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閹然媚世 (엄연미세)
▶한자풀이
閹: 숨길 엄
然: 그럴 연
媚: 아첨할 미
世: 세상 세


음험하게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본심을 숨기고 남의 환심을 사는 것을 이름
-<맹자>

향원(鄕原)은 수령을 속이고 양민을 괴롭히던 촌락의 토호를 이른다. 이들은 겉으로는 선량한 척하면서 환곡이나 곡물을 중간에 가로채 삿된 이익을 챙겼다. 그러니 공자는 “내 문 앞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서운해하지 않는 자는 오직 향원일 것이다”라고 했다.

만장이 공자의 이 말뜻을 스승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음험하게 세상에 아첨하는 자(閹然媚於世也者)’가 향원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향원은 비난하려 해도 책잡을 것이 없으며 풍자하려 해도 비판할 것이 없다. 세상과 영합한 탓에 처신은 충직하고 신실하며 행실은 청렴결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들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 자신도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런 자들과는 함께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 공자께서는 향원을 덕을 해치는 적이라고 하신 것이다.”

<맹자> 진심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유래한 엄연미세(閹然媚世)는 음험하게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자기 본심을 숨기고 남의 환심을 사는 것을 이른다. 여론에 영합해 사람들로부터 덕이 있는 사람으로 칭송받지만, 속으로는 그 권세나 지위를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을 가리킨다.

신동열 작가/시인
'인문 고사성어' 저자
신동열 작가/시인 '인문 고사성어' 저자
개가 꼬리를 흔들면서 연민을 구걸한다는 뜻의 요미걸련(搖尾乞憐)’, 남에게 아첨하며 구차하게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아유구용(阿諛苟容), 윗사람이 하는 일에 건건이 비위를 맞춘다는 의미의 상분지도(嘗糞之徒)도 엄연미세와 뜻이 비슷하다. 윗사람의 수염에 붙은 먼지를 털어 준다는 뜻의 불수진(拂鬚塵)도 의미가 상통한다. 공자는 군자의 덕목으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꼽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관과 본바탕, 즉 내면이 일치해야 한다는 말이다. 몇 번은 누군가를 속이고 가면으로 위기를 넘길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거짓은 드러나고 가면은 벗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