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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징전비후 (懲前毖後)

    ▶한자풀이懲: 징계할 징前: 앞 전毖: 삼갈 비後: 뒤 후지난 날을 징계하여 뒷날을 삼가다이전 잘못을 교훈 삼아 앞날을 조심하다          - <시경><시경(詩經)>은 공자가 춘추시대 민요를 중심으로 엮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다. <시경> 주송 편에 실린 ‘소비(小毖)’라는 시는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삼가리라(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는 주나라 성왕의 고사에서 비롯한 말이다.성왕은 주나라 무왕(武王)의 아들로, 무왕을 이어 즉위했을 때 아직 나이가 어렸으므로 숙부인 주공(周公)이 섭정을 했다. 주공의 형제인 관숙과 채숙은 주왕(紂王)의 아들인 무경(武庚)과 결탁해 주공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어린 성왕이 차츰 그 말을 믿어 주공을 의심하게 되었으므로, 주공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성왕의 곁을 떠났다. 주공이 사라지자 관숙과 채숙은 물 만난 고기처럼 반란을 꾀했다.성왕은 그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급히 주공을 불러들였다. 주공이 돌아와 반란을 진압하고 관숙과 채숙 등을 징벌했으며, 다시 섭정하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물러났다. 나중에 성왕은 이 일을 깊이 반성하며 여러 신하 앞에서 말했다.“내 지난일을 징계해 후환을 삼가리라(懲前毖後).”여기서 유래한 징전비후(懲前毖後)는 지난날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을 이른다. 조선 시대 재상 류성룡(柳成龍)은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후세에 끔찍한 전화(戰禍)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기 위해 <징비록(懲毖錄)>을 지었는데, 이 고사에서 제목을 따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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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립신고 (粒粒辛苦)

    ▶한자풀이粒: 낟알 립粒: 낟알 립辛: 매울 신苦: 쓸 고쌀 한 톨마다 모두 고생이 배어 있다농부의 수고로움/곡식의 소중함을 비유 - 이신의 시 '민농(憫農)'이신(李紳)은 당나라 시인이다. 자는 공수(公垂)이며, 당나라 중기에 백거이·원진과 함께 신악부운동을 주창했다. 신악부운동은 옛 악부의 정신과 수법을 빌려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 창작 운동이다. 농부의 노고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담은 그의 ‘민농(憫農)’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김을 매니 해는 벌써 한낮, 땀방울이 벼 아래 땅을 적신다. 뉘 알리오 그릇에 담긴 밥, 한 알 한 알마다 농부의 수고로움이 배어 있는 것을(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誰知盤中, 粒粒皆辛苦).”입립신고(粒粒辛苦)는 쌀 한 톨마다 모두 고생이 배어 있다는 뜻으로, 농부의 수고로움을 이르는 말이다. 곡식의 소중함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시 원문 그대로 입립개신고(粒粒皆辛苦)와 함께 쓴다.흔히 곡식 한 톨에도 농부의 땀이 배어 있다고 하는데, 입립신고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농부가 피땀으로 곡식을 가꾸듯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고심하고 애쓰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차창밖으로 스치는 농촌의 풍경은 포근하고 고즈넉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농부의 땀이 땅을 적신다. 세상의 진실은 머릿속에서 그리는 추상화보다 발로 그리는 풍경화에 더 많이 담겼다.음수사원(飮水思源)은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남북조시대 문인 유신(庾新)이 남긴 말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도 그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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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포악발 (吐哺握髮)

    ▶한자풀이吐: 토할 토  哺: 먹을 포  握: 쥘 악  髮: 터럭 발먹던 것은 뱉고 감고 있는 머리를 거머쥐다인재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을 비유하는 말 -<한시외전(韓詩外傳)>주(周)나라는 무왕(武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세운 나라다. 무왕의 치세로 혼란한 정세는 점차 회복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왕이 질병으로 죽고 나이 어린 성왕(成王)이 제위에 오르자, 무경과 관숙 등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정세는 다시 혼탁해졌다.이 같은 혼란을 정비하고 주 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다진 인물이 주공단(周公旦)이다. 공자가 평생 흠모한 주공단은 무왕의 아우이자 성왕의 삼촌으로 권좌를 넘보지 않는 충직한 섭정을 펼쳐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 세웠다. 주공은 주왕실의 일족과 공신들을 중원 요지에 배치해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는 대봉건제를 시행해 주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했다. 주위에서 주공을 왕위에 올리려 했지만 주공은 단칼에 거절하며 조카 왕에 대한 충심을 잃지 않았다. 공자는 주공의 이런 마음을 높이 샀다.주공이 노(魯)나라 땅에 봉해져 집을 떠나는 아들 백금(伯禽)에게 말했다.“나는 한 번 씻을 때 세 번 머리를 거머쥐고(一沐三握髮), 한 번 먹을 때 세 번 음식을 뱉으면서(一飯三吐哺) 천하의 현명한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주공은 아들에게 나라를 살피는 일은 잠시도 쉴 틈이 없고 훌륭한 인재를 얻으려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한시외전>에 나오는 이야기다.토포악발(吐哺握髮)은 먹던 것을 뱉고 감고 있던 머리를 거머쥔다는 뜻으로, 현사(賢士)를 얻기 위해 정성을 다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훌륭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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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龍魚服 (백룡어복)

    ▶한자풀이白: 흰 백  龍: 용 룡  魚: 물고기 어  服: 입을 복흰 용이 물고기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신분이 높은 자가 서민복을 입고 미행함-<사기(史記)>오(吳)나라 왕이 백성들과 함께 술을 마시려고 하자 옆에 있던 오자서(伍子胥)가 이를 말렸다.“옛날에 하늘에 있던 흰 용이 지상으로 내려와 차가운 연못에서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때 어부 예저(豫且)가 용의 눈을 쏘아 맞추니 용은 하늘로 올라가 하느님에게 이를 고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용에게 ‘너는 그때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었느냐’라고 물으니 용이 대답하기를 ‘저는 그때 찬 연못에서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느님이 다시 ‘연못에 있는 물고기는 사람들이 잡으라고 있는 것이니 그 어부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고 오히려 너에게 잘못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모든 것을 버리시고 미천한 백성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면 예저와 같은 이가 나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오자서의 간언을 듣고 왕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사기> 오자서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백룡어복(白龍魚服)은 흰 용이 물고기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 서민의 옷을 입고 미행(微行)하는 것을 이른다. 미행은 일부러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무엇을 살피기 위해 남모르게 다니는 것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를 연상하면 된다. 외교 사절이나 국가원수가 신분을 알리지 않고 사적으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위 고사에서 용은 신분이 높은 사람, 어부는 평민을 이르는 말이다. 구중궁궐(九重宮闕)에 사는 왕이 신하들이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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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助紂爲虐 (조주위학)

    ▶ 한자풀이 助: 도울 조  紂: 주임금 주  爲: 할 위  虐: 모질 학주임금을 도와 포학한 짓을 저지르다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짓을 함               -<사기(史記)> 주왕은 애첩 달기와 함께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다. 폭정을 멈추라고 간언하는 신하들은 포락지형으로 죽였다. 포락지형은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하여 발이 미끄러져 불속으로 떨어지면 그대로 타 죽게 하는 형벌이다.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주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멸망시켰다. <맹자(孟子)>에는 “주공(周公)이 무왕을 도와 주왕을 죽이고 엄(奄)나라를 정벌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주자(朱子)는 이 구절에 대해 “엄은 동방에 있던 나라로, 주왕을 도와 포학한 짓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조주위학(助紂爲虐)은 주임금을 도와 포학한 짓을 저지르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왕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 폭군으로 꼽히는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이름을 따서 조걸위학(助桀爲虐)이라고도 한다. 조걸위학이라는 표현은 <사기(史記)>에 나온다. 유방은 진(秦)나라 수도 함양을 함락시킨 뒤, 궁궐의 화려함과 아름다운 궁녀들에 끌려 그곳에 머물고 싶어 했다. 번쾌가 궁궐 밖으로 나가자고 하자 듣지 않았으므로 장량(張良)이 다시 간했다.“무릇 진나라가 무도한 짓을 일삼았기 때문에 패공(유방을 가리킴)께서 이곳에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릇 천하를 위해 남은 도적들을 제거하려면 검소함으로 자원을 삼아야 마땅하거늘, 지금 진나라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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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衆怒難犯 (중노난범)

    ▶한자풀이衆: 무리 중  怒: 성낼 노  難: 어려울 난  犯: 범할 범무리의 분노는 거스르기 어렵다분노로 일어선 대중은 당해내지 못함 -<춘추좌씨전>춘추시대 위(衛)나라 왕이 연회를 베풀었다. 위왕이 버선을 신은 채 앉아 있는 저사성자를 보고 화를 냈다. 성자가 “지금 다리에 상처가 났습니다. 왕께서 보시기에 언짢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왕은 더 버럭 화를 냈다.“당장 네 발을 베어버리겠다.”성자가 놀라 허둥지둥 물러났다. 위왕은 이처럼 방자하고 걸핏하면 성을 냈다. 성격이 포악한 데다 신하를 혹사하고 걸핏하면 광대들이 대부들에게 창피를 주기도 하는 패륜적 주군이었다. 난폭한 행동을 참지 못한 고관들이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왕의 시종 견자사가 이를 진압하려 하자 왕의 심복 권미가 그를 말렸다.“그대는 용사니까 전쟁하고 싶겠지만, 이번만은 어렵다. 우리 임금이 제멋대로 하고 싶은 짓을 많이 하였으니, 많은 사람의 분노를 거스르기가 어렵다(衆怒難犯).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긴 왕은 진(晉)나라로 망명을 가려고 했다. 권미가 나섰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 진나라로 간다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위왕이 노(魯)나라로 가려 하자 권미가 또 간했다. “노나라는 아니 되옵니다. 월(越)나라가 좋을 듯합니다.”결국 왕은 월나라로 망명을 떠났다. 가는 도중 권미가 말했다.“신이 먼저 가서 월나라 동정을 살피겠습니다. 위나라 사람들이 왕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보물은 먼저 보내는 것이 안전할 듯합니다.”왕의 보물이 든 수레를 끌고 월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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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兵不厭詐 (병불염사)

    ▶한자풀이 兵: 병사 병      不: 아닐 불      厭: 싫어할 염    詐: 속일 사적을 속이는 것도 꺼려하지 않다전쟁은 계략을 써서라도 이겨야 함 -  <후한서>후한의 안제(安帝) 때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 계통의 강족(羌族)이 기습 공격을 해왔다. 안제는 무도의 태수(太守) 우후에게 강족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후는 군사 수천 명을 이끌고 진격했지만 군사 숫자가 만 명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을 안 강족은 물러나지 않고 결전을 치르려고 했다. 강족보다 병력이 부족한 우후가 황제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리자 강족은 진짜인 줄 알고 퇴각했다.우후는 도망치는 강족을 쫓아 하루 100리 길을 가는 추격전을 강행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곳마다 솥의 수를 늘려갔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부하에게 우후가 말했다.“솥의 수를 늘리는 것은 행군할수록 병력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손빈(제나라의 병법가)의 병법에는 약하게 보여 적을 속이지만 나는 강하게 보여 적을 속이는 것이다. 병법은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한다. 전쟁에서는 적을 속이는 것도 꺼려하지 않아야 한다(兵不厭詐).우후는 강족과 대치하자 약한 활을 쏘라고 지시했다. 강족이 우후의 군사를 얕보고 접근하자, 우후 군사는 즉시 강한 활을 쏘며 진격해 큰 타격을 입혔다. 이는 <후한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병불염사(兵不厭詐)는 전쟁에서는 상대를 속이는 것도 꺼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속임수가 미덕은 아니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이 달린 전쟁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거둬야 한다. 전술은 큰 싸움에서 상대를 기만하는 일종의 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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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知止止止 (지지지지)

    ▶한자풀이知: 알 지      止: 그칠 지      止: 그칠 지      止: 그칠 지그침을 알아 그칠 데서 그친다과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    - <도덕경>노자의 <도덕경>은 도가 사상이 집약된 책이다. 도가의 골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집약된다. 자연의 뜻에 거스르는 일을 인위적으로 애써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도덕경> 44장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명성과 몸은 어느 것이 가까운가. 몸과 재화는 어느 것이 소중한가. 얻음과 잃음은 어느 것이 병인가. 이런 까닭에 애착이 심하면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르고,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知足不辱)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여기에서 유래한 지지지지(知止止止)는 그침을 알아 그쳐야 할 데서 그친다는 뜻이다.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이르는 안분지족(安分知足)과 뜻이 비슷하다.공자보다 20년 정도 앞서 태어난 노자는 시대적으로 하나라 문화를 계승하고 공자는 은나라 문명을 계승했다. 공자나 노자는 모두 ‘인간의 길’을 주창했다. 다만 공자는 인간의 내면성과 본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길을 걷고자 했고, 노자는 자연의 운행법칙이나 섭리에서 인간의 길을 찾고자 했다. 공자는 먼 앞길을 걸어간 성현의 말씀에서 길을 찾고자 했고, 노자는 ‘지금 여기’에서 길을 발견하고자 했다.‘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거피취차(去彼取此)는 무게 중심을 현재에 두는 노자 사상을 잘 보여준다. 현대적 언어로 쉽게 풀면 ‘남들이 간 길을 따라가지 말고 네가 꿈꾸는 네 길로 가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