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이니아 석유산업의 시작

125명 살던 시골 마을 석유 '대박'
주민들에게 신분 속였던 '가짜 대령' 드레이크
1857년부터 2년간 땅 매입하고 시추 반복

자금 바닥난 투자그룹 "농장 폐쇄하라" 편지
드레이크에게 전해지기 직전 석유 뿜어져 나와
통보 하루만 빨랐어도 美석유산업 늦춰졌을 것
영화 ‘자이언트’에서 홀로 석유 시추 작업을 하던 주인공이 솟아오르는 석유 비를 맞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물론 영화적 설정일 뿐이며 돈도 없는 한 개인이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자이언트’에서 홀로 석유 시추 작업을 하던 주인공이 솟아오르는 석유 비를 맞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물론 영화적 설정일 뿐이며 돈도 없는 한 개인이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젊고 가난하고 외로운 남자가 있다. 대목장에서 일하는 그는 쉬는 시간이면 벽에 비스듬히 기대 폼을 잡는 것으로 우울과 불만을 해소하는 약간 ‘중 2’적인 캐릭터다. 종마를 사기 위해 도시로 나간 농장주가 말 대신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돌아왔을 때 남자는 그만 첫눈에 여자에게 반하고 만다. 그러나 이미 유부녀에다 무일푼이기까지 한 남자에게 여자는 너무나 먼 존재다. 남자에게 호의를 가진 농장주의 누나가 사망하면서 그에게 약간의 땅을 남겨주었을 때, 남의 땅이 자기 농장 안에 있는 것이 싫었던 농장주의 고가 매입 제의를 거절했을 때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 땅에서 홀로 시추를 시작했고 보상을 기약할 수 없는 지루한 노동 끝에 콸콸 석유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1956년에 개봉한 영화 ‘자이언트’의 스토리다. 삐딱한 청춘의 대명사 제임스 딘, 아프로디테의 강림 같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한 이 영화는 그러나 단지 영화일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 고물상 잡동사니 같은 장비로 나 홀로 시추를 해 석유를 퍼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석유가 땅에서 나온다고요?”1855년 예일대 화학 교수 실리만이 석유가 각기 다른 비등점에서 다양한 물질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이어지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 다 좋은데 과연 충분한 석유가 존재하느냐, 있다면 어떻게 파낼 것이냐. 당시 사람들은 석유를 지하의 석탄층에서 떨어지는 기름방울로 인식했고, 석유를 얻는 방법은 당연히 땅을 파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리만 교수에게 연구 용역을 맡긴 투자 그룹의 리더 조지 비셀은 이미 동유럽에서 농부들이 수작업으로 땅을 파 등유 정제용 원유를 채취하는 방식으로 소규모 석유 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지 비셀은 펜실베이니아에서도 충분히 석유가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다만 채취 방법이 문제였다. 투자 그룹은 땅을 파는 대신 구멍을 뚫어 굴착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바로 염정 시추 기술을 석유 채취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염정(鹽井)은 소금 채취를 위해 파 놓은 우물을 말한다.

투자자를 모으고 실탄도 확보했으니 이제 사업을 진행할 책임자를 찾을 차례다. 투자 그룹에는 유리한 조건과 불리한 조건이 하나씩 있었다. 먼저 유리한 조건.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당연히 전문가도 없고 선택의 폭이 넓었다. 불리한 조건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무도 일을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투자 그룹의 또 한 축이던 뉴헤이븐의 은행장 제임스 타운센드가 정말 우연히 해결한다. 당시 타운센드는 톤틴이라는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마침 그곳에서 장기 투숙 중이던 에드윈 드레이크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사교성이 좋고 은근히 허풍도 있는 데다 철도 승무원 일을 그만둔 뒤로 딱히 하는 일도 없었던 그는 이 미지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인물이었다. 타운센드는 땅에서 석유를 파 올린다는 자신들의 해괴한 사업을 살짝 부풀려 드레이크를 설득했고 뭔가 폼 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를 사업에 참여시키는 데 성공한다. 타운센드가 드레이크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성격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집요한 성격이었다는 사실이다.급조 ‘대령’ 드레이크의 뚝심투자 그룹은 드레이크를 펜실베이니아로 보내기 전 현지에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드레이크 대령 귀하”라고 적힌 몇 통의 편지를 발송했다. 덕분에 졸지에 대령이 된 드레이크가 펜실베이니아 서북부, 인구 125명의 시골 마을 타이터스빌에 도착했을 때 그는 ‘드레이크 대령’으로 주민들의 존경과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지 모르는 토지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땅을 매입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촉’과 ‘감’이다. 드레이크는 염정 굴착 기술자들을 고용해 시추 작업을 시작했고, 때마다 필요한 장비들의 추가 목록을 투자 그룹에 요청했다. 그리고 1857년 겨울부터 1859년 여름까지... 시추 현장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투자 그룹은 서서히 지쳐갔다. 성과는 없었고 자금은 계속 들어갔으며 투자자들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투자 그룹도 확신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오히려 성공을 확신하는 것은 후발로 참여한 드레이크였다. 마침내 자금이 바닥나고 자신의 개인 재산까지 털어 넣은 타운센드가 사업 중단을 드레이크에게 통보한 것은 1859년 8월 말이었다. 농장을 폐쇄하라는 타운센드의 편지가 아직 드레이크에게 전해지기 직전인 8월 28일 검은 기름이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렸고, 구할 수 있는 통이란 통은 다 구해 석유를 채워 담았다. 타운센드 편지가 도착한 것은 바로 석유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바로 그날이었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편지가 하루만 일찍 도착했어도 미국 석유 산업의 개시는 더 늦춰졌을 것이고 부와 영광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드레이크라는 쾌활하면서도 집요한 인물의 사업 참여는 신이 투자 그룹에 보내준 선물이었다. 석유 사업은 미국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석유와 가스를 팔아 나라를 운영하는 러시아와 역시 석유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에서도 석유 사업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