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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음 로버트 프로스트

어떤 이는 세상이 불로 끝날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얼음으로 끝날 것이라 하네.
내가 맛본 욕망에 비춰 보면
불로 끝난다는 쪽을 편들겠네.
하지만 세상이 두 번 멸망한다면,
난 증오에 대해서도 잘 알기에
얼음의 파괴력 역시
불에 못지않게 엄청나며
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겠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가 46세 때인 1920년에 발표한 시입니다. 9행짜리 짧은 시이지만 의미는 깊습니다. 시인은 인간의 욕망과 증오를 ‘불’과 ‘얼음’에 비유하면서 이것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이 시를 보는 세 가지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우선 프로스트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이 시는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지옥’ 편에 나오는 ‘끓는 피’와 ‘화염 속’ 불의 형벌, 몸 전체가 얼음 속에 갇히는 형벌이 그것이지요. 둘 다 세상의 종말을 부르는 죄악입니다.

또 하나는 자연과학적 관점입니다. 저명한 천문학자 할로 섀플리는 자신이 ‘불과 얼음’에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시가 발표되기 1년 전에 프로스트와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자기가 천문학자라는 것을 안 프로스트가 “세상이 어떻게 끝날 것 같습니까?” 하고 물었답니다.

이 질문을 받은 그는 “태양의 폭발로 지구가 불타거나 그렇지 않다면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에서 천천히 얼어붙을 것”이라고 대답했는데, 1년 뒤에 ‘불과 얼음’이 발표된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는 “과학이 예술 창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한 가지 예”라고 말했지요.

다른 한 가지는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이 시가 발표된 1920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이지요. 군인과 민간인 수천만 명이 죽고 다친 이 전쟁 또한 시에서 말하는 욕망(불)과 증오(얼음)에 의한 파멸의 한 사례입니다. 탐욕·증오·분노가 세상을 지옥으로프로스트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탐욕, 증오와 분노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불 지옥’과 ‘얼음 지옥’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과 얼음은 세상의 종말을 부르는 파괴력의 상징인 동시에 우리 삶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죄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이처럼 깊이 있는 성찰로 우리의 감성과 이성을 건드려 준 덕분에 프로스트는 남들이 평생 한 번도 받기 어려운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았습니다. 물론 이 화려한 영광의 이면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져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뉴햄프셔의 농촌에서 10여 년간 농사를 지은 그는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소년의 의지>와 <보스턴의 북쪽>을 써서 일약 성공한 뒤 미국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았고 하버드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시학을 가르쳤습니다.

이루 말 못 할 고통도 많았지요. 그는 잇단 가족의 죽음을 겪으며 가슴 아픈 비극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특히 아내와 자녀들을 잃은 슬픔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시를 통해 그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찾는 과정이 곧 그의 시였습니다.

저 유명한 ‘가지 않은 길’과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등 그의 대표작과 함께 이 시 ‘불과 얼음’도 오래 음미해 볼 만한 시입니다. √ 음미해보세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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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탐욕, 증오와 분노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불 지옥’과 ‘얼음 지옥’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과 얼음은 세상의 종말을 부르는 파괴력의 상징인 동시에 우리 삶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죄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이처럼 깊이 있는 성찰로 우리의 감성과 이성을 건드려 준 덕분에 프로스트는 남들이 평생 한 번도 받기 어려운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았습니다. 물론 이 화려한 영광의 이면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