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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42) 미국 선거에서 등장한 여론조사 '무용론'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트럼프가 이겼다. 예상을 뒤엎은 결과다. 미국 주요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부분 힐러리의 승리를 점쳤다. 미국 주요 언론을 인용해 보도한 한국 언론도 힐러리의 승리 가능성이 90%가 넘는다고 기사를 썼다. 결과는 반대였다. 선거가 끝난 후, 줄기차게 힐러리의 승리를 예측했던 미국 CNN방송은 자신들의 보도 태도에 편향성이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일종의 사과 방송도 했다. 이제부터는 ‘여론조사’수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멘트도 나왔다. 현대 정치에서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수치는 상당한 의미를 지녔다. 조사 시점의 민심을 측정하고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과학적인 자료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를 통해 그런 믿음이 깨졌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지역별 연령별 표본 집단을 선정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집분석하면 전체의 의견을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 여론조사의 기본이다. 이 가정은 1940년대에 설계된 것이다. 처음에는 우편 엽서를 이용했고 최근까지는 집 전화기를 이용해 의견을 수집했다. 잠깐 이야기를 옆길로 돌려보자.여론조사에 우편엽서를 활용한다고? 오가는 시간만 며칠이 걸리는데 실시간 여론수집이 가능할까? ‘속도감’은 상대적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찰스 디킨스는 1849년부터 1850년까지 <데이비드 코퍼필드>라는 장편소설을 썼다. 일종의 월간지처럼 글을 발표하고 잡지 말미에 ‘독자 의견’ 페이지를 넣었다. 이 페이지를 오려 독자들이 스토리 전개의 희망 사항을 전달하면 찰스 디킨스가 그 다음 달 집필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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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 ‘황태자의 첫사랑'

    연극, 오페레타, 영화로 번지다<황태자의 첫사랑>은 1898년 <카를 하인리히>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작품이 인기를 끌자 저자는 <알트-하이델베르크>라는 희곡으로 개작하여 무대에 올렸다. 연극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는 극작가로 대중에 널리 알려진다. 그는 이후 몇 권의 소설과 희곡을 더 발표했지만 1902년 젊은 아내가 병사하자 괴로운 마음에 집안으로 숨어버린다. 연극 <알트-하이델베르크>가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28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지만 그에게는 시력을 잃는 불운까지 겹친다.이 연극은 일본까지 건너갔고 당시 대학 독문학도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조선인에게도 영향을 미쳐 조선 왕세자가 일본으로 유학 가서 활약을 하는 각색 연극까지 생겼다는 기록도 있다. 또 박승희와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극극단 ‘토월회’가 <알트-하이델베르크>를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고도 있다.1924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오페레타로 제작되었고 MGM은 1927년에 무성영화로 만들었다가 1954년에 컬러 영화로 리메이크했다. 영화 제목은 였고 우리나라에서 상영할 때 <황태자의 첫사랑>로 바뀌었다. 마이어푀르스터는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1934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황태자의 첫사랑>은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짧게 맛 본 다른 세상카를 하인리히, 자녀가 없는 백부의 뒤를 이을 카를부르크의 황태자이다. 공립 김나지움 졸업시험에 최종 합격한 황태자는 1년간 하이델베르크대에서 공부한 뒤 포츠담 기병대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공 전하는 위트너 박사를 수행원으로 발탁하며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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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하인리히 뵐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4일 만에 살인자가 되다1974년 2월 20일 저녁 6시 45분 경, 카타리나 블룸은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4일 후 그녀는 거의 같은 시각에 형사 주임 발터 뫼딩의 아파트를 찾아가서 “신문기자 퇴트게스를 사살했으니 나를 체포하라”고 말한다. 7시간 동안 시내를 방황했으나 어떠한 뉘우침도 떠오르지 않았다면서. 27세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왜 단 며칠 만에 살인자가 되었을까.가정경제학교를 졸업한 카타리나 블룸, 깔끔하고 정직하게 살림을 대행하는 가정관리사이다. 오전 7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정기적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다른 집에 가서 두 시간씩 일한다. 주말에도 리셉션, 파티, 결혼식, 무도회, 상점 등 부르는 곳이 많아 바쁘다. 요리사로 가정관리사로 단순한 급사로 쉬지 않고 일해 자신의 아파트와 차를 장만했으며 병든 어머니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낸다.이혼녀인 그녀에게 유혹이 많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무도회에서 만난 괴텐에게 한 눈에 반했고, 그와 자신의 아파트로 간다. 다음날 정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운 그 남자는 하필이면 경찰이 1년 넘게 추적해온 살인강도 용의자였다.27세의 아름다운 여성과 범법자, 흥미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퇴트게스 기자는 1면에 카타리나의 대형사진과 함께 갖가지 추측을 쏟아놓는다. 그동안 카타리나 집에 들른 ‘신사 방문객’들에 대한 의문을 표하고, 카타리나가 오래전부터 괴텐과 관련이 있었다고 단정하면서 고인이 된 아버지, 병석의 어머니, 감옥에 있는 오빠, 이혼한 남편까지 세상 앞에 낱낱이 드러낸다. ‘겨우 27세의 가정부가 자기 힘으로 비싼 아파트를 분양받고 차를 몰고 다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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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이 세금 외에 내는 준조세가 연간 20조원

    ◆ 준조세와 기업 경영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불똥이 재계로 튀면서 관련 기업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한 53개 기업 관계자의 검찰 줄소환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청와대 요청에 마지못해 거액을 헌납하고도 마치 범죄자인 양 수사를 받게 됐다. “돈 뺏기고, 검찰수사 당하고, 정경유착 의심까지 받는데도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재계 고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11월 4일 한국경제신문☞ ‘최순실 게이트’의 불똥이 기업으로 튀고 있다. 최순실 씨는 민간인 신분으로 국정에 간여하고 사적인 이익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기업들은 최씨가 설립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기부했다. 청와대의 요청에 의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돈을 냈지만 이 때문에 수사 대상이 되고 여론 눈총도 받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문화 융성’ 돕기 위해 돈 냈는데 범죄자 취급”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기업들은 53개사로 이들이 낸 출연금은 774억원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삼성 SK LG KT CJ 롯데 대한항공 등 웬만한 기업들이 다 포함돼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은 사실 확인 차원에서 이들 기업 관계자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 중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자금 수사 이후 가장 많은 기업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재계 관계자는 “체육·문화 진흥을 위해 K스포츠와 미르재단 설립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수석의 협조 요청을 모른 체할 수 있는 기업이 있겠느냐”며 “국세청 등 사정기관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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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상식과 진실

    우리가 아는 ‘상식’이 ‘진실’과 다르다면? 우리 판단의 상당 부분은 ‘당대’가 기준이다. 그래서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한다. 문제는 과거의 관습이나 실상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과거에 대한 지식은 모두 간접적인 것이다. 직접 ‘체험’할 기회는 없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적 사건의 결과를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보면서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전지적(全知的) 관점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은 상황의 전모를 살피는 커다란 틀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역사적 진실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보고 싶은 것만 선별해서 보는 ‘제한된 시각’일 가능성도 있다. 간단한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1. 자동차는 매연을 일으킨다자동차가 교통수단으로 일반화된 시점은 1900년대 초반이다. 1908년 출시한 포드자동차의 모델T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미국에서는 1920년대에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유럽도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 시대’가 시작됐다. 당시 유럽인과 미국인들은 자동차를 친환경적이며 위생적인 발병품이라고 생각했다. 말(馬)의 배설물을 도시에서 몰아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한 것이지만.자동차가 나오기 전 인류가 가장 널리 활용한 교통수단이 마차다. 1890년 기준 미국 뉴욕에만 6만여마리의 말이 있었다고 한다. 말들이 도심에 방사하는 배설물은 하루 1250t, 소변은 6만갤런이었다고 한다. 사고사이든 과로사이든 하루평균 수백 마리의 말이 거리에서 사망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약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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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라디오와 TV를 만든 '사노프'

    천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데이비드 사노프(David Sarnoff: 1891~1971)도 그중 한 사람이다. 러시아 태생인 이 사나이는 타이타닉호 덕분에 명성을 얻었다. 9세 때 미국으로 건너갔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소년 가장이 됐다. 신문팔이, 심부름꾼 등이 그의 소년 시절 직업이다. 독학으로 모스 부호와 무선 전신을 익히고 1906년 마르코니 무선 회사에 사환으로 들어갔다.같은 주파수를 사용한다면마르코니 무선 회사의 미국 지사가 설립된 해는 1899년이다. 2년 후 무선 기사가 된 사노프는 선박과 해안 방송국에서 근무하다 1912년 4월15일을 맞이한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날이다. 사노프는 7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당시 구조 작업 현장의 활동, 생존자들의 반응을 타전했고 생존자 명단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신문들이 사노프가 받은 무선 내용을 기초로 지면을 제작했다. 신문 이외에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주는 매체가 있다는 점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문명의 이기가 정보를 전할 뿐 아니라 인명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1915년, 사노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지금도 원본이 남아 ‘사노프의 1915 메모’ 혹은 ‘라디오 뮤직박스 메모’라고 부른다. 동일한 무선 주파수를 사용한다면, 1 대 1 통신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명이, 불특정 다수가 수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통신회사에서 발신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차이가 없었다. 받는 사람이 수신기를 설치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혁명적인 부분은 ‘보내는 내용’에 있다. &lsqu

  • 경제 기타

    신뢰 등 사회적 자본 키워야 저성장 넘는다

    ◆ 사회적 신뢰도 추락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도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수준으로 향상되면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높아져 4%대 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6일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 실태와 대응과제 연구’ 보고서에서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자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회원국과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사회적 자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해 저성장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월 26일 연합뉴스☞ 한 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노동(인적자본)이나 자본(물적자본) 같은 생산요소가 풍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하드웨어적 요소만 갖고서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게 쉽지 않다. 또 다른 '알파'가 필요하다. 그건 바로 '신뢰, 정직' 등으로 표현되는 소프트웨어적 요소다. '신뢰'가 경제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자.“신뢰는 사회적 자본”경제학자들은 신뢰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간주한다. 신뢰가 노동이나 자본처럼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한 국가(따라서 국민 삶의 질이 꾸준히 높아지는 국가)는 ‘신뢰’라는 자본이 풍부한 국가”라고 설파했다.사회적 자본은 “개인들 사이의 연계,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의미한다. 사회적 자본은 네트워크와 같은 구조적인 요소와 신뢰, 호혜성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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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프란츠 카프카 '변신'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내일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가. 아니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온한 날을 원하는가. 아버지가 진 빚을 갚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지방 출장을 자주 가야 하는 피곤한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 빚을 갚으려면 앞으로도 5~6년 동안 고생해야 한다. 그 이후에는 ‘대전환이 시작될 거야’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매일 새벽 5시 기차로 출근하는 그레고르는 자신의 몸이 어제와 달라진 것과 6시30분에 눈을 떴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장갑차 같은 딱딱한 등, 불룩하게 나온 화살 모양의 뻣뻣하게 갈라진 갈색 배, 수많은 다리’를 가진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것이다. 그레고르는 흉측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면서 다시 취업하기에는 늙은 아버지, 몸이 아픈 어머니, 음악학교에 보내고 싶은 열일곱 살 여동생부터 걱정한다.부모님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사실에 절망하고, 여동생 그레테는 조심스럽게 흉측한 벌레를 돌본다.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자 가족들의 생활이 형편없이 나빠진다. 그러자 늘 축 처져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시작하고 여동생도 출근을 한다. 점액질을 뿜으며 괴상한 소리를 내는 흉측한 그레고르는 점점 귀찮은 존재가 돼간다.그레고르의 죽음은 무엇인가매일 공부에 시달리는 게 싫어, 날마다 출근하는 게 지옥 같아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열심히 살았지만 하루아침에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밀려나는 이들도 있다. 팽팽하게 잡고 있던 일상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벌레가 될지도 모른다. 외부와 차단되고 가족과 점점 멀어지다 서서히 사라져간 그레고르처럼.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