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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36) TV와 기술진화

    TV는 권력이었습니다. 동영상 콘텐츠를 불특정 다수에게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제1세대 TV는 지상파(ground radio wave)를 활용했습니다. 지상파는 전파의 범위가 한정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각 나라 별로 서넛의 한정된 방송사업자만이 방송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근본적으로 ‘희소한 자원’이었기에 권력 권한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시청자들은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건이 ‘TV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선정되었다’ 다시 말하면 ‘공신력을 획득했다’라고 인식했습니다. 구조적 독점(獨占)과 과점(寡占)을 통해, TV는 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했습니다.영원한 권력으로 보인 TV방송국의 독과점이 허물어진 최초의 사건은 홈비디오의 발명(1975)입니다. ‘방송편성표’, ‘편성권’은 지금도 널리 쓰이는 용어입니다만, 사회적 어의(語義)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홈비디오의 발명 이전에는 시청자는 완벽하게 수동적인 존재였습니다.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방송국이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를 방송국이 보여주고 싶은 시간에 전송하면 모든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황금시간대’에 어떤 프로그램을 배치하느냐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 행위였습니다.홈비디오가 나오면서 시청자들의 시청행태가 살짝 변했습니다. 원하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다가 자기가 보고 싶은 시간에 재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홈비디오 출현…흔들리는 독점‘홈비디오’로 촬영한 영상을 지상파가 방송한 것도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방송국의 &l

  • 경제 기타

    일본중앙은행 "물가 2%로 올릴 때까지 돈 풀겠다"

    ◆ 일본은행의 QQE 정책일본은행이 장기 금리를 직접 조정하는 새로운 금융완화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은 21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0% 수준으로 유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장단기 금리 조정(일드커브 컨트롤)’을 추가한 양적·질적 금융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완화를 더욱 강력하게 하기 위한 새로운 프레임 워크”라며 “정책 지속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9월22일 한국경제신문☞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 Bank Of Japan)이 경기 부양을 위해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양적·질적 금융완화’(QQ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Monetary Easing)’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양적·질적 금융완화란 무엇이고, 일본은행은 생소한 이 정책을 통해 무엇을 노리는 걸까?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 수단에는 크게 △재정 정책 △금융통화 정책이 있다. 재정정책은 정부가 지출이나 세금을 조정하는 것으로, 경기부양을 위해선 정부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여줘야 한다. 금융통화 정책은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해 경기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경기를 살리려면 통화량을 늘려야 한다. 그러면 금리(이자율)와 통화가치가 떨어져 소비와 투자, 수출 등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일본 정부가 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일본은행도 그동안 크게 두 개의 카드를 써왔다. 하나는 양적완화(QE)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돈을 무제한적으로 푸는 정책이다. 일본은행은 2013년 4월부터 양적완화를 시행, 연간 60조~70조엔 규모의 돈을 풀어오다 2014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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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기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마차 안에서 만난 이들눈이 내리는 한겨울 새벽 4시 반, 프랑스 북부도시 루앙의 노르망디호텔 앞에서 사람들이 마차를 기다리고 있다.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적군에게 점령당하자 안전한 곳으로 가거나 새로운 일을 모색하려는 이들이다. 백작 부부, 상인 부부, 도의원 등 10명이 마차에 탔다. 말없이 묵주를 돌리는 두 명의 수녀보다 더 눈에 띄는 여자는 ‘뭉실뭉실 비곗살이 찌고 포동포동한 손가락들은 마디마다 잘록하게 맺혀 있어서 소시지를 묵주처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키 작은 매춘부 불 드 쉬이프다. 비곗덩어리는 그녀의 별명.부인들은 ‘정숙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듯 은근슬쩍 매춘부를 힐난하며 소곤거리고, 남자들은 그녀의 풍성한 몸매를 흘깃거리며 막막한 앞날에 대해 얘기한다. 적당한 곳에 내려 식당을 찾으려던 일행의 바람과 달리 눈 때문에 마차는 더디게 가고 허허벌판에서 모두 허기에 지쳐간다.오후 3시쯤 불 드 쉬이프가 꺼낸 바구니에 통닭, 파이, 과일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가 맛있게 음식을 먹자 근엄한 체, 정숙한 체하던 사람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든다. 불 드 쉬이프는 아낌없이 음식을 나눠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모파상의 <비곗덩어리>는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소수의 희생이 다수를 살리는 일, 그 희생의 결과가 참담할 때 등 다양한 비유에 자주 등장한다. 130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의 상징이 된 불 드 쉬이프는 그 여행에서 계속 인기를 유지할까?희생을 강요한 뒤 무시하는 사람들중간 기착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출발하려고 여관 마당에 모였을 때 마차 주인이 말이 없다고 말한다.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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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마르코니와 라디오

    어떤 발명품은 인류의 생활패턴 자체를 바꿉니다. 기술 혁신이 문명사적 전환으로 이어지는 경우입니다. 굴리엘모 마르코니(1874~1937)가 발명한 무선통신도 그중 하나입니다. 당대인들은 이 아이디어를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적은 마르코니의 편지를 받고, 당시 이탈리아 체신청 장관은 ‘마르코니를 룬가라로 보내라’고 기록했습니다. 로마 룬가라 거리에는 정신병원이 있었습니다. 1897년에는 영국 왕립학회 켈빈 경(卿)이 ‘무선통신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합니다.정열의 사나이 마르코니마르코니는 정열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포기를 몰랐습니다. 전파를 ‘발견’한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가 1894년에 사망합니다. 그의 추도기사를 읽으며 마르코니는 무선통신을 연구하리라 결심했답니다. 그해 여름, 마르코니는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반대편 벽에 달린 벨을 울리는 실험을 합니다. 숨은 전선의 유무를 확인한 뒤 부자였던 마르코니의 아버지가 실험비용을 지원합니다. 유일한 후원자였던 셈이지요.1895년 무선통신장치 완성, 1896년 3㎞ 무선통신 성공(겨울이었습니다. 마르코니가 보낸 무선교신 내용을 받아 적은 누군가가 3㎞ 밖 수신 지점에서 단숨에 뛰어와 실험 성공을 알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1897년 무선회사 설립, 1899년 영국 남서쪽 콘월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가로지르는 통신에 성공합니다. 1901년 영국에 높이 45m의 기둥을 두 개 세운 안테나를 만들고,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안테나를 설치합니다. 12월12일 영국에서 발신한 전파를 2900㎞ 떨어진 미국에서 수신하는 ‘기적’을 보여줍니다(통신 내용은 ‘S&r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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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사는 '1인 가구' 500만명 넘었다

    ◆ 홀로 사는 1인 가구 비중 급증홀로 사는 1인 가구 비중이 25년 새 세 배로 늘어나며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된 것으로 조사됐다. 7일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11월1일 기준 국내 총가구 수는 1956만603가구로 5년 전인 2010년(1796만3816가구)보다 8.9% 늘어났다. 지난해 1인 가구는 520만3000가구로 전체의 27.2%를 차지했다. 25년 전인 1990년(9.0%)보다 세 배 이상으로 상승한 것이다. -9월8일 한국경제신문☞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세금이다.”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자민 플랭클린이 한 말이다. 세금(조세·租稅)이란 국가(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지방정부)가 살림(재정)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목적으로 법률에 규정된 과세요건을 충족한 자에게 직접적인 반대급부 없이 부과하는 금전급부다. 이렇게 거둔 세금으로 도로와 공항을 짓고, 보건복지정책도 펼치며, 과학기술에도 투자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세금 중 하나가 인두세(人頭稅)다. 일정 연령 이상의 국민 한 사람당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으로, ‘사람 머릿수에 따라 매기는 세금’이다. 그래서 고려나 조선, 유럽의 중세 시대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했다. 인구 수를 알아야 세금을 정확하게 매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센서스란?세계 각국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인구센서스(Census·인구총조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센서스(census)라는 말은 로마 시대의 감찰관(censor)에서 유래했다. 당시 세금 징수를 위한 인구조사를 감찰관이 담당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엔(UN)은 인구총조사를 “특정한 시점에 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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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나스메 소세키 '마음'

    험난한 삶을 산 작가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나스메 소세키. 그의 대표작 <마음>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판매부수 170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 일본에서는 그를 ‘국민 작가’로 부른다. <마음>은 근대소설의 규범이 되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나스메 소세키는 1914년에 이 책을 발간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이 책을 권합니다’라고 했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는 이들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책’이라고 당당히 외친 작가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5남3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작가는 부모가 연로한 탓에 다른 집의 수양아들로 보내졌다가 7세 때 집으로 돌아온다. 14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20세 때 큰 형과 둘째형이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29세에 결혼을 했으나 유산을 한 아내가 자살 소동을 일으킨다. 30세에는 아버지가, 35세에는 친한 친구가 사망한다. 44세에 두 살 난 딸이 갑자기 죽고 만다. 세 살 때 앓은 천연두로 얼굴에 흉터가 남은 것도 상처였을 것이다. 마음 고생이 심해서인지 늘 위궤양을 앓았던 나쓰메 소세키는 1916년에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선생님의 유서를 받은 나험난한 삶을 거친 그는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마음>을 집필하면서 ‘마음의 길’을 터득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마음>은 대학생인 ‘나’와 나가 우연히 만나 따르게 된 ‘선생님’이 두 축을 이루고 있다. 학식을 갖춘 선생님은 세상과 등진 채 외로운 삶을 산다. “사랑은 죄악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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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원나라의 일본정벌

    전체를 조망해야 진실이 보인다. 고구려와 백제 멸망 이후 나당엽합의 당사국 신라와 당나라는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 670년부터 6년간 이어진 나당전쟁이다. 당나라는 옛 백제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한반도 직할통치 의사를 분명히 하고, 백제왕자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해 신라와 맞선다.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친 이유부여융은 백제에 우호적이었던 일본에 파병을 요청하고 지원군을 받을 만큼 세력이 탄탄했다. 고구려, 백제의 멸망이 곧바로 신라의 삼국통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라의 전력이 강성하기는 했지만, 세계 최강의 당나라와 1대1로 부딪힐 정도는 아니었다. 같은 시기, 당나라의 서쪽 변경 토번(티벳)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당은 주력군을 서역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친 이유 가운데 하나다.1274년, 원나라 2만명 고려군 5000명, 900척 병선의 일본원정군이 마산항을 출발한다. 대마도 정벌까지는 성공했으나 이후에 몰아친 갑작스런 폭풍우로 원정은 실패로 끝난다. 폭풍이 불지 않았더라면 일본은 당대 최강 원나라 몽골기병에게 일방적으로 당했을 터이다. 일본이 이 폭풍을 ‘신이 보낸 바람(神風: 가미카제)’라고 부른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1281년 2차 원정은 15만 병력 4400척의 병선으로 규모가 늘었다. 2차 원정대도 급작스런 태풍에 일본에 상륙조차 하지 못했다.월남에 발 묶인 원나라그렇다면 왜 3차 원정은 하지 않았을까? 베트남 때문이다. 대월국 진왕조가 지배하던 베트남은 원나라의 침공을 물리쳤다. 1283년 1차 침공, 1284년부터 4년간 이어진 2차 침공으로 원나라는 하노이까지는 점령했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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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부채 1년 만에 126조 늘었다

    ◆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정부 대책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늘어난 것만 무려 34조원이다. 왜 이렇게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으며 문제는 없는 걸까. -8월26일 한국경제신문1250조원 넘어선 가계부채가계부채는 한국은행에서 집계한다. 정식 이름은 가계신용이다. 가계신용은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으로 구분된다. 가계대출은 또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로 나뉜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은 집을 구입하면서 주택을 담보로 빌리는 돈이다. 기타대출은 가계가 주택 구입 외의 목적으로 대출받는 돈이다. 판매신용은 신용카드나 백화점카드, 할부금융을 이용해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해당한다.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 6월 말 현재 1257조3000억원이다. 3월 말(1223조7000억원) 대비 33조6000억원(2.7%) 늘었다. 1년 전인 작년 6월 말보다는 무려 125조7000억원(11.1%) 불었다. 2분기 말 현재 가계부채 1257조3000억원 중 △가계대출이 1191조3000억원(전체 가계부채의 약 95%) △판매신용이 65조9000억원(약 5%)을 차지했다.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은 527조2000억원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다. 6월 말 현재 가계대출은 전분기 말 대비 32조9000억원(2.8%), 판매신용은 7000억원(1.1%) 각각 증가했다.이처럼 가계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유는 뭘까.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주택을 사기 위해 빌리는 돈이 급증했다. 지난 2분기 주택담보대출은 17조9000억원 늘었다. 전체 가계대출 증가액(34조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저금리로 인해 아파트 구입과 전·월세 대출이 늘어나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연 1.25%)을 유지하면서 시중 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