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62)
경제행위에서 신용이란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경제 행위를 통해 발생한 채무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신용을 갖춘 사람과 거래할 때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물건이나 돈을 빌려주거나 지급시기를 연장해 주기가 훨씬 용이하다. 반대로 내가 돈을 빌려야 할 경우에도 나의 신용 상태가 좋아서 내가 반드시 돈을 갚을 것이라고 믿어 주는 사람이 많다면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쉽게 돈을 융통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좋은 신용을 유지하는 것은 풍요로운 경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신용은 돈과 같은 금전적 가치를 제공해 준다.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것이다.많은 사람이 신용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신용만 좋으면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돈을 빌려준다든가,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물건을 할부로 구매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이는 커다란 착각에 불과하다. 단지 신용이란 현재 시점에서는 금전적으로 부족하지만 앞으로 예상되는 미래 수익이 있을 경우 이를 미리 끌어당겨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신용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물건들은 결국 본인의 능력으로 충분히 구매가 가능하지만 단지 현재 시점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것에 불과하다. 결국 신용은 구매 시점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기능에 국한된다. 신용상태 점수화 ‘신용평점제도’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신용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현재 개인 및 기업들의 신용 상태는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면밀히 분석돼 평가되고 있다. 금융기관이 개별 경제주체들의 신용 상태를 파악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정확한 신용평가 수행 여부가 해당 금융회사의 수익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회사들은 개인의 신용을 평가할 때 다양한 요인이 고려되고 있는데, 이를 신용평점제도(credit scoring system)라 한다. 여기서 신용평점제도란 고객의 신용상태를 점수로 산출해 대출 여부와 대출 금액을 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신용평점제도에서 개인의 신용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 고려하는 측면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개인의 특성, 상환능력, 재산능력, 담보능력, 경제여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먼저 개인의 특성 측면에서는 그 사람이 가진 직업, 근무연수, 나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인의 신용 정도를 평가하고 있다. 상환능력 측면에서는 근로소득, 이자소득 등 개인이 벌어들이는 각종 소득의 규모가 평가 대상이다. 재산능력의 경우 소유한 부동산 등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각종 자산의 순가치를 평가 대상으로 삼는데, 여기서 순가치란 해당 자산을 취득하기 위해 지급한 대가에서 이를 취득하기 위해 빌린 부채를 제외한 금액을 말한다. 다음으로 담보능력이란 만약 본인이 돈을 갚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돈을 갚을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측정해 신용 상태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여건에는 직업의 안전성 등이 해당한다.
국제금융거래에 영향력 큰 ‘국가신인도’
기업 역시 신용은 중요하다. 개인보다 더 큰 규모의 자금을 활용해 경제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높은 신용관리는 저리의 대출 내지 대출 연장 등에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커다란 수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융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 전반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특정 산업 및 기업의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기업이 앞으로 어떠한 재무 건전성과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작업은 대출 및 투자 결정 과정에서 필수요소가 됐다. 최근에는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에서 개별 경제주체들이 내포하고 있는 신용 상태를 정확히 분석하는 역량은 더욱 부가가치 있는 일로 거듭나고 있다.
좋은 신용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에도 중요하다. 국가의 신용은 국가신인도로 측정된다. 국가신인도란 한 나라의 신뢰성, 장래성 등을 나타내는 지표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위험도, 국가신용도, 국가경쟁력, 국가부패지수, 경제자유도, 정치권리 자유도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주기적으로 평가해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신인도는 해당 국가의 전체적인 신용 환경을 대변하는 지표이기 때문에 국제금융거래수행 시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신용분석 분야의 전문성을 일찍부터 인식해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격증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신용분석사가 바로 그것이다. 신용분석사란 금융회사에서 대출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회계정보 및 비회계정보를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신용 상황을 판단하고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전문가를 지칭한다. 실제 신용분석사 자격증 과정은 기업 신용 상황을 분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인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먼저 기업회계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소양인 회계학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췄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런 회계정보를 가공해 기업의 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재무비율 분석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으로 해당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 산업 내지 국가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파악하고 이런 경제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 활동을 진단할 수 있는 역량을 묻기 위해 시장환경분석 또한 신용분석사의 기본 과목 중 하나다.
신용분석사·신용관리사 등 다양
이런 신용분석사와 비슷한 신용 관련 자격증으로는 신용위험분석사와 신용관리사가 있는데, 이런 각각의 전문성을 갖춘 유사 자격증이 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신용 관리 및 분석 업무가 내포하고 있는 전문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현재 국내외 많은 금융기관들은 보다 정밀하게 개별 경제주체들의 신용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금융회사의 신용평가 방법은 우리에게 신용을 관리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빚이 전혀 없거나 부자가 되면 좋은 신용 상태를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좋은 신용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채무가 전혀 없는 것보다 일정 수준의 채무가 있고,이를 연체 없이 적절히 갚아가는 사람이 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다.
또한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신용등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부자는 가지고 있는 자산이나 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를 통해 자신의 부채를 갚을 능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단순히 자산만 많은 부자보다 자산은 별로 없으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이 더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도 있다. 공부를 잘했는지도 신용 등급과 관련이 있다. 즉 학력도 신용을 평가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해서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소득 수준이 높거나 좋은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학력이 개인의 신용상태를 평가하는 요소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신용’은 단순히 믿음 내지 신뢰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넘어 실질적인 금전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경제적 자산 중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용(credit) : 미래 일정 시점에 갚을 것을 약속하고 돈을 빌리거나, 상품·서비스를 미리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빌리는 사람이 이자를 지급하고, 정해진 기간 내에 돈을 갚을 것을 믿고 자금을 제공한다.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사이에 신뢰, 신용을 바탕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