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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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招搖過市 (초요과시)
▶한자풀이招: 부를 초 搖: 흔들릴 요 過: 지날 과 市: 저자 시요란스럽게 저잣거리를 지나가다허풍을 떨며 자신을 드러냄을 비유-<사기(史記)>공자가 위나라에 가서 거백옥의 집에 머물 때였다. 위나라 군주 영공(靈公)의 부인인 남자(南子)가 사람을 보내 뵙기를 청했다. 공자는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남자가 거듭 사람을 보내 요청하자 마지못해 만나러 갔다. 남자는 휘장을 드리우고 공자를 만났는데, 패옥(佩玉)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겉치레를 과시하는 이러한 행동은 공자가 중시하는 예(禮)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공자는 제자 자로에게 “나는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으나, 기왕에 만났으니 예로써 대해주었다”라고 말했다. 예가 없는 사람에게 예로 대한 것을 마뜩잖게 생각하는 자로에게 공자는 “내가 잘못이라면 하늘이 나를 미워할 것이다”라고 했다.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 영공과 부인 남자는 함께 수레를 타고 행차했다. 그런데 환관인 옹거는 수레에 함께 태우고, 공자에게는 뒤 수레를 타고 따라오게 하면서 요란스레 저잣거리를 지나갔다. 공자는 이를 두고 “나는 덕(德)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영공이 자신을 그와 같이 대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위나라를 떠나 조(曹)나라로 갔다.<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 편에 나오는 고사다. 여기에서 유래한 초요과시(招搖過市)는 남의 이목을 끌기 위해 요란스럽게 행차하고 저잣거리를 지나간다는 뜻으로, 허풍을 떨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실속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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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愚責人明 (지우책인명)
▶한자풀이至: 이를 지 愚: 어리석을 우 責: 꾸짖을 책 人: 사람 인 明: 밝을 명어리석은 사람도 남 나무라는 데는 총명하다자신의 허물은 못 보고 남 탓만 하는 것을 비유- <송명신언행록>송나라 때 명신 범순인(范純仁)은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의 아들로, 시호는 충선공(忠宣公)이다. 그는 임금에게는 충직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넉넉했다. 주자가 송나라 명신들의 언행을 엮은 <송명신언행록>에는 그의 충(忠)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범순인의 말이다.“내가 평생 배운 것은 오직 충서(忠恕, 충성과 용서)라는 두 글자뿐이니, 일생토록 써도 다함이 없다. 조정에서 임금을 섬길 때나, 동료들을 대할 때나, 종족(宗族)과 친목을 다질 때나 나는 잠시도 충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그가 충과 서를 얼마나 단단히 쥐고 조정에 나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자식들을 가르치는 훈계는 그의 품이 얼마나 넉넉한지를 보여준다.“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총명하고(人雖至愚 責人則明), 총명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는 어리석다. 너희들은 항상 남을 나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나무라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도록 하여라. 그리하면 성현의 지위에 이르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이 구절은 <명심보감> 존심(存心) 편에도 실려 있다.지우책인명(至愚責人明)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총명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은 고치지 않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는 개 나무란다”는 우리말 속담과 의미가 비슷하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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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禽擇木 (양금택목)
▶한자풀이良: 좋을 양 禽: 새 금 擇: 가릴 택 木: 나무 목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뜻 - <춘추좌씨전>공자는 인의(仁義)에 기반한 도덕 정치를 주창했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치국의 도를 유세하기 위해 천하를 떠돌다 위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공자가 위나라의 실력자인 공문자를 찾아가 만났는데, 천하가 알아주는 유가(儒家)의 시조가 왔다며 반겨 맞으면서도 정작 도덕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하는 문제를 화제로 삼으면서 그에 대한 조언만 구할 뿐이었다. 실망한 공자가 답했다.“제가 제사에 대해서는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공자는 서둘러 자리를 물러 나와 제자들에게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제자들이 오자마자 서둘러 위나라를 떠나려는 이유를 묻자 공자가 말했다.“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고 했다(良禽擇木). 같은 이치로 현명한 신하는 훌륭한 군주를 섬겨야 하느니라.”위나라에는 공자가 표방하는 도덕적 이상 정치를 실현할 임금도, 벼슬아치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공문자가 황급히 달려와 결코 딴 뜻이 있어서 한 말이 아니라며 위나라에 더 머물러달라고 당부했다. 공자가 마음을 풀고 위나라에 좀 더 머무르려 할 즈음에 노나라에서 사람이 찾아와 귀국을 청하자 고향 생각이 간절해 노나라로 돌아갔다.양금택목(良禽擇木)은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는 뜻으로,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섬겨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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急難之朋 (급난지붕)
▶한자풀이急: 급할 급 難: 어지러울 난 之: 갈 지 朋: 벗 붕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힘이 되어주는 참된 친구를 이름 - <명심보감><명심보감(明心寶鑑)>은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 대제학 등을 지낸 노당(露堂) 추적(秋適, 1246~1317)이 편저한 어린이들의 인격 수양을 위한 한문 교양서다. 사서삼경을 비롯해 공자가어, 소학, 근사록, 성언잡언 등 유교 경전과 유학자들의 저술을 중심으로 여러 고전에서 금언과 명구를 발췌해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상하 2권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명심보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술과 밥 먹을 때 형님 동생은 천 명이나 있지만, 위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웃을 때는 여럿이 웃어도 울 때는 혼자 운다’는 말과 뜻이 오롯이 이어진다.여기서 유래한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힘이 되어주는 참된 친구를 이른다. 막역지우(莫逆之友)는 서로 거스름이 없는 친구라는 뜻으로, 허물없는 사이를 의미한다. 이는 <장자> 내편에 나오는 “네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는 구절에서 유래한다.정호승 시인은 “친구는 한 명이면 족하다. 두 명은 너무 많고 셋은 불가능하다”라고 했는데, 살면서 참된 친구 하나를 얻는 게 얼마나 귀하고 힘든 일인지를 시로 잘 표현하고 있다.지나치게 재물을 탐하면, 작은 이익을 마음이 자꾸 기웃대면, 생각이 고집으로 굳어지면 자칫 친구를 잃기 쉽다. <채근담>에는 “명아주 먹고 비름으로 배를 채우는 가난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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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容有常 (종용유상)
▶한자풀이從: 따를 종 容: 얼굴 용 有: 있을 유 常: 항상 상얼굴색과 행동에 변함이 없다군자의 몸가짐을 비유하는 말 -<예기(禮記)>從容有常공자는 “얼굴색을 꾸미고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은 인(仁)이 적다고 했다. 예로부터 이상적인 인간상을 군자(君子)라고 했는데, 이를 강조하고 몸소 실천하려고 애쓴 사람이 공자다. 군자는 최고의 인격과 선을 갖춘 사람이다. 군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감정의 변화를 얼굴에 쉽게 드러내면 안 된다. 공자는 얼굴은 곧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얼굴색을 지니는 게 군자의 미덕이라고 했다.떠들지 않고 소리 없이 얌전한 것을 두고 조용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조용은 한자 ‘종용(從容)’에서 온 것이다. 말 그대로 얼굴을 따른다는 뜻이다. 마음과 얼굴빛이 따로인 경우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사람이 된다. 얼굴로는 반기고 말로는 친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품고 있는 구밀복검(口蜜腹劍)도 표리부동과 뜻이 이어진다.‘유상(有常)’은 군자로서 변하지 않는 상도(常道)를 말한다. 작은 일로 처신이나 말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늘 중심이 있음을 이른다. 두 말을 합한 종용유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얼굴색이나 행동거지가 변하지 않으며, 자신의 소신대로 정도(正道)를 걷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예기(禮記)> 치의 편에서 종용유상을 통치자의 바른 자세라고 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의 행동거지는 항상 조용하면서 법도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용유상의 몸가짐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백성은 그의 덕에 감화되어 불변의 충성심을 보인다고 했다.<시경(詩經)>에도 도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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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落長松 (낙락장송)
▶한자풀이落: 떨어질 락 落: 떨어질 락 長: 길 장 松: 소나무 송가지가 길게 늘어진 키 큰 소나무지조와 절개가 굳은 사람을 이르는 말 - <세설신어(世說新語)>“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정하리라.”조선 시대 단종의 복위를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킨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이 사형장으로 갈 때 읊은 시조다.낙락(落落)은 길고 얇은 것이 끊이지 않고 많은 모양, 고고하고 고상함, 출중하고 뛰어남 등의 의미가 있다. 장송(長松), 즉 우뚝 솟은 소나무는 늘 푸른 모습을 띠고 있어 동양 문화에서 예부터 굳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날씨가 추워지니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까지 푸름을 알겠구나”라고 한 공자의 말도 소나무를 지조에 비유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도 제자 이상적이 귀양지인 제주도에까지 귀한 책을 가져다준 것에 감동해 그린 그림으로 전해진다.중국 명사들의 일화를 모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에 대해 “사람됨이 마치 우뚝하게 솟은 외로운 소나무가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우뚝하다(嵇叔夜之爲人也 巖巖孤松之獨立)”라고 하여 부패한 권력에 등을 돌리고 곧은 지조를 굽히지 않은 혜강을 소나무에 비유한 예가 있다.낙락(落落)과 장송(長松)이 합쳐진 낙락장송(落落長松)은 가지가 길게 늘어진 키 큰 소나무라는 뜻으로, 지조와 절개가 굳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뇌뢰낙락(磊磊落落)은 마음이 매우 활달해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음을 이르는 사자성어다. 뇌뢰는 큰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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毫釐千里 (호리천리)
▶한자풀이毫: 가는 털 호 釐: 다스릴 리 千: 일천 천 里: 거리 리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낳음시작의 중요함을 이르는 말 -<주역><주역(周易)>은 3경(經)의 하나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교 경전이다. 공자는 <주역>을 귀히 여겼으며, 송나라 주희가 역경(易經)이라고 명명했다. 상경, 하경 및 십익으로 구성되는데 뜻이 난해한 글로 꼽힌다.한대(漢代)의 학자 정현은 “역에는 세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간(易簡)이 첫째요, 변역(變易)이 둘째요, 불역(不易)이 셋째다”라 했고, 주희도 “교역(交易)·변역의 뜻이 있으므로 역이라 이른다”고 했다. 이간이란 하늘과 땅이 서로 영향을 미쳐 만물을 생성케 하는 이법(理法)은 실로 단순하다는 뜻이며, 변역이란 천지간의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불역은 이런 가운데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줄기가 있으니, 예컨대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해와 달이 갈마들어 밝히고 부모는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부모를 받들어 모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주역>은 기미나 징조를 중시한다. 누구라도 알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기미나 징조를 헤아려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화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와 이 같은 조그마한 것을 잃어버리면 그것이 나중에는 천리의 차이로 벌어진다(失之毫釐 差以千里)”는 구절이 이를 잘 보여준다. 호리(毫釐)는 잣대나 저울의 작은 눈금을 가리키는 단위로 아주 작은 것을 비유한다. 이를 줄인 호리천리(毫釐千里)는 시작의 작은 차이가 끝은 큰 차이로 벌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전한 시대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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照顧脚下 (조고각하)
▶한자풀이照: 비칠 조 顧: 돌아볼 고脚: 다리 각下: 아래하자기 발밑을 잘 살펴보라는 뜻으로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의미-<삼불야화(三佛夜話)>조고각하송나라 때 선사(禪師, 선종의 법리에 통달한 승려)였던 오조법연에게는 뛰어난 제자 셋이 있었다. ‘삼불(三佛)’로 불린 불감혜근(佛鑑慧懃), 불안청원(佛眼淸遠), 불과원오(佛果圓悟)가 세 제자다. 어느 날 오조법연 선사가 3명의 제자와 밤길을 걷고 있었는데, 들고 있던 등불이 갑자기 꺼졌다.선사가 제자들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불감혜근은 “채색 바람이 붉게 물든 노을에 춤춘다(彩風舞丹霄)”라고 답했고, 불안청원은 “쇠 뱀이 옛길을 건너가네(鐵蛇橫古路)”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불과원오는 “발밑을 보라(照顧脚下)”라고 대답했다. 불교 선종과 관련된 ‘삼불야화(三佛夜話)’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이다.조고(照顧)는 제대로 보는 것이나 반성하는 것을, 각하(脚下)는 발밑, 즉 자기 자신을 뜻한다. 따라서 조고각하(照顧脚下)는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이켜보라는 뜻이다. 가깝고 친한 사람일수록 보다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함을 이르기도 한다. 각하조고(脚下照顧)로도 쓴다. 불교에서는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부터 갖춰져 있는 모습)의 의미로,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구하라는 가르침으로 쓰인다.자기반성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는 많다. 남을 탓하지 않고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나간다는 반구저기(反求諸己), 남을 꾸짖기보다 자신을 돌이켜보고 반성한다는 내시반청(內視反聽), 문을 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