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성현의 삶은 치열하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평화로 충만한 삶을 산다
성현의 가족들 역시 그만큼 착하다
성현의 삶에서 착함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흔치 않은 장애자 소설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성현의 삶은 치열하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평화로 충만한 삶을 산다
성현의 가족들 역시 그만큼 착하다
성현의 삶에서 착함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남평 문씨 집안의 장손 문성현은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난다. 어머니 이경순은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무한한 사랑으로 성현을 키운다. 8살이 되었을 때 성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장애를 극복하려 노력한다. 울기를 멈추고 사지가 꼬이는 것을 통제하고 혼자 앉는 법을 터득하고 글자를 익힌다. 이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이후 성현은 자살을 기도하거나 요양 시설에 들어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평화로 충만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어머니 사후 자신을 돌보는 파출부 예산댁의 횡포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를 모두 용서하고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 작품은 장애의 문제를 직접 다룬, 우리 문학사에 흔치 않은 장애자 소설이다. 탄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성현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장애를 천형처럼 안고 사는 한 인간을 그 핍진한 삶의 구체와 더불어 만나게 된다. 성현은 어린 나이에 머리가 터지고 무릎이 까이면서 혼자 몸을 가누는 연습을 하는데 이는 인간의 품격과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었기에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윤영수는 병자, 장애인, 미친 사람, 건달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고 장애인의 삶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필시 작가의 공일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착한 사람 문성현’이다. 착한 것은 무엇일까? 문성현은 평생 고통 속에 살면서도 부모를 염려하고 아우를 배려하고 조카를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도 타인을 원망하고 미워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간암 선고를 받았을 때 아들 잘 못 본 탓에 그리 되었다는 주변의 쑥덕거림을 들은 성현은 자살을 기도한다. 쑥덕거린 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기 바라면서. 다행히 그는 목숨을 건졌고 아버지는 그런 성현을 사랑으로 감쌌다. 이후 성현은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서 목욕 봉사를 온 사람들에게 퉁명스럽게 굴기도 하였고 그런 자신을 미워하며 장애자 수용소에 가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돌아온 집에서 비로소 천국을 보았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또 그는 어머니를 의심하기도 한다. 다른 형제와 달리 자신만 장애자인 것은 신생아 시절 어머니가 실수를 했기 때문 아닐까, 어머니가 성녀처럼 자신을 돌보는 것은 그런 실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러나 의심을 내보인 그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는 순간 자신이 생트집을 잡았음을 깨닫고 곧 참회한다.
절망적인 삶
성현의 삶은 치열하다. 그의 몸은 늘 누워 있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거나 장애가 주는 절망감에 휩싸일 때마다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과 싸웠고 거의 대부분 성공하였다. 말하자면 성현은 구도자의 삶을 산 것이다. 이런 성현을 보고 있자니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이 허망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헝가리의 혁명가 산도르 페퇴피의 시구가 떠오른다. 페퇴피는 메테르니히의 빈 반동체제(1815~1848)에 대항하여 식민지 헝가리의 독립을 위해 시와 총으로 싸웠는데 혁명의 도정에서 희망이 거듭 무너지자 절망 역시 허망하다는 역설을 되뇌며 투쟁 의지를 다진다. 절망에 걸려 넘어지지만 곧 일어선다는 점에서 구도자와 혁명가는 닮았다. 구도자 성현의 내면에도 혁명가가 살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문성현의 착함은 수동적 부드러움과 연약한 순종이 아니라 자신을 좌절시키려는 세상과 타협 없이 대결하며 다진 내면의 단단함으로 보인다. 그가 파출부 예산댁의 패륜에 가까운 악행을 용서한 것도 이런 싸움에서 힘을 얻고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성현의 가족이다. 성현의 가족은 성현 못지않게 착하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착하다. 아들의 장애를 보듬느라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 이경순과 아버지 문덕규, 아침마다 형에게 인사하고야 등교하던 동생 우현과 승현, 할머니 사후 형편이 어려워지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계를 짊어졌던 여동생 문희, 심지어 이들의 배우자들조차 착하다. 사실 저렇게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가족이 얼마나 되겠는가. 가족이 지나치게 미화되어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꿈과 지향의 건설이기도 하다. 삶의 추악한 이면을 들추거나 인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소설은 복잡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문학의 본령에 충실하다는 미덕이 있다. 한편 소설은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바를 궁구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착한 사람들이 착함을 구도하는 소설은 그 자체로 이런 목적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필치는 생경함 없이 자연스럽다. 사실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는 일변 냉철하고 딱 필요한 만큼 건조하여 인물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그 거리 속에서 인물들은 구성적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
착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
착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이 소설을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해 가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착하게 사는 것, 착한 삶이 요구하는 의지, 의지를 다지는 구도의 향기 등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결말 부분에서 성현이 저승에서 재회한 부모와 내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 속 인물의 행복을 비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좋은 소설이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