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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48) 역사는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 체크 포인트인간의 삶을 단칼에 무 자르듯 재단할 수는 없어요. 인간과 역사는 원래 복잡하고 다층적인 것이지요.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은 그 자체로 불변이다. 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사건의 의미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당대인이나 후대 역사가들이 존재를 몰랐던 문서나 서신, 유물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역사적 인물 본인이 감췄던 비밀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을 단칼에 무 자르듯 재단할 수 없다. 인간과 역사란 본디 다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이미 벌어진 일인데도 어떻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차이코프스키(1840~1893)의 사망 원인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병사인가? 정설은 ‘셋 모두 다’이다. 최근에는 사고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죽음은 하나인데 원인이 서너 개인 경우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차이코프스키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당시 관습으로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37세 때 처음 결혼하지만 두 달 만에 파경을 맞았다. 얼마나 가정생활이 힘들었던지 차이코프스키가 투신자살까지 시도할 정도였다. 그는 평생에 걸쳐 우울증을 앓았다. 공식 정신과 진료 기록도 세 차례나 있다. 인생의 각기 다른 시기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을 만큼 마음의 평정이 깨져 있었다는 뜻이다.동성애자들에게 혹독했던 제정 러시아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던 듯하다. 문제는 제정 러시아가 동성애자들에게 혹독한 사회였다는 점이다. 동성애를 하다 적발되면 정당한 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당사자를 처형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형벌이 종신형이었다. 연좌제 비슷한 제도도 있었다. 친구 가운데 누군가가 처벌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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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평생 두 번 이상 읽어야 할 책매년 엄청난 책이 쏟아져 나온다. 이미 나온 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책의 홍수 속에서 그저 떠밀려가기보다 나에게 도움 되는 책을 선별해야 한다. 이리저리 피해가려고 해도 여기저기서 툭툭 얼굴을 내미는 ‘인생 숙제’ 같은 책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인과 바다>이다. 이 책은 청소년 시절에 한 번 읽고 나이가 좀 들어서 또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하품이 좀 나왔지만 철들어서 읽을 때는 인생의 묘수를 깨달았다’는 이들이 많다. 지금 한 번, 먼 후일 한 번, 두 번 읽을 것을 권한다.헤밍웨이는 전쟁을 소재로 한 <무기여 잘 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비롯한 수많은 명작을 쓴 미국 작가이다. 제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터키 내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헤밍웨이의 작품 특징은 강렬한 현장성에 있다. <노인과 바다> 역시 20년 간 생활했던 쿠바와 낚시를 즐겼던 멕시코 만류를 배경으로 탄생했다.<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53세였던 1952년에 발표하여 엄청난 호평을 얻었고 1953년에 퓰리처상,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헤밍웨이가 생애 마지막으로 발표한 이 작품이 왜 갈채를 받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심은 걸까. 독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주인공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듯한 생생함과 함께 큰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스토리는 간단하고 내용도 길지 않다. 산티아고라는 노인은 84일째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40일까지 함께 했던 마놀린이라는 소년은 부모의 강요로 다른 배에 가버렸다. 산티아고를 잊지 못하는 마놀린이 찾아와서 커피를 대접하며 용기를 준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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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의 대기업 경성방직 광목시장서 일본과 경쟁하다

    서울 영등포역 앞 지하도를 걷다 보면 타임스퀘어 쇼핑몰에 이른다. 단일 쇼핑몰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원래 경성방직 공장이 있던 곳인데 경방필백화점을 거쳐서 지금의 건물이 들어섰다. 지금도 쇼핑몰 1층 밖으로 나가면 <경성방직 사무동>이 유적으로 보존돼 있다.■ 기억해 주세요^^1919년 청년 김성수는 전국의 부자들을 설득해 민족자본을 모아 경성방직을 설립해요. 1956년엔 동생 김연수가 경성방직에서 갈라져 나와 지금의 삼양그룹을 창립하죠.영등포 타임스퀘어의 역사는?경성방직은 한민족 최초의 대기업이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의 산물이기도 했다. 청년 김성수는 만세운동의 열기를 경제독립운동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제 광목(면직물)에 맞설 조선제 광목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경주 최부자 등 전국 각지의 유지를 설득해 자본을 모았고 경성방직을 설립했다. 민족자본으로 세운 조선인 최초의 대기업이었다.경제독립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김성수는 인도 독립운동의 주역인 간디와 같았다. 다만 간디는 가내 수공업을 운동의 수단으로 택했던 반면 김성수는 일본에 필적하는 현대식 대기업 설립을 택했다.그러나 김성수는 비즈니스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던 듯하다. 모집한 자본을 사업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다 잃을 정도로 실패를 겪는다. 공장을 완성한 후에도 실적은 부진했다. 김성수는 결국 이 회사의 경영을 동생인 김연수에게 맡긴다. 김연수는 이미 고무신 장사를 성공시켜 기업가적 능력과 소질을 보이고 있었다. 경성방직의 경영을 동생에게 넘긴 김성수는 동아일보와 보성전문(후일 고려대학교) 등 계몽운동에 전념하게 된다.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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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역사적 기록에는 허구가 섞여 있다

    ■아하 ! 이런 뜻이명나라 장수 진인은 정유재란때 일본군과 싸우다 부상을 당해 한양에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 당시 의료수준으론 생명을 잃을 확률이 높았지만 진인은 짧은 시간에 완쾌돼 전장으로 복귀하죠.평소 관우를 숭배해온 진인은 자신이 살아난 것은 관우의 음덕이라 여겨 한양에 사당을 세워요. 그것이 지금의 서울 숭인동에 있는 ‘동묘’죠.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어디일까? 우리는 역사를 ‘사실에 기반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이 ‘역사적 진실’처럼 통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로는 진실과 허구가 현실에서 얽히기도 한다. 서울 동대문 인근에 동묘(東廟: 1602년 건립)가 있다. 보물 142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이다. 남묘(1598), 북묘(1883), 서묘(1902) 등 관우를 모신 사당이 사방에 모두 세워졌으나 지금은 동묘만 남아 있다.임진·정유재란의 와중에고대 중국 장수를 기리는 사당이 한양에 세워진 연유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명(明)나라 지원병을 이끌고 참전한 장수 진인(陳寅) 때문이다. 진인은 정유재란(1597)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淸正)가 이끄는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부상을 당하고 한양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는다. 울산에서 한양까지의 후송 거리도 거리지만 당대의 의료 수준, 위생 상태를 감안할 때 생명을 잃을 확률이 높았다. 놀랍게도 진인은 짧은 시간에 완쾌돼 전장으로 복귀한다.그는 평소 관우를 무신(武神)으로 숭배했는데, 이역 땅에서 살아난 것은 관우의 음덕이라 여겨 사당을 세웠다. 평소에 지니고 다니던 관우의 조각상을 모시는 건물을 지었는데, 명나라 다른 장수들이 비용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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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중편소설 3편에 담긴 아픈 젊음10대와 20대 초반에 읽은 소설 가운데 많은 작품이 절판되거나 품절되었다. 수첩에 문장을 옮겨 틈틈이 들여다보던 『젊은날의 초상』은 반갑게도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1981년 11월에 1쇄를 찍은 이래 79쇄를 이어오고 있다.『젊은날의 초상』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떠돌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하구」, 대학시절을 조명한 「우리 기쁜 젊은 날」, 대학을 중퇴하고 방황하는 젊음을 그린 「그해 겨울」이라는 세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요즘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다시 읽었을 때, 청춘이라면 꼭 품어야 할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경험한 짧은 날과 경험하지 않은 많은 날을 지레 재단하며 아파하기보다 앞선 이들의 통찰에서 실마리를 찾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입학한 지 1년도 못 돼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하구」의 ‘나’는 가출해 깊은 수렁과도 같은 떠돌이 생활을 한다. 하지만 어둡고 낯선 길 위에서 피로를 슬픔 삼아 울다가 형에게 돌아온다. 「우리 기쁜 젊은 날」의 ‘나’는 친구 하가와 김형과 어울려 공허한 관념과 뿌리없는 사유에 의지하며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을 오간다. 김형이 갑작스럽게 죽자 ‘더 확실하게 알기 위해, 더욱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학교를 떠난다.「그해 겨울」의 ‘나’는 2년 동안의 대학 생활이 가져온 피로와 혼란, 김형의 죽음으로 인한 허무와 절망의 분위기에 휩싸여 읊조린다. ‘마침내 삶이 내게 무언가 그 근원적인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까지 변했다. 이를테면 쓴 이 삶의 잔을 던져버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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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부상 박승직, 두산그룹의 터를 닦다

    종로4가 로터리의 창경궁 쪽 모퉁이에 두산그룹 발상지라는 이름의 소공원이 있다. 1896년 박승직이라는 상인이 이 자리에서 박승직 상점을 열었다. 이 상점이 나중에 두산그룹이 된다. 이 소공원은 1996년, 두산그룹이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조성했다. 120년 역사의 두산그룹은 현존하는 한국 기업 중 최장수 기업으로 공인됐다.■ 기억해 주세요^^박승직은 태평양전쟁 막바지이자 해방 직전 상점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6·25 전쟁이 나던 1950년, 86세로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사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1946년 그의 아들 박두병에게 가게 문을 다시 열게 하고 두산(斗山)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갑오개혁과 박승직 상점박승직은 보부상으로 상인 생활을 시작했다. 1882년, 그가 18세 되던 해 전국을 다니며 시골 아낙들이 짠 옷감을 수집해 한양에 팔기 시작했다. 지금의 종로5가 광장시장 부근인 배오개에 집을 마련해 놓고 수집해온 것들을 거래했는데, 정식 가게를 열지는 못했다. 육의전 상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서울에 포목점을 열려면 육의전 상인이어야 했다. 박승직 같은 보부상은 정식으로 가게를 내고 장사를 하면 안 됐다. 광목, 비단, 명주, 모시 같은 옷감뿐 아니라 종이, 어물 등이 모두 규제 대상이었다. 육의전이 아닌 상인들은 ‘난전’이라고 불렸으며 언제든 폭력적 단속을 당해야 하는 처지였다. 수백년간 그랬다. 그 때문에 조선의 상업은 피폐했고 백성들의 삶은 궁핍했지만 수백년 동안 육의점 독점 체제는 변하지 않았다.다행히도 1894년 갑오개혁으로 변화가 왔다. 육의전 독점권이 폐지된 것이다. 떠돌이 상인들, 즉 난전들도 비로소 합법적으로 떳떳하게 자기 가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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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국가에도 행동 우선순위가 있다

    1816~2000년 사이 207개국 존재했으나 지금은 66개국이 사라졌어요.66개국 가운데 50개국이 이웃 나라의 폭력에 의해 사라지는 비극을 겪었죠.‘대한제국’도 ‘사라진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국가도 이제 SPPP 무장해야 ‘생존’ 가능한 시대죠.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무엇부터 먼저 처리하면 좋을지 몰라 갈등합니다. 어느 식당을 가야 할지 몰라 길을 헤매고, 어렵게 한 곳을 찾아가도 메뉴판 앞에서 음식을 고르지 못해 시간을 보내지요. ‘선택 장애’입니다. 일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을 살피고,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을 나누면 좋지만 사라진다지만, 사실은 기준을 어떻게 정하는지부터가 쉽지 않죠.그렇다면, 국가도 행동의 우선 순위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국제 정치학자로 현실주의 이론을 설파한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1980)가 말한 SPPP 이론입니다. 국가 의사결정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Security(안보)입니다. 나라는 생존이 우선이며, 나라가 무너지면 그다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국가’는 영구불멸의 존재가 아닙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타니샤 파잘(Tanisha Fazal)이 2007년에 펴낸 《국가의 죽음(State Death)》은 ‘국가의 소멸’을 주제로 다룹니다. 그녀에 의하면, 1816년부터 2000년까지, 즉 근대국민 국가체제 성립시기를 살피면 이 기간 동안 모두 207개의 나라가 존재했습니다.2000년 현재 이 가운데 66개국이 사라졌습니다. 66개국 가운데 50개국이 이웃 나라의 폭력(전쟁)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대한제국’도 ‘사라진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파잘 교수는 다가올 세계에서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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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대중을 속이는 못된 통계도 있다 !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아니다. 거짓말을 자주 한다. 자기 주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고 입맛에 맞는 수치만 골라쓰는 사람이 있어서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쓴소리도 했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가려내자! 엉터리 통계경제학 교수 출신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틈만 나면 “4대 그룹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9년 전만 해도 40%였지만 지금은 50%가 넘는다”며 재벌을 비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의 합인 GDP를 해외에서 80%를 벌어들이는 4대 그룹(삼성·현대차·LG·SK) 매출과 비교하는 건 비교기준이 틀렸다. 그의 계산법대로라면 중소기업의 GDP 비중은 120%다.국토교통부는 ‘인구 5000만명 중 30.1%가 전국의 개인 토지 소유’라는 보도자료를 냈고, 언론은 이걸 인용해 ‘땅 한 평이라도 가진 사람, 국민 10명 중 3명’이라고 썼다. 토지 불평등의 근거로 들기 딱 좋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있으나마나한 통계다. 한집에서 부동산은 보통 가장 명의로 등록한다. 4인 가구라면 25%가 땅을 독식한다고 말하는 셈이다.대체휴일제 도입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조사에선 찬성이 76.7%,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선 반대가 85.3%였다. 문체부는 쉬는 걸 좋아하는 직장인들에게, 경총은 휴일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자영업자와 임시직에게 물어봤기 때문이다.칼럼니스트 대럴 허프는 통계에 속지 않는 방법으로 △누가 발표했나 △어떻게 조사했나 △빠진 데이터나 숨겨진 자료는 없나 △데이터와 결론 사이에 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