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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33) 축구심판의 과도한 개입과 정부실패

    2014년 6월13일, 개최국 브라질과 크로아티아가 맞붙은 월드컵 개막전이 진행되던 후반 26분 경기장이 떠나갈 만큼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각각 한 골씩 성공시켜 팽팽한 균형을 이어가던 경기가 주심의 페널티킥 선언으로 승부의 추가 브라질로 기울어진 것이다. 페널티킥 성공으로 자신감이 한층 커진 브라질의 공격수 네이마르는 생애 첫 월드컵에서 페널티킥 역전골과 승리의 쐐기를 박는 골을 연달아 터뜨리면서 이 경기 최고의 선수(Man of the Match)로 선정됐다.경기가 끝난 뒤 전 세계의 모든 언론은 개막전 경기에 대해 보도했다. 하지만 보도의 주제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개최국 브라질을 꺾을 뻔했던 크로아티아의 강한 경기력도, 두 골이나 성공시키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던 브라질 공격수 네이마르도 아니었다. 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날 경기의 주심인 니시무라 유이치 심판이었다. 이날 승부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페널티킥 판정이 축구경기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반적인 수준의 신체접촉을 파울로 간주해 선언됐다. 개막전에서 개최국을 꺾는 파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경기가 니시무라 주심의 오심성 판정 한 번으로 3 대 1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이처럼 축구경기의 결과는 선수들의 기량뿐만 아니라 심판의 역할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심판은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경기 전반에 관한 규칙을 정하고, 이를 실제 경기에서 집행함에 있어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선심의 판정을 무시하거나 따르지 않을 정도로 경기에 한해서는 거의 전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심이 반칙행위를 방관하거나 어느 한 팀에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면 정당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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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대동법과 공납제도의 개혁, 변화 속의 지속성

    17세기 이후 소농경영이 성장하였으며 18세기부터 노비를 이용한 농장경영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농업부문의 변화와 병행하여 조선왕조 재정제도도 17세기를 통하여 크게 변화되었다. 다름 아닌 대동법(大同法)이 시행된 것이다. 대동법은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에 경기도에서 시행된 후 점차 확대되어 1708년(숙종 34년)에 황해도를 끝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전국적으로 실시되기까지 꼬박 100년이 걸렸는데 대동법에 대한 저항이 컸으며 그런 저항을 이기고 시행된 만큼 재정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되었다.공물을 토지 1결당 12말의 쌀로 통일대동법의 요체는 왕실에 대한 ‘진상’과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 대한 ‘공물’을 각종 현물로 납부하는 대신에 쌀로 납부하도록 한 것, 그리고 일정한 규정도 없이 가호(家戶)에 부과하던 것을 토지 면적 1결(편집자주:조선시대 1결은 약 1만㎡)에 대해 쌀 12말을 납부하도록 부과기준이 바뀐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일부 산간지역은 쌀 대신 무명이나 삼베로 납부하도록 하였고 상평통보 발행 이후에는 동전으로 납부하도록 한 지역도 생겼는데 기본은 쌀이었다. 전세가 1결에 쌀 4말이었기 때문에 이제 3배나 되는 쌀을 추가로 상납하게 되었지만, 그 안에 중앙과 지방에 납부하던 공물 값과 운반 비용 그리고 지방경비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에 지방민의 부담은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공물 수취가 토지 면적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을 갖게 되었다.대동세는 대략 절반은 서울로 상납하고 절반은 지방경비로 남겨두어 사용하도록 하였다. 1769년(영조45)을 예로 들면, 8도 대동세 총액은 쌀 56만9000여석이었는데 중앙 상납은 55%에 해당하는 31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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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적의 결과' 찾아 환상 헤매던 천재 수학자…'최적의 선택'은 사랑이었다

    존 내시는 역사상 대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다. 하지만 그 공이 오롯이 내시 자신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가 떨친 유명세의 상당 부분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내시 역을 맡아 호연한 러셀 크로의 덕이다.영화는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40년 동안 정신분열증에 시달린 천재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내시의 삶을 다뤘다. 정신질환으로 황폐해져 가는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아내 앨리샤 라지(제니퍼 코넬리 분)와의 사랑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영화는 2002년 제59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4개 상을 받았고, 같은해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감독상·여우조연상·각색상을 받았다. 내시의 실제 삶 역시 영화의 화려한 수상이력 못지않다. 그는 끈질긴 노력 끝에 정신질환을 거의 극복하고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이 남자는 천재다”1940년대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프린스턴대 대학원. 무시험 장학생으로 입학한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수학과 새내기가 눈길을 끈다. 내성적이며 무뚝뚝하고, 오만할 정도로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이 천재가 바로 내시다. 그는 기숙사 유리창을 노트 삼아 자신만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찾는 데에 매달린다.실제 존 내시는 192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블루필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이 됐을 땐 미국 전역에서 10명에게만 주는 웨스팅하우스 장학금을 받고 1945년 피츠버그의 카네기공대에 입학했다. 1948년 9월 카네기공대를 졸업한 뒤 프린스턴과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시에 입학을 제안받는다. 스무 살의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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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소농경영의 성장과 지주제의 발달

    18세기 이후에 노비제가 쇠퇴한 가장 큰 원인은 소농경영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17세기부터 부부가 중심이 된 소가족의 노동력을 이용한 농업경영이 확산됨에 따라서 노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감소하게 되었다.전처럼 대토지를 소유한 양반 지주가 직접 노비를 부려서 경영을 하지 않아도 토지를 빌려주고 지대(소작료)를 수취할 수 있게 되었으며, 소농경영의 자립성이 강해져 노비로 전락하는 농민들이 줄어들게 된 것이 노비제가 쇠퇴하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조선전기에는 양반들의 농장은 노비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일부 소작을 주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노비를 이용하여 경작되었다. 노비를 이용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가작’(家作)이라고 하여 말 그대로 주인집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이다. 주로 집 근처의 경지에 대하여 노비를 직접 지휘 감독하여 수확한 생산물을 모두 주인이 취하는 방법을 말한다. 또 하나는 ‘작개’(作介)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부르는 방법인데, 주인집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경지를 경작할 때 이용된 방법이었다. 노비에게 ‘작개’라고 부르는 토지와 ‘사경’(私耕)이라고 부르는 토지를 짝을 지어서 지급하되 ‘작개’의 수확은 거의 모두 주인에게 상납하고 ‘사경’의 수확은 노비에게 주어 생활 자료로 삼도록 하였다.노비 이용한 가작 작개 거쳐 소농경영 발전이러한 ‘작개제’에 의한 경영은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루어졌다. 한 가지 사례로 1554년에 서울에서 사는 안(安)씨 양반가는 경기도 파주에 509두락(1斗落=1마지기=200평으로 계산해서 10만1800평)의 농장이 있었는데 9명의 노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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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계 항로 독점하려는 무역연합의 공격…제다이 기사단의 반격은 시작됐는데…

    ‘스타워즈 에피소드1’ 로 본 자유무역 vs 보호무역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 평화롭던 은하계가 분쟁에 휩싸인다. 은하계 외곽의 무역항로를 독점하려는 무역연합이 아미달라 여왕(내털리 포트먼 분)이 다스리는 나부행성의 무역로를 차단하면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하 공화국 의회에서 제다이 기사 콰이곤(리엄 니슨 분)과 그의 제자 오비완(이완 맥그리거 분)이 파견되지만 무역연합은 이를 무시하고 나부행성을 공격한다. 1999년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은 은하계의 평화를 깨는 요인을 무역분쟁에서 찾는다. 우주 평화의 수호자 제다이 기사들이 무찔러야 하는 나쁜 편은 기존 무역질서를 뒤흔드는 세력으로 묘사된다.이런 설정은 1977년 시작된 오리지널 스타워즈 3부작(에피소드4~6)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 악의 축은 전체주의를 연상시키는 사악한 독재권력이었다. 에피소드1 개봉 당시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흥미로운 영화평을 내놨다. 냉전시대 스타워즈가 미국의 적을 전체주의로 간주했다면 통상전쟁 시대에 제작된 오늘날의 스타워즈는 자유무역을 위협하는 세력을 잠재적 위협으로 설정했다는 것.콰이곤과 와토의 첫 거래 실패 이유에피소드1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달리 교역을 다룬 장면이 영화 곳곳에 들어있다. 우주 평화의 수호자 제다이 기사들의 첫 임무가 나부행성과 무역연합 간 무역협상을 중재하는 역할이란 점부터가 그렇다. 위기에 빠진 아미달라 여왕을 구해 공화국 수도로 향하던 콰이곤 일행이 무역연합의 공격을 받고 타투인행성에 불시착하면서 벌어진 일도 흥미롭다.콰이곤 일행은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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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지대' 를 결정하는 감정평가사

    누군가 생산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생산요소를 이용할 경우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노동력을 활용한 경우에는 임금을, 자본을 이용한 경우에는 이자를, 그리고 토지를 사용한 경우에는 임대료 내지 지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생산요소를 사용한 대가를 얼마만큼 지불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다.일반적으로 생산요소를 사용한 대가를 지불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 중 기회비용이 있다. 노동이나 자본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기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노동의 경우에는 여가를 포기해야 하고, 자본의 경우에는 현재의 소비를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기회비용은 무언가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회비용이란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두 가지 이상의 용도에 사용할 수 있을 때 발생하며, 포기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 기회비용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회비용은 가격 측정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특정인을 근로자로 계속 고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해당 근로자는 다른 직장에서 이미 지금 연봉에 1.5배를 약속받고 이직을 권유받고 있는 상태인 경우, 이 사람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계속 다니면, 이직으로 인한 연봉 상승분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을 현재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게 하려면 해당 근로자의 기회비용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만 할 것이다.자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정 자본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본을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 이상을 제공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활용하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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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조선시대 노비의 수요와 공급

    양반은 노비(奴婢)가 있어야 제대로 된 양반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양반의 나라인 조선은 노비의 나라이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의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노비제의 전성기였다. 전체 인구의 30~40%가 노비였다고 추측되는데 노비제가 발달한 남부지방은 더 높았을 것이다. “노비가 십중 팔구”라는 말은 과장이지만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노비가 절반”이라는 성현(成俔)의 말은 크게 틀린 것이 아니었다. 17세기의 호적을 봐도 1609년 울산은 47%가 노비였으며, 1606년의 단성은 무려 64%가 노비였다.조선은 양반의 나라이자 노비의 나라노비는 양반이 가장 많이 소유하였는데 천명이 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태종이 노비 소유의 상한선을 정하려고 하였을 때 노(奴·남자종)만 계산하여 왕실의 종친과 부마는 150명(1품)이었고, 문무관은 130명(2품 이상)이었다. 비(婢·여자종)와 처가에서 상속받은 노비는 빠져 있으므로 500~600명은 보유할 수 있었음에도 반대가 심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 왕실과 양반이 소유한 노비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고위 관직을 지낸 양반들이 많은 숫자의 노비를 소유하였다. 홍문관 부제학이었던 이맹현은 노비 757명을 자손에게 상속하였는데(1494년), 현재까지 전하는 상속문서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퇴계 이황도 5명의 자녀에게 모두 367명의 노비를 상속하였다(1586년). 노비는 이렇게 토지와 마찬가지로 상속되고 매매되는 재산이었다.왜 노비제가 발달하게 되었을까. 노비 시장을 가정하고 노비의 수요와 공급을 생각해보자. 먼저 수요부터. 노비는 양반의 수족으로서 집안일부터 농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동을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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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정 '금화 찍어내던' 난쟁이족 위기에…인간 마을 교역도 금융도 모두 다 멈췄다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호빗:스마우그의 폐허’ 로 본 화폐의 경제학난쟁이족(드워프)들의 영토였던 외로운 산의 에레보르 궁전 지하에는 어마어마한 금은보화가 쌓여있다. 산 밑의 금광이 보고(寶庫)였다. 난쟁이들은 부지런히 금광을 채굴해 이를 금화나 장식으로 가공해 에레보르 주변에 사는 인간들의 마을인 ‘너른골’과 활발한 교역을 했다. ‘스로르’가 다스리던 이 왕국은 날로 번영해갔다. 하지만 거대한 붉은 용 ‘스마우그’가 에레보르와 너른골을 공격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난쟁이족들은 터전을 버리고 다른 나라를 떠돌 수밖에 없게 됐다.시간이 지나 스로르의 손자인 ‘소린’(리처드 아미티지 분)이 왕가를 섬기던 12명의 가신을 모아 에레보르를 탈환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마법사 ‘간달프’(이언 매켈런 분)와 그가 추천한 호빗족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 분)가 여정에 합류한다. 지난해 개봉한 ‘호빗’ 2탄은 영국의 언어학자이자 소설가인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의 작품 ‘호빗’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 작품은 톨킨의 다른 소설 ‘반지의 제왕’처럼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3부작 영화로 만들어졌다. 1편인 ‘호빗:뜻밖의 여정’이 개봉한 데 이어 이번에 ‘호빗:스마우그의 폐허’가 선을 보였다. 올해 마지막편인 ‘호빗:또 다른 시작’이 나올 예정이다.난쟁이족 탐욕 위기 불러와포브스가 지난해 가상 캐릭터들의 재산 순위를 집계한 결과 스마우그가 약탈을 통해 모은 재산은 최소 620억달러에 달했다. 압도적 1위였다. 영화에서는 궁전 지하에 금은보화가 산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