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96)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 국가의 대외 의존도를 측정하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입 총액을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눈 수치를 사용한다. 한국은 이 수치가 최근 3년 연속 100%를 넘어서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경제적 요인 중 하나는 아마 환율일 것이다.환율이란 자국 화폐와 외국 화폐의 교환 비율이다. 즉, 한 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자국의 상품 또는 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비율을 의미한다. 환율은 수시로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데 이는 한 나라 통화의 대외가치가 변동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환율은 국가 간 교류가 어떤 규모와 방식으로 전개될지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변수다. 따라서 환율을 이해하는 것은 국가 간의 거래인 무역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환율은 일반적으로 재화 시장처럼 해당 통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거나 교역의 결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외환의 수요는 우리나라 주민이 외국의 상품이나 자산을 구매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재화를 수입하거나 해외 자산을 구매하려면 보유한 원화를 외화로 환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환의 공급은 일반적으로 해외로부터 상품이나 자산을 구매하거나 국내 투자가 유발돼 외화가 유입됨으로써 일어난다. 이런 통화의 수요 공급 요인들은 환율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환율은 이와 함께 아래와 같은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먼저 환율은 통화량에 영향을 받는다. 특정 국가의 통화량 증가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으면 해당 국가 환율이 높아진다.
물가 역시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물가가 외국보다 많이 오르면 우리 물건 가격이 상승해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는 반면 수입 수요는 증대된다. 따라서 외환 수요가 많아져 한국 돈의 가치도 떨어진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우리 돈으로 표시된 은행예금, 채권 등 금융자산의 예상수익률도 높아진다. 우리나라에서 금융자산에 대한 예상수익률은 높아진 데 반해 외국에서의 금융자산에 대한 예상수익률은 변함이 없다고 하면 우리 돈으로 표시된 금융자산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에 따라 우리 금융자산을 사기 위해 외국 돈이 들어오게 되고 그 결과 많아진 외국 돈에 의해 우리 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게 돼 환율은 떨어진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환율은 우리 경제의 다양한 현상이 투영된 결과물이거나 혹은 경제 현상을 유발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환율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환율은 다양한 분야 내지 직업의 흥망성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환율은 여러 직업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외환딜러다.
외환딜러란 국제 외환시장의 참여자로서 국가별 정치상황, 경제지표 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간 자금의 흐름을 파악해 환율을 예측하고 통화의 매매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외환거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통화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다. 분야에 따라 인터뱅크딜러, 코퍼레이트딜러, 머니마켓딜러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주로 하는 일은 실시간으로 국내외 시장의 뉴스를 보면서 가격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거래하는 것이다.
이런 직업의 특성상 외환딜러로 활동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 역량으로는 국제적인 자금 흐름의 추세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순간적으로 급변하는 환율 변화 속에서 적절한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을 줄 아는 순발력 등이 함께 요구된다. 이와 함께 외환딜러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개인들이 수행하는 재테크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자금을 운용한다. 또한 외환시장은 변동성이 매우 크고 한 번 추세가 형성되면 수개월에서 수년씩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손절을 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순간적인 판단 내지 작은 수익률 차이만으로도 커다란 금액이 오르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적인 외환딜러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또 다른 덕목은 절제력과 함께 환율의 등락에 따른 감정의 기복 및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건강이 꼽힌다. 최근 금융위기같이 예측하기 어려운 장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며 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외환딜러는 해외 경제상황을 수시로 확인해야 하며, 해외 소재 은행과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국인과 소통하고 해외 자료들을 분석할 수 있는 어학 능력도 요구된다.
외환딜러의 업무 환경 역시 외화 거래라는 업무 특성으로 인해 여타 직업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외화 거래가 수행되는 장 중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 점심 역시 주로 자리에 앉아서 김밥을 먹게 된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날에는 화장실조차 가기 힘들 때도 있다. 그리고 도쿄시장이 끝나면 런던, 뉴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있다.
외환딜러라는 직업이 이처럼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장이 예상한 대로 움직이고 수익을 냈을 때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도 있으며, 특정 개인으로서 국가 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 또한 외환딜러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다.
외환딜러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경영, 경제, 무역, 통계 등 상경계열 출신이 많다. 외환딜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에 입사해 업무 경력을 쌓고 공인재무분석사(CFA) 등 자격증을 딴 뒤 외환딜링부서에 지원해 딜러가 되는 것과 경영대학원(MBA) 학위 취득 후 전문딜러로 입사하는 경우가 있다. 매순간 변화하는 환율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환율 거래 시장에서 국제 금융 전문가로 활동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외환딜러는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직업이 아닌가 싶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