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프랑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
* 프랑시스 잠(1868~1938) : 프랑스 시인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에서 평생 사랑과 생명을 노래한 전원시인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그는 절친한 벗 앙드레 지드와 함께한 알제리 여행, 잠깐 동안의 파리 생활을 제외하고는 외딴 산골 마을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껴안고 어루만지는 포용과 모성의 시인이자 세기말 프랑스 문학의 퇴폐적 요소를 씻어낸 자연주의 대가로 꼽힙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에 나오는 정서 그대로였지요.
그의 작품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겸손과 온화로 이끌어주는 것들이었습니다. 고답적이고 난해한 시에 넌더리를 내던 독자에게는 청순한 샘물과 같았죠. 이른바 ‘잠주의(Jammisme)’라는 문학운동까지 생겼습니다. 당시 주류를 이루던 난해하고 기교적인 시와 달리 간명하고도 쉬운 시로 독자를 사로잡은 결과였지요. 우아와 은총의 삶…별명은 ‘당나귀 시인’그는 ‘전깃줄 위에 앉은 제비들의 슬프고 불안한 모습’처럼 위태로운 시대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1919년 ‘기독교 농경시’를 발표한 뒤로는 대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농부의 삶을 통해 종교적 가치와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되새겼죠. 사람들이 그를 ‘우아의 시인이며 은총의 시인’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를 좋아한 시인들도 많아서 릴케, 말라르메 등 서양 시인뿐 아니라 동양의 윤동주와 백석까지 그를 사랑했습니다. 릴케 소설 <말테의 수기>에서 청년 말테가 반했던 시인은 당대 최고의 파리 시인들이 아니라 ‘맑은 공기 속에 울려퍼지는 종소리 같은 시인’ ‘자기 집 창문이나 아련히 먼 곳을 비추는 책장의 유리문 이야기를 해 주는 행복한 시인’ 프랑시스 잠이었죠.
식민치하 조선의 백석과 윤동주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시스 잠과 릴케의 이름을 시에 녹여냈습니다. 백석은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잠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라고 썼지요. 동주도 ‘별 헤는 밤’에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라고 썼습니다. 냉엄한 시대, 온유와 겸손·순박함의 상징그는 당나귀를 너무나 좋아해서 자신의 친구라고 부르며 당나귀 시편을 많이 남겼지요. 그의 별명도 ‘당나귀 시인’이었습니다.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미명계’ ‘연자간’ ‘귀농’에 당나귀가 나오고, 동주 시 ‘밤’ ‘곡간’에도 당나귀가 등장하지요. 프랑시스 잠과 백석, 동주를 잇는 당나귀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백석이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고 할 때 당나귀는 연인과 함께 산골 마을로 가는 꿈의 매개입니다. 동주가 ‘밤’에서 한밤중 당나귀에 여물짚을 주는 아버지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 모습을 겹친 것도 사랑과 생명과 희망의 메타포이지요.
이들이 살던 시대는 냉엄했습니다. 프랑시스 잠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기에 태어났고, 백석은 1912년 청나라가 망한 해에 나서 평생을 변방인으로 살았죠. 동주는 1917년 러시아 혁명기에 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6개월 전 옥사했습니다. 제국주의와 국수주의가 충돌하던 역사의 격변기에 인간과 삶의 근본을 되새기던 시인들이었지요.
한편으로는 생의 무게를 말없이 견디는 존재가 당나귀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순박함의 상징인 당나귀, 그러면서도 삶과 시대의 불협화음을 보듬어 안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곧 이들 시인과 닮았습니다. 프랑시스 잠은 그렇게 70년을 피레네 산록에서 산 뒤 1938년 11월 1일 ‘잠처럼 평화롭게’ 눈을 감았지요. √ 음미해보세요 프랑스의 시인 잠은 당나귀를 좋아해서 당나귀 시편을 많이 남겼지요. 그래서 별명도 ‘당나귀 시인’입니다.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미명계’ ‘연자간’ ‘귀농’에도 당나귀가 나오고, 윤동주의 시 ‘밤’ ‘곡간’에도 당나귀가 등장하지요. 프랑시스 잠과 백석, 동주를 잇는 당나귀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이들이 살던 시대는 냉엄했습니다. 제국주의와 국수주의가 충돌하던 역사의 격변기에 인간과 삶의 근본을 되새기던 시인들이었지요. 당나귀는 생의 무게를 말없이 견디는 존재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순박함의 상징인 당나귀, 그러면서도 삶과 시대의 불협화음을 보듬어 안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곧 이들 시인과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