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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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세계제국 영국 만든 건 세금혁명과 해적질
벌거벗은 야만인들이 사슴 사냥을 한다고 꺅꺅대며 들판을 뛰어다니는 땅. 얼굴에 괴상한 페인트칠을 한 노인들이 질퍽한 땅에 주저앉아 진흙처럼 보이는 걸쭉한 액체를 들이켜는 풍경.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인으로는 최초로 브리타니아에 상륙했을 때 그는 충격을 넘어 절망감을 느꼈다. 신이여, 이런 곳이 정말 당신이 창조한 땅이고 저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란 말입니까. 그로부터 1800년이 흐른 뒤 이 야만인들이 영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걸쭉한 액체가 에일 맥주라는 상표로 전 세계인이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고상한 로마인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문명의 변방이던 이 나라가 세계 제국으로 우뚝 선 기원을 보통은 산업혁명(공업화)에서 찾는다. 원인과 결과가 바뀌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에 세계 제국이 된 것이 아니라 세계 제국이었기에 산업혁명을 실현할 수 있었다. 이미 영국은 자금력이 탄탄한, 유럽의 경제적 강자였다는 말씀이다. 영국의 자본 축적은 두 가지 경로로 이뤄졌다. 하나는 거국적인 해적질이다. 인류가 바다로 나간 날 시작된 게 해적의 역사다. 다른 나라라고 해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 차원에서 해적질을 장려한 나라는 영국이 유일하다. 해적이라고 하니 배 몇 척 끌고 다니는 꾀죄죄한 무리를 연상하기 쉽다. 전혀 아니다. 약탈보국의 기수였던 드레이크는 20척 이상의 함대에 무장한 병력 2500명을 싣고 다녔다. 해적이 아니라 해군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집권 초반 영국은 가난이 보편인 나라였다. 인민은 밥을 굶어도 왕실은 좀 사는 게 보통이다. 영국은 왕실까지 가난했다. 국왕에게는 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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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베르사유 달려간 '아줌마'…루이 16세 끌어내려
1789년 10월 5일, 수천 명의 프랑스 ‘아줌마’들이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궁전으로 행진을 시작한다. 아줌마라는 단어를 쓴 것은 여성 비하 의도가 아니라 이 집단의 뉘앙스를 살리는 데 이만한 단어가 없어서다. 이들은 파리의 생선 장수였다. 억척스럽고 힘까지 좋은 이 근육질 아줌마들이 생선 다듬는 칼을 들고 20㎞에 달하는 행진을 벌인 것은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조언했다는 루머가 파리 시내에 퍼졌고, 그 말에 ‘꼭지’가 돌아버렸기 때문이다. 베르사유를 포위한 이들은 여섯 명의 대표를 뽑아 루이 16세에게 면담을 요구한다. 접견실로 왕이 들어오는 순간 이 중 한 명이 충격과 감동으로 기절한다. 말로만 듣던 왕을 처음 본 데다 루이 16세의 풍채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은 국민회의가 결의한 봉건제 폐지와 인권선언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던 루이 16세의 파리 귀환을 요구했고, 기어이 파리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사태는 루이 16세가 자초했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드는 군주의 취미생활이다. 무려 72년 집권 기간 중 절반을 전쟁터에서 보낸 태양왕 루이 14세는 증손자인 루이 15세에게 원금만 20억리브르라는 막대한 부채를 남기고 사망한다. 유능하지도 않으면서 취미생활은 포기하지 않았던 루이 15세는 이익이 불분명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끼어들어 또 빚을 늘렸고, 루이 16세에 이르면 정부 수입의 대부분이 이자를 무는 데 들어갔다. 선대를 보고 반성할 만도 한데 그 역시 취미생활을 화끈하게 했다. 1763년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프렌치-인디언 전쟁에 20억리브르를 쏟아부은 것이다. 20억리브르는 3년치 국가 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