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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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고래의 꿈 송찬호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길 한다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대농게 가족이 새 뻘집으로 이사를 한다더군봐, 화분에서 분수가 벌써 이만큼 자랐는걸…내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내일은 5마력의 동력을배에 더 얹어야겠다 깨진 파도의 유리창을 갈아 끼워야겠다저 아래 물밑을 쏜살같이 흐르는 어뢰의 아이들 손을 잡고 해협을 달려봐야겠다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오랜 꿈이 있다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여전히 희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인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고 했죠? 시인은 작은 화분 하나를 키우며 심해의 고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래는 대양의 커다란 꿈, 즉 희망을 가리키지요. 사람들이 고래는 사라져 버렸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희망의 이야기에 주파수를 맞춥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고래의 이야기를 그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그는 밤마다 자신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하며 길고 아름다운 고래의 허밍에 귀를 기울이지요. 그러면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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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룬 그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물 속의 달이규보산중의 스님이 달빛을 탐하여호리병 속에 물과 함께 길었네절에 들어가면 깨닫게 될 것병 기울여도 그 속에 달이 없다는 것을詠井中月山僧貪月色, 幷汲一甁中.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고려 명문장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입니다. 그의 시풍은 당대 최고로 평가됐는데,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 격퇴해 더욱 유명해졌죠.청풍명월은 임자가 따로 없습니다. 누구나 마음대로 취해도 탓할 사람이 없지요. 산중의 바람이나 달은 다른 곳보다 더 맑고 밝으니 스님의 차지도 그만큼 풍족할 것입니다. 굳이 탐했다고 할 나위도 없겠네요.그런데 스님이 우물 속에 금빛으로 넘실거리는 달빛을 병 속에 물과 함께 길었다고 했습니다. 부질없는 짓이었죠. 달빛은 절 처마 밑으로만 들어가도 비치지 않고, 병 속의 물을 다 기울여도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색(色)일 뿐이지요. 하긴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했습니다.인생은 가만히 보면 ‘색’이고 ‘공’이 시에도 ‘색’과 ‘공’이 함께 나오지요. 1구(山僧貪月色)의 마지막 글자인 ‘색’과 4구(甁傾月亦空)의 마지막 글자인 ‘공’이 색즉시공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게 가만히 보면 ‘색’이고 ‘공’입니다. 어떤 모습을 드러내며 살더라도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요.이규보는 평소에 시·술·거문고를 좋아해서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으로 불렸습니다. 워낙 술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겨 과거시험에는 관심도 없고 시회(詩會)에 드나드는 것에 열중해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사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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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매력은 15분을 넘지 못하고…[고두현의 아침 시편]
이 시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과 함께 CEO들이 무척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세상사는 지혜가 시 속에 다 녹아 있기 때문이지요. 기업경영과 고객 서비스의 원리까지 담겨 있습니다. 제가 아는 기업인도 이 시를 자주 애송합니다. 가끔 후배 직원들에게 몇 구절을 암송해 주기도 하죠. 일상의 소소한 지혜와 너그러움을 일깨우고,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며, 자신의 인생철학까지 그대로 비추는 시라면서 말이죠.“내가 행동을 잘해서 다른 사람이 좋아하게 해야지, 행동을 시원찮게 해놓고 남이 자기를 좋아하게 하는 건 불가능하지요. 정직하게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방법이란 걸 배웠어요. 아무리 얇게 벗겨도 앞면과 뒷면이 있다는 표현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과 사물엔 양면이 있지요. 두 면을 다 보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걸 이 시에서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보다 ‘나 자신의 최대치’기업이나 단체는 여러 사람의 꿈을 안고 가는 생명체인 동시에 서로를 끊임없이 평가하는 전쟁터죠. 어떤 일을 맡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의외의 결실까지 따라옵니다.아직 사회 초년생이라면 무엇보다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보다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면서 말이죠. 정말로 실력이 있으면 배짱 좋게 살 수 있고, 실력이 없으면 남의 눈치를 보게 돼 있습니다.진정한 실력이란 뭘까요.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택해서 종일 일해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하며 희열을 느끼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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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자, 세상이 모두 내 집일세 [고두현의 아침 시편]
십 년을 경영하여송순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 세 칸 지어내니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면앙정 송순(宋純, 1493~1583)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시조에 뛰어났습니다. 문집으로 <기촌집> <면앙집>이 있고, ‘면앙정가(俛仰亭歌)’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지요.이 시조 ‘십 년을 경영하여’에서 그는 초가집 한 채를 지어놓고 그 속에 세상을 다 들여놓았습니다. 내가 묵을 방 한 칸, 달이 들어올 방 한 칸, 거기에 청풍이 노닐 방 한 칸. 더 이상 들여놓을 데 없는 강산까지 병풍처럼 둘러놓고 보니 남부러운 것 없는 집입니다. 얼마나 여유로운가요. 덕분에 초가삼간은 천하를 품을 만큼 커다란 집, 우주(宇宙)의 집이 됐습니다.욕심과 여유의 차이점은?욕심과 여유는 매우 다르지요. 욕심은 ‘마이너스 에너지’여서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채워집니다. 그래서 자신과 남을 다 같이 빈곤하게 만들죠. 그러나 여유는 ‘플러스 에너지’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게 아니라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더 큰 풍요를 선사하지요.그래서 욕심 많은 부자는 남의 곳간을 탐내고, 진정한 부자는 남의 곳간이 가득한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세상엔 부자가 많지만 이처럼 마음마저 풍요로운 부자는 드물지요.척 피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집도 차도 없는 ‘가난뱅이’입니다. 시계도 몇만 원짜리를 차고 다니고 밥도 허름한 식당에서 먹습니다. 그러면서도 25년간 4조원이 넘는 돈을 남몰래 기부해왔습니다.그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 ‘숨은 억만장자’입니다. 미국과 아일랜드, 베트남, 태국, 남아공, 쿠바 등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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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사람의 몫을 남겨두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난을 가꾸는 뜻 정섭구 원(畹) 넓이 난초 가꾼 강변 텃밭팔 원(畹)만 그리고 다 마치지 못하였네.세상만사 만족스러운 때 언제 있었더냐나머지 가꾸는 일은 뒤에 오는 사람의 몫.八畹蘭九畹蘭花江上田, 寫來八畹未成全.世間萬事何時足, 留取栽培待後賢.시서화에 뛰어났던 청나라 시인 정섭(鄭燮, 1693~1765)의 시입니다. “대나무를 그리면서 벌과 나비가 수선 떠는 것을 피하려 꽃을 그리지 않았다”던 그의 성정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죠.이 시에 나오는 구원(九畹)은 초나라 시인 굴원의 난초밭 넓이를 말합니다. 시인은 구원 중에서 팔원만 그리고 나머지는 뒤에 오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놓는다고 노래합니다. 완전무결한 결과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배움, 또는 덕성을 중요히 여기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결과 지상주의 사회가 잃어버린 건…누구나 무슨 일을 할 때 완결을 목표로 하지만 미완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 지상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성과에 집착하게 되죠. 그렇다 보니 과정의 정당성과 노력의 가치보다 요령과 편법이 우대받는 현상까지 생깁니다.많은 사람을 감동케 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떠오릅니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다룬 것이지요.결과 지상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에게 메달의 가능성은 없어 보였습니다. 이미 은퇴하여 아줌마가 다 된 선수들을 불러 모아 급조한 팀인데다, 국가대표 선수라고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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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펠로에게 배우는 노년의 지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나이 든 이가 보내는 경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초서는 우드스톡에서 꾀꼬리를 곁에 두고예순에 캔터베리 이야기를 썼지.괴테는 바이마르에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여든에 파우스트를 완성했고.( …중략… )우리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네.비록 차려입은 옷은 다르지만노년은 젊음에 못지않은 기회인 것을,저녁 어스름이 옅어져 가면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가득하다네.헨리 워즈워스 롱펠로(1807~1882)의 이 시를 읽다가 마지막 5행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비록 차려입은 옷은 다르지만/ 노년은 젊음에 못지않은 기회’라는 구절과 ‘저녁 어스름이 옅어져 가면/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가득하다’는 대목에는 두 번씩 줄을 그었죠. 원래는 엄청나게 긴 시인데, 그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앞부분에 나오듯이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는 예순에 최고 걸작 <캔터베리 이야기>를 썼고, 독일 문호 괴테는 여든에 <파우스트>를 완성했지요.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팔순을 넘기면서 성베드로 성당 천장을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했고,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아흔에도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는 90세에 하루 6시간씩 연습하며 “난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62세에 ‘지동설’을 확립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68세에 ‘대성당’을 조각한 오귀스트 로댕, 71세에 패션계를 평정한 코코 샤넬, 62세 때 광견병 백신을 발견한 루이 파스퇴르….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는 93세 때 기자로부터 “언제가 인생의 전성기였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열심히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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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별정진규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지금 대낮인 사람들은별들이 보이지 않는다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별들이 보인다지금 어둠인 사람들만별들을 낳을 수 있다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별은 어둠을 먹고 자랍니다. 정진규(1939~2017) 시인은 ‘별’에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노래했지요. 또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별은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빛난다는 의미이지요.별들의 바탕인 우주는 실제로 어둡습니다. 광대한 우주 공간의 95% 이상이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로 이뤄져 있으니까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보통의 물질은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지구와 태양 등 ‘우리은하’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전체 에너지의 0.4%밖에 안 된다죠? <천자문>도 첫 문장에서 “하늘(天)은 검고(玄) 땅(地)은 누르다(黃)”고 했습니다.암흑의 시작과 끝은 어디?모든 천체를 아우르는 우주(宇宙)는 넓고 커서 끝이 없지요. 한자로 ‘집 우(宇)’는 지붕과 처마처럼 넓고 큰 공간의 확대, ‘집 주(宙)’는 집의 기둥처럼 하늘과 땅을 떠받치는 시간의 격차를 뜻합니다.이 시간과 공간을 포함해 천지간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이 곧 우주(space, the universe, the cosmos)이지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합니다. 이런 시공간의 변화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니 놀라운 일이지요.암흑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요. 빈센트 반 고흐는 죽기 전에 별을 많이 그렸습니다. 1888년 남프랑스 아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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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다람쥐, 춤추는 여인을 볼 틈도 없다면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던 길 멈춰 서서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또 그…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방랑 생활을 오래 했던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1871~1940)의 작품입니다. 그는 일에 쫓겨 허덕거릴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고 말합니다. 근심에 잠긴 사람에게는 눈앞의 아름다움도 보이지 않지요. 희망의 눈이 감겨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만 있어도 충분하지요. 직선의 세상, 보듬어 안는 곡선의 미학‘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이나 ‘별들 반짝이는 강물’까지라면 더욱 좋습니다. 그 여유가 아름다운 여인의 눈과 발, 춤추는 맵시, 입술에 번지는 미소를 발견하게 해주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도 깨닫게 해주니까요.뾰족한 직선의 세상을 둥글게 보듬어 안는 곡선의 미학! 그 오묘한 힘도 잠시 길을 멈추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서 나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