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황재석은 오해를 받아 사회봉사…한 노인의 손녀 보담을 만나 변해가는데
한국 청소년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문학은 또 다른 역사책’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면 소설은 작가의 눈으로 재해석한 삶이다. 데카르트는 “양서를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앞세대 소설가들이 살면서 겪고 상상한 일들이 후세대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들은 다음 세대에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까. 힘겨운 입시준비, 연예인을 추종하며 외모를 가꾸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 왕따와 폭력이 드리운 어두운 그늘쯤이 될 듯하다.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았다고 평가받는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가 20만부를 돌파했다. 고정욱 작가가 2009년 발표한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가 사랑받으면서 <까칠한 재석이가 돌아왔다>(2012년) <까칠한 재석이가 열받았다>(2014) <까칠한 재석이가 달라졌다>(2015년)까지 모두 4권이 발간됐다. 고정욱 작가는 시리즈를 10권까지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문화일보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소설가가 된 고 작가는 성인소설을 쓰다가 동화작가로 변신,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등 200권이 넘는 동화를 발간했다. 400만부에 이르는 판매량을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전국 학교와 도서관의 ‘초청 1순위 인기 강사’다. 고 작가는 현장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꿈도 없이 현실에 무기력하게 떠밀려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청소년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의 삶과 고민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주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다. ‘불우한 환경, 까칠한 성격, 폭력서클 멤버’라는 불리한 3단 콤보 속의 열일곱 살 황재석. 어느 날 오해를 받아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노인복지관에 가게 된다. 장애인과 노인들을 도우며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한 노인의 손녀인 보담을 좋아하면서 드디어 까칠한 재석이가 달라진다. 민성, 보담, 향금과 우정을 다지며 나아가는 발걸음이 청소년 소설답게 경쾌하지만 요즘 세태처럼 아슬아슬하다.
하나의 주제를 설정해 해결책 제시
<까칠한 재석이가 돌아왔다>에서는 학교로 돌아온 재석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영향으로 문학과 독서, 그리고 글짓기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이 펼쳐진다. 그런데 향금과 보담이 스타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곤경에 처하게 되자, 재석이가 해결사로 나서면서 다시 까칠해진다. 그 과정에서 연예인을 무작정 동경하는 세태를 통해 교훈을 준다. <까칠한 재석이가 열받았다>에서는 고등학생 몸으로 임신한 은지를 도우면서 청소년의 성문화와 불합리한 제도, 불편한 시선들에 대해 다룬다.
제4편 <까칠한 재석이가 달라졌다>에서 재석이는 노트북을 구입해 소설을 더 잘 쓰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습작과 독서에 열중한다.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웹툰 작가인 학교 선배를 찾아가서 창작에 대한 조언을 듣는 등 열심히 사는 재석이에게 또다시 사건이 터진다. 일방적으로 재석이를 좋아하는 채린이가 등장한 것이다. 그로 인해 보담이와 서먹해진 재석이가 채린이를 멀리하지만, 얼짱 채린이가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곤경에 처하게 되자 재석이 또 나선다. 외모지상주의에 물든 요즘 학생들의 모습, SNS로 외모가 뛰어난 친구들에게 악플을 달고 그로 인해 좌절하는 모습 등도 그려진다.
한 권의 책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문제점과 해결책을 내놓는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는 다분히 교훈적이다. 하지만 무작정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기보다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다소 거칠지만 톡톡 튀는 언어와 딱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펼쳐진다. 폭력을 일삼던 주인공이 변화하는 모습과 따뜻한 친구들의 모습이 설득력 있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했다.
청소년 교양에도 신경쓰는 소설
재석이가 독서하면서 책 내용을 소개하고 좋은 문구를 옮기는 과정, 소설을 잘 쓰기 위해 선생님과 선배의 조언을 듣는 일, 웹툰 작가인 선배를 만나서 듣는 만화에 대한 지식 등등 학습적인 부분들도 많이 포함돼 있다. 단순히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를 이야기로만 끝내지 않고 이 시대 청소년들의 교양을 높여주고 싶다는 작가의 열의가 엿보인다.
1급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고정욱 작가와 달리 까칠한 재석이는 소설 속에서 휙휙 날아다닌다. 각종 기술까지 구사하는 싸움 장면이 아주 구체적이어서 작가가 예전에 주먹깨나 쓴 거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세태를 잘 묘사한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는 연극으로 꾸며져 갈채를 받았다.
강연을 하러 가면 재석이 다음 편이 언제 나오는지 묻는 학생들 때문에 행복하다는 고 작가가 앞으로 재석이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궁금하다. 틈틈이 습작하면서 독서도 열심히 하는 재석이는 아마도 소설가가 될 듯싶다. 아름다운 청소년 시절을 꿈도 없이 살아가는 중이라면 많은 유혹 속에서도 제 갈 길을 닦는 재석이를 만나보라.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될 것이다.
이근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