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기반 닦은 록펠러·<끝>

석유에 대한 '촉'과 기업가정신이 성공요인
냉혈한·통 큰 자선사업가 엇갈린 평가
자유주의 경제학의 산실 시카고대학 설립도

한국과도 인연
스탠더드 오일 재무 담당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
제중원 거액 지원…연세대 세브란스名 기원 돼
철강왕 카네기와 함께 미국 경제의 기반을 닦은 록펠러. 그가 석유산업의 90%를 장악하면서 반독점법이 탄생했다. 현재 뉴욕 시민들은 상수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 록펠러가 자신의 사후 100년 동안 이를 대납해주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다. 통, 정말 크다
철강왕 카네기와 함께 미국 경제의 기반을 닦은 록펠러. 그가 석유산업의 90%를 장악하면서 반독점법이 탄생했다. 현재 뉴욕 시민들은 상수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 록펠러가 자신의 사후 100년 동안 이를 대납해주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다. 통, 정말 크다
게오르그 짐멜이 쓴 <돈의 철학>은 각주가 하나도 없는 독특한 학술서다. 1000페이지가 넘는 그 책을 각주 없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고전 중의 고전인데,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돈을 가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짐멜은 경제적 가치에서 돈을 “최상의 구현체이자 가장 순수한 표현”이라고 했다. 돈의 속성을 말한 것이 아니다. 형태의 이로움이다. 중세 장원의 영주에게 밀이나 소와 같은 현물을 바치려면 농민은 필요한 품목을 정확히 계산해서 생산하거나 불편을 감수하며 물물교환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의무가 금전적 형태가 되면서 농민은 자신의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짐멜은 이를 예시로 들면서 화폐가 개인의 자유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좁은 개념의 자유다.우리가 영원히 부자가 되기 힘든 이유짐멜에 동의하면서 나는 그 자유가 협소가 아닌 ‘진짜 자유’라는 의견을 보태고 싶다. 돈은 그 사람이 가진 자유의 총량을 계량화한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자유다. 마음 내키면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사막에 세워진 초대형 공연장 스피어를 구경할 수도 있고, 유럽 일주 크루즈 여행을 즐길 수도 있는 자유다. 물론 돈이 곧 행복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부자를 부러워한다. 그러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부자일까.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고객을 상대로 국내 한 은행이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부자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자산 규모는 109억 원이었다. 그럼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재미있는 건 그 기준이 소득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다. 월 소득 100만 원 이하는 하한선을 1억 원, 월 소득 500만 원 이상은 10억이라고 답했다. 부자의 기준이 자신의 수입에 따라 달라지니 이 논리대로라면 사람은 영원히 부자가 될 수 없다. 실제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한 사업가는 도대체 얼마만큼 돈이 있어야 충분하냐는 질문에 “조금 더(Just a little more)”라고 대답했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에 추월당하기 전까지 그의 순위는 항상 1위 아니면 2위였다.로마인 절반이 빚졌던 역사상 최고 부자 크라수스전 세계 역대 부자 10위를 보면 8명이 18세기 이후의 사람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독일의 야코프 푸거(1위)와 프랑스의 앨런 루퍼스(7위)인데, 앞 사람은 16세기고 뒤쪽은 11세기다. 그러면 11세기 이전에는 큰 부자가 없었다는 얘기일까. 그럴 리가 없다. 다만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데다 당시에는 자산의 확대 재생산이 쉽지 않아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자로 꼽는 사람은 고대 로마의 크라수스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로마 삼두정치를 이끈 그의 재산은 죽기 직전 1.7억 세스테르티우스였다. 이 수치를 현재 가치로 바꾸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로마의 소비자 물가 지수와 대비해 설명한다는 것은 다소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로마이며 그가 로마 최고의 부자였으니, 세계 최고의 부자는 크라수스라고 하는 삼단논법이 훨씬 편리하다. 심지어 로마인의 절반이 그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의 군사적 업적을 따라잡겠다며 파르티아로 원정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전투에 패배해 죽는다. 파르티아 병사들은 크라수스의 탐욕을 조롱하는 의미로 시체가 된 그의 입에 녹인 금을 부었다.1937년 록펠러 사망 때 재산 14억 달러전 세계 역대 톱을 달리면서도 더 많은 돈이 있어야 충분하다고 말한 사람은 미국의 석유 재벌 록펠러다. 1937년에 사망했을 때 그의 재산은 14억 달러 정도였는데, 현재 시가로 환산하면 305억 달러(대략 42조7000억 원)다. 고개를 갸웃할 수 있겠다. 전 세계 역대 부자들의 재산을 보면 10등으로 꼴찌(!)인 오라클 설립자 래리 앨리슨도 무려 2360억 달러다. 305억 달러면 후보에 명함도 들이밀지 못할 수준 아닌가. 그러나 1937년 미국 GDP가 930억 달러(현재는 21조4300억 달러)에 불과했고 록펠러의 재산이 당시 미국 GDP의 1.5%에 달했으니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참고로 일론 머스크의 재산은 미국 GDP의 1.6%).돈에 대한 인식이 인생이 바꾼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록펠러의 성공은 석유라는 ‘영물’에 대한 동물적인 촉과 기업가 정신이 만나 빚어낸 신화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몰락시킨 냉혈한 사업가였다는 평가와 통 큰 자선 사업가의 이미지다. 그는 ‘자유주의경제학의 산실’로 불리는 시카고대학을 설립했으며 수많은 교회를 지원했다. 검소를 넘어 청빈에 가까운 생활을 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따끈한 우유에 적신 빵이었다. 우리와도 가느다란 인연이 있다.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의 재무 이사이던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는 자금난에 시달리던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에 거액을 투척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명의 기원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면 제법 근사해 보인다. 그러나 내가 돈을 무시하면 돈도 나를 무시한다. 그리고 돈이 들어온다고 행복이 찾아오진 않지만, 돈이 나가면 행복도 같이 나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