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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24) 19세기의 위기

    조선왕조의 19세기는 위기의 시기였다. 16세기 말에 일어난 전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17세기 말까지 황폐한 경지가 복구되고 인구도 급속히 증가하였다. 18세기에 이르러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조선왕조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였다.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농업생산성의 하락으로 인해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19세기는 ‘대분기’(great divergence)의 시기로서 서구지역의 경제력과 생활수준이 급속히 상승하였기 때문에(23회 참조) ‘19세기의 위기’는 세계에서 차지하는 조선왕조의 지위를 악화시켰다.19세기가 위기였음은 이 시기가 ‘민란의 시대’였다는 사실로부터 먼저 감지할 수 있다. 1812년의 홍경래난과 1862년의 진주민란(임술민란), 그리고 1894년의 동학농민봉기가 대표적이지만 그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민란이 전국에 걸쳐 끊이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면 경제적 불황과 재정악화로 인해 조선왕조를 장기간 지속시켰던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 곤란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양반 지배층에 특권을 부여하는 한편, 대중에게는 환곡제도를 비롯한 공공재 공급을 통해 최소한의 생존을 지지하였던 시스템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22회 참조).경지면적 정체속 인구증가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구증가였다. 조선왕조의 인구는 임진왜란으로 격감한 후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지만 식량을 생산하는 경지면적은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후에는 그다지 증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는 것이 점점 곤란해졌다. 3년마다 시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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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복지 코디네이터, 사회복지사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분야가 어느 분야이며, 가장 많이 지원해야 할 분야가 어디인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국가 예산 증가율을 살펴보는 것이다. 최근 국가 예산 증가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단연 ‘복지’ 분야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복지예산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복지예산 증가율에 비해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그간 국내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예산 규모가 최하위 수준이었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함과 동시에 최근 고령화, 상대적 빈곤층 확대 등으로 인해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할 대상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최근 전개되고 있는 급격한 복지 예산 증가와 함께 동시에 요구되는 부분은 증가한 복지 예산을 운용하고 관리해 주는 담당 복지 전문가일 것이다. 정부 역시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필요한 복지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사회복지 관련 교육 기관 수는 2007년 600여곳 수준이었으나, 2010년 이후 1500개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또한 사회복지 전문가로 활동하기 위한 기초 자격 요건 역시 굳이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아도 소정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면 무시험으로 관련 분야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도 하였다. 바로 그 직업이 사회복지사이다.복지서비스 자료 수집·분석사회복지사는 노인, 여성, 장애인, 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그들이 처한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지원하는 사람으로 사회복지 관련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단순히 특정인을 대상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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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고용은 비싼 대가를 치른다, 동기부여와 혁신이 없기 때문에…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야. 살고 싶은 거지.(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미국 의회가 ‘노예수입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은 1807년. 이듬해부터 노예 수입이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노예 제도가 폐지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해외에서 노예를 사들이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자유주(州)에 살고 있는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에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늘어나게 됐다.지난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색상, 여우조연상 등 3관왕을 차지한 스티브 매퀸 감독의 영화 ‘노예 12년’은 1840년대 자유인이던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 분)이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해 다시 자유를 찾기까지 겪었던 12년의 삶을 그려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섭의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자유의 상실: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미국의 노예사(史)는 17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19년 흑인 노예 20여명을 태운 배가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에 들어온 것이 시초였다. 처음부터 아프리카의 흑인들만이 노예였던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 대륙 개척 초기에는 백인 노예도 있었다. 특히 유럽에서 추방된 범법자나 대서양을 건너는 뱃삯을 내지 못한 사람들, 집시까지 다양한 사람이 존재했다. 하지만 미 대륙의 식민지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과 하층계급의 백인만으로는 노동력을 충당할 수 없게 되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본격적으로 데려오기 시작했다.주인공 노섭은 뉴욕에 사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노예 수입이 금지된 1808년 자유인으로 태어난 그는 아내와 세 자식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뛰어난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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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조선후기와 'Great Divergence'의 세계사

    조선후기는 세계사에서 거대한 변화가 진행된 시기였다. 1500년의 시점에서 본 세계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조선왕조가 끝나가는 19세기가 되면 산업화에 성공한 서구(west)와 그렇지 못한 비서구 지역(rest) 간에 생활수준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그림1). 1000년에는 0.9:1로 서구지역의 1인당 GDP가 비서구 지역보다 조금 낮았는데, 1500년에는 1.4:1 정도로 역전되었으며, 1820년에는 2.1:1, 1913년에는 4.5:1로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커진 것이다. 이렇게 지구 전체를 놓고 볼 때 생활수준의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는 현상을 세계역사학계에서는 ‘Great Divergence’라고 부르고 있다. 보통 대분기(大分岐)라고 번역한다. 워낙 큰 주제이기 때문에 시작한 시점과 원인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지만, 1760년부터 1830년까지 영국에서 진행된 산업혁명이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산업혁명 계기로 생활수준 격차 벌어져산업혁명의 핵심은 공업부문에서 일어난 기술 변화였다. 전통적인 수공업에서는 수차와 풍차와 같이 물과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사람이나 동물의 근력을 이용하였다. 열이 필요한 경우에는 나무를 주된 연료로 사용하였다. 이와 달리 산업혁명 이후에는 물건을 제조하는 데 노동 대신 기계와 설비를 사용하는 한편, 기계 작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화석연료인 석탄에서 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산업혁명이 ‘대분기’의 계기가 된 것은 무엇보다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기 때문이었다.산업혁명 전에는 1파운드의 실을 생산하는 데 500시간 걸렸으나 1770년대 발명된 뮬(Mule) 방적기로는 20시간밖에 걸리지 않게 됐다. 이후에도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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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탄소배출권거래중개사'

    중국의 성인(saint)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였다.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의 중용(中庸)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이 말은 ‘지나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무엇이든 정도를 넘어 차고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점은 온실가스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지구가 내뿜는 복사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기체인 온실가스는 대기상에서 지구의 열을 우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이를 다시 지구로 되돌려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구의 온도는 자연스레 올라가고, 이 때문에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다.하지만 온실가스는 지구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하다. 온실가스가 적당히 있어야 지구에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적합한 온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찾아온 도시화와 산업화로 온실가스의 양이 증가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온실가스의 배출이 과해지면서 지구의 온도가 필요 이상으로 상승했고, 그로 인해 이상 기후와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는 온난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지구의 탄생 이래 유지되어 오던 온실가스의 중용 수준이 깨지면서 인류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기후변화 협약 ‘교토의정서’해결책은 단순명료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통제하거나 줄이면 온난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단과 방법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인간의 삶 깊은 곳까지 온실가스가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화석연료의 사용은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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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발전의 주역 노인세대 '흘러간 청춘'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그때 내가 그랬거든! 서른 넘으면 팍 뒤져버릴 거라고! 근디 그 전에 애가 서버리더라고. 시집간 지 1년 만에 남편이란 인간은 독일까지 가서 탄광 막장서 죽어버리고. 그 갓난쟁이를 두고 내가 어떻게 죽겠어?”노인들이 운영하는 구립 실버카페에서 일하는 오말순(나문희 분)은 성공한 아들이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인생의 낙이다. 그녀의 아들 반현철(성동일 분)은 대학 교수. 그것도 국립대학 교수로 노인문제 전문가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명 짧은 남편을 만난 그녀의 삶은 신산(辛酸) 그 자체였다. 늘 끼니를 걱정하며 아플 때도 약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지난 1월 개봉한 ‘수상한 그녀’는 어느 날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수상한’ 사진관에 들렀다가 갑자기 스무살 꽃처녀 ‘오두리(심은경 분)’로 돌아간 말순이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청춘의 전성기를 누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타지적 스토리 전개에도 경제 발전을 이끌었던 노년층의 고단한 삶과 가족 간의 사랑을 잔잔하게 담아내면서 관객 865만명을 기록했다.속절없이 늙어가는 사회영화 속 말순처럼 자식만 바라보며,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던 경제 발전의 주역들이 점차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은 2000년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전체의 7%를 넘어서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이런 추세면 <그래프 1>처럼 2018년 고령사회(14%), 2026년 초고령사회(20%)에 진입할 전망이다. 2060년이면 인구 10명 중 4명 이상이 노인이다.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무척 빠른 편이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 고령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이동하는 데 각각 17년, 9년이 걸릴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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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조선왕조는 어떻게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을까

    조선왕조는 500년이 넘게 장수하였는데 세계적으로 이렇게 오래 지속된 왕조는 보기 드물다. 왕조의 수명이 길다고 하는 중국에서도 당(唐), 명(明), 청(淸)이 300년에 못 미쳤다. 혈통이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일본 천황가도 고대국가 쇠퇴 이후에는 실권을 상실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후에는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가문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막부(幕府)가 새로 성립하였으며, 중국에서도 명이 멸망하고 왕조가 청으로 교체되었다. 그렇지만 전쟁의 주 무대였던 우리나라의 조선왕조는 300년이나 더 계속되었다. 조선왕조는 어떻게 이처럼 오래 존속할 수 있었을까?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왕권과 신권의 균형 등등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경제학적으로는 국가 구성원이 왕조(국가)로부터 얻는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가 주는 것이 없고 수탈하기만 한다면 국가 구성원들이 협력(복종)하기를 그치고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는 19세기 들어와 정치적 변란이 급증하였을 뿐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였는데(그림 참조), 이유가 있을 것이다.조선왕조는 군주제, 엘리트층에 특권 부여국가 구성원이라고 하지만, 조선왕조는 정치권력이 일부 구성원에게 독점된 군주제 국가였기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허용된 지배층(엘리트)과 접근이 제한된 일반 대중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조선왕조의 엘리트는 말할 것도 없이 양반이며 대중은 양인과 노비들이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할 때 ‘사’를 엘리트, 나머지 ‘농공상’을 대중으로 구분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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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기술혁신과 경제성장, 이공계 연구원

    메이저리그 브루클린 다저스의 시즌 개막전이 열린 1947년 4월15일, 2만7000여명의 관중이 몰려든 에베츠 필드는 벅찬 설렘과 긴장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날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었기 때문이다. ‘야구장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살해위협에도 불구하고 재키 로빈슨은 이날 데뷔전을 시작으로 12개의 홈런과 29개의 도루 그리고 125타점으로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이후 10년간 통산 3할1푼1리의 타율과 함께 6번의 올스타 선정과 리그 MVP 수상 등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간다.야구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최초의 흑인 선수라는 타이틀 외에 로빈슨의 영입이 갖는 의미는 야구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특히 두드러진 점은 새로운 야구 기술의 등장이었다. 당시의 야구는 장타나 홈런 위주였다. 하지만 다저스는 빠른 발을 가진 로빈슨을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당시로써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출루율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전략들이 개발되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다양한 훈련 도구들도 개발되었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배팅 케이지와 피칭머신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매우 혁신적인 도구들이었다. 로빈슨의 영입이 그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로빈슨으로 인한 변화 역시 야구 역사에서 하나의 혁신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브루클린 다저스는 2년 간격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스포츠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지 기존의 틀을 깨는 도전, 즉 혁신은 변화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