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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신달자 시인 "비가 손을 적시는데 등이 따스하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 앞에 비 내리고              신달자밤새 내리고 아침에 내리고 낮을 거쳐 저녁에 또 내리는 비적막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그래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계속 보여 주는구나고맙다, 너희들 다 안아 주다가 늙어 버리겠다 몇 줄기는 연 창으로 들어와반절 손을 적신다 손을 적시는데 등이 따스하다죽 죽 죽 줄 줄 줄 비는 엄마 심부름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내리지 않고춤추듯 노래하듯 긴 영화를 돌리고 있다 엄마 한잔할 때 부르던 가락 닮았다큰 소리도 아니고 추적추적 혼잣말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비이젠 됐다라고 말하려다 꿀꺽 삼킨다 저 움직이는 비바람이 뚝 그치는그다음의 고요를 무엇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표현이 막막하다.하루 종일 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밤부터 쉬지 않고 내리는 비를 보면서 ‘혼잣말’을 나직하게 되뇝니다. “적막하다”.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비는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고맙다”. 평생 보듬어 키운 인연처럼 그 빗줄기를 “다 안아 주다가 늙어 버리겠다”고 한마디 보태자 몇 줄기가 창 안으로 슬며시 들칩니다. 그렇게 들어온 비가 손을 적시는데 뜻밖에도 등이 따스합니다.‘죽 죽 죽’ 쏟아지는 비는 ‘춤추듯’ 노래하고, ‘줄 줄 줄’ 흐르는 비는 ‘노래하듯’ 춤춥니다. 그 사이로 지난 시절이 긴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화면 속으로 ‘엄마 심부름’과 ‘엄마 한잔’의 인생 여정이 흐릅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인생은 ‘큰 소리도 아니고 추적추적 혼잣말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비’와 같습니다.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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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거이가 10대에 쓴 놀라운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옛 언덕의 풀 이별 노래백거이언덕 위에 우거진 풀들해마다 한 번 시들었다 무성해진다네.들불을 놓아도 다 타지 않고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난다네.방초는 멀리 뻗어 옛길을 덮고맑은 하늘 푸른 빛은 황폐한 성까지 닿네.또 그대를 떠나보내니이별의 슬픔 가득하다네.賦得古原草 送別離離原上草 一歲一枯榮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10대 시절에 쓴 시입니다. 원문 제목은 ‘부득고원초송별’인데, ‘초(草)’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백거이가 15세, 혹은 18세 때였다고 합니다. 시험을 보러 수도 장안(長安)에 처음 갔다가 당시 이름난 시인인 고황(顧況)을 찾아갔지요. 고황은 소년의 이름이 ‘거이(居易)’인 것을 보고 이에 빗대어 “장안의 쌀값이 비싸니 살기가 어려울 텐데(長安米貴 居住不易)”라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백거이가 이 시를 보여주자 “이런 재주가 있다면 살아가기가 쉬울 것(有才如此 居亦容易)”이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때의 칭찬 덕분에 소년 백거이의 이름이 널리 퍼졌지요.들불을 놓아도 풀은 다 타지 않는다시 원문에 나오는 ‘야화(野火)’는 들판의 마른 풀을 태우기 위해 지르는 불을 가리킵니다. ‘야화소부진 춘풍취우생(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은 들불을 놓아도 풀은 완전히 다 타 없어지지 않고 봄이 되면 다시 파릇파릇 돋아나는 것을 묘사한 것이죠. 간결하면서도 깊은 함의를 지닌 이 구절이 바로 이 시의 백미입니다.이 명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소인(小人)은 제거해도 다 사라지지 않아 마치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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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심판은 '불'일까 '얼음'일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불과 얼음                   로버트 프로스트어떤 이는 세상이 불로 끝날 것이라 하고,어떤 이는 얼음으로 끝날 것이라 하네.내가 맛본 욕망에 비춰 보면불로 끝난다는 쪽을 편들겠네.하지만 세상이 두 번 멸망한다면,난 증오에 대해서도 잘 알기에얼음의 파괴력 역시불에 못지않게 엄청나며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겠네.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가 46세 때인 1920년에 발표한 시입니다. 9행짜리 짧은 시이지만 의미는 깊습니다. 시인은 인간의 욕망과 증오를 ‘불’과 ‘얼음’에 비유하면서 이것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이 시를 보는 세 가지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우선 프로스트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이 시는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지옥’ 편에 나오는 ‘끓는 피’와 ‘화염 속’ 불의 형벌, 몸 전체가 얼음 속에 갇히는 형벌이 그것이지요. 둘 다 세상의 종말을 부르는 죄악입니다.또 하나는 자연과학적 관점입니다. 저명한 천문학자 할로 섀플리는 자신이 ‘불과 얼음’에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시가 발표되기 1년 전에 프로스트와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자기가 천문학자라는 것을 안 프로스트가 “세상이 어떻게 끝날 것 같습니까?” 하고 물었답니다.이 질문을 받은 그는 “태양의 폭발로 지구가 불타거나 그렇지 않다면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에서 천천히 얼어붙을 것”이라고 대답했는데, 1년 뒤에 ‘불과 얼음’이 발표된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는 “과학이 예술 창작에 어떻게 영향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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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에 새겨진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새로운 거상(巨像)              엠마 라자러스두 개의 땅을 정복자의 발로 밟고 있는저 그리스의 청동 거인과 달리여기 파도에 씻기고, 석양에 빛나는 관문에횃불을 든 승리의 여신이 서게 되리라.그 횃불은 번개를 품고, 그녀의 이름은망명자의 어머니. 횃불 든 손은온 세계를 환영의 빛으로 밝히고온화한 눈은 다리로 이어진 두 항구 도시를 보네."오랜 대지여, 너의 옛 영광을 간직하라!"그러면서 굳은 입술로 그녀는 외치리라."나에게 보내다오. 너의 지치고, 가난하고,자유롭게 숨쉬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을,풍요로운 해안가의 가련한 사람들을,폭풍우에 시달려 갈 곳 없는 사람들을,나 황금 문 곁에서 등불을 높이 들고 있을 테니."미국 이민자의 희망,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시입니다. 미국 시인 엠마 라자러스(Emma Lazarus)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883년에 썼습니다. 그의 염원에 힘입어 여신상은 3년 뒤인 1886년에 세워졌지만, 그는 완공 다음 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1903년 여신상의 받침대에 이 시가 새겨짐으로써 그의 이름은 영원히 남게 됐습니다. 여신상이 왼손에 든 책에는…자유의 여신상은 뉴욕항 입구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키 93.5m, 무게 204톤의 거상(巨像)이지요. 프랑스가 187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 선물한 것입니다. 이 선물이 미국 땅에 전달된 것은 1885년 1월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분해한 200여 개의 구리판을 배로 운반해 조립해야 했는데, 그 예산이 없어서 한동안 하역장에 방치돼 있었지요. 이 사연을 들은 퓰리처가 신문 모금 캠페인을 벌였고, 그 모금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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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든 밥집이 있는 골목 [고두현의 아침 시편]

    밥집 골목이현승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질 때그것은 익숙한 표정 하나를 잃어버리는 일이고가령 입맛을 다시는 것도 거기에 포함되겠지만몸의 분별력이란단순한 반복 속에서 예리해지는 것인데혀의 경우도 그렇다바람은 바깥양반이 피웠는데소태 같은 나물무침을 손님이 받아내야 하는 그런어떤 사람들이든 밥집이 있는 골목을 지날 땐금세 타인의 허기도 내 것이 되고이런 이상한 가족을 식구라고도 한다골목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표정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그것이 배고픔의 표정이다정든 밥집이 있는 골목은 초입에만 들어서도거친 가슴을 다독이는 힘이 있다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지는 것만으로도우리는 결딴난 연애보다 참혹한 표정이 된다쫓을 대상은 없고 그저 쫓기는 자의 심정으로“일상이 시고, 시의 재료이고, 삶 자체죠. 제 시가 구체적인 사건과 경험에서 나오다 보니 시를 쉽게 쓰기가 힘들어요. 한때는 좋은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잖아요?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고 쓰던 시를 요즘은 저를 바꾸려고 써요. 제 시로 일상의 혁명 정도는 이룰 수 있겠지요.”이현승 시인에게 시는 ‘삶의 질료’이자 ‘일상의 혁명’을 꿈꾸는 씨앗입니다. 생활 속의 사건들은 모두 그에게로 와서 시가 되지요. 그는 이렇게 복잡다단한 현실의 단층을 깊이 들여다보고 민감하게 조응하면서 그 이면의 풍경까지 하나하나 그려냅니다.그의 두 번째 시집 『친애하는 사물들』에 나오는 시 ‘밥집 골목’에는 다섯 개의 ‘표정’이 겹쳐 있습니다. “자주 가던 밥집이 하나 없어질 때/ 그것은 익숙한 표정 하나를 잃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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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에 '눈의 묵시록'을 읽는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눈의 묵시록송종찬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잔해가 없다그곳이 하늘 끝이라도사막의 한가운데라도끝끝내 돌아와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눈이 따스한 것은모든 것을 다 태웠기 때문눈이 빛나는 것은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촛불을 켜고눈의 점자를 읽는 밤눈이 내리는 날에는 연애도전쟁도 멈춰야 한다상점도 공장도 문을 닫고신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성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혀를 내밀어보면뼛속까지 드러나는 과거갈 데까지 간 사랑은흔적이 없다사랑과 인생의 극점을 보여주는 한 편의 묵상록! 이 시는 송종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첫눈은 혁명처럼>(2017)에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을 펴내기 전에 시인은 ‘눈의 제국’ 러시아에서 4년 넘게 지냈습니다. 그 특별한 시간과 공간이 이렇게 빛나는 시를 탄생시켰군요.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포스코에 입사한 시인은 2011년 러시아 천연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자원해 모스크바로 떠났습니다. 직함이 ‘포스코 러시아 법인장’이었으니 어깨가 무겁고 임무 또한 막중했습니다. 철광석과 석탄 등 질 좋은 철강 원료를 현지에서 값싸게 사들이고 포스코의 고급 철강 제품을 러시아에 판매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습니다.연해주의 하산과 북한의 나진 선봉을 연결하는 남·북·러 물류 협력사업 ‘나진~하산 프로젝트’까지 진행했지요. 그 덕분에 시베리아 석탄이 나진항을 거쳐 포항으로 들어오고, 우리 철강 제품이 포항에서 북한, 러시아로 가는 유라시아 대륙 물류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이렇게 중후장대한 일을 해내는 틈틈이 그는 광활한 러시아의 눈밭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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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상 수상 시인이 발견한 행복 [고두현의 아침 시편]

    행복                               칼 샌드버그인생의 의미를 가르치는 교수들에게행복이 무엇인지 물었네.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유명한 회사 사장들에게도 물었네.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마치 내가농담이라도 하는 듯 웃음을 지었네.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데스플레인즈 강을 따라 산책 나갔네.그리고 보았네, 한 무리의 헝가리 사람들이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나무 밑에서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을.미국 시인 칼 샌드버그(1878~1967)의 시입니다. 스페인 이민자의 아들인 그는 어릴 때부터 무척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대장장이인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지요. 그는 11세부터 이발소 급사로 일했고, 우유배달과 벽돌공, 농장 일꾼 등 온갖 밑바닥 일을 다 했습니다.스무 살 때 미국-스페인 전쟁이 터지자 자원해서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습니다. 이후 신문 기자가 되어 취재 현장을 누비면서 시를 썼습니다. 문예지에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하면서 ‘시카고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며 시집과 링컨 전기로 퓰리처상을 연거푸 받았습니다.이 시는 38세 때 펴낸 첫 시집 <시카고 시편>에 실린 것으로, 행복의 의미를 한가로운 가족의 모습과 함께 묘사한 것입니다. 지식과 명예를 상징하는 교수,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사장이 아니라 휴일 오후 가족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헝가리 이민자들로부터 행복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내용이지요. 이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한껏 누릴 줄 압니다. 행복은 감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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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드리면 바로 반응하는 미모사의 비밀 [고두현의 아침 시편]

    미모사김민서포트에서 차가 끓고 있다들꽃을 발로 차고 다니는몹쓸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손님이 말했다나는 하얗게 센 민들레를불지 않고 발로 차서 날려주었는데내가 어떤 말을 해도당신은 나를 몹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왜인지 그건 내가그동안 나를 탁월하게 변명해 왔다는 증거 같아요잎이 움츠러드는 것을 지켜보면서미모사 같은 사람에겐민감함이 건강함일까요2019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잎이 움츠러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모사 같은 사람에겐/ 민감함이 건강함일까요’라고 묻는 장면이 눈길을 끕니다. 젊은 여성의 내면 심리와 섬세한 감성 묘사가 돋보이는 시인데, 미모사 잎은 실제로 너무나 민감해서 손만 갖다 대면 금방 움츠러들지요.제가 미모사를 처음 만난 건 오래전 초여름 날 오후였습니다. 한적한 산길에서 얼떨결에 마주쳤지요. 첫눈에 봐도 참하고 보드라운 모습이었습니다.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했지요. 어디에서 봤을까, 한참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딱히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습니다.그런데 미모사는 손끝을 안으로 오므리더니 아예 손을 밑으로 내려버렸습니다. 무엇엔가 섭섭해서 뾰로통하게 토라진 듯했습니다. 새침한 것 같기도 하고 수줍어하는 것 같기도 했지요.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잎 접는 풀미모사는 신경이 예민해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양쪽 잎을 접어버린다고 해서 별명이 ‘신경초(sensitive plant)’입니다. 특별한 자극이 없으면 낮 동안 잎을 펴고 있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잎을 닫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잠자는 것 같아서 ‘잠풀’이라는 이름도 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