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베네치아의 흥망성쇠

전란 끝난 서기 568년 이후 피란민들 정착
먹고살려고 바다 나가다 보니 실력 늘어
13세기 십자군전쟁 후 베네치아 제국 도약

바닷길 정보를 이웃 나라에 비싸게 팔아
그 대가로 경쟁자 포르투갈 등장…무역 타격
18세기 나폴레옹 침공 후 역사의 뒤안길로
지금도 수많은 운하의 물길이 도로를 대신하고 있다. 물론 다리도 많고, 특히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리알토 다리는 셰익스피어의 과 액션영화 ‘007’에도 등장해 우리에게 친숙하다.
지금도 수많은 운하의 물길이 도로를 대신하고 있다. 물론 다리도 많고, 특히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리알토 다리는 셰익스피어의 과 액션영화 ‘007’에도 등장해 우리에게 친숙하다.
흔히 베네치아 본섬을 두고 손모아장갑이 맞물린 형태라고 한다. 항공사진을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오른쪽을 장갑이라 하고 왼쪽을 새라고 치자. 마치 날아오르는 새의 몸통을 누군가의 손이 움켜쥐고 있는 듯한 형태인데, 여기에 역사 지식이 더해지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때 백조였지만 주저앉은 도시, 베네치아의 일대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미운 오리 새끼가 알고 보니 백조였다는 동화가 있다. 베네치아가 딱 그랬다. 실은 오리만도 못한 존재가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경작도 파종도 수확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베네치아는 애초에 도시가 들어설 지형이 아니었다. 섬 몇 개 떠 있는 습지대에 문명을 세우려는 사람은 없다. 먹을 거라고는 생선이 전부고, 식수는 빗물뿐이다.

자연의 호의에서 완벽하게 배제된 이 도시가 천년 해상 제국으로 굴기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사건이다. 도시의 연대기를 알의 시대와 오리의 시대 그리고 백조의 시대로 나눠보자. 먼저 알의 시기다. 402년 고트족이 이탈리아 북부로 침입해 들어왔을 때 북동부 베네토 지역 사람들이 근처 석호(潟湖)로 피란을 떠난다. 452년에는 훈족의 아틸라가 이탈리아를 침공한다. 고대 로마지역 피란민 중 일부가 또 석호로 도망을 쳤다. 568년에는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석호에 또 사람들이 몰린다. 그러니까 초기 베네치아는 난민촌이었던 셈이다.

전란이 끝나자 고향에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본토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만 베네치아에 남았다. 돌아가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행정관을 선출했고, 뽑힌 이들은 행정과 군사를 담당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지형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를 건설했다. 연약한 지반에 기다란 참나무 말뚝을 박았고 그 위에 돌이나 벽돌을 쌓아 지반을 다진 후 건물을 올렸다. 보통 베네치아를 ‘물 위에 세운 도시’라고도 한다. 반만 맞는 말이다. 물 아래, 그러니까 베네치아 거리 밑에는 수많은 말뚝이 박혀 있다. 이른바 나무의 산이니, 베네치아는 ‘나무 위에 지은 물의 도시’다.

초기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풍족은 생선 두 마리로 배를 채운 날이고 빈곤은 생선 한 마리로 때운 날이다. 이들은 일률적으로 초라한 집에서 살았고 똑같은 생선으로 연명했다. 빈곤이라는 든든한 연대 의식으로 베네치아 사람들은 시기와 질투라는 악덕을 피할 수 있었는데, 좋은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알에서 오리 새끼로 바뀐 게 8세기 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새로운 바다 공동체가 개펄에 자리를 잡았고 동로마제국 황제와 교황에게 자치를 인정받는 것으로 도시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250여 년 그럭저럭 무탈하던 이탈리아에 또 전란이 터진다. 이번 주인공은 프랑크족이었다. 810년 침공군은 베네치아 석호 끝자락까지 밀고 들어왔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초기의 핵심 근거지를 포기하고 석호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도망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2차 피란처이던 리알토가 항구적 피란처로 확정되었고 베네치아의 수도가 된다.

베네치아의 백조 시대를 연 것은 4차 십자군전쟁(1202년~1204년)이다. 십자군은 배가 필요했고 의뢰받은 베네치아는 도시의 모든 힘을 선박을 제작하는 데 쏟아붓는다. 십자군이 약속한 선박 제작비를 지불하지 못하자 베네치아는 자신들의 무역 경쟁자이던 달마티아의 차라(Zara)를 무력화하는 조건으로 제조 비용을 상쇄하기로 한다.

문제는 차라가 기독교 도시였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십자군의 기독교 국가 침탈에 서유럽 세계는 경악했지만, 이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십자군과 베네치아 군대는 마침 쿠데타로 실각한 왕자를 만났고 넉넉한 보상 제안에 쿠데타군을 무찌르고 그를 황제 자리에 올린다. 그러나 황제는 약속한 재화를 줄 생각도, 능력도 없었다. 충돌 끝에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다. 강도가 들었다는 신고에 출동한 경찰이 주인을 내쫓고 집을 차지한 꼴이다.

이 일로 베네치아는 동로마제국 영토의 8분의 3을 할당받는데, 이는 베네치아가 제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 영광은 길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인도 항로 개척으로 향신료 무역에 타격을 입었고,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반기지 않던 서유럽국가는 베네치아의 육상 영토를 무너뜨렸다. 백조에서 다시 오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베네치아 영화(榮華)의 끝은 1797년 나폴레옹의 침공이었다. 천년 해상 제국은 신화를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무엇이 베네치아를 오리에서 백조로 만들었을까. 생존 본능이다. 먹고살기 위해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자꾸 나가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이들은 다녀온 바닷길을 꼼꼼히 기록했고 이를 이웃 도시국가에 비싼 값에 팔았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지식과 정보를 팔아넘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몰랐다. 그 대가는 바로 포르투갈이라는 막강한 경쟁자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