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自家撞着 (자가당착)
▶한자풀이自: 스스로 자 家: 집 가 撞: 칠 당 着: 붙을 착자신에게 부딪힌다는 뜻으로말이나 행동이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음 -<선림유취(禪林類聚)>자가당착자가당착(自家撞着)은 ‘자신에게 부딪힌다’는 뜻으로 같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됨을 이르는 말이다. “자가당착에 빠졌다” “자가당착의 우(愚)를 범했다” 식으로 쓰면 된다.이 말은 <선림유취(禪林類聚)> 간경문(看經門) 편에서 유래한다. 원나라 때 승려 도태와 지경이 편집했다고 알려진 이 책은 중국 선종이 꽃을 피운 당나라 때부터 남송 말까지 불교 전적에서 채집한 내용을 편찬한 것으로, 이름난 승려들의 행적과 어록, 득도와 깨달음에 대한 견해와 문답, 시문 등이 실려 있다. 간경문은 ‘경전을 보면서 깨우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그중 남송 때 승려 남당원정(南堂元靜)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전한다.수미산은 높아 봉우리를 볼 수 없고(須彌山高不見嶺)큰 바닷물이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네(大海水深不見底)흙 털고 먼지 날려 봐도 찾을 수 없고(簸土揚塵無處尋)고개 돌리다 부딪히니 바로 나 자신이네(回頭撞著自家底)경서를 읽으면서 진리를 찾아보지만 높고 넓은 경지를 쉽게 찾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발전이 없는 나 자신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마음속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괜히 헛된 목표로만 겉돌다가는 영영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말로는 진리를 찾는다고 하지만, 행동은 그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여기서 전하여 자가당착은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앞뒤가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得隴望蜀 (득롱망촉)
▶한자풀이得: 얻을 득 隴: 고개 이름 롱 望: 바랄 망 蜀: 애벌레 촉농(隴)을 얻고서 촉(蜀)까지 취하고자 한다만족을 모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을 비유- <삼국지>삼국시대, 위나라 조조와 촉나라 유비가 치열하게 싸울 때의 일이다. 조조는 촉나라 북쪽으로 연결되는 산시성 남쪽 농(隴) 땅까지 쳐들어가 그 일대를 수중에 넣었다. 조조의 부하 사마의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촉나라의 본거지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자, 조조가 사마의를 만류했다.“인간이 만족하기란 쉽지 않네. 이미 농까지 얻었으니 촉까지 바랄 것이야 없지(得隴望蜀). 그것은 지나친 욕심일세.” 그것이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조조는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았다. <삼국지>의 고사에서 유래한 득롱망촉(得隴望蜀)은 ‘농을 얻고서 촉까지 취하려 한다’는 뜻으로, 만족을 모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을 이른다. 후한의 광무제가 농 지방을 평정한 후 다시 촉 지방까지 원했다는 비슷한 고사도 있다. 망촉(望蜀), 평롱망촉(平隴望蜀)으로도 쓴다.망촉지탄(望蜀之歎)은 ‘촉 땅을 얻고 싶어 하는 탄식’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거어지탄(車魚之歎)도 욕심에는 한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맹상군의 식객 풍환이 칼을 어루만지면서 “긴 칼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겠구나. 밥상에 생선이 없다”고 투덜거렸고, 생선이 나온 다음에는 “드나들 때는 수레가 없다”고 탄식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기마욕솔노(騎馬慾率奴)는 ‘말을 타면 노비를 거느리고 싶다’는 뜻으로, 이 역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讀書三到 (독서삼도)
▶한자풀이讀: 읽을 독 書: 글 서 三: 석 삼 到: 이를 도독서를 하는 세 가지 방법을 이름책의 뜻을 가슴에 잘 새기며 읽는 요령- <훈학재규>주희(朱熹)는 중국 남송의 유학자다.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공자, 맹자 등의 학문에 전념했고 주돈이, 정호, 정이 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는 유학을 집대성했으며 오경의 참뜻을 밝히고 성리학(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켰다. 성리학은 고대 경전의 주해 외에 유교의 바탕인 거경궁리(居敬窮理, 마음을 경건하게 하여 이치를 추구함) 등의 학설을 제창하여 그 학문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주희는 <훈학재규(訓學齋規)>에서 “독서에는 삼도(三到)가 있으니 입으로 다른 말을 아니하고 책을 읽는 구도(口到), 눈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책만 잘 보는 안도(眼到), 마음속에 깊이 새기는 심도(心到)가 그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많이 읽기만 욕심내지 말고, 대충대충 넘기고 알았다고 말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곳이 있으면 사색하고, 생각으로도 이르지 못하면 날마다 베껴 기록해두고 틈나면 다시 살펴보라”고 했다.독서삼도(讀書三到)는 ‘독서를 잘 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뜻으로, 입과 눈과 생각을 오롯이 집중해야 글의 뜻을 제대로 새길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을 하든 마음이 그곳에 있어야 그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마음이 향하면 입과 눈은 절로 그곳을 바라본다.참고로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은 송나라 때의 문인 구양수가 글을 잘 짓는 세 가지 비결로 꼽은 말이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二虎競食計 (이호경식계)
▶한자풀이二: 두 이 虎: 범 호 競: 다툴 경 食: 먹을 식 計: 꾀 계두 마리 호랑이를 다투게 만드는 계책상대의 갈등을 조장해 이익을 취함 -<사기(史記)><사기(史記)> 장의열전에는 변장자(卞莊子)가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가 나온다.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고 할 때 그가 묵고 있던 여관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리면서 이렇게 말했다.“두 호랑이가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고기를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반드시 서로 다툴 것이고,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것이며,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놈은 죽을 것이니, 다친 놈을 찌르면 단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변장자가 그 말을 따라 기다리니, 과연 두 마리 호랑이가 싸워 큰 놈은 다치고 작은놈은 죽었다. 변장자는 다친 놈을 칼로 찔러 단번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이호경식계(二虎競食計)는 ‘두 마리 호랑이가 서로 싸우게 하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대적하는 상대의 갈등을 조장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라고도 한다.<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도 이 계책이 언급된다. 여포가 서주에 주둔한 유비에게 몸을 의탁하자, 조조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자신을 공격해올 것을 두려워했다. 이에 순욱은 무력을 쓰기보다는 유비와 여포가 서로 싸우게 하는 계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황제에게 청하여 유비를 서주목(徐州牧)으로 임명하게 하고, 여포를 제거하라는 밀서를 내리십시오. 유비가 여포를 제거하면 유비는 한쪽 팔을 잃는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見指忘月 (견지망월)
▶한자풀이見: 볼 견 指: 손가락 지 忘: 잊을 망 月: 달 월달은 잊어버리고 손가락만 쳐다본다말단만 보고 핵심을 놓쳐버림을 이름-<능가경>한 불자가 명성 높은 스님을 찾아와 가르침을 전해달라고 청하였다. 하지만 스님이 “나는 글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자, 불자가 크게 실망했다. 불자의 표정을 보고 스님이 말했다.“진리는 하늘에 있는 달과 같고, 문자는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손가락이 없어도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들었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요.”대승불교의 경전인 <능가경>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은 ‘손가락만 쳐다보고 달은 잊는다’는 뜻으로, 말단만 보고 정작 사물의 핵심은 놓쳐버리는 것을 이른다.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것은 본질은 도외시하고 형식과 수단에만 치우친다는 말이다.선종의 주요 가르침 중에 불립문자(不立文字)가 있는데, 이는 언어 문자의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하고 깨닫는다는 말로, 견지망월과 뜻이 비슷하다.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전해지므로 말과 문자가 필요 없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도 불립문자와 가르침이 같다. 깨달음을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견월망지(見月忘指)로 쓰면 형식과 수단보다는 본질을 본다는 뜻으로 의미가 정반대로 바뀐다.‘말꼬리 잡는다’는 우리말은 달은 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사람과 함의가 이어져 있다. 문맥을 보지 않고 문자 하나에 너무 집착하면 산은 보지 못하고 자잘한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黑白顚倒 (흑백전도)
▶한자풀이黑: 검을 흑白: 흰 백顚: 엎드러질 전倒: 넘어질 도검은 것과 흰 것이 거꾸로 되다옳고 그름이 뒤집힌 상황을 이름-굴원의 시 <회사>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굴원은 유배지에서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며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심경을 담아 지은 작품이 바로 <회사>다. 시구에는 간신배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탄식하는 내용이 나온다.“흰 것이 변하여 검은 것이 되고, 위가 거꾸로 아래로 되었네(變白以爲黑兮 倒上以爲下). 봉황은 조롱 속에 갇히고, 닭과 꿩이 하늘을 나네.”여기서 유래한 흑백전도(黑白顚倒)는 문자 그대로 흑과 백이 뒤바뀌었다는 말로, 옳고 그름이 뒤집힌 부조리한 상황을 비유하거나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하고 흰 것을 검다고 말하는 것처럼 고의로 옳고 그름을 흐리게 해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한다. 전도흑백(顚倒黑白), 반백위흑(反白爲黑), 전도시비(顚倒是非)도 같은 뜻이다.후한 시대 안제(安帝) 때의 양진(楊震)은 번풍과 주광 등 탐관오리의 행태를 고발하는 상소문에서 “흰 것과 검은 것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고, 맑음과 탁함이 그 근원을 같이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뜻이 흑백전도와 맞닿는다.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나무라는 것을 일컫는 적반하장(賊反荷杖)도 뜻이 같다.주인과 객의 위치가 서로 뒤바뀌었다는 주객전도(主客顚倒), 객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부차적인 것을 주된 것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게 여김을 이르는 객반위주(客反爲主), 일의 처음과 끝이 뒤바뀌었다는 본말전도(本末轉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惡事千里 (악사천리)
▶한자풀이惡: 악할 악 事: 일 사 千: 일천 천 里: 마을 리나쁜 일은 천 리를 달린다는 뜻으로안 좋은 소문은 금세 멀리까지 퍼짐 -<북송쇄언>악사천리(惡事千里)는 ‘나쁜 일은 천 리를 달린다’는 뜻으로, 나쁜 소문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멀리까지 금세 퍼짐을 이르는 말이다. 악사행천리(惡事行千里), 악사전천리(惡事傳千里)로도 쓴다. 중국에서는 속담처럼 사용해온 말로, 앞에 호사불출문(好事不出門, 좋은 일은 문밖으로 퍼져나가지 않음)이 붙어 대구를 이룬다.이 말은 송나라 때 손광헌(孫光憲)이 지은 <북송쇄언>에 나오는 “이른바 좋은 일은 문밖으로 퍼지지 않고, 나쁜 일은 천 리를 간다고 하였으니, 선비와 군자가 그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所謂好事不出門 惡事行千里 士君子得不戒之乎)”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같은 송나라 때 도원이 지은 <경덕전등록>의 선문답에도 “어떤 승려가 소종선사에게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인지요’라고 물으니, 소종선사는 ‘호사불출문, 악사행천리’라고 대답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악사천리는 <수호지> <서유기> 등 중국의 대중소설에도 자주 나온다. 우리말 속담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와 의미가 비슷하다.소문과 관련된 사자성어는 많다. 유언비어(流言蜚語)는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이나 풍설을 이르는 말이고, 도청도설(道聽途說)은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말을 이른다. 거리나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이르는 가담항어(街談巷語),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을 이르는 부언유설(浮言流說)도 뜻이 같다. 낭설(浪說)은 터무니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三旬九食 (삼순구식)
▶한자풀이三: 석 삼 旬: 열흘 순 九: 아홉 구 食: 먹을 식한 달에 아홉 끼를 먹다몹시 가난함을 이르는 말- <후한서>삼순구식삼순구식(三旬九食)은 ‘열흘에 아홉 끼를 먹다’라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이르는 말이다.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범엽이 후한의 역사를 정리한 <후한서>에 나오는 표현이다. 후한 시대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묘사하면서 이 말이 사용되었다. 삼순(三旬)은 한 달을 의미하며, 구식(九食)은 아홉 끼니를 뜻한다. 즉 한 달 동안 겨우 아홉 끼니를 먹을 정도로 극심한 가난을 겪는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니,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 사자성어다.송나라를 대표하는 도연명 시인의 시에도 삼순구식이 나온다. 그는 잠시 현령이라는 관직에 있었지만 “다섯 말의 쌀 때문에 부패한 관리들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낙향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시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동방에 한 선비가 있으니, 옷차림이 항상 남루했고, 한 달에 아홉 끼가 고작이요(三旬九食) 10년이 지나도록 관직 하나로 지내더라. 고생은 비할 데가 없건만 늘 밝은 얼굴이더라. 내 그분을 뵙고자 이른 아침에 갔더니, 푸른 소나무는 길옆에 울창하고, 흰 구름은 처마 끝에 잠들었더라.”자신의 처지를 동방의 한 선비에 비유한 시로 읽힌다.상루하습(上漏下濕)은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에서는 습기가 차오른다’라는 뜻으로, 몹시 가난한 집을 이르는 말이다.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들이친다는 상우방풍(上雨旁風), 집이 네 벽뿐이라는 가도사벽(家道四壁)도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움을 뜻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