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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기타

    남방계·북방계 얼굴 뚜렷한 한국인, 단일민족 맞다

    한국인은 유난히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집착한다. 단일민족은 한 국가의 국민이 단일한 민족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단일민족일까. 한국인의 얼굴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특징이 또렷하다. 어떤 각도로 봐도 배우 장동건과 연예인 강호동이 같은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난처하다. 현대에 들어와 생긴 현상이 아니다. 조선시대 오성 이항복의 초상화를 보면 눈이 크고 입술은 두툼한 데다 얼굴에는 살점이 많다. 남방계다. 경술국치 때 자결한 매천 황현은 눈이 옆으로 쪽 찢어진 전형적인 북방계다. 그럼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닌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단일민족이 맞다. 헛갈리는 이유는 인종과 민족을 구분하지 않아서다. ‘인종’은 유전적이고 생물학적인 특징에 따른 분류다. 언어, 문화, 관습 등 사회적 특징에 따라 분류한 것이 ‘민족’이다.한 지역에서 꾸준히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인종적 특징이 있다. 다만 내내 정주민이었는지 아니면 이동한 끝에 그 땅에 정착했는지에 따라 사정은 달라진다. 가령 튀르키예 사람들은 외모가 제각각이다.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에 분포하던 튀르크(돌궐)인이 오랜 시간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란인, 아랍인 그리고 유럽인과 섞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연히 서로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관습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가 같기 때문인데 아무리 그렇다지만 이방인의 눈에 어색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스탄불 호텔 프런트데스크에서 업무를 보던 여성은 하얀 유럽인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튀르키예 친구는 가무잡잡한 아랍인이었다.튀르키예인만큼이나 색상(色相)적으로 알록달록한 민족이 이스라엘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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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은 야곱이 천사와 싸워 얻은 이름

    유대인은 참 대단한 민족이다.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민족이 무려 1800년이 지나 자기들이 살았던 곳에 다시 국가를 세웠다. 여기서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1910년의 우리와 같은 국권 침탈 아니라 아예 영토를 잃은 실지(失地)를 말한다. 국가의 3대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거할 곳’을 상실한 것이다. 서기 132년 유대인의 마지막 반란이 일어난다. 지도자는 시몬 바르 코크바라고 불리는 사나이로 유대인에게 공식적으로 메시아 인증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상대는 로마제국. 3년여간 이를 악물고 싸웠지만 전투 기계나 다름없는 로마 군단을 상대로 민간인들이 거둘 수 있는 성과는 애초부터 없었다. 로마 군대는 1000개 이상의 마을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았으며 60만 명을 학살했다. 그렇게 짓밟아놓고도 로마는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유대인에게 더 이상 자비는 없다는 것을 공언했고, 진압 작전을 말살 작전으로 전환해 아예 끝을 봤다. 예루살렘을 아엘리아 카파톨리아라고 개명했으며, 민족의 이름은 유대인이 아닌 ‘시리아 - 팔레스타인’으로 바꾸었다. 유대인이 그토록 싫어하는 팔레스타인을 이름표로 붙여준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로마는 유대인의 예루살렘 거주를 금지했다. 다 나가고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다. 로마가 상대방 혹은 피지배 민족에게 이토록 가혹했던 것은 카르타고와 벌인 페니키아 전쟁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카르타고를 박살내면서 로마는 그 땅에서 식물의 생장이 불가능하도록 밭에 소금까지 뿌렸다.유대인의 역사는 중동 역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외국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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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쟁의 역사엔 반드시 호전적 인물이 있었다

    인간은 왜 전쟁할까.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인간이 전쟁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별 이득도 없는데 그 일을 반복해서 한다면 그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꽤 괜찮은 전쟁 서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도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전쟁이 그다지 싫지 않은 젊은이들.” 체험은 없고 기억은 영광에만 집중된, 전쟁 다음 세대가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는 고통과 어미들의 탄식이 잊힐 무렵 기꺼이 전쟁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분쟁의 역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반드시 호전적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이들은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며 교묘한 선동으로 그가 바꾸려는 질서가 얼마나 이익인지를 ‘희망’이라는 단어로 포장한다. 물론 이들은 옆집 김 씨나 회사 박 부장 같은 범인(凡人)이 아니다. 대부분 정치가와 군인이 직업인 이들은 인간을 지배하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야심가들이다. 그럼 남자만? 야심이 성별을 가려가며 깃들 리 없다. 원폭 실험을 강행한 인도 총리도, 중동전쟁에서 한때 원자폭탄 사용을 결정한 이스라엘 총리도, 포클랜드전쟁을 강행한 영국 총리도 모두 여자였다. 이 야심가들에게는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모두 ‘전쟁형 인간’이다. 그리고 이들이 벌인 전쟁은 전부 ‘개인적 의지’가 발휘된 결과였다. 이게 ‘그 책’이 설명하는 인간이 전쟁하는 이유다. 자, 그럼 실전 문제.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간단하다. 김일성의 의지다. 그의 개인적 의지가 3년 1개월 동안 한반도를 피비린내에 잠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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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에 쫓긴 흉노, 서쪽으로 가서 로마 몰락 불러

    기원전 202년 중국 한나라가 건국한다. 야심 차게 나라를 세웠지만, 실력은 별로였다. 중앙만 황제가 통치하고 지방은 10여 개 제후국이 다스렸다. 중국을 통일했다는 표현이 맞나 싶다. 한족 왕조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북방의 유목 기마민족과의 우열 관계다. 당시 북쪽에는 흉노 제국이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세계 최초의 유목 제국이다. 서쪽의 스키타이가 부족 연맹의 성격이 강했다면 흉노는 중앙집권체제였기 때문이다. 중원의 통일은 북방 민족에게는 좋은 일 반, 나쁜 일 반이다. 나쁜 것은 서역 무역 루트의 경쟁 세력 등장이요, 좋은 것은 창구 단일화다. 여럿으로 쪼개져 있으면 털어먹을 때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다 때려야 하지만, 하나로 모여 있으면 거래 비용이 절감된다. 해마다 겨울나기 용품을 털어가던 흉노는 한고조에게 체면 문제이기도 했다. 한고조는 흉노와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자기까지 포로 직전 상황으로 몰리면서 스타일을 구긴다. 결국 흉노와 화친을 맺는데, 말이 화친이지 사실상 조공 관계였다. 상황이 역전된 것은 기원전 141년 유철이 제7대 황제로 즉위하면서다. 무제라고 불리는 인물로, 우리와는 한사군의 설치로 별로 좋은 인연이 아니다.무제는 50년간 흉노와 전쟁을 치른 끝에 기어이 이들을 고비사막 북쪽으로 밀어낸다. 아무리 기마민족이라도 사막을 건너와 중원을 침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부터 흉노는 내부 분열을 반복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흉노의 재림은 기원후 370년 무렵이다. 다뉴브강을 지키던 로마군 수비대는 새로운 형태의 야만족을 발견한다. 흉노의 일족으로 이들은 동유럽에서 약탈을 마치고 새 먹잇감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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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뷔페·스타벅스 등…바이킹이 잉글랜드 접수하며 확산

    영화 흥행을 점칠 수 있는 팁 하나. 개봉 전 주연배우나 감독이 홍보 차 세계를 돌면 제작진이 전망한 흥행 가능성이 밝지 않다는 증거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인데 ‘터질 영화’는 이런 구질구질한 마케팅 안 한다. 어차피 입소문으로 관객이 들 게 확실한데 뭐 하러 홍보비를 허투루 쓸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가 그랬다. 여든 살이 된 감독을 주요국 순방까지 시키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현재까지 스코어를 보면 제작비 회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잘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퓨리오사>는 well-made 영화다. 다만 너무 지적(知的)인 게 흠인데 영화에는 성경, 그리스신화, 북유럽신화, 로마제국 이야기가 사방에 촘촘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건 먹물들이나 하는 얘기다. 관객들은 머리를 식히러 극장에 가지 머리를 쓰러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영화의 기저에 깔린 게 북유럽신화로, 키워드는 대사에 등장하는 ‘발할라’다. 그리스신화에만 익숙하다 보니 북구의 신이라면 오딘과 토르 정도만 알고 있지만 사실 북유럽신화는 대단히 방대하며 유럽만 놓고 보면 인지도 면에서 그리스신화를 압도한다. 수요일에 뷔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치자.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북유럽 바이킹에 기원한 문화 세 개를 소비한 셈이다. 추위를 피해 남하하던 바이킹 일족이 갈대가 무성한 개울을 보고 자기네들 말로 stor(갈대)+bek(개울)이라고 부른 것이 스타벅스의 어원이다. 뷔페는 바이킹의 식사 습관으로, 이들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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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입체적으로 이해하면 의미와 재미 다 가져

    역사는 왜 배울까.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건 학교 시험지에나 쓰는 답. 십수 년 역사를 공부했지만 단 한 번도 선택을 위한 기준 같은 걸 역사에서 구한 적은 없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현재는 미래를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면 역사 공부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거나.문제를 살짝 바꿔보자. 그렇다면 더 이상 시험 같은 걸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솔직한 답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네 찐 맛집은 절대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이유와 같다. 답은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재미를 혼자만 독차지하려고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 공부에는 특별히 지능이 필요하지 않다. 대학 시절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알았다. 내 머리가 신통찮다는 것을. 이후 철학으로 종목을 바꾸면서 더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 머리는 신통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역사로 방향을 틀었다. 잘한 선택이었다.역사는 (대체로) 정직하고 공부한 보상을 반드시 돌려준다. 주변을 보면 역사가 재미없다는 사람이 태반이다. 일단 수험 공부로 토막 역사를 읽었고 그러다 보니 실제 역사와 별 상관없는 연도만 지겹게 외운 탓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역사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공부가 없으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공부가 안 된다. 악순환이 역사 문맹을 만든다. 미리 말하지만 인생의 막심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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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지폐 모델 교체…한국선 언제 새 인물 나올까

    일본의 국왕 얼굴은 몰라도 이 사람 얼굴은 다 안다. 작년만 해도 700만 명 가까운 한국인이 일본 여행을 가기 전 환전 창구에서 이 사람을 만났다. 1만 엔권 지폐의 주인공인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 후쿠자와 유키치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가자며 조선을 재촉하더니 갑신정변 주역의 가족들이 연좌제로 몰살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런 야만스러운 종족과 동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병합에 동의한 사람이니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다.그래서인지 왠지 심술 맞아 보이는 이 사람의 얼굴을 오는 7월부터는 보지 않게 됐다. 일본이 자국 지폐 인물을 전면 교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후임자가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다. 여우 피하니 호랑이가 온다더니 우리에겐 딱 그 꼴이다.그 나라에서 뭐라 불리던 뭔 상관이냐고 할 문제가 아닌 게, 이 사람은 대한제국 시기에 발행된 제일은행권 앞면을 제 얼굴로 장식한 인물이다. 당시 일본 제일은행은 외국 돈 유통을 금지한 대한제국을 압박해 제일은행 지폐를 유통시켰고 시부사와는 그 은행의 총재였다. 악연으로 엮여 있다 보니 일본이 근대화를 강조할수록 우리에게는 스트레스가 되는 셈이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지폐에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을 내세우면 된다. 이봉창은 일왕을 노렸고, 윤봉길은 관동군 수뇌부를 반토막 냈으며,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그러나 배려 없는 나라에 맞대응한다며 유치한 나라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라도 주변에 이런 발언하시는 분 있으면 뜯어말리시라.현재 5000엔권과 1000엔권의 얼굴은 히구치 이치요와 노구치 히데요다. 겹치는 글자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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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전락은 피했지만…태국 등거리 외교의 '득실'

    어려서부터 여름도 겨울도 싫었다. 더울 때는 시원한 나라에서, 추울 때는 그 반대인 나라에서 지내는 게 꿈이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가 여러 번 맞았다. 딱 한 분만 나를 격려해주셨다. “짜식, 돈 많이 벌어야겠구나.” 돈을 못 벌었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뤄보겠다고 지난달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선택부터 시행착오였다. 그 나라는 따뜻한 나라가 아니라 더운 나라였다.태국에는 계절이 세 개 있다. 여름, 조금 더운 여름 그리고 아주 더운 여름이다. 다만 습도가 높지 않아 쪄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도 땀을 들이고 나면 뽀송뽀송까지는 아니더라도 끈적거리는 불쾌감은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는 관광지 말고는 한 번도 세계의 주목을 받아보지 못한 나라라고 한다. 한 번 있다. 여러 차례 뮤지컬로 선보이다가 1956년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은 물론 오스카에서 5개 부문 수상 대박을 터뜨린 <왕과 나>다. 약간 태국 왕실 버전의 <사운드 오브 뮤직>인데, 영국 여성이 왕실에 교사로 취업한 사실을 빼면 죄다 허구다. 마치 왕과 가정교사가 고차원적인 플라토닉 러브를 나눈 것처럼 설정했지만, 당시 라마 4세는 통치자로서 외교 문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가정교사의 얼굴이나 제대로 봤는지 의문이다.태국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한 번도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절반만 사실이다. 직접 식민 통치를 받지 않는 대신 현재의 라오스와 캄보디아 그리고 미얀마 일부를 열강에 넘겼다. 그 시기 영국은 서쪽에서, 프랑스는 동쪽에서 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