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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관용과 용서가 소년범을 수렁에서 건진다
대한민국의 소년법에서는 만 19세 미만 범죄자를 ‘소년범’이라 부른다. 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처벌보다 교정을 위해 애쓰지만 죄가 중하면 소년교도소에 수용되고 전과기록이 남는다. 소년원은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을 받은 범죄소년과 촉법소년(10~14세)을 교정·교육하는 곳으로 전과는 남지 않는다.우리 사회에 ‘소년들에게는 아무리 기회를 많이 주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 판사와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 다시 일어서게 만들려는 어른이 많다. 덕분에 소년원 대신 청소년회복센터에서 새롭게 일어서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그런가 하면 <다시 아빠 해주세요!>는 “술과 담배에 찌든 아이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술과 담배를 파는 어른들이 있고, 남녀혼숙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방을 내어주는 숙박업자가 있고, 조건만남·성매매를 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들을 상대로 성매수를 하는 어른들이 있다”라고 나쁜 어른을 고발한다.범죄 연령 낮아지고 잔인한 범죄 늘어난다<다시 아빠 해주세요!>의 저자 임윤택 목사는 부산·경남 지역의 10개 청소년회복센터를 지원하다가 사법형 그룹홈 둥지청소년회복센터(둥지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2014년부터 6개월 처분을 받은 여자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왔는데, 지금까지 200여 명이 둥지센터를 거쳐 갔다. 임윤택 목사는 부산가정법원 소년보호재판 국선보조인으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이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수없이 목도했다.둥지센터에 오는 아이들의 범죄는 ‘절도, 폭행, 학교폭력, 무면허운전, 공문서부정행사’ 등 다양하다. 최근 ‘인터넷 사기, 조건만남, 성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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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죽음 앞둔 요리비평가, 최고의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소설 <맛>의 주인공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 비평가’다. 그런 만큼 각종 진귀한 음식부터 시골 밥상의 수수한 음식까지 수많은 요리를 섭렵했다. 갖가지 재료와 그 재료에 풍미를 더하기 위한 향신료와 조미료, 다채로운 요리 방법, 각기 다른 분위기를 지닌 식당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이쯤에서 소설의 분위기를 파악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설의 주인공, 최고 요리 비평가의 수명이 단 48시간 남은 상황이 추가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심장병으로 인해 이틀 후면 죽는다는 선고를 받았다.마음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맛유명하고, 맛있는 음식을 넘치게 먹었고, 칼 같은 비평을 여지없이 말해 수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든 68세의 남자가 48시간 안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는 ‘죽기 전에 마음속에 떠도는 하나의 맛’을 기억해내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이나 사춘기 시절의 맛, 궁극적인 진리와 마음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맛, 그 맛이 무엇인지 찾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아 가슴 조리는 것에서 소설은 시작한다.2000년에 출간된 <맛>은 프랑스 여성작가 뮈리엘 바르베리가 쓴 첫 소설이다. 이 책은 최우수 요리문학상과 바쿠스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10개국 이상에서 출간되었다. 두 번째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113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32개국에 번역, 출간되면서 뮈리엘 바르베리는 세계적 관심을 받는 작가 대열에 올랐다. 출간하는 책마다 큰 사랑을 받아 가디언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작가 5인’에 포함되었다.<맛>은 29개의 짤막한 글로 구성된다. 모든 글은 1인칭인데, 대부분 비평가의 회상이지만 아내나 고양이·의사 등이 1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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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청년 릴케가 루 살로메에게 바친 사랑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시인.시인 릴케가 22세 때인 1897년 5월 12일. 독일 뮌헨의 한 소설가 집에서 다과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릴케는 14세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1861~1937)에게 흠뻑 빠졌습니다. 그녀는 당대 최고 지식인이자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세기의 여인’이었지요. 철학자 니체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도 그녀에게 반했습니다.무명 시인이던 릴케는 제대로 말도 붙여보지 못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솟아오르는 격정을 애써 누르기만 했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과 내가 보낸 어제의 그 황혼의 시간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달콤한 편지였지요.모성 결핍 시인과 미모·지성 겸비한 뮤즈처음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는 1년 전 그녀의 에세이집 <유대인 예수>를 읽고 감명 받아 익명으로 몇 편의 시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책을 통해 이미 깊은 교감이 있었다는 얘기죠. 그는 과감하게 “그 황혼의 시간에 나는 당신과 단둘이서만 있었습니다”라는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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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후회·미련 대신 '현재'에 머물게 하는 여행의 묘미
2023년에 2230여만 명이 해외로 나갔다. 코로나19로 제약받았던 해외여행의 욕구가 폭발한 결과일 것이다. 사진과 정보가 넘쳐나는 여행 관련 책과 판이하게 다른 <여행의 이유>는 여행 자체를 사유하게 하는 품격 있는 산문이다.대개 작품 내용으로 작가의 지난날을 짐작하게 되는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유명 작품을 읽어도 김영하 작가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의 이유>는 감각적인 작품으로, 마음을 깊숙이 찌르는 그의 일상과 본심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김영하 작가는 군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 여섯 번이나 전학했다. 어릴 때부터 노마드의 삶에 익숙하던 그가 대학 시절부터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의 여행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며칠 혹은 몇 주 정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르다. 이탈리아에서 3개월, 밴쿠버에서 1년, 뉴욕에서 2년 반을 보내고 귀국해 부산에서 3년 살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식이다.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인 삶을 사는 김영하 작가가 전하는 여행은 충분한 시간과 풍부한 경험에서 비롯된 통찰력을 뿜어낸다.9개의 매혹적인 이야기깊이 있으면서 남다르고, 마음을 건드리면서도 재미있는 과정 과정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담겨 있다. 여행을 여러 작품과 접목해 풀어내면서 인문학적 묘미를 안긴다는 점도 이 책의 강점이다. 9개의 매혹적인 이야기가 전하는 여행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여행을 떠나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래 체류하며 글을 쓰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가 푸둥공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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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거기서 내가 사랑에 빠질 줄은…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가 라이오네스로 떠났을 때토머스 하디백 마일 밖 라이오네스로내가 떠났을 때나뭇가지 위에 서리는 내리고별빛이 외로운 나를 비췄지.백 마일 밖 라이오네스로내가 떠났을 때.라이오네스에 내가 머물 때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지어떤 예언자도 감히 말 못 하고가장 현명한 마법사도 짐작 못 했지.라이오네스에 내가 머물 때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지.내가 라이오네스에서 돌아왔을 때눈에 마법을 띠고 돌아왔을 때모두 말 없는 예감으로 눈여겨보았지.나의 드물고 깊이 모를 광채를내가 라이오네스에서 돌아왔을 때눈에 마법을 띠고 돌아왔을 때!* 토머스 하디(1840~1928): 소설 <테스>로 유명한 영국 작가이자 뛰어난 시인, 극작가.토머스 하디가 남긴 연애시입니다. 그는 영국 남부에 있는 도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철도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었지요.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어린 시절의 하디는 내성적이고 몸이 약했습니다. 그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은 약 8년뿐이었죠. 16세 때 건축사무소 수습공으로 들어간 뒤, 건축 업무와 소설·시 쓰기를 병행했습니다.건축기사와 귀족 딸의 은밀한 만남그의 시 중 가장 달콤한 것으로 꼽히는 ‘내가 라이오네스로 떠났을 때’는 서른 살 때의 사랑을 그린 것입니다. 그때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그해 봄 하디는 교회 건물을 수리하기 위해 콘월주에 있는 세인트줄리엇으로 파견됐습니다. 그곳 목사관에 에마 기퍼드라는 처녀가 있었죠. 성격이 활발하고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아가씨였습니다.그녀는 하디의 창작에 아주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둘은 곧 사랑에 빠졌지요. 그녀는 귀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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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여관방 벽지에 쓴 인생시 '죽편' [고두현의 아침 시편]
죽편(竹篇)1 - 여행서정춘여기서부터,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 년이 걸린다.* 서정춘 :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죽편>, <봄, 파르티잔>, <귀>, <물방울은 즐겁다> 등 출간. 박용래문학상, 순천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인생을 대나무와 기차에 비유한 명시입니다. ‘죽편’은 가객 장사익의 노래로도 유명하지요. 서정춘 시인이 1980년대 후반, 허름한 여관방에서 누군가를 종일 기다리다 번개같이 떠오른 시구를 벽지에 휘갈겨 썼다고 합니다.“그날 혼자 여관방에서 ‘인생이란 대체 뭐길래 내가 여기까지 왔나, 왜 왔나, 여기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온갖 상념으로 7시간을 뒤척였죠.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부터, -멀다’라는 시구가 번개같이 떠오르는 거예요. 종이가 없어서 그걸 여관 벽지에다 썼지요….”이 시의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는 끝없는 인생의 여정을 닮았습니다. 시인은 ‘여기서부터,’라고 쉼표를 찍어 반박자 쉰 다음, 하이픈을 그어 또 호흡을 조절하면서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가 얼마나 먼지를 절묘하게 표현했지요. 5행 37자 압축미의 극치입니다.4년 동안 80번 이상 고치고 또 고친 시원래 초고는 25행이 넘었다고 합니다. 여관방도 등장하고 몇 시간이나 사람을 기다리던 얘기도 들어 있고, 이래저래 군더더기가 많았다는군요. 그는 이 시를 4년 동안 80번 이상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그러면서 고향 순천에 많던 대나무와 대나무 막대를 가랑이에 끼고 기차놀이하던 기억, 거기에 대나무의 수직 이미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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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사랑-이별-사랑'의 오묘한 순환 고리에 빠지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작가 중 한 사람인 알랭 드 보통은 30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유명 작가다. 1993년에 발표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알랭 드 보통의 첫 번째 작품이다. 1994년 <우리는 사랑일까>, 1995년 <너를 사랑한다는 건>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세 작품을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으로 부른다. 이 장편소설들은 전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출간되었는데, 이 독특한 연애소설 덕에 그는 ‘1990년대식 스탕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세 권의 연애소설 가운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우리나라에 2002년 소개된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켜 2022년 ‘70만 부 기념 리커버’가 발행되었다. 31년 전 발표한 작품이 지금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사랑과 이별이 안기는 감정은 어느 시대나 똑같기 때문이다.당시 24세이던 보통은 20대 중반 남녀를 등장시켜 직접 경험했을 법한 사실에 자신의 철학과 방대한 독서 지식을 접목,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통찰력을 선보이며 전 세계 독자를 매료시켰다.뜨거운 사랑과 죽음 같은 고통<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 ‘나’는 일면식도 없는 ‘클로이’와 비행기에 나란히 앉아 두서없는 얘기를 나누게 된다. “짐을 챙겨서 세관을 통과했을 때 이미 클로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나의 고백처럼 사랑은 불시에 찾아온다. 두 사람은 곧 서로의 집을 오가며 사랑하게 되고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한다. 두 사람의 상태를 여러 고전에 반영하고 접목하면서 알랭 드 보통은 주옥같은 문장들로 사랑을 표현한다.“자신이 다른 사람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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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내 인생의 주행거리는 얼마나 될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인생 유자효 늦가을 청량리할머니 둘버스를 기다리며 속삭인다"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유자효 : 1947년 부산 출생.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직>, <심장과 뼈>, <사랑하는 아들아>, <성자가 된 개>, <내 영혼은>, <떠남>, <짧은 사랑>, <꼭> 등 출간.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신설동에서 청량리까지는 시내버스로 네 정거장, 약 15분 거리입니다. 지하철로는 2구간 4분,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거리죠. 걸어가도 30분이면 됩니다. 이 짧은 거리가 두 할머니에게는 여태까지 걸어온 인생의 주행거리입니다.이 시는 속도와 시간, 거리와 공간의 의미를 사람의 일생으로 응축해 보여줍니다. 이런 장면을 포착해서 순간 스케치처럼 보여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시인이 보여주는 풍경의 한편에는 ‘느린 속도’와 ‘멈춘 걸음’과 ‘생의 비의’가 함께 있습니다.“속도를 늦추자 세상이 넓어졌다”그 속에서 깊은 성찰의 꽃이 피어납니다. 유자효 시인은 평생 시인과 방송기자라는 두 길을 바쁘게 걸어왔습니다. 부산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진해군항제 백일장 등의 장원을 휩쓸고, 대학 시절 가정교사로 바쁜 중에도 스물한 살 때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그 뒤로는 기자가 되어 KBS 파리 특파원과 SBS 정치부장, 보도제작국장, 논설위원실장 등으로 종횡무진했죠.은퇴 후 “어릴 때부터 걷고 싶었던 시인과 기자의 두 길”을 ‘한 길’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는 더 내밀한 세상의 풍경을 들여다보기 시작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