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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적을 잡으려면 왕을 먼저 잡아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전장에 나아가며(前出塞·6) 두보 활을 당기려면 강궁을 당겨야 하고 화살을 쓰려면 긴 것을 써야 하느니 사람을 쏘려면 먼저 말을 쏘아야 하고 적을 잡으려면 먼저 왕을 잡아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데도 한계가 있고 나라를 세움에도 경계가 있는 법. 능히 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면 어찌 그리 많은 살상이 필요한가. * 두보(712~770) : 당나라 시인 두보는 ‘출새(出塞)’라는 제목의 시를 9수 짓고 나서 후에 5수를 더 지었습니다. 여기에 ‘전출새(前出塞)’와 ‘후출새(後出塞)’라는 제목을 붙였죠. 전출새는 토번(吐蕃, 지금의 티베트) 정벌 등 당 현종의 영토 확장 전쟁을 풍자한 시입니다. 적을 잡으려면 먼저 왕을 잡아야 한다는 게 핵심 주제인데, 그만큼 애꿎은 병사와 백성의 목숨을 살리고 전쟁의 피해를 줄이자는 내용입니다. ‘가짜 화살’로 적장을 제거한 지혜이른바 ‘금적금왕(擒賊擒王,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라)’은 병법 36계의 공전계(攻戰計) 제18계에도 등장하지요. ‘장순전(張巡傳)’에 나옵니다. 장순이 안록산의 반란군에 맞서 수양성을 지킬 때였죠. 적장 윤자기(尹子琦)는 13만 대군으로 성을 포위했습니다. 장순의 군사는 고작 7000여 명. 군량마저 바닥나 성이 함락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장순이 병서의 ‘금적금왕’을 떠올렸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수많은 적군 가운데 적장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래서 묘책을 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쑥대와 볏짚으로 ‘가짜 화살’을 만들어 적에게 쏘게 했습니다. 화살을 맞은 적들은 어리둥절했죠. 건초 화살을 집어든 적군 병사가 누군가에게 달려가더니 무릎을 꿇고 화살을 바쳤습니다. 이 모습을 본 장순은 “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로 풀어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소설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재탄생하다. 의 표지에 소개된 문구다. 애덤 스미스의 저서 은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 최초의 경제학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 은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여념이 없는 경제인의 주체적 행동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국부의 증진과 생산력 향상을 가져온다고 주장한 책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다른 말로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수많은 상품을 얼마나 생산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 생산자가 폭리를 취하는 걸 막는 일, 모두 쉬운 문제가 아니다. 230여 년 전에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나 정치권력이 아닌 시장(market)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설명하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팟캐스트를 통해 쉬운 경제학을 알리는 스탠퍼드대학의 러셀 로버츠 교수는 이 책을 집필하고 출판하는 과정이 몹시 어려웠다고 한다. 서문에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거부당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경제이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는 데다 경제를 쉽게 알리는 게 힘들다는 방증이다. 경제학과 문학의 충돌5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은 MIT대학 출판부에서 유일하게 출판된 경제 로맨스 소설로, 현재 미국 여러 대학이 경제학 토론 교재로 사용하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격찬한 책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로맨스 소설 형태로 기술해 술술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주인공은 워싱턴의 사립 명문 에드워드고등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샘과 문학 교사 로라. 자본주의 체제의 신봉자인 샘과

  • 교양 기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비결 [고두현의 아침 시편]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에드거 게스트누군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하지만 그는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어.“그럴지도 모르죠.”스스로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그는 싱긋 웃으며 덤벼들었지.걱정하는 기색조차 없었어.노래를 부르며 남들이 할 수 없다던 일과 씨름했고,결국 그 일을 해냈지.누군가 비웃었어.“아무도 한 적이 없는 일을 네가 한다고?”하지만 그는 모자와 웃통을 벗어던졌지.그리고 시작했어.턱을 치켜들고 미소를 지으며,어떤 의심도 변명도 하지 않고노래를 부르면서 할 수 없다는 그 일과 씨름했고결국 그 일을 해냈지.수많은 사람이 말하지.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많은 사람이 실패를 예언해.그들은 또 말하지.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하지만 활짝 웃으며 덤벼들어 봐.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봐.노래를 부르면서 불가능하다는 그 일과 씨름해 봐.결국은 해낼 테니까.*에드거 게스트(1881~1959) : 미국 시인이 시를 읽으면 용기가 솟아오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여차하면 핑계를 대며 일을 피하려는 사람과 남이 비웃을지라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의 미래는 확연히 다르지요. 어떤 의심이나 변명도 없이 ‘불가능하다는 그 일’에 달려들 때 우리는 ‘결국 해낼’ 수 있습니다.대공황으로 40세에 빈털터리여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890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생길이 시작됐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뒤 그는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온라인에서 쌓은 우정, 현실에서도 계속될까

    1학년 9반 25번 이수현, 이름조차 흔해 A, B로 구분해야 할 때도 있었다. 모든 게 평범하다. 잘하는 게 있다면 노트 필기의 달인이고 노트를 잘 빌려준다는 점이다. 자신이 조금 시시하고 재미없긴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주 보통의 고등학생일 뿐이다. 한정후를 보면 가슴 설레고 웃음이 나는 소녀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눈에 띄게 예쁘지도 탁월하지도 않은 아이가 에이스의 마음에 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위치를 잘 아는 수현은 그것도 쿨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정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 작품인 은 당연히 평범한 수현의 지루한 일상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눈치 빠르고 상상력이 풍부한 수현이 자신의 촉수에 걸려든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어디까지 이어나가는지 흥미롭게 펼치는 작품이다. 수현의 관심을 끄는 또 한 사람 은고요.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교문 앞에서 기다릴 만큼 예쁜 데다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을 만큼 똑똑하다. 사생활에 대한 여러 소문이 있으나 은고요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은고요와 친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냉랭하기만 하다. 그러자 일단의 아이들이 고요를 괴롭히기 시작하고 그럴 때마다 고요를 지켜주는 한정후. 착한 수현은 질투하기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알게 된 비밀 계정한정후를 좋아하면서 은고요에게도 관심이 지대한 수현이 고요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돌아오는 건 역시 무반응이다. 고요의 냉대를 당연하게 여기는 답답한 수현의 옆을 정말 좋은 친구 지아가 지키고 있다. 지아는 한정후의 반응을 보며 수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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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면초가'에 갇힌 항우의 실패 요인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미인초(虞美人草)증공(曾鞏)홍문의 연회에서 범증의 옥두가 눈처럼 깨지니항복한 진나라 십만 병사 피가 밤새 흘렀네.함양의 아방궁 불길 석 달이나 붉게 타고항우의 패업 꿈은 연기되어 사라졌네.강하기만 하면 필시 죽고 의로워야 왕 되는 법음릉에서 길 잃은 건 하늘의 뜻만이 아니라네.영웅은 만인을 대적하는 법을 배워야 하거늘어찌 그리 가슴 아파하며 미인을 슬퍼했던가.삼군이 다 흩어지고 깃발마저 쓰러지니옥장 속의 어여쁜 여인 앉은 채로 늙어가네.향기로운 영혼 검광 따라 하늘로 날아가더니푸른 피가 변하여 들판의 풀꽃 되었구나.꽃다운 마음 싸늘한 가지에 머물러 있고옛 노래 들려오니 눈썹을 찌푸리는 듯해라.슬픔과 원망 속에 근심 깊어 말도 못 하니초나라 노랫소리 듣고 놀랐을 때와 같네.도도히 흐르는 강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한나라 초나라 흥망도 언덕 위 흙 한 줌일 뿐지난 일 모두 부질없게 된 지도 오래인데잔 앞에 슬퍼하던 꽃 누굴 위해 하늘거리는고.*증공(曾鞏, 1019~1083) : 송나라 시인이자 학자.이 시 ‘우미인초’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송나라 증공의 칠언절구입니다. 첫 구에 나오는 ‘홍문의 연회(鴻門之宴)’는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술자리로 꼽히지요. 천하를 놓고 패권을 겨루는 자리였으니 더욱 그렇습니다.원래 이 연회는 항우가 유방을 암살하려고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항우의 참모 범증은 “큰 뜻을 품고 있는 유방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며 칼춤 도중에 죽이려 했지요.명참모 기지로 위기 벗어난 유방그러나 이 자리에서 유방은 항우에게 최고의 예를 갖추며 위기일발의 예봉에서 벗어났습니다.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뇌하다 죽음 맞는 여인의 비극

    와 을 쓴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토머스 하디는 시인과 극작가로도 활동했다.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인습, 편협한 종교인의 태도를 용감하게 공격하고, 남녀의 사랑을 성적인 면에서 대담하게 폭로한 작가로 유명하다. 1928년에 세상을 떠난 하디가 100년 전 사람임에도 그의 작품들이 마치 지금 옆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세상이 점점 더 교묘하게 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은 1893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남성 작가인 하디가 여성의 심리묘사에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준다. 마치밀 부부는 웨섹스 위쪽 지방에 있는 해변 휴양도시 솔런트시에서 여름을 지내기로 한다. 영구 임대해 1년 내내 살던 독신 신사가 한 달간 자신의 집을 내주어 마치밀 부부와 세 자녀가 그곳에 묵게 된 것이다. 북부 지방의 번화한 도시에서 총기 제조업을 하는 마치밀과 부인 엘라는 겉으로 보면 다복하기 이를 데 없다. 엘라는 결혼할 당시 남편의 부유함이 좋았지만, 아이 셋을 낳은 지금은 남편을 우둔하고 고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남자 이름으로 시를 기고하는 여자엘라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존 아이비’라는 남자 이름으로 잡지에 시를 기고해왔다. 자신의 시가 유명 시인 로버트 트리위의 작품과 함께 실린 적이 있어 엘라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한 달살이를 하기로 한 집을 영구 임대한 사람이 트리위라는 사실을 안 엘라의 마음에 엄청난 파문이 인다. 총기 제조업자인 남편을 경멸하는 여인이 꿈에 그리던 시인과 간접적으로 조우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달 내내 트리위의 책과 사진을 보며 그리워했으나 시인을 만나지 못한 엘라는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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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완행열차허영자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천천히 아주 천천히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허영자 : 1938년 경남 함양 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 <친전>, <조용한 슬픔>, <기타를 치는 집시의 노래>, <은의 무게만큼>, <투명에 대하여>, <마리아 막달라> 등 출간. 월탄문학상, 편운문학상, 목월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등 수상.열차는 기나긴 철로 위를 달리지만 언젠가는 종착역에 다다릅니다. 우리 인생길도 그렇지요. 그 여정에는 급행도 있고 완행도 있습니다. 세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급하게 달릴 때는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비로소 삶의 단면들이 하나씩 보입니다.허영자 시인의 인생 여로(旅路)도 그랬습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죠. 칼을 찬 일본 순사가 말을 타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기겁해서 숨었습니다. 어른들은 놋그릇 공출 때문에 식기들을 땅속에 묻기 바빴지요.시인의 고향인 경남 함양 손곡리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좌우 대립과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숱한 비극이 이어졌지요. 손곡리는 전쟁 통에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고, 나중에 장항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완행길의 ‘누비질’과 ‘홈질’ 원리유년 시절부터 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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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치기 힘든 유혹,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와 살고 있는 중학생 남자아이 현정인.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도운 정인에게는 길을 걸을 때 땅바닥을 쳐다보며 돈이 될 만한 폐지를 줍는 습관이 있다. 일주일에 사흘은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아도 수학여행 비용을 마련하기 힘들다. 비싼 운동화를 꺾어 신고 다니는 태주와 그 일행은 낡은 운동화를 신을 수밖에 없는 정인을 놀리고 괴롭힌다. 가난한 아이, 괴롭히는 일당들, 흔히 봐온 구도를 는 어떻게 풀어갈까. 고양이와 검정 옷을 두른 남자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악마가 정인에게 접근해 근사한 제안을 하고, 달콤한 유혹 앞에서 정인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나혜림 작가가 쓴 는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우선 이 소설은 여타의 청소년 소설과 달리 교양을 쌓을 만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용어는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검색 가능한 실제 용어들이다. 우선 정인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 이름 ‘햄버거 힐’만 해도 여러 정보와 함께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까만 옷을 입은 악마 헬렐 벤 샤하르, 소돔의 사과, 최고급 코스 요리, 샤토 페트뤼스 와인, 파우스트, 성경적 상황과 구절 등 책을 읽다 보면 상식과 지식을 두루 섭렵하게 된다. 악마의 감미로운 제안을 받지만또한 대다수 청소년 소설의 건조한 문장과 달리 음미할 만한 문장이 계속 등장해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를 들어 을씨년스러운 집 안에서 혼란을 겪는 과정을 “한 칸짜리 집에는 갈등을 넣어둘 수납공간이 없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햇빛은 작열하며 그 아래에 있는 것들을 노동하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