 아들이지만 성경 박사이며 교황의 적입니다.” 마치 선전포고와 같은 이 말처럼 루터는 교황의 목 가장 가까이에 칼을 들이댄 인물이었다. 1520년 교황은 루터를 파문하면서 그를 ‘교회를 파괴하는 야생 멧돼지’라 불렀다. 루터는 교서를 공개적으로 불사르는 이벤트로 파문에 대응했다. 그것은 확률이 0에서 1로 이동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