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5) 알타미라 동굴
지난 회에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도 편견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879년 스페인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마르셀리노 데 사우투올라(Marcelino de Sautuola)가 어린 딸 마리아와 함께 석기시대 사람들이 그린 ‘소’를 발견합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야기입니다.마르셀리노의 딸 마리아가 ‘소’ 발견
사실 이 그림을 먼저 발견한 것은 마리아입니다. 당시 48세였던 마르셀리노는 동굴 입구 바로 안쪽에서만 작업했습니다. 여덟 살이던 딸 마리아는 아버지의 작업을 돕기 위해 횃불을 들고 있었는데, 지루한 마음에 동굴 안쪽으로 더 들어가 장난을 치며 머리 위쪽으로 횃불을 흔들었습니다. 아마 ‘귀신 그림자놀이’를 한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때 동굴 천장에서 한 무리의 들소가 질주하는 그림이 마리아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르셀리노는 고고학자인 친구 빌라노바 마드리드대 교수에게 편지를 썼고, 이 발견은 스페인과 유럽의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당시 국왕이던 알폰소 12세도 동굴을 직접 방문하고 마르셀리노의 성에 머물 정도였습니다.
“구석기인 솜씨론 너무 정교”…위작 소동
문제가 벌어진 것은 그다음입니다. 1880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선사시대 학술대회에서 전문가들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가짜라고 주장했습니다.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채색이 생생한 데다 일견 입체적으로 보이는 구도가 도저히 구석기 사람들의 솜씨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마르셀리노에게 숙식을 제공받던 프랑스인 농아 화가가 그린 위작일 것’이라는 것이 당시 학계의 정설이었습니다. 마르셀리노가 이 화가에게 그림 스케치를 부탁한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비가 무겁고 거대했습니다. 현상과 인화 과정도 복잡했지만, 휴대용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사진찍기는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유럽 귀족이 예루살렘이나 이집트로 성지순례를 떠날 때 화가를 동반했습니다. 현지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기록화로 남기는 것이지요. 사진기를 들고 가는 것보다 이 편이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르셀리노는 공개적으로 비웃음을 당했고 사기죄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빌라노바 교수조차 전문가들 편에 섰습니다. 1882년, 당시 프랑스령이던 알제(현재 알제리의 수도. 로마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알제 인근의 고대도시 팀가드는 로마 군단 주둔지의 도시계획을 생생하게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입니다)에서 다음 학술대회가 열립니다. 마르셀리노는 다시 한 번 논문을 발표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변하지 않습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1902년에야 ‘진품’으로 인정받습니다. 선사시대의 다른 그림들이 잇따라 발굴되고 지질학적 연구가 진행된 덕분입니다. 전문가들은 그제야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했는데, 마르셀리노는 안타깝게도 1888년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화병이었을까요. 1882년 이후 자기 성에 칩거한 채 발굴을 포함한 일체의 외부활동을 중단했으니까요.
문제는 구석기시대에 대해 품고 있던 전문가들의 편견이었습니다. ‘아마존 밀림이나 호주 오지의 원시부족보다 구석기인의 삶은 훨씬 더 뒤처졌을 것이다. 기껏해야 단순한 도구밖에 만들지 못했을 사람들이 이토록 완성도 높은 걸작을 그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지요. 편견이 진실을 보는 눈을 가린 것입니다.
gamta와 gamla 착각…낙타가 된 밧줄
때로는 전문가들의 실수가 그대로 굳어져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나오는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니라(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a rich man to enter the kingdom of God.)’는 구절입니다.
원문은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사용한 언어인 아람어(갈릴리지방에서 쓰인 그리스어가 섞인 시리아 방언)로는 밧줄(gamta)과 낙타(gamla)의 철자가 비슷해 최초의 역자들이 착각했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실’과 ‘밧줄’을 비교한 것이 더 설득력 있고, 문학적으로는 ‘낙타’를 가지고 온 것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을 저는 개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상갓집 개(喪家之犬)’도 대표적인 오역입니다. ‘잘 곳도 먹을 것도 오갈 곳도 없는 처량한 신세’라는 뜻으로 쓰이는 구절인데, 집에서 장례를 치르면 갈 곳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은 오히려 많아지지 않을까요? 여기서 상(喪)은 ‘죽을 상’이 아니라 ‘잃을 상’입니다. ‘상실하다’의 바로 그 상이지요. ‘상가(喪家)’는 ‘장례를 치르는 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글자 그대로 ‘집 잃은 개’라고 단순하게 번역해야 합니다. 어쩌면 한자를 대할 때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편견이 전문가들의 지식을 가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문열의 ‘소’…아빠 소가 있어요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관련해서는 이문열 선생의 단편 <소>의 일독을 권합니다. 벽화 제작 시기를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바꾸었고, 본래는 사냥을 위한 주술적 의미였던 그림의 제작 의도를 ‘걸작을 향한 예술가들의 열정’으로 바꾸었습니다만 벽화를 그린, 이름을 알래야 알 길이 없는 누군가에 대한 문학적 찬미로는 세계적으로 빼어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마무리 문장은 역사적 현실에서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환희와 놀라움에 가득 찬 마리아의 외침, “아빠, 여기 소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