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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업(生業)이 직업(職業)보다 숭고한 이유 [고두현의 아침 시편]

    생업                                윤효종로6가 횡단보도원단두루마리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숨을 고르고 있었다.신호총이 울렸다.장애물을 요리조리 헤치며동대문시장 안 저마다의 결승선을 향해순식간에 사라졌다.좀처럼 등위를 매길 수 없었다.모두 1등이었다.* 윤효: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배꼽> 등 출간. 편운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수상.벌써 12월 말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 짧으면서도 강렬한 시 ‘생업’을 소개합니다.생(生)은 윤효 시인의 문학적 화두 중 하나입니다. 생이란 ‘생명’과 ‘목숨’의 비밀을 여는 열쇳말이죠. 나무로 치자면 가장 큰 가지, 풀꽃으로 치면 가장 실한 줄기가 곧 생입니다. 갑골문에서 ‘생(生)’은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날 생(生)이고, 낳을 산(産)입니다. 이 글자는 살 활(活)과 있을 존(存)의 뜻까지 아우르지요.생업(生業)은 목숨 걸고 집중하는 일이 가운데 생업(生業)은 우리가 목숨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집중하는 일입니다.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직업(職業)과 다르죠. 윤효 시인은 분초를 다투며 원단을 실어 나르는 시장통 오토바이 짐꾼들을 보면서 ‘생업’이라는 시를 썼습니다.이 시에는 ‘숨을 고르고’ 잔뜩 긴장해 있다가 ‘땅’ 하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튀어 나가는 달리기 선수들의 속도가 응축돼 있습니다. ‘장애물을 요리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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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수녀가 암을 이긴 비결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장 거룩한 것은장재선겨울 끝에서 봄이 일어나는 것처럼명랑 투병으로 희망을 일으킨다는당신,웃는 얼굴이 떠오릅니다.단정한 시를 쓰는 분이그렇게 말이 빠를 줄은 몰랐지요.암을 다스리는 분이그렇게 많이 웃을 줄도 몰랐지요.교도소 담장 안의 이들과편지를 나눈 이야기를 하다가세상 떠난 이들이 사무쳤던당신,끝내 눈시울을 붉혔지요.가장 거룩한 신앙은가장 인간적인 것임을 알려준당신,웃다 울다 하는 모습이예뻤어요.* 장재선: 1966년 전북 김제 출생.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로 만난 별들>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 수상.장재선 시인은 문학 담당 기자이기도 합니다. 암 투병으로 고생하던 이해인 수녀를 만나고 나서 ‘가장 거룩한 것은’이라는 시를 썼다고 해요.‘시 쓰는 수도자’ 이해인 수녀에게 암이 발병한 것은 2008년 여름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한 것과 달리, 정작 그는 ‘명랑 투병’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밝고 명랑했지요. 이 시의 첫 구절 ‘겨울 끝에서 봄이 일어나는 것처럼’ 맑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명랑 투병? 하하. 제 이름이 명숙이에요”‘명랑 투병’이란 표현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이해인 수녀가 문화부 기자인 장재선 시인에게 들려준 얘기는 이렇습니다.“명랑 투병? 하하. 제 주민등록상 이름이 명숙이에요. 밝을 명, 맑을 숙. 암센터에서 진단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수술 먼저 하겠느냐, 방사선 치료 먼저 하겠느냐고 묻더군요.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즉시 표정을 밝게 하고 답했지요. 60여 년 살았으니까 됐어요. 선생님 좋은 대로 하셔요. 이후의 결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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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집착에서 벗어난 비결은? [고두현의 아침 시편]

    기심을 내려놓다(息機) 이색 이미 지나간 아주 작은 일들도 꿈속에선 선명하게 생각이 나네. 건망증 고쳐 준 사람 창 들고 쫓아냈다는 그 말도 참으로 일리가 있네. 아내를 놔두고 이사했다는 것 또한 우연히 한 말은 아닐 것이라 싶네. 몇 년간 병든 채로 지내온 지금 기심(機心)을 내려놓는 것이 약보다 낫네. *이색(李穡, 1328~1396): 고려 시인, 대학자 오늘은 고려 말기 시인이자 대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시를 읽습니다. 그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고려삼은(高麗三隱)으로 추앙받은 인물이지요. 14세 때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한 수재였습니다. 원나라에서도 과거에 급제해 양국 관리를 겸할 만큼 재주가 뛰어났다고 합니다.건망증 고쳐준 사람을 쫓아내다니그런 그도 여말선초 격변의 역사 속에서 몇 차례나 유배와 추방을 당했습니다. 첫째와 둘째 아들이 살해되는 고통까지 겪었지요. 역성혁명에 협력하지 않아 한때 제자였던 정도전과 조준 등이 겨눈 칼날 앞에 서야 했습니다. 새 정권의 권유를 뿌리치고 낙향했지만, 아들들의 죽음 때문에 결국에는 깊은 병을 얻었죠. 시골집에 은거한 지 2년 만에 부인이 죽고, 그로부터 2년 뒤엔 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시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기심을 내려놓다(息機)’의 행간은 더없이 쓸쓸하고 애잔합니다. 마지막 구절 “기심(機心)을 내려놓는 것이 약보다 낫네”에 주제가 함축돼 있지요. 기심이란 무엇일까요? 기회를 보아 움직이는 마음, 책략을 꾸미는 마음을 말합니다. 옳으니 그르니, 좋으니 싫으니 따지는 마음을 내려놓고 정신을 쉬게 해야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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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과 동주는 왜 당나귀를 좋아했을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프랑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 * 프랑시스 잠(1868~1938) : 프랑스 시인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에서 평생 사랑과 생명을 노래한 전원시인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그는 절친한 벗 앙드레 지드와 함께한 알제리 여행, 잠깐 동안의 파리 생활을 제외하고는 외딴 산골 마을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껴안고 어루만지는 포용과 모성의 시인이자 세기말 프랑스 문학의 퇴폐적 요소를 씻어낸 자연주의 대가로 꼽힙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에 나오는 정서 그대로였지요. 그의 작품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겸손과 온화로 이끌어주는 것들이었습니다. 고답적이고 난해한 시에 넌더리를 내던 독자에게는 청순한 샘물과 같았죠. 이른바 ‘잠주의(Jammisme)’라는 문학운동까지 생겼습니다. 당시 주류를 이루던 난해하고 기교적인 시와 달리 간명하고도 쉬운 시로 독자를 사로잡은 결과였지요. 우아와 은총의 삶…별명은 ‘당나귀 시인’그는 ‘전깃줄 위에 앉은 제비들의 슬프고 불안한 모습’처럼 위태로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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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동파를 키운 '3주(州)'의 공통점 [고두현의 아침 시편]

    금산에서 그려준 초상화에 시를 쓰다 소동파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 같고 몸은 마치 매여 있지 않은 배와 같네. 그대가 평생 한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황주이고 혜주이고 담주라고 하겠네. 心似已灰之木 身如不系之舟 問汝平生功業 黃州惠州州 * 소동파(蘇東坡, 1037~1101) : 북송 시인 이 시는 소동파가 65세 때 하이난섬(해남도) 유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쓴 것입니다. 당시 유명한 화가가 동파의 초상화를 그려줬는데, 그 그림 옆에 이 시를 적었다고 합니다. 이 시에 나오는 황주(黃州), 혜주(惠州), 담주(州)는 어디일까요. 황주는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 동부에 있는 황저우, 혜주는 광둥성(廣東省) 중부의 후이저우, 담주는 하이난성(海南省)의 북쪽에 있는 단저우를 말합니다. 소동파는 왜 이 세 곳을 일컬어 ‘평생의 공업(功業)’을 이룬 장소라고 말했을까요. 이들 ‘3주(州)’의 공통점은 소동파가 온갖 고생을 다한 유배지였습니다. 그가 황주에 유배됐을 때는 나이 43세 때였지요. 조정을 비판하는 글을 지었다는 죄목으로 파직돼 감옥에 갇혔다가 이곳으로 쫓겨난 그는 농사를 직접 지으며 겨우 연명했습니다. 동쪽 언덕에 밭을 가꾸고 숨어 사는 선비라는 뜻의 ‘동파거사(東坡居士)’를 호로 삼은 것도 이때이지요. 그는 너무 가난해서 지출을 하루 150문(文)으로 정해놓고 매월 초에 4500문을 꺼내 30등분을 했습니다. 봉지에 싸서 천장에 매달아놓고, 매일 아침 150문이 든 봉지를 하나만 꺼냈죠. 커다란 대나무통 한 개를 따로 준비해 쓰고 남은 돈을 거기에 넣었습니다. 이 돈을 모아 손님이 찾아오면 겨우 접대를 할 수 있었지요. 그 와중에도 그는 이곳에서 사망률이 높은 어린이들을 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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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숲을 따스히 밝히는 단풍나무처럼… [고두현의 아침 시편]

    그 젖은 단풍나무 이면우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비가 내렸다 오솔길 초록빛 따라가다가 아, 그만 숨이 탁 막혔다 단풍나무 한 그루 돌연 앞을 막아섰던 때문이다 젖은 숲에서 타는 혀를 온몸에 매단 그 단풍나무, 나는 황급히 숲을 빠져나왔다 어디선가 물먹은 포풀린 쫘악 찢는 외마디 새 울음, 젖은 숲 젖은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살면서 문득 그 단풍나무를 떠올린다 저 혼자 붉은 단풍나무처럼 누구라도 마지막엔 외롭게 견뎌내야 한다 나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이 숲의 단풍나무라 생각했다 그대 바로 지금, 느닷없이 고통의 전면에 나서고 이윽고 여울 빠른 물살에 실린 붉은 잎사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초록 숲이지만 그 속엔 단풍나무가 있고 때론 비 젖은 잎, 여윈 손처럼 내밀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말없음표 같은 빗방울 후두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내미는 낯선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아직 몰랐다 다만 여름 숲은 초록빛이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그 젖은 단풍나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고통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 이렇게 살다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세운 두 무릎 사이에 피곤한 이마를 묻을 때 감은 눈 속 따스히 밝히는 한 그루 젖은 단풍나무를 보리라. 지금이 꼭 가을이 아니라도. * 이면우: 1951년 대전 출생. 중학교 졸업 후 보일러공으로 일하다가 마흔 살 넘어 시 쓰기 시작. 시집 , , , 등 출간. 노작문학상 수상. 이면우 시인은 문단에서 ‘보일러공 시인’으로 불립니다. 그의 시는 보일러실처럼 뜨겁다가 비 내리는 숲속의 젖은 단풍나무처럼 서늘하기도 합니다. 시 속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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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편지에 은행잎을 붙이는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은행나무 부부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 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 반칠환: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 , 등 출간. 서라벌문학상 등 수상. 은행나무에는 암수가 따로 있지요. 암나무는 수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를 받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도 수십 년 자란 암나무에만 열립니다. 어린 묘목으로는 암수를 구별하기 어렵죠. 은행나무를 ‘공손수(公孫樹)’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에 할아버지가 심은 뒤 손자 때에야 열매를 보니까요.괴테를 매혹시킨 은행잎의 비밀한자로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를 의미합니다. 열매가 살구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해요. 전 세계에 1종 1속만 있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이어서 ‘살아 있는 화석’으로도 불립니다. 유럽 사람들은 18세기 초까지 은행나무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원산지인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은행나무의 후손을 한 독일인 의사가 일본 근무 후 귀국할 때 갖고 간 뒤 유럽에 퍼졌지요. 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은행나무에 흠뻑 매료됐습니다. 그는 정원에 심어둔 나무를 유심히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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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가면'에서 '목마와 숙녀'까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 박인환(1926~1956): 1926년 강원 인제 출생, 평양의학전문학교 수학, 시집 출간. 1956년 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때였지요. 시인 박인환은 10년 넘게 찾아보지 못한 망우리의 첫사랑 묘지에 다녀왔습니다. 스무 살 풋풋한 나이에 무지개처럼 만났다가 헤어진 여인의 ‘눈동자’와 ‘입술’은 흙에 덮여 사라졌지만, 그에게 남은 회한은 컸지요.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명동 대폿집에서 쓴 시로 노래까지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일까요. 영원히 떠날 마지막 길에 연인의 무덤을 어루만지며 작별을 고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때 이미 ‘세월이 가면’의 초고가 몇 문장 마음에 새겨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명동의 문인 사랑방 ‘명동싸롱’에서 허한 가슴을 달래던 그는 맞은편 대폿집 ‘경상도집’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극작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있었죠. 술잔이 몇 차례 돌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진섭이 박인환에게 “시를 써 주면 나애심에게 불러달라고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