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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仰不愧於天 (앙불괴어천)

    ▶ 한자풀이 仰: 우러를 앙 不: 아니 불 愧: 부끄러워할 괴 於: 어조사 어 天: 하늘 천 스스로 몸가짐이 도리에 맞아 하늘을 우러러보아 부끄럽지 않음 -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이라는 유명한 구절은 진심상(盡心上) 편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거기에 끼어 있지 않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고(無故)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유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군자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집안에서는 부모와 형제를 잘 봉양해 무탈하게 하는 것, 스스로는 처신을 단정히 하고 예의염치를 아는 것, 밖에서는 훌륭한 인재를 얻어 양성하는 세 가지야말로 군자의 도라는 뜻이다. 바란다고 다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이루고 나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는 뜻에서 ‘군자삼락’이라는 말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仰不愧於天 俯不於人)은 하늘에도 사람에게도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는 군자의 자세를 이르며, 흔히 앙불괴어천으로 줄여 쓴다. 에도 “군자는 누가 보지 않을 때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누가 듣지 않을 때에도 두려워한다. 어두운 곳보다 더 드러나는 곳은 없으며 작은 일보다 더 나타나는 일은 없으니,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앙불괴어천과 뜻이 맞닿는다. “죽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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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晏御揚揚 (안어양양)

    ▶한자풀이 晏: 늦을 안 御: 어거할 어 揚: 오를 양 揚: 오를 양 안영의 마부가 날아오를 듯하다는 뜻으로 스스로 만족해 기세가 드높은 모양새 - 안영(晏)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으로 3대 군주를 섬기면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하루는 안영이 수레를 타고 외출했는데, 수레 모는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남편이 어떤 모습으로 일하는지 엿보았다. 마부는 머리 위에 펼친 큰 우산 아래서 채찍질을 하며 말 네 필을 몰고 있었는데, 의기양양하며 매우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마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대뜸 이혼을 요구했다. 마부가 깜짝 놀라며 그 까닭을 묻자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모시는 안자(晏子,: 안영을 높여 부르는 말)께서는 키가 6척이 채 안 되는데도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명성을 날리고 계십니다. 바깥에서의 모습 또한 뜻과 생각이 깊고 현명해 보이면서도 늘 스스로를 낮추시더이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 남의 마부로 있는데도 스스로 자만해 만족스러워하고 있으니, 제가 지금 이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마부는 항상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했다. 그가 변한 모습을 보고 안영이 이상하게 여겨 까닭을 묻자 마부는 아내와의 일을 사실대로 전했다. 곧장 반성할 줄 알고 바르게 변한 모습을 보고 안영은 그를 천거하여 대부(大夫)로 삼았다. 안어양양(晏御揚揚)은 관안열전(管晏列傳)에 전해오는 고사에서 유래하는 말로, 안영의 마부처럼 스스로 만족해 기세가 등등한 모습을 일컫는다. 뜻을 이루어 흡족한 상태를 가리키며,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겨 으쓱대는 태도를 이르지만 자만하다는 뜻을 내포한다. 양양(揚揚)은 하늘로 날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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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

    ▶ 한자풀이 過: 허물 과 則: 곧 즉 勿: 말 물 憚: 꺼릴 탄 改: 고칠 개 잘못이나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뜻 - 공자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라고 했다. 누구나 잘못과 허물이 있지만 이를 알고도 고치기를 주저하면 더 큰 잘못, 더 큰 허물이 된다는 것이다. 학이편에는 공자가 군자의 수양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군자는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어 학문을 해도 견고하지 못하다. 충(忠)과 신(信)을 주장으로 삼으며,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삼으려 하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잘못이 있는데 고치기를 주저하면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할 위험이 있고,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낳을 수 있으므로 허물을 고치는 데 꺼리지 말고 즉시 고치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도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군자는 잘못을 범하였을 때 모든 사람이 이를 알 수 있도록 바로 고쳐야 한다”라고 했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 안회(顔回)에 대해서는 ‘과불이(過不貳, 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 하지 않음)’라 하며 그를 크게 칭찬했다. 위(衛)나라 재상 거백옥은 어진 성품으로 유명했다. 그는 공자와도 친교가 있었는데, 거백옥에게서 어느 날 사자(使者)가 왔다. 공자가 거대인의 안부를 물으니 사자가 답했다. “주인께서는 잘못을 줄이려고 애쓰고 계십니다만, 아직도 잘못을 줄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그 말을 듣고 거백옥과 사자를 높이 평가했다. 공자는 자장편에서 “덕이 없는 자는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을 고칠 생각은 않고 꾸며서 얼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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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靑天白日 (청천백일)

    ▶한자풀이 靑: 푸를 청 天: 하늘 천 白: 흰 백 日: 날 일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빛나는 태양 세상에 아무런 부끄럼이나 죄가 없음 '여최군서(與崔群西)' ‘여최군서(與崔群西)’는 당나라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최군(崔群)이라는 인품이 훌륭한 벗에게 보낸 글이다. 한유는 이 글에서 최군에 대해 말이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대답한 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대는 빼어난 인품으로 어떤 경우에도 즐거워하거나 어떤 일에도 근심하지 않소. 그러나 강남이라는 곳과 지금 그대가 맡고 있는 관직은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소. 그대는 많은 나의 친구들 가운데 가장 마음이 순수하고 맑아 반짝이는 해와 같소. 그대와 나의 우정은 말할 수 없이 깊소. 그런데 당신을 의심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의심스럽다. 군자라도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있는 법인데,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 복종한다고 하니,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이에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소. ‘봉황과 지초(芝草)가 상서로운 조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며, 청천백일(靑天白日)이 맑고 밝다는 것은 노예조차도 알고 있다. 이것을 음식에 비유해 말하면, 먼 곳의 진미는 즐기는 자도 있고 즐기지 않는 자도 있지만 쌀, 수수, 회(膾), 적(炙)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여기서 한유가 ‘청천백일’을 비유해 말하고자 한 것은 최군의 인품이 매우 뛰어나서 그같이 훌륭한 인물은 누구든 다 알아본다는 것이다. 즉 푸른 하늘에 빛나는 태양의 맑고 밝음은 노예까지도 인정하는 것처럼, 훌륭한 인물은 청천백일하에 드러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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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喪家之狗 (상가지구)

    ▶한자풀이 喪: 초상 상 家: 집 가 之: 갈 지 狗: 개 구 '상갓집의 개'라는 뜻으로 여기저기 이익을 좇음을 비유 - 공자가 정(鄭)나라에 갈 때 그를 존경하는 여러 제자가 가르침도 배우고 스승을 보살피기 위해 따라다녔다. 한데 어쩌다가 공자가 길거리에서 그 제자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공자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 한 채 동문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무작정 그러고 있으면 자기를 찾는 제자 중 누군가가 나타나리라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제자들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스승이 염려된 제자들은 각자 나뉘어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중 제자 자공(子貢)이 행인들을 붙들고 스승의 용모를 말하며 저잣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걸쭉한 입담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동문 옆에 웬 노인네가 서 있는 걸 봤는데, 그 양반이 아마도 노형이 찾는 분 아닌지 모르겠구려. 생김새는 이마가 요(堯)임금 같고, 목은 순(舜)임금과 우(禹)임금을 섬긴 고요(皐陶)와 비슷하며, 어깨는 명재상 자산(子産)을 닮았습디다. 그렇지만 허리 아래로는 우임금보다 세 치 정도는 짧아 보였고, 맥 빠져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은 주인이 황망 중이라 미처 얻어먹지 못해 기운 빠진 ‘상갓집 개(喪家之狗)’를 연상케 합디다.” 무엄함을 탓할 겨를도 없이 허둥지둥 동문으로 달려간 자공은 스승을 발견하고 일행이 기다리는 장소로 모시고 오다가,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해 조금 전 행인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자공의 놀림에 공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내 용모를 가지고 한 소리는 다 맞다고 할 수 없지만, 상갓집 개 꼬락서니라고 한 것은 딱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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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松茂柏悅 (송무백열)

    ▶ 한자풀이 松: 소나무 송 茂: 무성할 무 柏: 잣나무 백 悅: 기쁠 열 소나무의 무성함을 잣나무가 기뻐함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함을 이름 - 중국 서진의 문인 육기(陸機)가 쓴 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진실로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타자 혜란이 탄식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歎).” 송무백열(松茂柏悅)은 ‘소나무의 무성함을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백(柏)은 원래 측백나무를 가리키지만, 현재는 잣나무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겨울이 되어도 푸른 빛을 잃지 않아 예부터 선비의 꼿꼿한 지조와 기상을 상징한다. 송백지조(松柏之操, 송백의 푸른 빛처럼 변하지 않는 지조), 송백지무(松柏之茂, 언제나 푸른 송백처럼 오래도록 영화를 누림) 등이 그 예다. 공자는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까지 푸르름을 안다”라고 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인간의 지조에 빗댄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도 공자의 이 말에서 제목을 빌려온 듯하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푸르면서도 서로 모습이 비슷해 흔히 가까운 벗을 비유하는 데 사용한다. 송무백열이 대표적 사례다. 혜분난비(蕙焚蘭悲)는 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이 또한 벗의 깊은 우정을 이르는 말이다. 혜(蕙)는 난초의 한 종류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백아(伯牙)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던 절친한 벗 종자기(種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은 여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평생 진정한 벗 한 명 얻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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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堀墓鞭屍 (굴묘편시)

    ▶ 한자풀이 堀: 굴 굴 墓: 무덤 묘 鞭: 채찍 편 屍: 주검 시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하다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이름 - 오자서(伍子胥)는 춘추시대 정치가로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초나라 평왕의 태자 건의 태부(太傅: 왕의 고문 격)요 충신이었던 오사(伍奢)의 아들이었다. 건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가 오사를 시기해 평왕에게 참소하자, 평왕은 오사와 그의 큰아들 오상(伍尙)을 죽이고 자서까지 죽이려 했으나 재빨리 몸을 피해 오나라로 망명했다. 오자서는 오나라 왕 합려를 도와 강대국을 이룬 뒤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초나라로 쳐들어갔지만 평왕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생전에 오자서의 보복을 예견한 평왕이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를 조성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탓에 무덤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인의 도움으로 왕의 무덤을 찾은 오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철장(鐵杖) 300을 쳐 분을 풀었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는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그러한 복수 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하였다. 에 나오는 얘기다. 굴묘편시(掘墓鞭屍)는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하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도를 넘는 지나친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을 추시하던 부관참시(剖棺斬屍)도 의미가 비슷하다.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 우리나라는 특히 연산군 때 성행했으며 김종직(金宗直), 송흠(宋欽), 한명회(韓明澮), 정여창(鄭汝昌), 남효온(南孝溫), 성현(成俔) 등이 이 형을 받았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대역죄를 범한 자에게 과한 극형은 능지처참(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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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燕雀鴻鵠 (연작홍곡)

    ▶ 한자풀이 燕: 제비 연 雀: 참새 작 鴻: 큰기러기 홍 鵠: 고니 곡 제비가 어찌 기러기의 마음을 알랴 소인은 대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함 - 진(秦)나라는 수백 년간 지속된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기원전 221년 중국 천하를 통일했지만, 폭정으로 민심을 잃어 15년 만에 멸망했다.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인 게 권세의 탑이다. 진 멸망의 첫 봉화는 양성(陽城)에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진승(陳勝)이라는 자가 올렸다. 그가 밭에서 일하다 잠시 쉬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놈의 세상, 뭔가 뒤집어 놓아야지. 이래서는 어디 살 수가 있겠나!” 주위의 머슴들이 일제히 비웃었다. “여보시게, 머슴 주제에 무엇을 하겠다고?” 진승이 탄식하듯이 말했다.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리오(燕雀安知 鴻鵠之志).” 진시왕이 죽고 아들 이세(二世)가 왕위를 이었지만 포악함과 사치는 아버지보다 더했다. 백성은 삼족을 멸한다는 형벌이 두려워 불만조차 숨겼다. 후에 진승은 오광(吳廣)과 함께 징발되어 일행 900여 명과 함께 장성(長城)을 수비하러 갔다. 한데 대택(大澤)이라는 곳에서 큰비를 만나 기일 내에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늦게 도착하면 참형(斬刑)에 처해지니 차라리 반란을 일으키는 게 더 나을 듯했다. 진승·오광은 뜻을 같이하고 인솔자인 징병관을 죽인 뒤 군중을 모아 놓고 말했다. “어차피 늦게 목적지에 도착해도 우리는 죽으니 사내대장부답게 이름이나 날리자.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있다더냐?” 두 사람은 파죽지세로 주위를 함락시켰고, 진승은 나라 이름을 장초(長楚)라 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