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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71)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 '종신형'

    덴마크 작가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라고 하면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로도 만들어진 《정복자 펠레》의 작가라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넥쇠는 덴마크가 자랑하는 최고의 소설가다. 1869년에 코펜하겐 빈민가에서 가난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고향인 본홀름섬에서 목동, 양화점 직공 등으로 일하면서 여름과 겨울 일이 없을 때 국민고등학교에 다니며 꿈을 키웠다.<종신형>의 주인공 마티스 로우는 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불만이었다. 어머니는 사십대였고 아버지는 그보다도 열 살이나 위였다. 마티스가 장난치고 노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는 무엇이든 하지 못하게 했다. 어려서부터 자기 몫의 일을 해야 했던 마티스는 아버지나 어머니 곁에 있으면 그저 짜증이 났다.작가 넥쇠와 <종신형>의 마티스, 그리고 우리들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작가 넥쇠는 가난한 데다 11남매가 북적이는 집에서 어릴 때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 11남매 가운데 넷째여서 일찌감치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에 투입되었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쉬지 않아 청년 시절 교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고 29세 때 단편집 《그림자》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발표한 《정복자 펠레》가 성공하면서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85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일평생 글쓰기를 계속하여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넥쇠는 다양한 직업을 거치는 가운데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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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구자경과 구본무의 인화와 혁신

    ■ 기억해 주세요LG는 인화를 중시한다. 가족은 물론 임직원 사이가 좋아야 기업이 잘 된다는 경영철학이 깔려 있다. 대기업 경영권 승계도 이런 분위기 탓에 잡음 없이 이뤄져 왔다. LG의 제품 역사에는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닌다. 라디오, TV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것도 LG다.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면 LG 로고가 찍힌 TV를 자주 보게 된다. 호텔 방에 갖춰 놓은 TV가 LG 제품인 경우가 많아서다. LG는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LG의 출발은 진주의 포목점이었다. 창업자는 구인회이고 포목점의 이름은 구인회상점이었다.창업자 구인회 ‘최고 기업 만들자’해방 후 부산에서 화장품, 플라스틱 제품 사업으로 성공을 거뒀고 라디오, 텔레비전 등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서 대기업이 됐다. 구인회가 창업해 국내의 최고 기업을 만들었다면 그의 장남인 구자경과 또 다시 그의 장남인 구본무는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키웠다.구자경은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학교 선생님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친 구인회의 엄명으로 락희화학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공장 직공들과 같이 기름밥을 먹고 뒹굴며 기업 생활을 익혔다. 1969년 창업자 구인회가 6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장남인 구자경이 럭키금성그룹(LG그룹의 옛이름) 회장직을 승계했다. 구자경의 나이 45세였다.럭키금성이 국내에서는 1~2위를 다퉜지만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서는 좁은 국내를 벗어나야 했다. 구자경은 수출을 늘리는 동시에 생산기지 자체를 해외에 만들기 시작했다. 1982년 미국의 헌츠빌에 TV공장을 세웠고 1987년 독일, 1988년에는 영국과 멕시코, 태국, 필리핀 현지에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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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이야기 (23) 정몽구와 품질 기적

    ■기억해 주세요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품질이 나쁜 차로 알려져 있었다. 미국의 까다로운 소비자를 만족시키려면 품질을 끌어 올려야 했다. 정몽구 회장은 품질 혁신에 사활을 걸었고 그 결과 세계 5위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1998년 현대자동차는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정몽구가 새로운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이 됐지만 기쁨에 취할 수만은 없었다. 현대자동차의 품질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신차 품질조사를 하면 현대자동차가 단골 꼴찌였다. 코미디의 소재가 될 정도로 품질이 형편없었다.‘현대차가 80마일 이상 달릴 수 있나’미국의 인기 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의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은 다음과 같은 말로 현대차를 조롱했다. “현대자동차를 80마일(128㎞) 이상 달리게 하는 방법은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것뿐이다.”이러다가는 미국 시장을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회장이 되자마자 전 직원에게 품질 경영을 선언했다. 품질을 경영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라인스톱제’를 도입했다. 불량이 발견되면 생산라인 전체를 멈추게 하는 제도였다. ‘오피러스’의 소음을 잡기 위해 수출품 선적을 40일간 미루기까지 했다.정몽구는 자동차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맡은 첫 일이 전국을 돌며 고장 난 현대차를 고쳐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사장직을 맡았던 것도 현대자동차서비스였다. 자동차가 왜 고장이 나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현장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 경험을 가지고 그는 생산현장을 누볐다. 사장과 고위 임원들에게도 현장으로 내려가서 노동자들과 호흡을 같이하게 했다.그러면서 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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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제임스 조이스 '애러비'

    옆집 누나를 사랑하는 소년열에 들떠서 ‘옆집 누나, 교회 오빠’를 사랑하지 않고 10대를 지나버리면 그만큼 심심한 일은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순수했던 시절 그 누나와 오빠를 떠올리며 아련한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 창고를 꼭 간직하길 바란다.「애러비」의 주인공 ‘나’는 어느 순간 친구 맹간의 누나를 좋아하게 된다. 맹간이 누나를 괴롭힐 때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이 나풀거렸고, 부드럽게 땋아 내린 머리채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도 따라 흔들린다. 아침마다 맹간의 집을 훔쳐보다가 그녀가 현관 앞으로 나오면 바로 책가방을 쥐고 달려 나가 그녀의 뒤를 쫓는다. 갈림길 지점에 오면 ‘나’는 일부러 걸음을 빨리하여 그녀를 앞지른다.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괜히 그 앞에서 서성이는 일, 소년의 마음이 「애러비」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SNS가 발달되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확인하고 바로 만남을 갖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나’가 답답할지 모르지만 사랑 앞에서 가슴이 뛰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듯하다.‘20세기 문학에 변혁을 일으킨 모더니즘의 선구적 작가’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다니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은 무조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T S 엘리엇은 조이스의 소설이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라. 그것이 이 위대한 작가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를 보면 좋을 것이다.『더블린 사람들』은 15편의 단편소설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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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이건희와 초일류 삼성

    삼성전자는 세계적 초일류 기업이 됐다. 인터브랜드 발표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459억달러로 세계 7위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보다는 낮지만 GE와 BMW, 아마존보다 높다.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탄생한것이다.‘위기’ 속 찾아온 ‘기회’삼성을 이렇게 만든 주역은 이건희 회장이다. 이병철은 삼성을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고 그의 아들인 이건희는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것은 1987년. 당시 회사는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문제는 반도체였다. 1983년 이후 막대한 투자가 계속됐다. 그 덕분에 기술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선발 주자들을 상당히 따라잡았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 적자의 연속이었다. 반도체 부문에서의 적자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그러던 중 뜻밖에 행운이 찾아왔다. 1988년 반도체 대박이 터진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 붐 덕분이었다. 컴퓨터는 원래 집채만큼 큰 물건이었는데 스티브 잡스 같은 미국의 천재들이 책상 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크기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컴퓨터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부품인 반도체 역시 날게 돋친 듯 매출이 늘었다.한 해 동안 반도체로 벌어들인 이익이 그동안의 적자를 다 메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삼성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올라섰다.과감한 사업 구조조정그다음 사업은 자동차였다, 아버지 때부터 시도했지만 정부가 허가를 안 내줘서 숙원사업이 됐다. 김영삼 정부 때 어렵사리 허가를 받아 자동차사업에 착수했다. 닛산과 합작으로 출시한 SM5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외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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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구로야나기 테츠코 '창가의 토토'

    제비에게 말을 거는 토토···수업 방해초등학교 1학년 때 퇴학당한 토토. 수업 시간에 신기한 책상을 수없이 여닫고, 창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집을 짓는 제비에게 말을 걸어 도대체 선생님이 수업을 할 수 없게 한 아이다. 어머니는 가장 빠르게 퇴학당한 딸을 전교생이 채 50명이 안 되는 도모에 학원으로 데려간다. 전철 6량을 교실로 사용하는 작은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토토는 “와!”하고 함성을 지른다.첫날 토토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준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마음껏 뛰놀며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무슨 일을 하든 제지하지 않고 “끝나면 전부 원래대로 해놓거라”라고 말할 뿐이다. 아이들이 가장 배우고 싶은 과목으로 수업을 시작하니 시간표가 따로 없다. 새로운 전철 한 량이 더 들어오는 밤,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재웠다가 보게 해주는 학교다.토토의 첫 번째 친구 야스아키는 소아마비 장애가 있다. 몸이 불편한 친구가 여럿 있지만 선생님은 다같이 옷을 벗고 수영하도록 해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공부하고, 운동회 때 상으로 채소를 주는 학교가 바로 도모에 학원이다.천편일률적인 학교61개의 짧은 이야기로 이어지는 《창가의 토토》는 수필 같기도 하지만 잔잔하나마 기승전결을 갖춘 소설형식을 띠고 있다. 출간 첫해에 5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세계 34여 개국에 소개돼 독자들이 ‘토토짱앓이’를 할 정도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 한국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창가의 토토》가 사랑받는 이유는 문제아로 찍혀 전학 온 아이들이 밝게 자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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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추리소설 개척자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는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프랑스의 기 드 모파상과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힌다. 포는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로 활동했는데 SF, 팬터지, 추리, 공포 문학의 원조를 따질 때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대단한 작가이다. 현대화된 소설의 틀을 마련한 독창적인 이론가면서 추리소설 개척자인 포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현대 단편소설이 체계화되었다.포의 추리는 소설 앞부분에 단서를 제공하고, 특정한 인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지금까지 모든 추리 형식의 소설이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정석이다. 사건을 시간 경과에 따르는 평이한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매듭을 동시다발적으로 풀어나가는 새로운 서술법으로 문학을 풍부하게 만든 것이다.<어셔가의 몰락>은 단편의 요체를 환상과 추리에서 찾은 포의 문학론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환상과 현실의 연결 속에서 단서가 계속 제시되는 어셔가의 몰락 과정을 따라가 보자.‘음산하고 어둡고도 조용하던 가을 어느 날, 구름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낮게 하늘을 내리누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요즘처럼 더울 때 딱 읽기 좋은 내용이다. ‘나’는 음침한 저택의 주인 로데릭 어셔와 몇 주일을 함께 지내기로 한다. 어렸을 적 유쾌한 친구였던 로데릭이 ‘몸이 극도로 쇠약하고 정신이상으로 괴롭다’는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음산하고 곰팡이 낀 풍경 묘사 ‘탁월’음산한 주변 풍경, 곰팡이와 거미줄이 뒤덮은 저택, 부서진 석조물 등 포는 소설 앞부분을 온통 저택과 주변 분위기 묘사에 할애하며 사건을 예고한다. ‘눈에 띌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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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쓰러진 기업들

    서울 종로2가 사거리에서 남산 쪽으로 걷다 보면 3·1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청계천 위에 걸쳐진 다리다. 사실은 그 길의 이름 자체가 3·1로다. 그리고 그 다리 입구에 서 있는 건물의 이름은 3·1빌딩이다. 층수도 지상 31층, 1971년 지어진 건물인데 근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 건물을 지은 건축주는 삼미그룹이었고 오랫동안 삼미그룹의 사옥으로 쓰였다. 삼미가 도산하는 바람에 건물 주인도 바뀌었다. 현재는 홍콩의 스몰락인베스트먼트 소유다.30대 대기업 중 16개 쓰러져삼미그룹은 특수강 분야에 전문화해서 크게 성공한 기업이었다. 특수강이란 철판에 크롬, 니켈 등을 섞거나 열처리를 해서 만든 금속이다. 스테인리스가 대표적 특수강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세계 특수강업계 2위에 오를 정도로 사업이 잘됐다. 그러나 경기는 위축되었고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무너졌다.기업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한편에선 생겨나고 다른 쪽에선 죽는다. 특히 1997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기업이 죽었다. 30대 재벌기업 중에서 16개가 도산하거나 해체됐다. 삼미뿐만 아니라 기아자동차그룹, 한보그룹, 쌍용그룹, 쌍방울그룹 등이 그 이름이다.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다.한보그룹도 철강에 투자했다가 무너졌다. 한보는 세무서 직원을 하던 정태수가 세웠다. 대치동의 쓸모없어 보이는 땅에 아파트를 지었는데 대박이 났다. 지금의 은마아파트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사업을 벌려서 돈을 벌었다. 1990년대 초부터 충남 당진에 대규모의 제철소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1997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했다. 사업 중 문제가 생기면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해결하곤 했다.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