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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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대혁명 50주년…인간성 유린한 '암흑의 역사'
올해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50주년(시작점 기준)을 맞는 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겉으론 ‘문화’라는 명분을 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장기 집권을 위해 벌인 ‘정치 자작극’ 성격이 짙다. 사회주의 혁명이 1960년대 들어 성과를 내지 못하자 마오쩌둥이 자신의 떨어진 위상을 높이기 위해 ‘문화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적들을 제거한 운동이 문화대혁명이다.문화대혁명은 낡은 사상, 낡은 제도, 낡은 문화를 척결하자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상을 뿌리뽑는다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적 사상을 가진 인사들을 제거한 것이 본질이다.사회주의 사상가 마오쩌둥을 따르는 세력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젊은 학생들로 홍위병을 구성해 각종 문화재와 예술품을 파괴하고 반사회주의혁명 인사로 지목된 사람들을 자아비판대에 올렸다. 심지어 일부 지식인은 홍위병인 아들의 신고로 당에 붙들려가 자아비판대에 서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조직적 저항이 거세지고 홍위병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자 한때 중국은 무정부 상태가 돼 인민해방군이 개입하기도 했다. 그 결과 수백만명의 관리와 지식인, 학자가 목숨을 잃고 문화재와 예술품이 파괴됐다.문화대혁명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으로 막을 내린다. 마오쩌둥 사망 후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과 달리 실용주의 노선을 펼쳤다. 그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주장했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도록 하면 된다는 게 그의 통치철학이었다. 덩샤오핑은 농민들이 일부 경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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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자본주의 싹…후퇴한 중국의 역사
◎ 문화 대혁명 진행 과정문화대혁명은 한마디로 중국 역사를 후퇴시킨 ‘극좌 사회주의 운동’이다. 문화대혁명으로 움트려던 자본주의 싹이 짓밟히고, 인권은 무참히 유린됐다. 중국의 전통적인 유교문화가 붕괴되고,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다. 문화대혁명은 권력 투쟁과 개인숭배가 낳은 중국 역사의 아픈 과거다. 문화대혁명의 전개과정을 요약한다.실패로 끝난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의 도화선은 마오쩌둥 주도로 추진된 이른바 ‘대약진운동’과 연결된다. 대약진운동은 1958년부터 1960년 초 사이에 일어난 노동력 집중화를 통한 경제성장정책이다. 마오쩌둥은 ‘생산의 새로운 고조를 일으키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철강 등 노동력 집중산업 부흥을 독려하는 경제부흥운동을 추진한다. 내부적으로는 ‘7년 내 영국을, 8년 혹은 10년 내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공업생산 지표를 크게 높였다. 이를 위해 농촌에서 과도한 인력을 강제로 착출해 도시로 유입시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동력을 잃은 농촌의 농업생산력이 급속히 저하되고,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도시는 생필품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다.연이은 자연재해로 흉작이 겹치고, 옛 소련과의 관계까지 악화되면서 수천만명의 아사자가 생겼다. 결국 기술 개발을 병행하지 않고 노동력 집중만으로 무리하게 추진한 중화학공업 진흥은 처음의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쳤고, 대약진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3년여에 걸친 대약진운동은 중국을 발전시키기보다는 농·경공업의 퇴보와 중화학공업의 과다발전이라는 기형적 결과를 낳으며 중국의 경제·문화적 수준을 20년 이상 퇴보시켰다는 비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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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룡치수'…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통치하는 중국
◎ 중국의 집단지도 체제문화대혁명(문혁)은 중국의 공산주의 지도자 마오쩌둥이 장기 집권을 위해 벌인 일종의 ‘자작극’이라고 볼 수 있다. 문혁 10년 동안 중국 인민의 삶은 ‘무산계급(노동자와 농민)’이 최우선이라는 공산당 강령(최고가치)과는 정반대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혁의 선봉부대인 홍위병(마오를 지키는 붉은 병사라는 뜻)들은 부모에게까지 ‘반동’이라며 폭력을 가했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혁은 중국의 발전을 수십년간 뒷걸음치게 했다. 마오쩌둥과 그 뒤를 이은 중국의 지도자들에 대해 살펴보고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지도자를 뽑는지, 그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마오쩌둥(毛澤東)은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킨 공산주의 지도자다. 1920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하면서 공산주의 운동에 합류,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의 치열한 전쟁 끝에 1949년 중국 대륙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마오쩌둥은 1976년 사망 때까지 중국을 이끌었지만 이 기간 동안 중국민의 삶은 특별하게 나아지지 않았다.중국을 지금처럼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시킨 지도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이다. 그는 150㎝의 작은 키로 ‘작은 거인’, 세 번이나 실각했는데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고 해서 ‘오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의 편협한 이념에서 탈피해 개혁·개방을 기치로 내걸고 중국이라는 ‘거인’을 뛰게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은 그가 개혁·개방을 강조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국민을 잘살게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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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정확한 역법은 옛날 임금의 통치력 상징…양력설 1896년 도입·음력설과 충돌하다
설 연휴가 지났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셨는지요? 설은 음력 1월1일, 새해 첫날입니다. 음력은 달의 차고 기욺을 기준으로 한 달을 정하는 역법을 말합니다. 이슬람 지역에서 널리 쓰이며 순태음력, 혹은 회회력이라고 합니다. ‘회회’는 이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회회력은 이슬람 역법조선왕조실록 세종조에 보면 ‘장사를 하러 입국한 회회노인이 천문지식을 전해주었다’는 기록을 비롯해 여러 문헌에 회회가 등장합니다. 국제교류가 왕성하던 고려시대 기록에는 ‘회회’에 대한 문헌이 자주 보입니다. 수도인 개경(지금의 개성)은 몽골 사람이 운영하는 몽골식 만두가게(쌍화점)가 있고 페르시아산 유리를 파는 회회인이 있었을 만큼 국제도시였습니다.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던 역법은 같은 음력이라도 태음태양력이라고 합니다. 달의 차고 기욺에 더해 계절의 변화, 즉 태양의 일주까지를 고려한 역법입니다. 음력은 한 달이 29~30일입니다. 1년 열두 달 354일입니다. 3~4년에 한 번 윤달을 두어 이 차이를 조정합니다. 윤달은 2월에 올 수도 있고 3, 4월에 올 수도 있습니다. 정월과 12월을 빼면 언제라도 가능합니다.조선시대 사림파 영수였던 김종직이 지은 한시에 ‘윤이월 스무하룻날 길 가는 도중에 눈바람을 만나다’는 대목이 있고 도종환 시인은 ‘사람에게 걸었던 그리움마저 허전하고 허전하고 하 허전해서 몸도 따라 하염없이 저무는 윤삼월’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박목월 시인의 작품 ‘윤사월’에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1896년 7월21일 독립신문에는 ‘작년 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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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전문가 편견과 잘못된 번역…웃고 우는 세계문화…알타미라 구석기 벽화…발견자 죽은 뒤에야 인정
지난 회에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요.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도 편견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879년 스페인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마르셀리노 데 사우투올라(Marcelino de Sautuola)가 어린 딸 마리아와 함께 석기시대 사람들이 그린 ‘소’를 발견합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야기입니다.마르셀리노의 딸 마리아가 ‘소’ 발견사실 이 그림을 먼저 발견한 것은 마리아입니다. 당시 48세였던 마르셀리노는 동굴 입구 바로 안쪽에서만 작업했습니다. 여덟 살이던 딸 마리아는 아버지의 작업을 돕기 위해 횃불을 들고 있었는데, 지루한 마음에 동굴 안쪽으로 더 들어가 장난을 치며 머리 위쪽으로 횃불을 흔들었습니다. 아마 ‘귀신 그림자놀이’를 한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때 동굴 천장에서 한 무리의 들소가 질주하는 그림이 마리아의 눈에 들어왔습니다.마르셀리노는 고고학자인 친구 빌라노바 마드리드대 교수에게 편지를 썼고, 이 발견은 스페인과 유럽의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당시 국왕이던 알폰소 12세도 동굴을 직접 방문하고 마르셀리노의 성에 머물 정도였습니다.“구석기인 솜씨론 너무 정교”…위작 소동문제가 벌어진 것은 그다음입니다. 1880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선사시대 학술대회에서 전문가들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가짜라고 주장했습니다.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채색이 생생한 데다 일견 입체적으로 보이는 구도가 도저히 구석기 사람들의 솜씨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마르셀리노에게 숙식을 제공받던 프랑스인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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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30년 고도성장의 대가…스모그 낀 중국, 마스크 쓴 중국 경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작년 1월 말 베이징 서쪽 산시성의 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 중학교 1학년 소녀가 편지 한 통을 건넸다. 편지에는 “스모그를 줄여 중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리 총리는 친필로 쓴 답장에서 “녹색발전의 길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언론은 이를 ‘녹색약속’이라고 불렀다. 이후 중국 정부는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각종 대책을 동원해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최악의 스모그가 베이징 등 수도권 지역을 강타했고, 중국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최고 스모그 경보인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리 총리의 ‘녹색약속’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스모그 문제가 더욱 악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갈수록 심해지는 중국의 스모그중국에서 스모그가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2013년 1월부터다. 초미세먼지를 뜻하는 PM2.5(지름 2.5㎛ 이하의 먼지) 농도가 ㎥당 993㎍(마이크로그램)까지 치솟은 것이 발단이 됐다. 이때부터 중국에는 ‘스모그 왕국’이란 오명이 덧씌워졌다.스모그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자 스모그가 인체에 미치는 위험을 경고하는 연구결과도 속속 발표됐다. 중국에서 ‘사스 퇴치의 영웅’으로 불리는 중난산 중국공학원 회원은 “PM2.5 농도가 ㎥당 10㎍ 증가할 때마다 폐암에 걸릴 확률은 25~30% 높아진다”고 경고했다.스모그는 기본적으로 산업화 진전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 수도 런던도 1950년대 심각한 스모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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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교토의정서' 이을 '신기후협약' 타결
◆2021년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체제 출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196개국이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체제가 2021년 출범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는 2주간의 협상 끝에 12일 2021년부터 적용될 신(新)기후체제 합의문인 ‘파리협약(Paris Agreement)’을 채택했다.-12월13일 한국경제신문☞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역사적인 국제협약이 체결됐다. 세계 196개국은 지난 1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를 갖고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신기후협약에 합의했다. 몇몇 외신은 “인류가 화석시대의 (점진적) 종언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신기후협약이란 무엇이고 쿄토의정서와 어떻게 다른지, 우리나라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알아보자.온실가스 감축과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온실가스는 대기권에 존재하는 기체 중 지구의 복사열인 적외선을 흡수해 지구로 다시 방출하는 특성을 갖는 기체다. 온실가스에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 △과불화탄소(PFC) △육불화항(SF6) 등 6종이 있다. 온실가스 중 탄소 비중이 80% 이상이다. 이들 가스가 대기중에 존재하지 않으면 복사열이 바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버려 지구의 온도가 평균 섭씨 33도 낮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인류 입장에선 고마운 기체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온실가스가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산업화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 복사열을 막는 수준이 예년보다 크게 높아지고 그 결과 지구온난화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온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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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₂줄이자…파리 기후회의 '동상이몽'
지금 프랑스 파리에 196개국 대표들이 모여 있다. 지구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각국 대통령과 총리, 정부 관료,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말 시작된 이 회의의 정식 명칭은 제21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개최 도시가 파리여서 간단하게 ‘파리 기후총회’라고 불린다. 일정으로 정해진 2주일 안에 참가국이 한목소리로 지구온난화를 막을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참가국 수가 196개인 이유는 이들 나라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회의의 목표는 이렇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억제하자.”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신(新)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문제는 각론에 있다.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목표안을 실제로 이행할지 여부다. ‘잔치는 요란하지만 정작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있듯, 파리회의도 그럴 위험성을 안고 있다. 교토의정서의 전례 탓이다. 1997년 교토의정서를 통해 선진국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제했지만 간단하게 무시됐다.미국, 일본 등 주요국이 탈퇴해 버렸고,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중국은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제외돼 교토의정서는 유명무실화됐다. 미국 상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파리에서 어떤 합의를 해오든 부결시킬 예정이다. 일본과 중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교토의정서에서 빠졌던 당사자들이 지금 회의에 참가하는 흉내만 내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한국은 조금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7%의 감축 목표안을 내민 상태다. 블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