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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한반도 노린 청나라·일본의 다툼 '청일전쟁'…갑오개혁으로 본격적인 근대사가 시작되다
일본은 1860년대부터 시작된 메이지유신으로 조선보다 한 발 먼저 근대화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의 일원이 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우던 일본은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먼저 조선을 손아귀에 넣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청나라와 러시아가 이를 용납하지 않았죠. 일본은 전쟁을 치러서라도 청나라와 러시아가 조선을 포기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조선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이 사건을 청나라를 몰아낼 절호의 기회로 삼았습니다.농민군과 조정의 화해, 전주화약3000명이 넘는 일본 군대는 인천에 도착한 다음날 바로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청나라 군대에 일본 군대까지 외국 세력이 한반도 중심부에 진을 치자 농민군은 일이 커지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하필 6월 초로, 보리 수확과 모내기 준비에 바쁜 농번기였죠. 농민군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이에 전봉준은 여러 가지 잘못된 정책의 개혁과 탐관오리의 제거를 주장하는 27개조의 폐정개혁안을 조정에 제안했습니다. 개혁을 약속한다면 농민군을 해산하겠다고 제의한 것입니다. 농민군과 조정은 싸움을 멈추고 화해했습니다. 그때 화해의 약속이 전주에서 이뤄졌기에 이를 전주화약이라고 합니다.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스스로 폐정 개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이렇게 조정과 농민군이 화해를 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은 진정됐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는 돌아가지 않았어요. 심지어 일본군은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가둬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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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조선 망국 부른 고종 때 숱한 사건들…'동학혁명'으로 이어진 관리들 부패
어떤 역사적 사건이 괜히, 갑자기, 느닷없이 터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요. 특히 고종 임금 때 일어난 그 숱한 사건들,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그 사건들은 한 줄로 세워도 될 정도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분명합니다. 갑신정변도 정변 자체는 실패했지만 다음 사건에 대한 원인을 확실히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갑신정변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하며 청나라와 맺은 톈진조약이 이후 조선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조선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톈진조약일본은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키도록 부추겼지요. 군사를 보내 고종을 호위하기도 했지만 상황이 불리해지자 슬그머니 손을 뗐습니다. 그런데 정변의 과정에 피해를 입었다고 조선과 청나라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과는 한성조약을, 청나라와는 톈진조약을 맺었습니다.그런데 이 톈진조약이 문제였습니다. 주요 내용은 일본, 청나라 중 한 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낼 때는 자기네끼리 서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면 조선이 원하지 않아도 다른 나라도 군대를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약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톈진조약은 이후 조선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지요. 청나라의 힘으로 갑신정변을 막았다고 생각한 조선 왕실은 청나라에 더욱 의존했습니다. 청나라는 본격적으로 조선에 내정 간섭을 하였지요. 일본은 일본대로 조선에서 여러 이권을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렇게 이웃 나라들이 서로 조선을 차지하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 조선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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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길 잃은 조선왕실과 조급한 개화파…3일 천하로 끝나버린 갑신정변
임오군란이 진압되고 구식 군대를 지원했던 흥선대원군은 청나라로 잡혀갔습니다. 이로써 고종은 아버지에게 빼앗겼던 권력을 되찾았고 명성황후도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큰 난리를 겪으면 지배자들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요.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란과 봉기가 있었고, 그중 성공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도 사건 이후 권력자들의 반성과 개선의 노력, 민중의 깨달음이 조금씩이라도 있었기에 오늘날 같은 자유로운 세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혼란 또 혼란…제물포 조약그런데 조선의 왕실은, 왕비의 생사를 알 수 없어서 장례까지 치러야 하는 큰 난리를 겪고도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난리가 진정되자 먼저 주동자를 잡아다 고문하고 사형에 처했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이나 바람이 무엇인지 알려는 노력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권력을 지킬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데 골몰한 것입니다.일본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군란으로 공사관이 부서지고 일본 외교관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군함과 군대를 이끌고 제물포항(지금의 인천항)에 와서 조선을 위협했습니다. 조선은 어쩔 수 없이 일본과 조약을 맺게 됐지요. 바로 ‘제물포 조약’입니다. 이 조약의 결과 조선은 5년 동안 50만원을 일본에 배상하고 일본이 자신들의 공사관에 군대를 두는 것을 허락해야 했습니다.청나라는, 조선이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더욱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3000명의 군사를 조선에 데려다 놓고 청나라의 황실을 배신하면 안된다고 협박했습니다. 정치와 외교를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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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외환딜러와 환율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 국가의 대외 의존도를 측정하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입 총액을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눈 수치를 사용한다. 한국은 이 수치가 최근 3년 연속 100%를 넘어서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경제적 요인 중 하나는 아마 환율일 것이다.환율이란 자국 화폐와 외국 화폐의 교환 비율이다. 즉, 한 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자국의 상품 또는 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비율을 의미한다. 환율은 수시로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데 이는 한 나라 통화의 대외가치가 변동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환율은 국가 간 교류가 어떤 규모와 방식으로 전개될지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변수다. 따라서 환율을 이해하는 것은 국가 간의 거래인 무역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환율은 일반적으로 재화 시장처럼 해당 통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거나 교역의 결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외환의 수요는 우리나라 주민이 외국의 상품이나 자산을 구매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재화를 수입하거나 해외 자산을 구매하려면 보유한 원화를 외화로 환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환의 공급은 일반적으로 해외로부터 상품이나 자산을 구매하거나 국내 투자가 유발돼 외화가 유입됨으로써 일어난다. 이런 통화의 수요 공급 요인들은 환율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환율은 이와 함께 아래와 같은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먼저 환율은 통화량에 영향을 받는다. 특정 국가의 통화량 증가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으면 해당 국가 환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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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최익현 '도끼상소'·임오군란·대원군 납치…조용한 날이 없었던 조선의 하루하루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인천항과 부산항, 원산항을 개방했습니다. 조선의 문이 활짝 열리자 여러 나라가 조선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가까이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저 멀리 큰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들까지 기다렸다는 듯 조선으로 모여들었지요. 그들은 겉으로는 서로 물건을 사고파는 교역을 원한다고 했지만 속마음은 달랐습니다. 조선에 있는 자원을 독차지하여 헐값에 가져가거나 아예 식민지로 만들 기회를 노리고 접근한 것입니다.개화와 외국의 침탈고종은 정부 조직과 군대 조직을 개혁하고 선진 문물을 배워 들이기 위해 일본에 신사유람단과 수신사를 보냈습니다. 고종이 개화 정책을 펴는 과정에 정치적, 경제적 침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해온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개화의 바람이 침탈과 함께 불어닥치자 개화에 반발하는 세력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위정척사파였습니다. ‘위정척사’란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자는 뜻입니다. 여기서 사악한 것이란 서양 문물을 말하지요. 주로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위정척사파와 서양 문명의 장점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개화파는 날카롭게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위정척사파의 대표적 인물로 최익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최익현은 흥선대원군이 섭정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던 사람이지요. 그는 1876년 도끼를 메고 궁궐 앞에 엎드려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른바 ‘도끼 상소’입니다. 상소를 올리는 데 도끼를 들고 온 이유는, 자신의 말이 옳으면 받아들일 것이고 혹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자신이 가져온 도끼로 목을 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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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미술품 경매사와 가격차별
최근 들어 가장 활발하게 경매가 활용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미술품 거래시장이다. 미술품은 전통적으로 화랑을 통해 매매하는 것이 일반적인 거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 고객은 화랑과 화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가격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가격수용자(price taker)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반면 경매는 구매자들이 가격 결정의 최종 권한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경매가 훨씬 공평하고 민주적인 거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대두되면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주식시장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품이 대안투자의 방편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술품 경매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724억원이었던 미술품 경매시장의 규모가 2014년 981억원으로 약 35%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시장이 형성된 이래 최초로 1000억원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처럼 경매는 소비자 친화적인 가격결정 방식과 경기 여파 등의 영향에 힘입어 미술품 시장의 활성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경매가 소비자에게만 환영받는 거래 수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는 경매회사나 화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경매라는 가격 결정 방식이다.예를 들어보자. 생산자 입장에서 상품을 판매함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어떠한 상황일까. 여기 항공권을 구매하려는 A와 B, 두 명의 사람이 있다. 이 중 A는 항공권에 4만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고, B는 10만원까지 지불할 의사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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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조선의 문이 열리다…일본에 이어 미국·프랑스·러시아 등과 조약
고종이 조선의 제26대 임금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였습니다. 원래 미성년이 임금이 되면 대비가 발을 내리고 그 뒤에서 정치를 돕는 수렴청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비가 된 신정왕후는 자신이 수렴청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게 섭정을 하게 했습니다. ‘대원군’이란 자신은 왕이 아니었지만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경우 그 아버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조선의 대원군들 중 정치에 직접 나선 사람은 흥선대원군밖에 없으므로 보통 ‘대원군’ 하면 흥선대원군을 가리킵니다.대원군, 안동 김씨·서원 축출흥선대원군이 가장 먼저 시작한 개혁은 안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고 땅에 떨어진 왕권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집안이나 당파에 상관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고, 당쟁의 근거지가 되는 서원을 철폐했습니다. 서원은 지방에 있던 유학자들의 사설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서원을 중심으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파당을 만들고 다른 파당과 싸우는 일이 잦아서 문제가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흥선대원군은 이름 없는 세금과 궁중에 특산물을 바치는 진상 제도도 없애서 백성들의 부담을 줄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이 한 일 가운데 가장 대담한 일은 양반들에게서도 세금을 거둬들인 것입니다. 가난한 평민은 세금을 내는데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양반들은 오히려 세금을 안 내는 모순된 일이 그때까지 당연시되고 있었지요. 흥선대원군은 이렇게 세도 정치를 몰아내고 민심을 수습했으며 국가 재정도 늘려나가는 등 개혁을 펼쳤습니다.당백전·통행세·쇄국정책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잘못한 일들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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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데이터 분석가
미래 사회에 가장 유망한 직업은 데이터 분석가다.국가 전반의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일은 특정 개인이나 회사의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지식과 방법을 요구한다. 일개 개인이나 회사의 경제 상황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 개인, 정부 등 다양한 경제 주체가 수많은 경제 활동을 전개한 결과가 투영된 국가 경제 전반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지식과 방법이 요구된다.대개의 경우 경제 전반의 상황을 다소 주관적이거나 추상적인 형태로 파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정책 입안자나 기업체 의사결정권자들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국가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뿐만 아니라 자신이 활동하는 산업 또는 지역에 대한 세세한 상황까지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경제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일반인 또한 경제 전반의 상황을 더 정밀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국가 전반의 경제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단순히 주변에서 목격하는 상황에만 의존해 경제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상황을 종합해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경제지표에 있다.경제지표란 경제 활동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 경제 현상을 통계 수치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현재 한국은 한국은행, 통계청, 금융위원회 등 여러 정부기관이 통화, 물가, 금리 등 국가 경제 전반의 경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다양한 경제지표를 집계해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제지표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