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숭고함의 대명사 '프랑스혁명'
런던 일용직보다 못 번 파리 기능공
딱 먹고만 살 수입을 '1'이라고 했을 때
파리 기능공은 1.2, 일반 노동자는 0.7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자유·평등은
부르조아·법률가들의 관심사였을 뿐
성실한 작가와 충실한 편집자가 만든 책을 만나면 고맙다. 그들은 독자가 책을 읽을 때 불편하지 않도록 사방에 친절한 안내문을 붙여둔다. 불성실한 작가와 월급이 목적인 편집자가 만든 책을 만나면 짜증난다. 그들은 제 자랑과 오탈자를 잡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독자의 궁금증은 알 바 아니다.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에 관한 책을 읽었다. 한참 내부 시설을 소개하더니 입장료는 1‘콰드란스’란다. 그리고 끝이다. 어쩌라고. 그래서 궁금하면 댁이 직접 인터넷 뒤져서 찾아보거나 평생 모른 채 살라고? 이분은 작가가 되기 전에 사람이 돼야 한다.런던 일용직보다 못 번 파리 기능공
딱 먹고만 살 수입을 '1'이라고 했을 때
파리 기능공은 1.2, 일반 노동자는 0.7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자유·평등은
부르조아·법률가들의 관심사였을 뿐
편집자는? 편집자에게는 할 말 없고 출판사 사장님께 말씀드린다. 회사 오래 보전하고 싶으면 이 인간부터 자르시라고. 로마에서 유통되는 동전을 값어치 높은 순서대로 보면 아우레우스(금화)→데나리우스(은화)→세스테르티우스(청동화)→두폰디우스(청동화)→아스(구리화)→세미스(구리화)→콰드란스(청동)다. 요기까지 알려주면 끝? 아니다. 더 들어가야 한다. 이번에는 교환 비율이다. 가장 많이 쓰이던 1세스테르티우스는 2두폰디우스고 4아스이며 8세미스고 16콰드란스다.
이제 1세스테르티우스의 가치를 알려줄 차례다. 1세스테르티우스는 현재 가치로 대략 2유로화로 2700원 정도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 로마의 소비자물가지수를 보자. 올리브유 1L는 3세스테르티우스이니 6유로가 되고 한국 돈으로 8100원이다. 식사용 중급 포도주 1L는 2세스테르티우스로 우리 돈 5400원, 빵 1㎏은 1두폰디우스로 1350원이다. 그러니까 10세스테르티우스 정도면 중산층 가족이 하루를 먹었다는 얘기다. 그럼 공중목욕탕 입장료 1콰드란스는 지금 가치로 얼마? 여기서 더 바라면 이때부터는 독자님이 나쁜 놈이다. 그 정도 계산은 직접 하시라.
많은 역사책이 인민의 생활고를 이렇게 묘사한다. “농민들은 가난했다”. 뭐라는 거니. 유사 이래 농민이 안 가난한 적이 얼마나 있었다고. 농업은 자연재해에 대처할 그 어떤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농민들은 항상 가난했다. “노동자들은 빈곤에 시달렸다”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정상이다. 중요한 건 빈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시계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돌려보자. 대다수 인민의 벗은 가난이었다. 얼마나 가난했을까. 고맙게도 ‘성실한’ 경제사가(史家)들은 실질임금을 생활비와 연동해 복지 지표를 제공한다. 지표가 1이면 딱 밥만 먹고 산다. 1 이상이면 담배 등 개인 사치품을 구입할 수 있다. 1 밑으로 내려가면 먹는 것, 입는 것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당시 파리 건설 기능공의 점수는 1.20이었다. 식사에 싸구려 포도주를 곁들일 수준이다. 이는 1.86의 암스테르담에 한참 못 미쳤고 2.21인 런던의 절반이었다. 일반 노동자는 어떨까. 이건 좀 심각하다. 겨우 0.74다. 암스테르담과 런던의 경우 1.5에 달했다. 파리 기능공이 런던 일용직보다 못 벌었다.
파리 노동자는 위장의 4분의 1이 항상 비어 있었다. 이 지표는 왜 프랑스혁명의 원인에 반영이 안 될까. 그것은 역사가들의 로망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과거의 일을 멋지게 포장하고 싶어 한다. 가령 고대 로마는 476년 멸망했다고 그들은 적는다. 멸망은 도시가 불타고 배수로에 주민들의 피가 흐를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476년 로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골목에서 뛰놀았고, 엄마들은 집에서 빵을 구웠다. 다만 그해 로마 황제가 사라지고 이민족 이탈리아 왕이 생겼을 뿐이다.
프랑스혁명은 숭고함의 대명사다. 그러나 자유, 평등 이런 건 먹고사는 일에서 해방된 신흥 부르주아와 사악한 법률가들의 관심사였을 뿐 혁명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본 대로 굶주림이었다(슬로건 중 하나인 박애라는 말은 너무 어려워서 아직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자본가와 율사들은 분노하라고 부추겼고, 인민들은 증오를 실현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피비린내 나는 난동을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갈망으로 덧칠했다. 프랑스혁명은 모든 혁명의 어머니,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혁명은 유럽의 5·18이다. 성역화 측면에서 그렇다.
잠실 롯데월드의 대표적 놀이기구 이름이 ‘French Revolution’이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롤러코스터를 프랑스혁명에 비유한 것은 대단한 감각이다. 홈페이지 소개를 보면 “짜릿한 하강과 정신이 아득해지는 원형 트랙에서 저세상 스릴을 느껴보세요!”라고 적혀 있다. 완벽한 설명이다. 롤러코스터가 타는 동안만 저세상 스릴을 느낀다면, 프랑스혁명에서는 실제로 저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다. 얼마 전 진실화위원장(오타 아님. 자꾸 역사를 역사가 아닌 진실 게임으로 만들고 있음)이 4·19를 밥 달라는 요구라고 말했다가 비난받았다. 왜 그건 이유가 안 되는데? 비판하는 분들은 4·19도 성역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역사에서 성역이 늘어나면 그 나라 역사 연구는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