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석유 패권의 이동로스차일드, 反노벨 석유사업자에 투자
철도건설 비용 대고 값싼 러시아 석유 확보
1886년 러 석유 패권 쥐며 노벨가문 넘어서
러 석유에 위협 느낀 美 스탠더드오일
로스차일드와 석유 생산·가격 협력 추진
야심 찬 기업가 존 록펠러가 주인공
골동품상과 환전업을 하던 가문을 부흥시킨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다섯 아들을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로 보내 국제적인 금융 네트워크를 건설했다. 러시아에 철도를 놓는 데 자금을 지원한 것은 프랑스 지부다.“나는 연필입니다”로 시작하는 에세이가 있다. 평범한 나무 연필을 의인화해서 탄생의 비밀을 털어놓는데, 읽고 나면 책상 위 굴러다니는 연필이 달리 보인다. 연필은 자기가 태어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면 자기가 만드는 게 연필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행위를 지시하고 통제하는 관리자가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느냐며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캘리포니아주 북부에 세로 나뭇결의 삼나무를 심고, 잘 자란 나무를 베어 통나무 상태로 철도를 이용해 제재소로 운반한 다음 제재소에서 연필 두께의 막대기를 만든다. 한편 동인도제도에서는 흑연을 캐 연필심을 만들고 펑지씨유(油)를 추출하여 지우개를 만든다. 이러한 공정을 통해 한 자루의 연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서정주의 시구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를 패러디하면 “연필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오래전부터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는 그렇게 연결되었나 보다”쯤 되겠다.‘시장경제’라 불리는 봉사경제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그 누구도 지구 어딘가에서 그 연필을 깎아 글을 쓸 어린아이의 고사리손을 위해 작업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일을 했다. 자신은 이익을 취하고, 사용자인 다른 사람은 편익을 취하는 이 시스템을 ‘봉사 경제’라고 부른다(봉사 경제의 다른 말이자 가장 잘 알려진 명칭이 시장경제). 애덤 스미스의 유명한 경구가 있다. “우리가 맛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다.” 빵집 주인도, 포도주 업자도, 고깃간 사장도 제 배 채울 생각에 각자의 생산품을 팔았지만 결국 그 덕에 우리는 식탁 위 든든한 아침 한 끼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인데, 개인적으로 ‘연필’은 이 설명보다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빵집 주인도, 포도주 업자도, 도축업자도 누구 입에 들어갈지는 몰라도 최소한 자기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는 알기 때문이다.1만원짜리 제품 팔 때 물류비용은 얼마나 들까생산은 끝났고 다음은 이걸 파는 거다. 유통과 마케팅인데, 이때부터 영역은 경제학에서 경영학으로 넘어간다. 대부분의 상품은 생산의 한계비용을 향해 움직인다. 공급자가 상품 가격이 생산물 한 단위를 생산할 때 드는 추가 비용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생산을 계속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과잉 생산이 발생하고 시장에서의 승부는 대체로 여기서 갈린다.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이 이어지면서 소규모 생산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어디서? 물류비용에서다. 포장, 보관, 적재, 수송, 하역 등을 총괄하는 물류비용은 규모가 큰 생산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2022년 우리나라 기업들은 1만 원짜리 제품을 팔면서 평균 690원을 지출했다. 통계 착시에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690원을 지출한 기업은 없다. 누군가는 그보다 더 지출하고 누군가는 덜 지출했다는 뜻이다. 매출액 500억 미만 기업의 대출액 대비 물류비는 7.89%였다. 반면 매출액 3000억 이상 기업의 이 숫자는 4.39%에 불과했다. 거의 두 배다.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상대적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워 물류비 비중이 높은 것이다. 러시아 제국 내 거의 독점이던 노벨 가문의 석유업에 치명상을 입힌 것도 이 물류비용이었다.
석유 생산이 계속 증가하고 내수시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자 바쿠의 석유 생산업자들은 인접 국가들로 눈을 돌린다. 문제는 수송 경로다. 노벨 가문은 북부 지역 석유 수송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반기를 든 두 명의 석유 업자가 정부로부터 서부 철도 노선 건설 허가를 받아냈는데, 이들은 바쿠에서 출발해 캅카스를 지나 바툼(오늘날 조지아의 바투미Batumi)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수송로를 구상했다. 바툼은 1877년 러시아가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합병한 흑해의 항구도시로, 이 노선이 완공되면 물류비용이 줄어든다. 철도 건설 공사가 한창이던 중 석유 가격이 하락했고, 두 사람의 자본은 바닥난다. 이때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가문은 석유 생산설비를 담보로 잡고 러시아산 석유를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에 유럽으로 수송해준다는 보증까지 받아냈다. 1883년 바쿠에서 바툼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완성되었고 시시한 도시였던 바툼은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석유 항구 중 하나가 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886년 아예 자체 석유 회사를 차리는데, 이때부터 노벨 가문은 러시아 석유 산업의 2인자로 강등된다.결승전에서 만난 스탠더드오일과 로스차일드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로스차일드 가문의 석유 산업 진출과 유럽 수송로 개척으로 발등이 불이 떨어진 게 미국 석유 재벌 스탠더드오일이다. 이제 가격이 저렴한 러시아산 등유와 유럽 각국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둘의 물류비용 경쟁이 떠오르겠지만 ‘거인(巨人) 대 거인’이 만나면 그런 어리석고 파멸적인 짓은 벌이지 않는다. 물론 경쟁은 한다. 그러나 두 기업의 최종 목적은 안정된 이익의 추구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익분기점 윗선에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 생산을 억제하는 것이다. 러시아산 석유와 한판 붙게 된 스탠더드 오일, 대체 어떤 회사일까. 그 출발에는 존 록펠러라는 야심 찬 기업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