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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上)

    사회 비판 통해 구체적으로 설계된 이상향 제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 흔히들 이 문구가 근대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렇다면 인류의 전 역사를 만든 문구는 무엇일까? 정리해 보건대 '나는 불만족스럽다. 나는 욕망한다.' 이 문장으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인간은 꿈을 호흡하며 살아간다.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의 불완전성을 깨닫고 그 불만 속에서 이상향을 욕망한다는 의미이다.기존 현실에서 만족을 찾지 못할 경우 우리의 상상력은 욕망과 희망이 날줄과 씨줄로 팽팽히 쳐진 세계를 창조해 낸다.신화,종교적 약속,환상 동화,가공 여행담 등은 현실에서의 결핍이 표출된 결과이다.현실의 불만은 그 모든 꿈의 모태가 된다.그런데 이상적 국가라는 에레원(Erehwon) 나라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눈치 빠른 이라면 Erehwon이라는 이름이 Nowhere를 뒤집은 단어임을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이상향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시금털털한 깨달음에서 나온 재치 있는 작명이다.우리는 어떠한 결핍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이상향에 가 닿고자 꿈꾸지만,완벽한 이상향은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다만 우리는 그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며 그 끊임 없는 경주 속에서 우리들의 역사가 태어난다.완전성에 대한 추구는 우리를 여기 이곳까지 치달리게 한 힘이다.오늘 소개하는 고전은 토머스 모어가 그린 이상향인 '유토피아'이다.출간 이후 500년 가까이 흐르는 세월 동안 가공의 나라 '유토피아'는 무수한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며 그 뒤를 잇는 모든 유토피아 저술의 모태가 되었다.유토피아(Utopia)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즉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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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숫타니파타(Suttanipata, 경전을 모은 것)

    평안한 삶으로 인도하는 주옥같은 가르침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저마다 위로가 되는 것들이 따로 있겠지만 경전의 좋은 구절도 그 중의 하나이다.수타니파타는 불교의 수많은 경전들 중에서 가장 최초의 경전에 속하며 팔리어(남방불교 경전에 쓰이는 종교언어)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는 성전(聖典)이다.수타니파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경이다.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읽다보면 주옥 같은 구절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그리고 부처님의 진면목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이를테면 자신의 고민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 있는 스승들을 찾아 헤매다,결국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한 이들이,대단히 과격한 태도로 부처님께 질문한다."제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만일 당신이 제게 대답을 못한다면,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당신의 심장을 찢은 뒤,두 다리를 붙잡아 갠지스 강 건너로 내던지겠소." 부처님께서는 뭐라 답하셨을까?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수타니파타의 수많은 명문들 중에서 우리의 팍팍한 삶에 윤기를 주고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으며 평안한 삶으로 인도해줄 '자비경'과 '행복경'을 소개한다.1. 자비경(Metta Sutta)⊙ 원문 읽기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화로운 경지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유능하고 정직하고,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만족할 줄 알고,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게 하며,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지혜로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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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르네 데카르트 '성찰'

    개인 중심 세계관 선언…중세 神중심 세계관에 중지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데카르트가 '방법서설'과 '철학의 원리'에서 언급한 유명한 이 구절은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도래를 포고하는 철학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사유의 주체로서의 '나'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신 중심적인 중세적 세계관에서 개인 중심적인 근대적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며,'사유'로 대표되는 합리적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중세적 신앙성과 결별하는 근대적 합리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하지만 '성찰'의 표준 판본인 1642년 라틴어 재판본의 원제가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여기에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상이성이 증명됨'이며 '제3성찰'에서 신의 존재를 논하고 있는 점,그리고 신의 존재가 물체는 현존하며 사유와 상이하다는 논증의 전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적인 신의 그림자가 아직까지도 데카르트의 머리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자연과학에 대한 새로운 신념 때문에 교황청과 갈등을 빚었던 갈릴레오의 사망 연도,'성찰'의 재판본 출판 연도,그리고 근대 자연과학을 완성한 뉴튼의 출생 연도가 모두 1642년이라는 것 역시 중세와 근대에 한 쪽 발을 각각 걸치고 있으면서 중세와 근대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노정하고 있는 데카르트의 위치를 말해주는 듯하다.데카르트의 탁월함이 빛나는 곳,그리고 인류가 데카르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런 중세와 근대의 긴장에 대처한 그의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중세적 권위를 지키려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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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에드워드 윌슨 '생명의 미래'

    자연은 생명과 이익을 동시에 낳는 어머니다 지구상에 괴물이 나타났다.이 괴물은 다른 생물들의 보금자리를 무참하게 파괴하고 생명을 도륙한다.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괴물의 광포한 탐욕성은 급기야는 전 지구적 비상사태를 초래해 대규모 멸종이 일어나고 생태계가 붕괴된다.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이 괴물의 어리석음 때문에 이 괴물마저도 이제 종말의 어두운 운명을 바라보고 있다.그리고 괴물의 이름은 바로 우리,인간이다.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틀림없이 끔찍한 괴물로 비쳐질 우리 인간이 자업자득의 결과 지금 마주하고 있는 위험한 시대를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병목(bottleneck)의 세기'라고 이름 붙였다.'병목의 세기'는 인류가 우리 자신과 모든 지구 생명을 절멸시킬 수 있는 '병목'으로 몰아넣은 치명적 시대이다.'인간 본성에 대하여''개미''통섭' 등 유명한 저술에서 깊이 있는 혜안을 보여준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미래'에서 인류의 그간 행보를 비판하며 우리가 감당하여야 하는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다.어쩌면 우리는 윌슨의 말대로 22세기의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장을 남겨야 할지도 모른다."여기저기 사용하지 않고 남겨 놓은 얼마 안되는 야생 환경과 함께,하와이의 합성 정글, 그리고 한때는 삼림으로 울창했던 아마존 잡목 지대를 우리는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남깁니다.당신들이 할 일은 유전공학으로 새로운 종류의 동식물을 창조하고 이들을 독립적인 인공 생태계에 적응시키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임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부디 우리의 사과와 함께, 과거에 존재했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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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물유전학에 물음을 던진 물리학자의 모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노동 분업의 원리는 학문 세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한 분야의 전문가는 그의 학문 영역에만 집중하고,다른 전문가의 노작(勞作)은 이견 없이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일반 원칙이다.심지어 프랜시스 베이컨은 체계적인 분업을 통해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까지 했다.베이컨의 주장을 무시하고 싶더라도,근대 이후로 심화된 학문의 복잡성과 전문성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형인 전인적 인간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수백년 후인 지금에 태어났더라도 다재다능한 천재였을지 살짝 의문이 든다.현대에는 협소한 한 분야의 전문가로 발돋움하기도 힘겨운 실정이다.그런데 조지프 테인터가 '문명의 붕괴'에서 정리한 것처럼,지금까지 등장했던 무수한 문명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 '복잡성과 한계수익 체감의 원리'라면,현대 사회의 복잡성은 뭔가 답답한 전망을 가지게끔 한다.그러나 이 와중에 다음과 같은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이 있다."과학자는 한 분야에 대해 완벽하고 철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고,따라서 자신이 정통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그것은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여겨진다.나는 이 책을 위해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귀한 지위(노블레스)를 기꺼이 포기하고 그에 따른 의무(오블리주)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나의 변론은 이러하다.우리는 통일적이고 포괄적인 앎을 향한 강한 열망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다.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의 명칭,유니버시티(university)라는 말 자체가 고대로부터 수많은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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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사회과학의 명저를 찾아서 ⑪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 사회'

    갈등하는 현대인의 삶…희망의 처방전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불안하다.전근대적인 신분적 속박도 없고,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모를 상실감과 몰락의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왜 그럴까?현대 도덕철학 및 정치철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찰스 테일러(캐나다 맥길 대학 교수)는 '불안한 현대 사회(The Malaise of Modernity)'라는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는 저서에서 근대성의 병폐에서 기인하는 현대사회의 불안 원인을 세 가지로 진단하고,이런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처음으로 제시되는 불안 원인은 개인주의의 만연과 그에 의한 삶의 의미 상실이다.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불안해하고 방황하게 마련이다.전근대적인 전통적 질서들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었지만,개개인들의 개별적 삶을 초월한 의미를 세계와 사회적 행위에 부여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현대의 개인주의는 모든 관심을 자기에게만 집중하고 타인의 삶이나 사회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진다.그 결과 개인을 초월한 삶의 의미는 실종되고 개인은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두 번째는 삶의 목표들이 도구적 이성의 지배에 의해 소멸하는 사태다.도구적 이성이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찾을 때 의지하게 되는 일종의 합리성이다.현대는 도구적 이성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를 확대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까지도 지배하게 되리라는 불안감이 폭넓게 깔려 있다.이런 불안감은 인간 역시도 효용,즉 비용-소득 분석의 맥락에 의해 재단되리라는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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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사회과학의 명저를 찾아서 ⑩ 존 포스트게이트 '극단의 생명'

    미생물이 지구의 생명을 지배한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학자들에게도 너무 삭막한 일인 것 같다.그래서 과학자들은 다른 행성에 외계인이 살고 있을 가능성을 점치기 위한 확률 계산을 했다.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확률 계산에서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제반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행성에는 아마도 외계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다.'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라는 말처럼 '외계인'을 단순히 외계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저지른 셈이다.모든 생명체가 인간과 동일한 조건에서만 생존하는 것은 아니다.심지어는 외계 행성이 아니라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생명체들의 삶의 방식조차도 우리 인간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기이하다.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생명의 경이로운 다양성과 이질성에 대하여 사람들은 점차 눈을 떠가고 있는데,그 '개안(開眼)'의 과정에 큰 역할을 하는 책이 오늘 소개하는 '극단의 생명;The Outer Reaches of Life'이다.이 책은 생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그 다양성의 극한에 서 있는 존재는 바로 미생물들이라는 사실,그리고 미생물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극단의 생명'을 저술한 존 포스트게이트(John Postgate)는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자 서섹스 대학교 미생물학 명예교수로서 미생물학 분야의 권위자다.포스트게이트 교수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화학과 화학미생물학 학위를 받은 이후,영국 국립연구소와 서섹스 대학교에서 많은 연구를 줄곧 수행해 오고 있는데 학술 서적만이 아닌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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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사회과학의 명저를 찾아서 ⑨ 제인 구달 '인간의 그늘'

    우리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인간의 진실은?서구인들은 근·현대로 오면서 강력한 어퍼컷을 연이어 맞는다.신이 선택한 유아독존의 생명체,다시 말하면 신의 모형이던 지고지엄한 인간의 위치는 한없이 추락한다.지동설은 우주의 중심에서 인간을 끌어내려 신의 은총을 의심하게 만들더니,진화설은 신이 세계를 모두 창조하고 나서 이 세상의 관리자로서 신 자신을 본떠 만들었다는 인간의 특수성을 뿌리째 뒤흔든다.당황스러운 발견 앞에서 세계의 변방으로 몰려난 인간들은 이제 스스로 신에 가 닿고자 프로메테우스가 되려는 시도를 한다.하지만 스스로를 고양시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도전에 에워싸여 고립된 인간(서구인과 서구화된 비서구인들)의 위치는 절망감의 색채만 더욱 짙게 만들 뿐이었다.그런데 이렇듯 병약한 인간의 존엄성을 현실 속 자연에서 다시 찾자는 건강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오늘 소개하려는 제인 구달(Jane Goodall) 박사다.1934년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 박사는 1960년 침팬지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로 건너간다.탄자니아 곰비 국립공원에서 야생 침팬지를 자연 서식지에서 연구한 독보적인 업적은 그녀를 동물행동학의 태두로 세움과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바꾸었다.이전에는 비좁은 동물원에 격리시켜 구경만 했던 침팬지를 구달 박사는 자연 생태 안에서 관찰하며 인간과 침팬지가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지,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떻게 다른지를 살폈다.수많은 저작을 남기며 활발한 연구활동과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구달 박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성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의 사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