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管中窺豹 (관중규표)
▶한자풀이
管: 대롱 관
中: 가운데 중
窺: 엿볼 규
豹: 표범 표


대롱 한가운데로 표범을 엿보다
식견이 매우 좁음을 이르는 말
-<진서(晉書)>

동진(東晉)의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 제자들이 모여 즐겁게 놀이를 하고 있었다. 왕희지의 아들 왕헌지는 노름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그러자 왕희지의 제자들이 왕헌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는 대나무 대롱 속으로 표범을 보듯이 표범 전체는 못 보고 표범의 얼룩 반점 가운데 하나는 볼 줄 아는구나(此郞亦管中窺豹 時見一斑).”

<진서(晉書)>에 수록되어 전해오는 이야기로, 관중규표(管中窺豹)는 ‘대롱 한가운데로 표범을 엿보다’라는 뜻으로 식견이 매우 좁음을 이른다. 대롱의 작은 구멍으로 표범을 보면 표범의 전체 모습보다 일부분만 보게 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겸손하게 말하는 경우에도 쓰인다.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정중지와(井中之蛙)도 뜻이 같다. 흔히 ‘우물 안 개구리’로 쓰이는데, 이 역시 식견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황허의 신 하백(河伯)이 강의 물줄기를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 나왔다. 그는 북해에까지 가서 동해를 바라보며 그 끝이 없음에 놀라 탄식했다. 그러자 북해의 신 약(若)이 말했다.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이라는 계절에만 갇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시인
'인문 고사성어' 저자
작가/시인 '인문 고사성어' 저자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도(道)를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상식이라는 좁은 틀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중지와는 흔히 부지대해(不知大海)와 한 구를 이룬다. 즉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井中之蛙 不知大海)’로 쓴다. 줄여서 ‘정와(井蛙)’ 또는 ‘정저와(井底蛙)’라고도 한다. 스스로를 가둔 뚜껑을 열과 나와야 온전한 세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