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85)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일하고 있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유망하기를 바란다. 구직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분야 또는 앞으로 종사하게 될 직업이 각광받기를 희망한다. 직업의 안정성을 고려할 때도 그러하거니와 벌이 면에서도 유망 직종이 유리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어떤 직업이 현재 유망하고 또 앞으로 각광받게 될까. 직업의 흥망성쇠는 우리 사회가 처한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전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00년대 초반 정보보안 전문가가 각광받았던 것은 정보기술(IT) 발달로 개인정보의 보호가 과거와는 다르게 중요해졌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사회복지사가 유망 직업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로 복지 수요가 머지않은 미래에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처럼 유망 직업은 현재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미래 사회가 어떠할지를 예측하는 길라잡이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기의 흐름, 즉 경기변동을 파악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경기변동(business fluctuation)이란 경제활동이 어떤 형태로 변화하고 또 이를 유발하는 사회적경제적 원인은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경제학 이론을 말한다. 쉽게 말해 경제가 어떤 흐름으로 변모하는지, 그에 따른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경기변동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기변동은 어떤 요인들에 의해 발생할까. 우선 수요의 측면에서 볼 때,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전망이 경기변동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미래를 예측해 투자를 늘리거나 줄여 경기가 변동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기술이나 생산성 변화가 경기변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밖에도 정부의 정책 변화가 실물시장과 경제주체의 심리에 영향을 미쳐 경기변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요인들이 경제에 발생하면 경제는 4단계의 움직임으로 순환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선 미래 경제가 장밋빛으로 예상되거나 또는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된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상승 국면을 맞이한다. 이를 호황기라고 하는데, 이때는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고 재고가 감소해 기업의 이윤이 늘고 투자도 활발해진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돼 경기가 최고조에 달하면 경제는 퇴보하기 시작한다. 이를 후퇴기라 하는데, 이 경우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고 기업의 이윤이 줄어 임금이 하락하고 실업률이 차츰 높아지게 된다. 후퇴기에 들어선 경제는 불황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불황기에는 투자와 생산이 극심한 침체를 보이고 도산하는 기업도 속출한다. 이때는 임금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주가도 후퇴를 지속한다. 호황이 지속되면 경제가 최고조에 달하듯 불황도 계속되면 경제는 최저점을 맞는다. 하지만 최저점에 달한 경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차츰 호전되는데, 이를 회복기라고 한다. 회복기의 경제는 생산과 소비가 차츰 회복세를 보이고 실업이 감소하며 다시 임금이 상승한다.
호황, 후퇴, 불황, 회복. 경제는 장기적으로 이런 네 가지 단계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데, 이를 경기변동이라고 한다. 문제는 경제가 만사(everything)인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대부분의 사회활동이 경기변동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는 직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직업과 창업활동은 대부분이 그러하듯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고 기업의 이윤이 늘어나는 호황기에 대성황을 맞이한다. 반대로 투자와 생산이 침체를 보이고 기업의 줄도산이 발생하는 불황에는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창업을 해도 이윤을 남기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구직을 하든, 사업 전선에 뛰어들든 경기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호황에 직장을 구하거나 창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외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IT전당포’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전당포란 채무자가 맡긴 물건을 담보로 금전을 제공하는 일종의 사금융업자를 말한다. 유전(流典), 즉 전당 잡힌 물건에 대해 정해진 기간이 지나도록 변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당업자가 물건을 소유하고 이를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전당포다. 광복 이후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행 역할을 수행하던 전당포는 1960~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에는 ‘전당포영업법’이 제정돼 허가제로 규제를 해야 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고, 1970년대에는 트로트가수 등과 더불어 유망한 직업으로 꼽혔을 정도로 성업했다. 하지만 그 후 고리대금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신용카드가 일상화되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제는 전당포 하면 영화 ‘아저씨’에서 배우 원빈이 일하던 곳 정도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전당포가 최근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물론 과거와는 취급하는 물건이 달라서, 예전에는 반지나 시계 등의 귀금속을 취급했다면 최근 유행하는 전당포는 최신의 전자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IT전당포 형태를 띠고 있다. 더구나 어둡고 칙칙한 뒷골목 이미지가 강했던 과거와는 달리 IT전당포는 사무실도 깔끔하고 직원들도 친절한 기업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문턱이 높은 은행보다 돈을 빌리기 편하고 누구나 하나쯤은 IT기기를 가지고 있는 요즘이기에 현재와 같은 불황에도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대부금융협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1000여개에 달하는 전당포 중 절반 이상이 최근 2년 새 생겨난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 속에서도 나홀로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IT전당포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반길 수만은 없다. 그 속에 우리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보다 정확히 말해 청년층이 느끼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IT전당포는 매월 2~3% 정도의 이자를 받고 영업을 하는데, 이를 1년으로 계산하면 이자율이 30% 내외로 결코 낮다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람들, 특히 청년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과 생활고가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결국 전당포계에 불고 있는 훈풍은 경기불황의 여파가 만들어낸 새로운 풍조라는 점에서 일면으로는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경기변동 : 생산과 소비가 증가해 호황을 맞이한 경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산과 투자의 감소로 후퇴한다. 이후 경제는 극심한 불황에 빠지는데, 이런 불황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호전돼 회복기에 들어서고, 다시 호황에 이른다. 이처럼 경제는 호황, 후퇴, 불황, 회복의 단계를 반복하는데, 이를 경기변동이라고 한다.
◆전당포 : 채무자가 맡긴 물건을 담보로 금전을 제공하는 일종의 사금융업을 말한다. 유전(流典), 즉 전당 잡힌 물건에 대해 정해진 기간이 지나도록 변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당업자가 물건을 소유하고 이를 처분할 수 있다.
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