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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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사랑하고 싶다면 거울을 보세요 [고두현의 아침 시편]
사랑 이후의 사랑데릭 월컷그때가 오리라.네 문 앞에 도착해네 거울 속의 너를큰 기쁨으로 반길 때가,둘이 서로의 환영에 미소 지으며,이렇게 말하리라, 여기 앉아라. 먹어라.넌 한때 낯설었던 너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리라.포도주를 따르라. 빵을 주어라. 네 마음을자신에게 돌려주어라, 평생 너를 사랑해 왔으나네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느라 외면했던너를 가슴 깊이 알고 있는 그 낯선 이에게.책장 위의 연애편지를 내려놓고,사진들을, 절박한 메모들을 걷어내라.거울 속에서 너의 이미지를 벗겨내라.앉아라. 네 삶을 잔치처럼 누려라.이웃집 젊은이가 실연을 당했습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자신을 책망하며 슬퍼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후회와 원망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폭음, 폭식에 ‘이불킥’으로 새벽을 맞기도 합니다. 밤새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위해 이 시를 골랐습니다.카리브해의 대표 시인 데릭 월컷은 이 시에서 이별 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이별의 감정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발로 오지요. 슬픔, 외로움, 분노, 억울함, 수치, 후회, 불면 등이 묶음으로 옵니다. 그 위에 얹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반복해 곱씹는 ‘반추’입니다. 이 반추가 이별 뒤 고통을 오래 끌고 가며 우울과 자기 의심을 키웁니다.월컷의 시 ‘사랑 이후의 사랑’은 이런 감정을 해소하는 해독제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의 위기는 감정 자체보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 즉 자기 자신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증폭되지요. 이럴 때 월컷의 시가 도움을 줍니다. 시인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감정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일깨웁니다.그러면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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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보다 여정이 더 중요한 이유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이타카 콘스탄티노스 카바피네가 이타카를 향해 길을 떠날 때,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모험과 발견으로 가득하기를.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네 생각이 고결하고숭고한 감동이네 정신과 육체에 깃들면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네가 맞이할 여름날 아침이 수없이 많으리니크나큰 즐거움과 기쁨을 안고미지의 항구로 들어서게 되면페니키아 시장에서 길을 멈춰어여쁜 물건들을 사라.자개와 산호, 호박과 흑단온갖 감각적인 향수를주머니가 허락하는 한 관능적인 향수를그리고 이집트의 여러 도시에 들러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그곳에 이르는 것이 네 궁극적인 목표이니그러나 절대 서두르지 마라.비록 그 길이 오래 걸리더라도늙어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므로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그 땅이 보잘것없다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 없고너는 그 가득한 경험으로 길 위에서 현자가 되었으니마침내 이타카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리라.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1863~1933)는 이 시에서 우리 인생의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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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인숙…늘 새 손님이 오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여인숙잘랄루딘 루미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채의 여인숙.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네.기쁨, 우울, 옹졸함,잠깐 스쳐가는 깨달음이뜻밖의 방문객으로 찾아오네.그 모두를 환대하고 맞아들이라!설령 슬픔의 무리라 하여네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가구를 몽땅 없애버린다 해도,그 손님을 정중히 대하라.그는 어쩌면 너를 비워내고새로운 기쁨을 들이려는 것일지 모른다.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악의,그들을 문간에서 웃으며 맞고집 안으로 초대하라.무엇이 찾아오든 고마워하라.모두가 저 너머로부터 온인도자들이니.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인간을 “한 채의 여인숙”이라고 표현합니다. 여인숙은 나그네를 받는 곳이지요. 주인이 손님을 마음대로 골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손님이 문을 두드리면 열어줘야 합니다. ‘기쁨’이 찾아오면 더없이 좋겠지만 ‘우울’과 ‘옹졸함’, ‘슬픔’과 ‘분노’도 찾아옵니다. 이런 감정은 문을 잠근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문을 두드리고, 벽을 흔들고, 잠을 깨웁니다.슬픔의 무리가 집을 부숴도…그래도 루미는 “그 모두를 환대하고 맞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설령 “슬픔의 무리”가 가구를 부수고 집을 난폭하게 휩쓸어도 “정중히 대하라”고 합니다. 그 손님이 “저 너머로부터 온 인도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이 역설은 고대의 지혜와 맞닿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낯선 손님은 신의 얼굴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크세니아(ξενία, 영어 xenia)’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의 ‘환대’는 사적인 친절이 아닌 공적인 질서였습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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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소포 속 눈물겨운 유자 아홉 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늦게 온 소포 고두현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듯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개."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몇 개 따서너어 보내니 춥울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글썽글썽 녹고 있다.편집자 주) 아침시편을 담당하는 고두현 시인의 시 ‘늦게 온 소포’가 올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예정입니다. 마침 시인이 자신의 심정을 담은 글이 있어 지면에 소개하면 좋을 듯 싶어 가지고 왔습니다.그날 밤 늦은 시간에 소포가 도착했다. 폭설 때문에 배달이 늦어진 듯했다. 글씨를 보니 어머니 필체였다. 미리 전화도 안 주시고 웬 소포?겉포장을 뜯는 데만 한참 걸렸다. 꽃게 등짝 같은 마분지를 벗겨내니 닳고 닳은 내의가 드러났다. 낡은 버선과 장갑도 나타났다. 그렇게 몇 차례 포장을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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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10초 만에 없애는 법 [고두현의 아침 시편]
독을 품은 나무윌리엄 블레이크나는 친구에게 화가 났네.그에게 분노를 말했더니 분노는 사라졌네.나는 원수에게 화가 났네.그에게 말하지 않았더니 분노는 자라났네.나는 무서워서 분노에 물을 주었네.밤낮없이 내 눈물로 적셨네.나는 그것을 미소로 햇볕에 쬐었네.부드럽고 기만적인 아양으로 키웠네.그 나무는 밤낮으로 자랐네.마침내 빛나는 사과를 맺었네.내 원수는 그것이 빛나는 것을 보았네.그리고 그것이 내 것임을 알았네.밤이 하늘을 가린 사이에그는 내 정원으로 몰래 들어왔네.아침에 나는 기뻐하며 보았네.그 나무 아래 뻗어 있는 내 적을.이 시는 첫 4행에서 분노의 근본 원인과 분노의 독을풀어줄 해독제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시인은 친구에게 화가 날 때 말을 함으로써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을 대할 때는 입을 다물었고 분노를 키웠습니다.마치 아메리카 인디언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와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내 안에는 서로 이기려고 싸우는 두 마리 늑대가 있지. 하나는 악이란다. 악한 늑대는 분노와 증오, 시기, 탐욕, 오만, 원한, 죄책감, 열등감, 거짓말, 이기심이지. 두 번째는 선이란다. 이 늑대는 기쁨과 사랑, 공감, 평화, 희망, 조화, 겸손, 친절,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지.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데 그런 싸움이 네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단다.” 손자가 “그래서 누가 이겨요?”라고 묻자 노인은 답합니다. “그건 내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지.”명분의 거름을 먹고 자라나는 분노역사를 보면, 로마 공화정 말기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분노’ 때문에 ‘독 사과’를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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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햇빛의 오묘한 힘 [고두현의 아침 시편]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에밀리 디킨슨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비치네.겨울 오후-대성당에서 들려오는 성가의무게처럼 짓누르며-하늘의 상처를 주는데도-겉으로는 흉터 하나 없고,그 뜻이 닿는 내면엔큰 변화가 있네-누구도 가르칠 수 없네- 아무도-그것은 봉인된 절망-공중으로부터 보내진제국의 고뇌-그것이 올 때, 풍경들은 귀 기울이며-그림자들은- 숨을 멈추네 -그것이 사라질 때, 마치 죽음의 모습처럼아득함을 느끼네-에밀리 디킨슨은 시의 첫 행에서 겨울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비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왜 “대성당에서 들려오는 성가의/ 무게처럼” 짓누른다고 했을까요. 어떤 점에서 압박감을 느꼈을까요.겨울에는 낮이 짧고 흐린 경우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빛의 기울기(slant)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지구는 약 23.5도 기울어진 채 자전합니다. 이 기울기와 공전이 결합해 계절이 생기지요.자전축의 기울기와 공전 궤도 덕분에 계절마다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 기온, 생태계가 달라집니다. 겨울에는 북반구가 태양에서 멀어져 태양 빛이 더 낮고 짧게 비추기 때문에 낮이 짧고 밤이 길어집니다. 한마디로 태양과 지구 사이의 이 각도가 겨울의 본질이지요.이 시를 읽은 미국 정신과 의사 노먼 로젠탈은 “단 몇 마디 단어만으로 겨울 빛의 핵심을 찌르는 능력과 통찰이 놀라울 정도로 빛나는 시”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는 계절성 정서장애(SAD)를 처음으로 정의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광선요법을 개발한 의사입니다.로젠탈이 이 시를 처음 만난 순간은 한 통의 편지를 열었을 때였다고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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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문학관 울린 '핏줄' 낭독 [고두현의 아침 시편]
핏줄신달자핏줄 속에는큰 손이 있는기라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캉께핏줄 속에는발자국도 없이저벅저벅 걸어와 기척 없이 몸 위에 드러눕는뭉클한 가슴이 있는기라그 뭉클한 가슴을 생으로 떼어 줘도 될 것 같은아니 떼어 준 그루터기에서 비집고 나오는새순 같은 그 질긴 생명력을몇 배로 키워 다시 핏줄 안으로쏴아 쏴아 내려 붓고 싶다캉께핏줄 속에는항시 몸비 마음비가 내려뚝 뚝 떨어져 내려뚝 뚝 떨어져 내릴 때마다 아파 아파 아파라에미는 입에 들어가는 밥을 꺼내뜨거운 화기로 뭉쳐 온몸 비비며핏줄을 보호하려모은 두 손이 다 닳았다 안 카드나그래, 핏줄은 축축한기라 끈적끈적한기라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징글징글한 기도인기라그래서 핏줄은 푸르른 가지 속에 붉은 생명이 들어 있능기라니 아나?고향도 아버지같이 핏줄인기라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으로 태어난 고향물이지만 쇠뭉치 같은 바위보다 더 무거운그 질긴 줄을 저릿저릿한 핏줄이라 안 카드나수세기를 흘러가는 줄끊을 수 없는 역사라 안 카드나지난 4일 오후 경남 거창에서 열린 신달자문학관 개관식에서 연극 배우 박정자 씨가 신달자 시인의 시 ‘핏줄’을 낭독하고 있다.갑작스레 한파가 닥친 4일 오후, 경남 거창 남하면 대야리 문화마을. 거창이 고향인 신달자(82) 시인의 이름을 딴 ‘신달자문학관’ 개관식에서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이 시 ‘핏줄’을 낭독하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핏줄 속에는/ 큰 손이 있는기라/ 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 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캉께”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강한 억양이 행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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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하루같이 [고두현의 아침 시편]
천년을 하루같이-물건방조어부림1 고두현그 숲에 바다가 있네날마다 해거름 지면밥때 맞춰 오는 고기먼 바다 물결 소리바람 소리 몽돌 소리한밤의 너울까지 그 숲에 잠겨 있네그 숲에 사람이 사네반달 품 보듬고 앉아이팝나무 노래 듣는당신이 거기 있네은멸치 뛰고 벼꽃 피고청미래 익는 그 숲에 들어한 천년 살고 싶네물안개 둥근 몸뽀얗게 말아 올리며천년을 하루같이하루를 천년같이.물미해안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꼽힙니다. 경남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약 30리 해안길. 두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물미해안이라고 합니다. 바닷가를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이 낭창낭창한 허리를 닮았지요. 독일 마일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그 길이 시작되는 초입, 독일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물건방조어부림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1.5km 길이에 30m 너비의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초승달 모양으로 바다를 넓게 보듬어 안은 이 숲은 강한 바닷바람과 해일을 막는 방조림 기능뿐만 아니라 물고기 떼를 불러 모으는 어부림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지요.규모도 남해안 활엽 방풍림 중 가장 큽니다. 숲의 나이는 약 400년, 이곳서 자라는 나무는 1만 그루가 넘습니다. 하늘을 향해 팔을 활짝 벌리고 선 노거수가 2000여 그루, 그 허리춤에서 키 재기를 하는 하층목이 8000여 그루…….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나무의 종류는 느티나무, 팽나무, 상수리나무, 이팝나무, 모감주나무, 푸조나무 등 40여 종에 이르지요. 숲속으로 산책로가 잘 나 있어 걷기 편하고 쉬기에도 좋습니다.숲에서 바다 쪽을 보면 몽실몽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