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생각에
혼자 살기로 결심한 24살 과부
사랑을 가슴에 묻고
떠나는 사랑손님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옥희
세 사람 모두 아쉬움과 아픔…
세 사람의 마음이 되어 읽어보라혼자 살기로 결심한 24살 과부
사랑을 가슴에 묻고
떠나는 사랑손님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옥희
세 사람 모두 아쉬움과 아픔…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몇 번을 봐도 지루하지 않은 소설이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읽다가 책을 덮을 때쯤 가슴에 아릿한 아픔이 고이는 것도 똑같다. 주요섭이 34세였던 1935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라는 거친 역사보다 우리 고유의 풍습과 시대상을 읽을 수 있어 소중하다.
명작이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오랫동안 읽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섯 살 난 여자아이가 화자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엮어가는 이 작품은 감상 포인트가 다양하다. 영악해 보이지만 어린아이인 화자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시침 뚝 떼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상상력을 폭발시킨다. 아이를 낳기도 전에 남편을 잃은 스물네 살 과부 옥희 어머니의 입장이 되고 보면 화병이 날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두고 떠나는 남자가 되면 가슴이 무지근해질 듯하다. ‘비겁’이라는 단어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암울한 시대에도 사랑은 꽃피기 마련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보여주는 사랑은 모성애와 이뤄지지 못한 남녀의 사랑이라는 두 줄기가 교차하며 나타난다.
아빠 얼굴을 본 적 없지만 옥희는 어머니와 외가 친척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어느 날 외삼촌이 머물고 있는 사랑채에 하숙생이 들어온다. 큰외삼촌의 친구이자 옥희 아버지의 옛 친구가 동네 학교 교사로 부임한 것이다. 안채의 옥희 어머니와 사랑채의 선생님은 마주칠 일이 없다. 밥상은 외삼촌이 나르고 자잘한 심부름은 옥희가 한다. 여섯 살 난 옥희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말을 구별하지 못한 채 양쪽에 마구 전하고, 정보를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말을 지어내서 사랑지수를 증폭시키게 만든다.
작가가 ‘옥희 메신저’를 어떻게 활용하여 사랑을 확장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지,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어떤 식으로 조정하는지, 잘 살펴보면 소설작법을 저절로 익힐 수 있다.
옥희 어머니와 사랑손님의 감정이 미묘하게 얽히기 시작할 때 옥희가 유치원에서 가지고 온 꽃을 아저씨가 줬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어머니는 뚜껑을 닫아두었던 풍금을 열어 연주를 하고, 사랑손님은 밥값을 넣은 봉투에 쪽지를 동봉한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손수건에 ‘발각발각하는 종이’를 넣어 옥희 손에 들려 보낸다. 얼마 후 사랑손님이 떠날 때 그가 쓴 편지와 어머니의 답장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길에서 마주친 유치원 동무들이 “옥희가 아빠하고 어디 갔다 온다”고 했을 때 아저씨가 정말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옥희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굴이 자주 새빨갛게 되었던 어머니가 장롱에서 아버지 옷을 꺼내 손으로 쓸어보며 “옥희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때 창창한 세월 생각에 괜스레 독자들의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랑보다 ‘시선’이 중요했던 시대
‘소설은 또 다른 역사책이다’라는 말대로 이 소설에도 당시 시대상이 잘 드러나 있다. 옥희가 “아빠 하나 있으문”이라는 희망을 말할 때 어머니는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받고. 옥희는 커서 시집두 훌륭한 데 못가구.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라며 눈물을 삼킨다. 이혼과 재혼이 자유롭고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는 지금 이 소설을 읽으면 참으로 생경스러울 것이다.
사랑채 심부름을 도맡게 된 외삼촌이 툴툴거리는 말을 보면 어머니가 지나치게 자신을 억제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 외출하려던 외삼촌은 상을 내가야 하는데 나가면 어떡하냐고 타박하는 어머니에게 “누님이 좀 상을 들고 나가구료. 요새 세상에 내외합니까?”라고 말한다.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영화와 TV드라마로 제작되어 여러 차례 상영되었다. 옥희의 장래를 생각하며 평생을 혼자 살기로 결심하는 스물네 살의 과부, 사랑을 가슴에 묻고 떠나는 사랑손님,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옥희. 세 사람 모두에게 아쉬움과 아픔을 안긴 채 끝 맺은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지금도 우리들에게 많은 질문과 생각을 던지기 때문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