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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66) 단테 '신곡'(神曲) ②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철학 : 연옥편연옥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천국으로의 구원을 기다리는 곳연옥은 이승과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속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칠흑같이 어둡기만 하던 지옥과 달리 연옥은 밤낮이 존재하고,여기서 벌을 받는 인간들의 죄 역시 교회에서 규정한 구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자는 아니다.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막연히 기다리는 곳으로 이해하면 좋겠다.언제까지고 구원받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처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희망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활기도 느낄 수 있다.지난주 「신곡」 '지옥편'에 이어 '연옥편'의 의미를 새겨보자.⊙원문읽기"내가 저쪽에 있을 때,마르티아는 무척이나 내 눈에 들었으니,그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줄 정도였지.지금 그녀는 사악한 강 저편에 있으니,내가 거기서 나올 때 만들어진 법칙때문에 지금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하지.그대가 말하듯 하늘의 여인이 그대를움직이고 이끈다면,애원할 필요 없소.그녀 이름으로 청하는 것으로 충분하오.그러니 이제 가서 저자에게 순수한갈대를 둘러 주고,그의 얼굴을 씻어모든 더러움을 없애 주도록 하시오.조금이라도 안개에 가린 눈으로는천국의 천사들 중 첫째 천사 앞에절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오."▶해설=원문은 연옥편 제1곡이다.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연옥을 여행하기 위해 카토의 허락을 구하자 카토가 대답하는 구절의 일부분이다.카토는 케사르에 대항하다 자결한 사람인데 연옥의 문지기로 등장하고 있다.원래 자살하는 사람은 지옥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단테가 자살자인 카토를 연옥에 배치한 것은 그를 '자유의 수호자'로 평가했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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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단테 ‘신곡’(神曲)

    근대의 시작을 알리느 위대한 목소리 기독교적 관점으로 바라본 인간의 운명 셰익스피어,괴테와 함께 유럽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단테의 「신곡」은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불후의 명작이다.'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는 괴테의 극찬만으로도 이 작품의 명성을 알 수 있지 않을까?신 중심의 중세 문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해방과 자각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의 문화를 탄생시킨 '르네상스'의 시작이 단테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르네상스는 그리스·로마의 고전작품을 연구하면서 성장하였다.수도원이나 각지에서 숨겨져 있던 고전들을 찾아내 신과 관계없이 인간적 가치를 중심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단테는 「신곡」에서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타내었고,이는 이후의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신곡」을 간단히 소개하자면,단테로 추정할 수 있는 한 살아 있는 인간의 저승여행기이다.일주일 동안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한 시이다.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법한 죽음 이후의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간단한 스토리 라인이지만 등장하는 인물만도 수백 명이 넘으며,그리스·로마신화의 신과 인간,괴물이 등장하고,실존인물에서 전설 속의 인물,다루고 있는 사건들까지 워낙 폭넓은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그래도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어 본 독자라면,그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면,또한 서양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곡」을 읽으면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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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노자 ‘도덕경(道德經)’

    道를 道라 말하면 道가 아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유명한 경구로 시작한다.'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뭔가 그럴 듯한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철학,특히 동양철학은 이해하기 어렵다.철학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러한 이해의 어려움 때문이다.그러나 사실 '도가도비상도'가 그렇게 심오하거나 난해한 의미는 아니다.◎원문읽기: 도덕경 1장 '명(名)'도(道)를 도라고 이름지어 부른다면,이름지어진 그 도는 실재의 도는 아니다.(사물에 대해) 어떤 이름이든 이름붙일 수는 있지만 언제나 그 이름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이름이 없다면 천지는 언제나 처음 시작된 때와 마찬가지겠지만 이름을 가지면서부터 만물은 분별과 계통를 갖게 된다.(이하 생략)▶해설=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다시 말하면 도란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또는 도는 말하는 순간 더 이상 도가 아니게 된다는 알쏭달쏭한 해설도 있다.하지만 여기서 노자의 주요 의도는 도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다.노자는 도에 대해서 말하려기보다는 언어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다.이 장의 제목이 '명(名)'인 것도 이 때문이다.노자는 도의 대립 개념으로 명을 들고 있다.명이란 바로 이름 또는 언어이다.여기서 도가 과연 무엇인가의 의문과 함께,'도와 언어가 왜 대립되는가?'의 의문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이 의문은 두 번째 구절과 세 번째 구절을 읽으면 확실히 해소된다.이름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천지,즉 우주와 세계 만물은 그것이 어떻게 이름붙여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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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스티븐 제이 굴드 '풀하우스'

    왜 미국 프로야구에서 4할대 타자가 사라졌는가? "맛의 본고장인 전라도의 김치가 건강을 생각해 싱겁게 먹으려는 웰빙 추세 때문에 서울 김치에 밀렸다."(중앙일보 2007년 10월8일자)김치의 절대 판매량은 늘었지만 전라도 김치에 비해 중부권의 김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덜 짠 김치로 젓가락이 가고 있다는 말이다.기사는 이 현상을 웰빙으로 해석했다.통계는 복잡한 세상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하지만 통계 수치를 해석하는 작업은 편견과 무지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통계를 다루는 기사를 볼 때는 통계 수치 자체와 그 수치에 대한 해석을 구별해서 읽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논술시험에서 통계나 도표가 제시되었을 때 일반적인 방식(직관적)으로만 읽으면 출제자가 놓은 덫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김치를 사먹는 사람들은 고향을 멀리 두고 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아무래도 근거지가 수도권이라면 친지들에게 김치를 조달받기도 더 쉬울 것이다.김치 판매의 절대량이 늘어나면서 중부권 스타일의 김치 판매량이 더 빠르게 증가했다면 시간이 갈수록 중부권에 근거지를 둔 이들도 김치를 담가 먹지 않고 사먹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김치가 짤 수 있는 데 대해 어떤 한계가 있다면? 사람들이 점점 싱거운 김치를 찾는다기보다는 더 짠 김치는 가능하지 않기에 새로 판매되는 김치는 확률적으로 전 보다 덜 짠 김치라는 말이다.1차원적인 선을 생각해 보자.술집은 오른쪽 끝에 있다.그리고 이 선분의 왼쪽 끝에는 수렁이 있다.술집에서 나온 술주정뱅이는 다시 술집에 들어갈 수도 없고 제자리에 누울 수도 없다.어딘가로 계속 움직인다면 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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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미국은 원폭 투하에 신중했어야 했다" 1927년 26세의 하이젠베르크(1901∼1976)는 “전자의 운동량은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불확정한 것이며,운동량과 위치의 곱은 일정한 상수(h/2)보다 작을 수 없다”는 그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를 제창하여 고전적인 결정론적 인과율과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 가능성 등을 신봉하던 당시 과학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아인슈타인과 같은 대석학마저도 양자역학이 지닌 비결정론적 성격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길 거부하며,보어와 양자역학의 유효성 문제를 두고 죽을 때까지 논쟁을 벌일 정도로 하이젠베르크의 새로운 이론은 획기적인 것이었다.이번에 소개할 고전은 이 하이젠베르크가 20세기 초반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태동의 한 복판에 서서 경험한 자신의 과학적 삶의 여정을 대화와 토론의 형식으로 풀어 쓴 자전적 글인 <부분과 전체>이다.<부분과 전체>는 하이젠베르크가 19세 때 친구들과 도보여행에서 나누었던 대화에서 시작해서 약 50년간 현대 과학을 연구하면서 그가 과학적이고 사상적 교류를 나누었던 여러 인물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2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좀머펠트,볼프강 파울리,보어,페르미,디랙과 같은 시대를 선도하던 물리학자들과의 대화는 양자역학이 단순히 하이젠베르크라는 한 천재의 결과물이 아니라 여러 학자들의 공동 작업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준다.이처럼 학문적 성취와 과학의 발전은 전 인류의 축적적 지식과 경험에 근거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믿음이 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다.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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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다‘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요즘 누구나가 사용하는 일상용어가 되었다.너무나 자주 사용되다보니 오히려 누가 ‘패러다임’을 들먹이면 진부해 보이기까지 한다.하지만 정작 ‘패러다임’의 의미에 대해 얘기해 보라하면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그리고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고작 50년쯤 전에 탄생했으며,더구나 고도의 전문 학술용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누구나 놀라움과 함께 ‘패러다임’의 실질적 의미에 대해 반추해 보게 될 것이다.‘패러다임’은 1962년 초판(1970년 재판)이 발행된 토마스 쿤(1922∼1996)의 세기적 명작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다.이 저서는 20세기 후반에 출간된 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학술서적으로,출간되자마자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세계적으로 100만부 이상 팔리고,20개 이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쿤은 처음 하버드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과학사로 관심을 돌렸고,이런 연구를 통해 과학의 본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1960년대 초에는 과학이 자연에 대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을 다루고 있으며 그 지식의 발전은 점진적이고 누적적 진보의 역사라는 과학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이 득세하고 있었지만,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이런 해석이 역사적 증거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쿤은 역사적 사례들과 더 잘 부합하는 과학이론을 제시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관을 전개하였는데,그 과학관은 과학 진보의 혁명적 성격에 초점을 맞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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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하)

    윌슨이 꿈꾼 지식의 대통합인 '통섭'(cosilience)은 단순한 '통일'(unification)과는 다르다.'통일'은 '남북통일'이라는 예에서처럼 여러 병렬적 존재들을 단순히 하나로 종합하는 것을 의미한다.남과 북이 통일을 이룰 때,남과 북 사이에 위계질서가 필수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하지만 윌슨의 통섭은 여러 학문들 사이에는 위계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예를 들어 사회과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특히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또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는 뇌에 대한 이해,더 나아가 생물학에 대한 이해에 토대를 둘 것이다.윌슨은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의 제 학문들이 생물의 계통수처럼 위계적 체계에 의해 하나로 파악될 수 있다고 믿고 있고,이렇게 체계적으로 학문을 파악하는 작업이 곧 '통섭'이다.지난 주에는 윌슨이 구상하는 '통섭'의 일반적 의미를 살펴보았고,이번 주에는 윌슨이 시도하고 있는 '통섭'의 구체적 내용을 살짝 엿볼 것이다.윌슨은 마음,문화,인간의 본성,사회과학,예술,윤리와 종교 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 현대 과학의 성과,특히 생물학적 연구의 성과를 토대로 사회생물학의 거장으로서 안목과 식견이 느껴지는 통합적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원문읽기문화는 공동의 마음에 의해 창조되지만 이때 개별 마음은 유전적으로 조성된 인간 두뇌의 산물이다.따라서 유전자와 문화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하지만 이 연결은 유동적이다.얼마나 그런지는 불명확하지만 말이다.또한 이 연결은 편향되어 있다.즉 유전자는 인지 발달의 신경회로와 규칙적인 후성규칙(後成規則,epigenetic rules)을 만들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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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상)

    지식은 과연 본유의 통일성을 지니는가?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사회적 행동이 진화 과정의 결과로서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1929~)은 20여권이 넘는 과학 명저를 저술한 과학저술가로 명성이 높으며,'인간 본성에 대하여'와 '개미'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그는 현재 하버드대 생물학과 석좌교수로 있는데,1975년 대표작 '사회생물학'을 발표한 이후 학문적 관심 영역을 점차 확대해 이제는 자연과학,사회학 그리고 인문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사상체계를 구축,학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현대를 대표하는 과학 지성으로 손꼽힌다.또한 그는 과학과 자연 보존에서 쌓은 업적으로 수많은 상을 수상,학문이 현실에 어떠한 관심과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도 잘 보여주었다.'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은 이러한 윌슨의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지식이 본유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를 제기하며,이런 '지식의 통일성'을 '통섭'(consilience)이라는 잘 쓰이지 않는 개념으로 담아낸다.'통섭'의 원어 'consilience'를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함께 도약함'(con+salire)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여러분과 학문들이 독자적 영역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그것들이 전체적으로는 대조화를 이루는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윌슨은 지식의 계속적인 파편화와 그것으로 인한 철학의 혼란은 실제 세계의 반영이라기보다는 학자들이 만든 인공물이라고 본다.그는 지식의 통일성이 철학의 중심 논제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그것은 그가 지식의 통일성 획득이 인간의 본성(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