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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품격(品格)'에 입 구(口) 자가 4개인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대나무를 그리면서정섭한 마디 다시 한 마디천 가지에 만 개의 잎내가 대나무를 그리면서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벌과 나비 수선 떠는 것 면하기 위해서라네.*정섭(鄭燮, 1693~1765): 청나라 서화가이자 문인.묵죽(墨竹)의 대가인 정섭은 시서화(詩書畵)에 정통했습니다. 독보적 화풍에 뛰어난 시문을 자랑했지요. 그는 대나무를 아주 잘 그렸습니다. 그런데 대나무 천 가지에 만 개의 잎을 그리면서 벌·나비가 몰려들어 수선 떠는 것을 피하려고 꽃을 그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품격(品格)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는 판교(板橋)라는 호를 즐겨 써서 정판교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늦게야 과거에 급제했고, 44세에 처음으로 지방 관리가 됐습니다. 10여 년의 관직 생활 중 그는 자기 이름보다 백성들의 배고픔을 헤아리는 데 더 힘썼습니다.어느 해 큰 재해가 들었는데, 모두가 기아에 허덕이다 뿔뿔이 흩어지고 자식까지 파는 참상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지요. 그는 관청의 창고를 열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줬습니다.아전이 “관청 창고를 마음대로 열면 관리로서 죄명을 얻는다”며 만류해도 “상부에 일일이 보고하는 절차를 밟는다면 그동안 백성이 얼마나 굶어 죽을지 모른다. 죄가 주어진다면 나 혼자 받겠다”며 쌀을 풀어 1만여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결국 사달이 났지요. 권력가에게 미움을 산 그는 관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때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난득호도(難得糊塗)’입니다. 총명하기도 멍청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함에서 멍청함으로 바뀌기란 더욱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의 품격을 짐작하게 하는 명언입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뚜렷한 목표와 자신감·실력으로 동기를 부여한다

    모티베이터(motivator),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하려면 그 자신이 엄청난 노력 끝에 대단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어야 한다. ‘빨리빨리’ 달리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동기부여 이론을 얼기설기 엮은 내용에 감동할 독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여러 동기부여 관련 자기계발서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2008년 출간해 2011년에 개정판을 낸 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저자 자신이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사람들 마음에 불을 붙이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가슴 두근거리며 “나도 해 봐야겠어!”라고 외치게 만드는 싱싱한 사례가 가득 담긴 책이다. 조서환 저자는 애경 마케팅 전략팀장, KTF 부사장, 세라젬 CEO를 거쳐 현재 아시아태평양마케팅포럼 회장과 조서환마케팅그룹 대표로 열심히 달리고 있다. 작년 3월 유튜브에 ‘모티베이터 조서환’을 개설해 현재 구독자 8310명을 돌파했다. 초고속 승진한 면접 불합격자첫 직장 애경에서 하나로샴푸, 2080치약 등 수많은 브랜드를 히트시킨 전설의 마케터 조서환은 사실 입사 면접 도중에 쫓겨난 인물이다. 이유는 육군 소위였던 23세 때 부대에서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 때문에 입사 시험에서 여러 차례 고배를 마셨던 그는 지하철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입사지원서에 국가유공자를 우대한다고 해 놓고 왜 안 지키냐. 양손으로 글씨 쓰는 것 아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군대에서 다쳤다면 면접 중간에 나가라고 할 거냐. 앞으로 나와 같은 사람이 온다면 최소한 따뜻하게라도 대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항변했다. 자신처럼 피해 보

  • 교양 기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고두현의 아침 시편]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등 출간.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호암상 등 수상. 언제 읽어도 콧등이 찡해지는 시입니다. 언젠가 신경림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산동네에 살 때였다고 합니다. 집 근처에 자주 들르던 술집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 집 딸과 연인 사이인 한 청년을 만났다는군요.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열정을 지녔지만, 한편으론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처지를 못내 부끄러워하는 순박한 젊은이였죠. 청년이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 집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결혼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딸 가진 부모로서는 그런 사위를 맞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청년은 그 집 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이나 했다고 합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오가는 현대인의 자화상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만큼은 익숙할 것이다. 제목이 수없이 패러디되는 이 소설을 읽지 않고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세계문학 톱5 안에 들기 때문이다. 은 교보문고가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종합베스트셀러 42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세계문학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다. 이 소설은 2018년 국내 판매 100만 부를 달성했다. 지난해 고려대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가 선정한 ‘고대생 인생 책 톱5’에서 헤르만 헤세의 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가 1984년 발표한 이 작품은 영화 ‘프라하의 봄’ 원작이기도 하다. 일단 이 작품은 전통적인 소설 문법과 다소 차이가 있다. 소설 속의 ‘나’가 수시로 등장해 다양한 지식을 뽐내고, 등장인물을 평가하는가 하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나’는 다름 아닌 금세기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밀란 쿤데라. 독특한 서술법과 작가의 깊고 넓은 경지가 내내 이어진다.진한 연애와 현실적 애환이 교차이 소설에는 진한 연애와 소련에 점령당한 체코인의 애환이 얽혀 있는가 하면 밀란 쿤데라의 독특한 성경 해석과 미학적 취향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매우 재미있고 유혹적이면서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하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체코, 스위스, 독일, 미국 사람들이 소련에 점령당한 동유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비롯한 당시 동유럽 상황을 숙지한 다음 독서에 들어가면 훨씬 이해가 편할 듯하다. 대칭적인 사항을 통해 세계를 다각도로 검토해볼 명제를 던진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우선 인생은

  • 교양 기타

    '달팽이 뿔싸움'과 긍정의 힘 [고두현의 아침 시편]

    술을 앞에 놓고(對酒·二)백거이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에 사는 몸풍족하나 부족하나 그대로 즐겁거늘하하 크게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백거이(白居易, 772~846) : 당나라 시인. 어려서부터 총명해 5세부터 시를 썼다.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생전에 즐겨 암송한 시입니다. 정 회장은 걱정으로 마음이 졸아들 때 이 시를 읊으며 용기를 냈습니다. 눈앞의 작은 분쟁을 경계하고 호방하게 큰일을 도모하는 지침으로 삼기도 했지요.한 몸에 난 촉수끼리 싸우다니…달팽이는 머리 위에 두 개의 촉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몸에 난 촉수끼리 서로 싸우면 어떻게 될까요. 불필요한 분쟁을 의미하는 고사성어 ‘와각지쟁(蝸角之爭)’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달팽이(蝸) 뿔(角) 위에서 싸우는 것처럼 아무 소용도 없는 다툼을 뜻하지요.<장자(莊子)>에 이와 관련한 얘기가 나옵니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제나라 위왕이 약속을 깨자 자객을 보내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신하인 공손연은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치자고 했고, 또 다른 신하 계자는 백성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이에 혜왕이 재상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재상은 도가의 현인인 대진인(戴晉人)을 만나보라고 했죠.혜왕을 알현한 대진인은 달팽이 우화를 들려줍니다. “달팽이의 왼쪽 촉수에는 촉(觸)씨라는 사람의 나라가 있었고, 오른쪽 뿔에는 만(蠻)씨라는 사람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사소한 영토분쟁으로 전쟁을 일으켜 서로가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비극에 이르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혜왕이 엉터리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전신마비에 굴하지 않는 정신이 기적을 만들어

    대학 졸업을 앞둔 건장하고 잘생긴 28세,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정직원으로 곧 출근할 예정인 이 남자에게 꽃길이 열려 있었다. 취업 축하를 겸해 친구들과 클럽에서 춤을 추고 즐겁게 놀았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목뼈가 부러진 그에게 의사는 “전신마비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걸을 수 없을 겁니다. 손가락도 절대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라고 판정한다.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일에도 실의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어서 이 남자가 헤쳐온 길이 더욱 궁금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적이 일어났다. 9년이 지난 지금 박위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위라클’의 구독자는 53만7000명에 이른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홍보대사, 시사저널 2021 차세대 리더 100인 선정, 국토교통부장관상 등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SBS 스페셜 ‘나는 산다’를 비롯한 여러 방송에도 출연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유튜브 채널명인 ‘WERACLE’은 자신의 이름 ‘위’에 ‘MIRACLE’을 합쳐 만들었다.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라는 슬로건대로 박위 씨는 그야말로 미라클을 만들어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노력그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적을 창조한 것은 ‘삶과 죽음 사이 그 어딘가에서 기쁨을 선택하고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기도 삽관을 하고 솜에 묻힌 물을 조금씩 빨아들이는 형편에서도 그는 꿋꿋했다. 중환자실에서 12일 만에 일반병실로 옮겼을 때도 가래가 막혀 숨이 넘어갈 뻔했고,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의사의 절망적인 판정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그는 ‘아니야, 하나님이 일으켜주시면 난 반드시 일어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내의 고독과 절망

    교보문고에서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이 48위에 올랐다. 문학출판사들의 세계문학전집에 수록된 고전 가운데 50위 안에 든 소설은 42위 밀란 쿤데라의 과 다자이 오사무의 두 권뿐이다. 1948년 일본에서 발표된 은 2004년 국내에 소개되면서 꾸준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던 중 2021년 특별 마케팅이나 인플루언서 추천 같은 외부 요인이 없는 가운데 7만 부 이상 판매돼 출판계를 놀라게 했다. 은 136페이지로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다. 왜 사람들이 지금 이 소설을 읽을까라는 의구심에서 책장을 넘길 때 ‘독려해봐야 소용이 닿지 않는 연약한 인간의 한심하고 안타까운 삶에 동조하긴 싫지만 묘하게 빠져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너무도 자각하고 있지만, 이미 어느 정도 발을 들여놓은 상태인 사람들이 소설 속 요조가 돼 어느 순간 함께 번민하는 듯했다. 다자이 오사무가 죽은 그해에 마치 유서처럼 썼다는 은 자전적 요소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소설이 ‘퇴폐의 미, 파멸의 미’를 기조로 한 다자이 문학의 결정체로 불리는 만큼 요조의 탄식은 자칫 배부른 탕자의 푸념처럼 들리기도 한다. 소설 속 요조의 생래적 본성과 부적응이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 젊은이들의 허무함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도 있다.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어려운 가운데서도 반듯하고 힘있게 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경멸을 안고 독서를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내내 요조가 삶의 올가미에서 헤어 나오길 기도하며 읽게 만든다. . 시골의 부잣집 막내로 태어난 요조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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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우지 않고 이기는 목계(木鷄)의 비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춘주(春晝) 한용운 따슨 빛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볍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요. * 한용운(韓龍雲·1879~1944)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 마음을 다스리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만해 한용운은 꽃과 글자로 그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따뜻한 봄날의 여운을 만끽하며 책을 읽는 중에 꽃잎이 날아와 글자를 가리지만 굳이 꽃잎을 치우지 않는 마음! 그 여백과 직관의 순간에 유마경의 깨달음이 완성되지요. 이 시가 말하는 것처럼 진리는 간명합니다. 여백의 사고와 직관의 힘은 그것을 부릴 줄 아는 사람에게 더 큰 선물을 가져다줍니다. 창의적인 사고도 여백의 지혜에서 나오지요. 부드러운 카리스마 또한 그렇습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응접실에 목계(木鷄·나무로 깎아 만든 닭) 그림을 걸어 놓고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목계는 의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유명하지요. 투계(鬪鷄·닭싸움)를 좋아하는 왕이 어느 날 기성자라는 조련사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열흘 후 왕이 물었지요. “닭이 이제 싸울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아뢰었습니다. “아직 안 됩니다. 강하긴 하지만 교만합니다. 허세를 부리면서 제힘만 믿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물었습니다. “안 됩니다. 교만함은 줄었지만 너무 조급해서 진중함이 없습니다. 다른 닭을 보거나 울음소리만 들어도 당장 덤벼들 것처럼 합니다.” 열흘이 지나 재차 물었습니다. “아직도 안 됩니다.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어서 최고의 투계는 아닙니다.” 또 열흘이 지나 40일째 되는 날 왕이 묻자 기성자는 “이제 된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닭이 소리를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