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어른의 그늘에서 성장하는 아이의 기쁨과 아픔

    서울 인왕산 아래 산동네에 사는 동구는 난독증이 있어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럼에도 배우지 않은 한글을 척척 읽어내 귀염받는 동생 영주를 자랑스러워하는 착한 아이다. 하지만 “에이구 저 들떨어진 새끼, 아직도 글씨 못 읽는대지?”라며 면전에서 핀잔주는 할머니와 공부를 엄청 못한다는 말에 동구 따귀를 후려갈겨 꽃밭에 나동그라지게 한 아버지 때문에 괴롭다.동구가 3학년이 되던 해인 1979년, 대통령이 시해당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동구와 동구 주변 사람들을 통해 1979년과 1980년 일어난 우리나라 현대사의 묵직한 이야기와 그 시절 풍경을 담은 성장소설이다.2002년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성장소설 이상의 성장소설’이라는 호평 속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출간 20년이 지났음에도 독자 서평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1972년생인 심윤경 작가는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공계 출신이다. 문장이 버석할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작가는 세밀한 묘사와 독창적인 비유로 인왕산 아래 동네를 그림처럼 그려냈다.1977년부터 1981년을 사는 다양한 군상과 군인들이 점령한 서울 중앙통을 그릴 때도 번잡스럽거나 살벌하기보다 아련하면서 가슴 저릿한 감정을 불러들인다.천사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어즐거운 일이라곤 없는 동구에게 3학년 담임선생님의 등장은 놀랍고도 가슴 뛰는 사건이다. 엄마가 박영은 선생님에게 동구의 글씨 공부에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면서 방과 후 특별지도가 시작된다. 글씨 공부에 앞서 마음을 두드려준 박영은 선생님에게 동구는

  • 교양 기타

    완벽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가 되라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엘런 코트시작하라. 다시 또다시 시작하라.모든 것을 한 입씩 물어뜯어 보라.또 가끔 도보 여행을 떠나라.자신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쳐라. 거짓말도 배우고.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너 자신의 이야기를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만들라.돌들에게도 말을 걸고달빛 아래 바다에서 헤엄도 쳐라.죽는 법을 배워 두라.빗속을 나체로 달려보라.일어나야 할 모든 일은 일어날 것이고그 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흐르는 물 위에 가만히 누워 있어 보라.그리고 아침에는 빵 대신 시를 먹으라.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경험주의자가 되라.* 엘런 코트 : 미국 시인(1936~2015)초봄에 읽기 좋은 시입니다. ‘시작하라. 다시 또다시 시작하라’는 말은 인생의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지요. 일상의 아침, 계획의 첫걸음마다 새겨야 할 삶의 이정표입니다. 어떤 일이든 새롭게 시작할 때 우리는 모두 초보자이기 때문이지요.‘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경험주의자가 되라.’이 구절도 참 멋지죠? 모든 생의 첫날처럼, 아침마다 되새기면서 음미하고 싶은 말입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더 어렸더라면 이 지침을 더 잘 지켰을 텐데….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미국 문학평론가 시릴 코널리는 “삶은 몇 번이고 엉뚱한 방향을 헤매다가 겨우 올바른 방향을 찾는 미로와 같다”고 말했죠. 그러니 ‘일어나야 할 모든 일’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경험의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완벽주의라는 노예’에 끌려다니는 데 있지요.스위스 취리히대학 연구팀이 ‘완벽주의자는

  • 교양 기타

    정호승 시인이 잠든 어머니 곁에서 부른 자장가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정호승잘 자라 우리 엄마할미꽃처럼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잘 자라 우리 엄마산그림자처럼산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잘 자라 우리 엄마아기처럼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정호승 : 1950년 경남 하동 태생.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을 냈고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세상에, 짧은 자장가 한 편으로 이렇게 사람을 울리다니요! 정호승 시인은 88세 된 어머니가 잠든 모습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보리새우처럼 둥글게 누워 자는 어머니, 어린 날 그를 재우려고 자장가를 불러주던 어머니….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잘 자라 우리 아가’로 시작하지만, 이 시에서는 ‘아가’가 ‘엄마’로 바뀌었지요. ‘잘 자라 우리 엄마’를 세 번 반복하면서 할미꽃 같고, 산그림자 같고, 예쁜 아기 같은 모습을 따스하게 그려냈습니다.정호승 시인은 효심이 깊은 사람입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자주 뵈려고 작업실을 부모님 댁으로 옮겨 놓고 매일 출퇴근하듯 글을 썼지요.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서문에는 ‘이 시집을 늙으신 어머님께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올렸습니다.시인의 어머니는 2019년 봄에 돌아가셨어요. 그때 시인은 어머니 영전에 이 시를 바치고 입관할 때 읽어드렸습니다. 이 시를 노래로 부른 가수 안치환은 “저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 빈소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간절함과 관심, 유효기간 없는 열정이 중요하다

    ‘국민 가게’라는 별칭을 얻은 다이소에 하루 100만 명이 드나든다. 전국 1500개 다이소 매장을 가장 많이 찾는 세대는 20대로 전체 고객의 30%를 차지한다. 10대 고객은 전체의 20%에 달한다. 물가가 올라도 가격을 유지하는 비결, 아성다이소 박정부 회장이 성공한 비결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책을 읽으면 일상에 적용할 점이 눈에 띌 것이다.다이소는 3만여 개의 물건을 판매하는데, 그 가운데 51%가 1000원짜리다. 2000원짜리까지 확대하면 80%에 달한다. 가장 비싼 물건이 5000원이다. ‘탕진잼의 최고 성지’를 누비다 ‘다이소족’에 편입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반면 다이소를 찾는 50대 이상은 5%에 불과하다.26년 전인 1997년 한국에 첫 매장을 연 다이소는 1000원짜리 상품을 팔아 2014년 1조원, 2018년 2조원, 2021년 3조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광고를 일절 하지 않고 오로지 상품으로만 승부해 얻은 소득이다.여러 경제연구소는 다이소의 성공 요인을 ‘균일가 정책, 상품 개발 능력, 물류센터’로 분석했다. 품질 관리와 물류 혁신, 상품 기획력과 상품 공급력, 다양한 볼거리와 쾌적한 매장도 강점으로 꼽혔다.기본에 충실해야 한다세계 400대 부호 가운데 자신의 손으로 창업해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이 미국은 71%, 중국은 97%, 일본은 100%인데 우리나라는 0%라고 한다. 400대 부호에 포함된 우리나라 부자들은 전부 상속으로 부를 물려받았다.올해 79세인 박 회장은 45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뒤늦게 무역업에 도전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일궜다. 일본 100엔숍에 납품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미국의 유통 구조와 상품 개발 과정, 스페인의 저가상품 소비 패턴과 다양한 샘플 제

  • 교양 기타

    하루에 150번이나 '선택' 앞에 고민하는 당신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지요.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그날 아침 두 길에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로버트 프로스트 : 미국 계관시인(1874~1963).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시집 <보스턴의 북쪽> <시 모음집> 등을 냈다.“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다”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입을 옷을 고르는 사소한 일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중대사까지 다 그렇지요.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에도 150여 차례나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이 중에서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은 30차례 정도에 불과하고, 올바른 선택이라며 미소를 짓는 것은 5차례도 안 된다고 해요.20세기 미국 국민시인으로 뽑힌 로버트 프로스트도 그랬습니다. 그는 남들이 평생 한 번도 타기 어려운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은 최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경험 많은 작가의 속 깊은 내면 드러나는 에세이

    알랭 드 보통은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자란 소설가, 수필가, 철학자다. 23세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첫 소설이 30개국에서 출간돼 초강력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도 70만 부 기념 리커버가 출간될 정도로 사랑받았다. 이후 <우리는 사랑일까> <너를 사랑한다는 건>까지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을 완성해 수많은 독자를 매료시켰다.알랭 드 보통은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문학과 철학, 역사, 종교, 예술을 아우르며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에세이 작가로도 사랑받고 있다.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여러 에세이집을 냈다. 워낙 많은 작품을 펴내 주요 에세이집을 소개할 때 <동물원에 가기>는 미처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2006년 발표한 <동물원에 가기>는 산문가로서 그의 자리를 확인해주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영국의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가 70주년을 기념해 70권으로 이뤄진 문고판 총서 ‘펭귄 70’을 출간할 때 마지막으로 포함시킨 작품이다. 당시 37세였던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이 카뮈, 카프카, 체호프, 피츠제럴드, 플로베르 같은 대가들의 작품과 함께 오른 것이다.여러 문학작품 가운데 에세이가 특별히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것은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로,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경험 많은 작가의 속 깊은 내면을 독서를 통해 공유한다는 점이 큰 수확이라 할 만하다. 나와 똑같은 공간에서 작가는 어떤 점을 느

  • 교양 기타

    붓 1000자루·벼루 10개 갈아 없앤 추사의 신필

    부작란(不作蘭) - 벼루 읽기이근배다시 대정(大靜)에 가서 추사를 배우고 싶다아홉 해 유배살이 벼루를 바닥내던바다를 온통 물들이던 그 먹빛에 젖고 싶다획 하나 읽는 줄도 모르는 까막눈이저 높은 신필을 어찌 넘겨나 볼 것인가세한도(歲寒圖) 지지 않는 슬픔 그도 새겨 헤아리며시간도 스무 해쯤 파지(破紙)를 내다보면어느 날 붓이 서서 가는 길 찾아질까부작란 한 잎이라도 틔울 날이 있을까* 이근배: 1940년 충남 당진 출생. 1961~1964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시·시조·동시 당선.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추사를 훔치다>등 펴냄. 유심작품상, 육당문학상, 만해대상 등 수상.추사 김정희에 관한 시 한 편을 더 소개합니다. 위의 시에 나오는 ‘대정(大靜)’은 추사가 유배 살던 귀양지예요. 추사가 여섯 차례의 국문 끝에 초주검이 돼 제주도 대정골에 유배된 것은 54세 때인 1840년이었습니다.가까스로 죽음은 면했지만 도성에서 가장 먼 섬으로 쫓겨났으니 돌아갈 기약이 없었지요. 언제 사약을 받으라는 금부도사의 행차가 있을지 모르는 나날이었습니다. 그곳에서 9년을 보내는 동안 추사는 ‘먹빛’ 같은 바다를 보며 벼루에 바닥이 날 정도로 글과 그림에 몰두했어요.그 외롭고 쓸쓸한 적소(謫所)의 어둠 속에서 탄생한 걸작이 조선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한도(歲寒圖)’입니다. ‘세한도’는 ‘추운 계절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 추위는 엄혹한 세태를 상징하기도 하지요. 그 속에는 ‘그림에서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가 느껴져야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골칫덩어리에서 희망덩어리로 변신하는 힘은 용기

    ‘나는 학교가 싫다. 나는 학교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 아니 그 이상이다. … 내 인생이 끝장나고 말았다.’<35㎏짜리 희망 덩어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바로 ‘세 살까지는 행복했다고 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세 살 5개월 때부터 유아원에 다니게 되었기 때문이다.단 몇 줄만 읽고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학교가 좋고, 공부하는 일이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며 공부해야 훌륭한 사회인에 안착할 수 있으니 어쩌랴.이 소설의 주인공 뒤보스크 그레구아르는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중학교 1학년 때 중대 기로에 선다.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가지 않고, 철자법도 잘 모르고, 수학도 사회도 꼴찌여서 골칫거리였던 그레구아르는 체육시간에 안마를 하다가 중요 부위를 부딪쳐 소동을 일으킨 일로 퇴학당하게 된다. 정말로 아파서 ‘아아아아’ 비명을 지를 때 아이들을 웃기기 위해 꾸며낸 것으로 생각한 베를뤼롱 선생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체육복을 챙겨오지 않거나 운동을 제대로 못하는 그레구아르에게 알림장 가득 벌점 딱지를 붙였던 그녀는 결국 퇴학 처분을 내린다. 퇴학당한 그레구아르는 과연 어떻게 될까.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라 프랑스 문단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안나 가발다는 14세 때 부모가 이혼한 뒤 규율이 엄격한 가톨릭계 기숙학교에 들어간 이력이 있다. 소르본대에 다닐 때 꽃장수부터 영화관 좌석 안내원, 옷가게 점원, 가정교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그런 경험들이 소설에 녹아들었을 것이다.1993년 가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