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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口蜜腹劍 (구밀복검)
▶한자풀이 口: 입 구 蜜: 꿀 밀 腹: 배 복 劍: 칼 검 입에는 꿀을 바르고 배 속에는 칼을 품다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 나쁜 마음을 품음 - 당나라 현종(玄宗)은 45년 치세의 초기에는 정치를 잘한 인물로 칭송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양귀비를 총애하며 주색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환관(宦官)에게 뇌물을 바친 인연으로 왕비에 들러붙어 현종의 환심을 사 재상까지 됐다. 그는 황제의 비위만 맞추면서 절개가 곧은 신하의 충언이나 백성들의 간언(諫言)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한번은 비리를 탄핵하는 어사(御使)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명군(名君)이시오. 그러니 우리 신하들이 무슨 말을 아뢸 필요가 있겠소. 저 궁전 앞에 서 있는 말을 보시오. 어사도 저렇게 잠자코 계시오. 만일 쓸데없는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그의 서슬이 퍼러니 설령 직언하려는 선비라 할지라도 황제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가 야밤에 서재에서 장고하면 그다음 날은 예외 없이 누군가가 주살(誅殺)됐다. 이처럼 재상 지위 19년 동안 온갖 권세를 휘둘렀으나 현종은 눈치채지 못했다. 안녹산(安祿山)도 그의 술수가 두려워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뒤에서는 많은 선비가 그를 욕했다. “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고 억누르는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口蜜腹劍)’고 말한다.” 에 나오는 얘기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은 겉으로는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나쁜 마음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일족인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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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대상을 어떻게 한정하느냐에 따라 글 의미 달라져
이(특허 청구범위) 항목은 해당 발명을 설명하는 데에 필요한 방법, 기능, 구조 및 결합 관계 등이 서술된 하나 이상의 청구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예시는 다음과 같다. [청구항 1] 금속,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의자 [청구항 2] 제1항에 있어서, 상기 금속은 철인 의자 [청구항 3] 제2항에 있어서, 목재를 포함하여 구성된 의자 위 예시의 [청구항 1]은 발명의 범위를 단독으로 나타내는 독립항이고, [청구항 2]와 [청구항 3]은 다른 항을 인용한 종속항이다. [청구항 2]는 다른 항에 기재된 발명의 구성 일부를 한정한 경우이고, [청구항 3]은 다른 항에 기재된 발명에 새로운 특징을 추가한 경우이다. 종속항은 독립항은 물론 또 다른 종속항을 인용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기술적 특징과 한정 사항 등의 구성 요소를 제시하기 때문에 독립항보다 좁은 보호 범위를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 2023학년도 교육청 전국연합학력평가 - 이 항목은 … 하나 이상의 청구항으로 구성되철수 쌤은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 사이를 계층적으로 분석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흔히 ‘항(項)’은 내용을 체계적으로 나눠 서술하는 단위의 하나를 뜻한다. 법률이나 문장 따위의 각개 ‘항목(項目)’을 구분할 때 쓴다. 즉 항목과 항은 상하 관계에 있으면서 구조인 항목과 구성 요소인 항의 관계를 이룬다. 지문에서 ‘이(특허 청구범위) 항목은 … 하나 이상의 청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예시’로 ‘청구항 1’ ‘청구항 2’ ‘청구항 3’으로 이뤄진 항목을 들고 있다. 이럴 경우 철수 쌤은 으레 상하 관계를 고려해 다음과 같은 계층 구조도를 그릴 것이다. 제1항에 있어서, … 제2항에 있어서 … 독립항… 종속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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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야기
'on (a) par with'는 동등한 수준을 의미해요
South Korean President Yoon Suk Yeol on Thursday declared an end to most COVID-19 restrictions including mandatory quarantine for patients of the pandemic as the country downgraded its national crisis level for the disease. Yoon said the government decided to recommend only a five-day isolation for COVID-19 patients instead of requiring a seven-day segregation from June, while lifting advised 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tests for inbound travelers and indoor mask mandates except for risky facilities such as hospitals with wards. “The move reflected the WHO’s declaration of an end to the virus as a global health emergency and the government’s national infectious disease response advisory committee’s advice to lift the crisis level,” Yoon said in a meeting with officials of the Central Disaster and Safety Countermeasures Headquarters at the presidential office.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last week declared that COVID-19 no longer represents a global health emergency. After that, Japan entered its post-pandemic phase, officially downgrading the disease to a status on par with seasonal flu and removing a range of restrictions against it. 해설최근 한국이 코로나19 대응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추고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했던 대부분의 조치를 해제한다는 기사의 일부입니다. 기사 뒷부분에 ‘동등한 또는 비슷한 수준’이라는 의미로 a status on par with seasonal flu(계절성 감기와 같은 수준)라는 표현이 사용됐습니다. on (a) par with somebody/something은 the same(같은)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South Korea’s inheritance tax rate is on par with Japan’s 55%(한국 상속세는 55%인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par는 고대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equal(동등한), equality(동등)를 의미합니다. 16세기 유럽 상업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par는 상품 또는 화폐 가치와 어떤 상황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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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보이지 않는 오류 하나, '소감을 밝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팀에서 활약 중인 김민재가 지난 5일 개인 소셜미디어에 기쁜 소식을 알렸다. 자신이 뛰고 있는 나폴리의 세리에A 우승이 확정된 직후다. 그런데 이를 전한 국내 한 언론의 보도문은 그리 깔끔하지 않다. ‘내용상의 군더더기’는 놓치기 십상무엇이 문제일까? 상투적인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자칫 소홀히 넘기기 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힘 있게 쓴다’는 눈으로 들여다보면 걸리는 데가 있다. ‘~는 소감을 밝혔다’가 그렇다. 글쓰기에서 ‘군더더기’는 여러 유형으로 나타난다. 단순히 어휘나 문장 차원을 넘어 내용상 군더더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용문 뒤에 무심코 덧붙이는 ‘소감을 밝혔다/포부를 밝혔다’류는 그중 하나다. 전형적인 ‘상투적 표현의 오류’ 사례다. ‘소감’은 마음에 느낀 바를 뜻하는데, 아주 넓게 쓰이는 말이라 좋은 표현이 아니다. 이 인용문은 좁혀 말하면 ‘사의’, 즉 고마움을 전한 내용이다. 그것은 인용문에서 이미 충분히 드러난다. 굳이 ‘소감을 밝혔다’라고 덧붙인 것은 잘못된 글쓰기 습관일 뿐이다. 서술어 ‘밝혔다’도 새로운 사실이나 판단을 드러낼 때 쓰는 말로, 이 문장에선 적절치 않다. ‘말했다’를 쓰는 게 무난하다. 라고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표현이 된다. 대부분 ‘소감을 밝혔다’가 군더더기인 까닭은 앞에 오는 인용문 자체가 소감이므로 다시 서술어에서 ‘소감을 밝혔다’고 반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을 말한 뒤 서술어로 ‘~는 포부/계획을 밝혔다’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 오류다. ‘~라고 말했다’가 간결한 표현이다. 김민재 선수의 소식을 전한, 서두의 기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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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平地風波 (평지풍파)
▶한자풀이 平: 평평할 평 地: 땅 지 風: 바람 풍 波: 물결 파 평평한 땅에 파도가 일다 잘되던 일에 분쟁을 일으킴 - 유우석(劉禹錫)은 당나라 중엽의 대표적 시인이다. 학식이 깊고 글 잘하는 인재를 뽑는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해 화이난 절도사 두우(杜佑)의 막료(정책을 조언하는 참모)가 되었으나 정치 개혁 실패로 변방으로 전직되는 등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등이 있다. 그는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농민의 생활 감정을 노래한 9수 중 첫수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구당은 시끄러이 열두 여울인데(懼塘十二灘) 사람들은 길이 예부터 어렵다고 말하네(人言道路古來難) 길게 한하는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지 않아서(長恨人心不如水) 예사로이 평지에 파란을 일으키네(等閑平地起波瀾) 칠언절구(한 구절이 일곱 글자로 된 절구)인 는 당시의 민가(民歌)를 바탕으로 지은 것으로, 유우석이 기주자사(夔州刺史)로 부임했을 때 민가에서 흥을 느껴 지은 시다. 구당이란 산은 양쯔강 상·중류에 있는 험하기로 유명한 삼협(三峽)의 하나로, 옛날부터 배로 여행하기가 몹시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는 세 산골의 어려운 뱃길을 오르내리던 뱃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던 비속한 뱃노래를 유우석이 점잖은 가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구당에는 여울을 지나면 다시 여울이 나타나 열두 개의 여울이 줄지어 있어 물소리가 시끄럽다. 그러나 이 빠른 여울보다 더 한이 서린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지 않아서, 평지에 파란을 일으켜 세상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은 바닥이 가파른 곳에서만 여울을 짓지만, 한이 있는 사람은 평지에서도 풍파를 일으켜 인생길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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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기준 제시문 바탕으로 한 비판문제를 푸는 방법
지난 시간 비판 문제(2023년 5월 8일자 16면 참조)의 답안을 풀어봅시다. [ 문제 ] 제시문 를 바탕으로 의 주장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비판적으로 논술하시오. 우선 제시문을 이해해야겠죠? 제시문이 시이므로, 상징적 제시문을 기준에 두고 비판문을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는 김광규 시인의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형식적으로 자유시인 동시에, 내용상으로는 풍자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풍자시인 이유는 시에서 나타나는 젊은 운전자가 물질문명에 사로잡힌 현대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갖게 된 너에 대한 대견함을 일반화해보면, 산업사회에서 자기 노력으로 물질적 대가를 획득하게 되는 현대인의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어조 속에 담긴 감정은 대견함보다 안타까움에 가깝습니다. 차를 몰고 달려가지만, 즉 더 앞으로 달려가기 위해 경쟁하지만, 주변을 바라보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요? 경쟁은 당연히 목적이 아닙니다. 물질적 획득도 결국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도덕적 가치를 고양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 목적을 망각한 채 빨리 달리는 것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듯이 경쟁에 몰두합니다. 이처럼 목적을 잃어버린 상황을 맹목이라고 하죠? 즉, 이 젊은이는 현대인들이 그렇듯 맹목적 경쟁을 하며 타자와 사회, 근본적 가치에 대해 성찰할 여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봅시다. 제시문에서 필자가 이 사회의 시스템을 ‘맹목적 경쟁’으로 몰고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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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敗軍之將 (패군지장)
▶ 한자풀이 敗: 질 패 軍: 군사 군 之: 갈 지 將: 장수 장 싸움에서 진 장수를 뜻하며 패한 자는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음 - ) 한고조를 도와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룬 한신이 한창 세력을 넓혀갈 무렵의 일이다. 당시 조나라 군대는 세력이 강해 용장이자 지장인 한신에게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천하 통일을 위해 조나라 정복은 필수였기에 한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나라로 가는 통로인 정경을 지나가야 했다. 그곳은 폭이 좁은 길이어서 조나라의 기습을 받으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신은 첩자를 통해 조나라의 복병이 없음을 확인했고, 결국 협곡을 신속히 통과해 조나라와 싸워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조나라에서는 이좌거라는 장수가 정경에서 기습할 것을 주장했으나 대장군 진여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습은 군자가 할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진여는 패했고, 이좌거는 한신의 군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좌거가 뛰어난 명장임을 알고 있던 한신은 군사들에게 그를 사로잡으라고 명했다. 이좌거가 끌려오자 한신이 극진히 대접하며 말했다. “나는 북으로 연나라, 동으로 제나라를 공격하고자 합니다. 좋은 계책을 알려주시오.” 그러자 이좌거가 답했다. “예로부터 ‘패장은 용기를 말할 수 없고(敗軍之將 不可以言勇), 망한 나라의 대부는 국가의 보존을 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찌 포로가 나라의 계책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한신이 다시 말했지요. “그건 그렇지 않소이다. 진여가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당신과 나는 자리를 바꾸어 앉았을 것이오. 사양 말고 계책을 말씀해 주십시오.” 결국 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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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힘 있는 문장은 어디서 오나…'형국이다' 버리기
①“지난겨울 전 국민을 시름에 빠뜨린 ‘난방비 대란’은 추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임박하면서 재차 이슈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전기료 폭탄’ 논란이 최근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을 앞두고 요금 현실화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전한 보도문의 한 대목에서 우리가 유념해 봐야 할 곳은 서술어 부분이다. 여기에 쓰인 ‘형국이다’는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보기에 따라 상당히 어색하기도 하다. 이런 까닭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군더더기성 표현, 서술부 늘어져‘형국이다’의 쓰임새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문장도 많다. ②“작년 초부터 호남권은 극심한 가뭄을 겪었지만, 올여름은 홍수 걱정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남부 지방은 가뭄 터널을 빠져나오니 홍수가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어린이날 연휴엔 전국에 많은 비가 뿌렸다. 최근의 기상청 자료를 인용한 이 기사 문장에 쓰인 ‘형국이다’는 억지스럽지도 않고 적절한 느낌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형국(形局)’이란 말이 있다. 여기에 서술격 조사 ‘-이다’를 붙여 서술어로 흔히 쓰는데, 자칫 군더더기일 때가 많다. 쓰일 만한 자리가 아닌데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대개 ‘~하는 형국이다/양상이다/상황이다/실정이다/모습이다/상태다’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쓰임새도 비슷해 모두 같은 ‘오용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서술어들이다. “국가별로 보더라도 대다수 국가의 기업 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전체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서술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