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千篇一律(천편일률)

    ▶ 한자풀이千 : 일천 천篇 : 책 편一 : 한 일律 : 법 률천 가지 작품이 한 가지 율조라는 뜻으로어떤 것들이 특성 없이 엇비슷함을 일컬음 -《예원치언(藝苑言)》 등개성의 시대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차 낡은 구호가 되어가고 있다. 이 시대는 내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일상에서 또는 신문기사 등에서 자주 쓰이는 천편일률(一律千篇)은 ‘천 가지 작품이 한 가지 율조’라는 뜻으로 여러 시문의 격조가 차별 없이 비슷비슷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물이 특성 없이 판에 박은 듯이 엇비슷함을 일컫는 데도 두루 쓰인다. 대동소이(大同小異)도 맥락은 비슷하다. 다만 대동소이가 가치중립적인 뜻을 내포하는 반면 천편일률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천편일률이란 표현은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왕세정(王世貞)은 명나라 후기 고문사(古文辭)파의 지도자가 된 문학가로,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창했다. 그의 문학·예술론이 담긴 《예원치언》에는 “백낙천(白樂天)은 나이가 들어 족함을 알라는 글을 썼는데 모든 작품이 천편일률이었다.(白樂天晩更作知足語, 千篇一律)”라는 구절이 나온다.송나라 문호 소식(蘇軾)도 《답왕양서(答王庠書)》에서 “오늘날 시험에 제출한 문장들은 천 사람의 글이 하나의 격률이어서 시험관들도 역겨워한다(今程試文字, 千人一律, 考官亦厭之)”고 탄식했다. 허균은 《성소부부고》에서 “소식은 텅 빈 듯하면서도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과 경계를 다투지 않으셨다.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즐겁게 어울렸으니 유하혜의 화광동진(和光同塵) 풍

  • 영어 이야기

    대조를 이룰땐 접속사 whereas, while을 써요

     Archaeology is the study of history as written not with ink on paper but with the debris of human activity found where it fell. Whereas historians read the written records of our ancestors, archaeologists read the material record, either to augment the historic one or to reconstruct prehistory when there is no written record. As with the historic record, the archaeological record is often prejudiced by accidental survival, biased sources, and skewed representations of certain materials. Of course, both historic and material records from the past may carry inadvertent meaning.-Harrison Eiteljorg Ⅱ의 《Computing for Archaeologists》 중에서고고학은 종이에 잉크로 쓰인 역사가 아니라 인간 행동의 잔해가 있는 곳에서 발견되는 것들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가들은 우리 선조의 글로 표현된 기록을 읽지만, 고고학자들은 역사적 기록을 늘리거나 글로 표현된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물질적인 기록을 읽는다. 역사적 기록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적 기록은 특정 자료의 우연한 생존, 편향된 출처, 왜곡된 묘사로 인해 종종 편견을 갖게 된다. 물론 과거의 역사적 기록과 물질적 기록은 모두 의도치 않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 해설 >접속사는 단어와 단어, 구절과 구절,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문장 성분을 일컫습니다. 접속사를 포함하는 본문의 예로는 whereas historians read the written records of our ancestors가 있습니다. whereas는 ‘~인 반면에’라는 의미를 지니며, whereas를 포함하는 문장과 연결된 문장을 대조시키고자 할 때 사용됩니다. 역사가들은 우리 선조의 글로 표현된 기록을 읽는다는 것과 (그 다음에 뒤따르는 문장인) 고고학자들은 물질적 기록을 읽는다는 것을 대조하기 위해 whereas가 사용된 것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임대료'를 어찌 '체납'하나요?

    “SK바이오, 미 노바백스 백신 ‘위탁생산’…전 세계에 공급” “인텔이 반도체 ‘위탁생산’으로 돌파구 찾는다” “르노삼성차는 2020년 닛산의 로그 ‘위탁생산’이 종료되면서 일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위탁/수탁’은 분명히 구별되는 말이다. 위탁은 남에게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다. 반대로 수탁은 남한테서 무언가를 맡는 것이다. 예문에서는 모두 ‘위탁생산’이라고 했으니 각각의 문장 주어가 남한테 생산을 맡겼다는 뜻이어야 정상적인 어법이다. ‘임대료’는 주인의 용어…빌린 쪽에선 ‘임차료’그런데 가만 보면 그런 뜻으로 쓴 게 아니다. 실제로는 SK바이오가 노바백스의 백신 생산을 맡은 것이다. 인텔이 반도체 생산을 남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맡는다는 뜻이고, 르노삼성차가 닛산의 로그 생산을 맡았다는 얘기다. 그러니 모두 ‘위탁생산’이 아니라 ‘수탁생산’인 셈이다. 위탁생산과 수탁생산의 차이를 개념상으로는 알고 있을지 몰라도 막상 실생활이나 현업에서 쓰다 보면 마구 뒤섞이는 것 같다. 요즘 우리말에는 이처럼 본래의 용법을 잃어버린 채 엉뚱하게 쓰는 말들이 꽤 있다. 이른바 ‘방황하는 말’들이다. 단어의 변별성을 잘 살려 써야 논리적이고 합리적, 과학적 글쓰기가 이뤄진다.일상에서 흔히 쓰는 ‘임대/임차’도 단어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말 중 하나다. ‘임대(빌려줌)’와 ‘임차(빌려 씀)’는 명백히 다른 말인데도 이를 두루 ‘임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구의 말인가’를 생각하고 써야 한다. ‘임대&rs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千載一遇(천재일우)

    ▶ 한자풀이千 : 일천 천載 : 해 재, 실을 재一 : 한 일遇 : 만날 우천 년에 한 번 만난다는 뜻으로좀처럼 얻기 어려운 기회를 의미 -《삼국명신서찬》중국 동진시대에 원굉(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글재주가 뛰어났지만 집안이 어려워 배에서 짐꾼으로 일하던 어느 가을밤, 강에 나가 시 한 수를 읊었다. 마침 사상이라는 귀족이 배를 띄우고 달구경을 하다 그 시를 듣고 원굉을 찾았다. 이 인연으로 원굉은 동양군 태수가 되었다. 그가 쓴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은 삼국지에 나오는 20명의 건국 명신에 대한 행장기(行狀記: 일생의 행적을 적은 기록)다. 위나라 9명, 촉나라 4명, 오나라 7명을 담고 있는데 제갈량·방통 등 잘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낯선 인물도 많다. 명신을 예찬하는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만 년에 한 번 있는 기회는 이 세상의 공통된 법칙이며, 천 년에 한 번 오는 만남은 현군과 명신의 진귀한 해후다(夫萬歲一期, 有生之通途, 千載一遇, 賢智之嘉會).”원굉은 이어서 “이 같은 기회를 누구나 기뻐하지 않고는 못 견디니, 기회를 잃으면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현명한 군주와 뛰어난 신하의 만남이 그만큼 이뤄지기 어려운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또 “말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천 년이 지나도 천리마는 한 마리도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삼국명신서찬》에서 유래된 천재일우(千載一遇)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회를 의미하며 만세일기(萬歲一期), 천재일시(千載一時), 천재일회(千載一會), 천세일시(千歲一時)라고도 한다. 사공견관(司空見慣)은 반대로 자주 보아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 영어 이야기

    ~ly로 끝나면 다 부사 아니었어?

     Journalism or what is often called the news business the gathering, the processing, and delivery of important and interesting information and developments by newspapers, magazines, or broadcast media is inextricably entangled in that giant, whirling entity often referred to as ‘the media’. Journalism, of course, is concerned with news, which is somewhat different from information, because of its public nature. Michael Schudson (1995) believes that news is a form of culture that he terms ‘public knowledge’,and defines as ‘this modern, omnipresent brand of shared knowing’. Many millions of Americans pay close attention on a daily basis to the news.-William A. Hachten의 《The troubles of Journalism》에서신문, 잡지, 방송 매체에 의해 중요하고 흥미로운 정보와 사건의 수집, 가공, 전달이 이뤄지는 소위 뉴스업계 또는 저널리즘은 언론이라고 자주 불리는 거대하고 소용돌이 치는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물론 저널리즘은 뉴스를 다루는데, 뉴스는 정보와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왜냐하면 뉴스는 공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Michael Schudson(1995)은 뉴스란 ‘공적인 지식’이고 ‘현대적이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유 지식의 유형’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문화의 한 형태라고 믿는다. 수많은 미국인은 매일 뉴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 해설 >다양한 언어 단위 중 의미를 지닌 가장 작은 단위를 형태소라고 부릅니다. 영어의 경우 하나의 형태소가 하나의 어휘를 구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often, giant, public이 그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두 개 이상의 형태소가 결합해 하나의 단어를 이룰 때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를 찾자면 inextricably와 omnipresent 등이 있습니다.inextricably는 in-, extric(ate), -a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千里眼 중국 위나라 광주 관청 앞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관원이 놀라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이리 소란이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오늘 관청 창고를 열고 저장된 곡식을 나눠준다고 들었소. 연속된 흉년으로 가족들이 모두 굶어죽을 지경이오.” 관원이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관청의 창고를 연다고? 누가 그런 황당한 소리를 했소?” 그때 뒤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랬네.” 얼마 전 광주 지사로 부임한 양일(楊逸)이었다. 양일이 관리들에게 명했다. “관청의 창고를 열어 식량을 나줘주게.” 관리들이 멈칫했다. “나리의 명이라도 나라의 창고는 함부로 열 수 없습니다. 조정에 보고부터 해야 합니다.” “백성이 저리 죽어가고 있는데 절차가 뭐 그리 중요한가. 어서 창고를 열게.” 창고가 열리고 줄지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식량을 받아갔다. 이런 소문은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조정 대신들은 절차를 무시한 양일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왕의 생각은 달랐다. “백성을 먼저 생각한 처신이 기특하구나. 광주의 관리들을 불러 요즘은 백성의 생활이 어떤지 알아보도록 하라.” 왕의 명에 따라 광주의 관리들이 불려왔지만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도시락을 싸 들고 와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마친 뒤 음식이라도 대접하려 하면 거듭 사양하고 서둘러 광주로 돌아갔다. “큰일 날 소립니다. 그런 일을 양사군께서 아시면 혼쭐이 납니다.” “여기서 광주가 얼마나 먼데 그걸 어찌 알겠는가.” “양사군께서는 천리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으신데, 어찌 이를 속일 수 있겠습니까(楊使君有千里眼 那可欺之).” 남북조시대 북제의 위수가 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실업률 증가 '효과'가 있다고 쓰면…

    말에도 생태계가 있다. 그 생태계를 어지럽히면 우리말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지재권 면제’는 어휘 측면에서 우리말을 교란한 사례다. 단어(‘권리’와 ‘면제’) 간 의미자질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부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다. 이번 호에서는 글쓰기에서 단어들의 선택과 나열이 어떤 원리에 의해 이뤄지는지 좀 더 알아보자. 부정적 문맥에 ‘효과’ 쓰면 의미 어색해져문장을 만드는 과정은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면 계열체와 통합체의 조합이다. 계열체란 간단히 말하면 단어를 찾는 과정이다. 최적의 단어를 찾아 써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통합체란 그런 단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을 말한다. 가령 ‘사과’라는 단어 뒤에는 ‘맛있다, 먹다, 익다, 썩다, 떨어지다, 시다, 붉다…’ 등의 말(계열체)이 올 수 있다. ‘사과’ 뒤에 ‘잘’이라는 부사가 왔다면 이어지는 말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익다’나 ‘먹다’는 그중 일부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돼 매끄럽게 연결된 것을 통합체라고 한다.‘권리’라는 단어는 행사하거나 보호, 유예, 포기 같은 말과 어울린다. ‘의무/책임’은 면제하거나 부과, 추궁, 회피 등과 호응한다. ‘지재권 면제’라는 표현이 어색한 까닭은 이런 ‘어휘 선택과 구성’의 질서가 무너진 데서 온다. 모국어 화자라면 직관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글쓰기에서 이런 오류는 자주 발생한다.‘효과’ 또는 ‘영향’은 누구나 아는 단어다. 기초적인 어휘인데도 막상 글을 쓰다 보면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수필의 묘미? 뜻만 생각지 말고 어감도 고려해 봐야

     지나간 성인들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간단하고 명료했다. 들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학자(이 안에는 물론 신학자도 포함되어야 한다)라는 사람들이 튀어나와 불필요한 접속사와 수식어로써 말의 갈래를 쪼개고 나누어 명료한 진리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문제는 묻어 둔 채, 이미 뱉어 버린 말의 찌꺼기를 가지고 시시콜콜하게 뒤적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든다. 생동하던 언행은 이렇게 해서 지식의 울안에 갇히고 만다.이와 같은 학문이나 지식을 나는 신용하고 싶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기 행동은 없이 남의 흉내만을 내면서 살려는 데에 맹점이 있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아무리 바닥이 드러난 세상이기로, 진리를 사랑하고 실현해야 할 지식인들까지 곡학아세(曲學阿世)와 비겁한 침묵으로써 처신하려 드니, 그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배반이다.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탈을 쓴 인형은 많아도 인간다운 인간이 적은 현실 앞에서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한 그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명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무학(無學)이란 말이 있다. 전혀 배움이 없거나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학문에 대한 무용론도 아니다. 많이 배웠으면서도 배운 자취가 없는 것을 가리킴이다. 학문이나 지식을 코에 걸지 않고 지식 과잉에서 오는 관념성을 경계한 뜻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