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하루같이-물건방조어부림1 고두현
그 숲에 바다가 있네
날마다 해거름 지면
밥때 맞춰 오는 고기
먼 바다 물결 소리
바람 소리 몽돌 소리
한밤의 너울까지 그 숲에 잠겨 있네
그 숲에 사람이 사네
반달 품 보듬고 앉아
이팝나무 노래 듣는
당신이 거기 있네
은멸치 뛰고 벼꽃 피고
청미래 익는 그 숲에 들어
한 천년 살고 싶네
물안개 둥근 몸
뽀얗게 말아 올리며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물미해안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꼽힙니다. 경남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약 30리 해안길. 두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물미해안이라고 합니다. 바닷가를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이 낭창낭창한 허리를 닮았지요. 독일 마일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그 길이 시작되는 초입, 독일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물건방조어부림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1.5km 길이에 30m 너비의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초승달 모양으로 바다를 넓게 보듬어 안은 이 숲은 강한 바닷바람과 해일을 막는 방조림 기능뿐만 아니라 물고기 떼를 불러 모으는 어부림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지요.
규모도 남해안 활엽 방풍림 중 가장 큽니다. 숲의 나이는 약 400년, 이곳서 자라는 나무는 1만 그루가 넘습니다. 하늘을 향해 팔을 활짝 벌리고 선 노거수가 2000여 그루, 그 허리춤에서 키 재기를 하는 하층목이 8000여 그루…….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나무의 종류는 느티나무, 팽나무, 상수리나무, 이팝나무, 모감주나무, 푸조나무 등 40여 종에 이르지요. 숲속으로 산책로가 잘 나 있어 걷기 편하고 쉬기에도 좋습니다.
숲에서 바다 쪽을 보면 몽실몽실한 몽돌해변이 좍 펼쳐져 있습니다. 고즈넉한 물건항 양쪽에 마주보고 서 있는 두 개의 등대도 다정스럽습니다. 바다 위로 하얀 요트들이 점점이 떠 있는 풍경 또한 그림 같지요. 이곳 뒤편 언덕배기에 있는 독일 마을에서 수평선 너머로 지는 노을을 내려다보노라면 황홀하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이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푸른 문학청년 시절로 돌아갑니다. 잘브락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숲의 뿌리를 어루만지며 나무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그 고요의 틈새에서 노거수의 등줄기를 닮은 초심(初心)을 되새기곤 하지요. 제 시의 뿌리, 상상력의 그루터기유목민의 부박한 삶에서 벗어나 농경 정착민의 순한 심성으로 저를 비추는 이 숲은 제 시의 뿌리이자 상상력의 그루터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어머니의 숲’, ‘문학적 모림(母林)’이라고 부릅니다.
이 숲은 저에게 여러 편의 시를 선물해 줬습니다.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로 시작하는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와 “그 숲에 바다가 있네”로 시작하는 ‘천년을 하루같이’ 등 계절마다 바뀌는 풍광만큼이나 많은 시를 잉태하고 탄생하게 해줬답니다.
‘천년을 하루같이’는 가곡으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전문연주단체 참스(Chams, 대표 김혜정)가 이 시에 곡을 붙인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지요. 음원은 바리톤 한정현과 소프라노 이민희의 두 가지 버전으로 선보였습니다.
작곡은 김혜정 참스 대표 겸 플루티스트, 편곡은 추동현, 피아노 연주는 진승민이 맡았습니다. 이들은 시에 나오는 물건방조어부림의 오래된 숲과 반달처럼 펼쳐진 몽돌 바다를 아름다운 사랑의 세레나데로 승화시켰습니다.이 곡은 2022년 6월 부산 문화공간 빈빈(대표 김종희)에서 열린 ‘고두현 시인 북콘서트’에서 초연됐으며, 2023년 9월 싱글 음원으로 발매됐습니다. 멜론, 벅스 등 대부분의 음원사이트와 유튜브에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음미해보세요
이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푸른 문학청년 시절로 돌아갑니다. 잘브락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숲의 뿌리를 어루만지며 나무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그 고요의 틈새에서 노거수의 등줄기를 닮은 초심(初心)을 되새기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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