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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37개의 직업을 거치며 '나'를 찾아가는 과정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I야, E야?”를 물어본다. MBTI 검사에서 I는 내성적, E는 외향적이라고 하니 미리 상대를 파악하자는 의도다. 예전에는 혈액형을 물어 A형은 내성적, B형과 O형은 외향적이라고 단정했다. MBTI나 혈액형으로 분류하는 성격이 다 맞는 건 아니라지만 상대방을 미리 파악해 좋은 시간을 가지려는 노력만큼은 높이 살 만하다. 남들도 나를 파악하려고 하는데, 정작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의 김진향 저자는 지금까지 37개의 직업을 거쳐왔다. 37세 나이에 37개의 직업이라면 동시다발적으로 가진 직업이 많다는 얘기다. 단순히 큰 키와 뛰어난 외모 덕분에 모델, 배우, 가수, MC로 활동했을 거라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은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그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지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 돈이 생기면 좋아하는 일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음원을 발표하고 사진작가와 작업하는 과정 등 다양한 활동을 SNS에 공유하자 여러 제안이 왔다. 그 결과 중국과 일본에서 런웨이에도 오르고, 여러 가수와 콜라보 음반도 진행했다.직업은 나를 찾는 여행그림 솜씨가 뛰어나던 김 작가는 한때 구두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그때 경험을 담아 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의 챕터마다 수록한 그림도 그가 직접 그렸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퍼스널 브랜딩 전문가, 작가, 강사 등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37개 직업을 두루두루 경험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터.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 자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깨달음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김진향 작가가 37개 직업을 거치며 부단히 노력한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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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백석과 동주는 왜 당나귀를 좋아했을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프랑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 * 프랑시스 잠(1868~1938) : 프랑스 시인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에서 평생 사랑과 생명을 노래한 전원시인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그는 절친한 벗 앙드레 지드와 함께한 알제리 여행, 잠깐 동안의 파리 생활을 제외하고는 외딴 산골 마을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껴안고 어루만지는 포용과 모성의 시인이자 세기말 프랑스 문학의 퇴폐적 요소를 씻어낸 자연주의 대가로 꼽힙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에 나오는 정서 그대로였지요. 그의 작품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겸손과 온화로 이끌어주는 것들이었습니다. 고답적이고 난해한 시에 넌더리를 내던 독자에게는 청순한 샘물과 같았죠. 이른바 ‘잠주의(Jammisme)’라는 문학운동까지 생겼습니다. 당시 주류를 이루던 난해하고 기교적인 시와 달리 간명하고도 쉬운 시로 독자를 사로잡은 결과였지요. 우아와 은총의 삶…별명은 ‘당나귀 시인’그는 ‘전깃줄 위에 앉은 제비들의 슬프고 불안한 모습’처럼 위태로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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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차분히 보내려던 성탄절…뜻밖의 '사위맞이' 소동
크리스마스의 계절이 돌아왔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한 해를 정리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축제처럼 지내는 이가 많다. 기왕이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길 기대하며 이브 때부터 거리가 북적이기 시작한다. 전 국민의 70% 이상이 기독교인인 미국이라면 크리스마스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뿐 아니라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서양의 여러 국가는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보낸다. 을 비롯한 성탄절 관련 작품도 많은데, 악랄한 주인공이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회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반면 는 기발하고 흥미로운 전개 속에서 유쾌한 소동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변호사 출신인 존 그리샴은 할리우드 대배우와 감독 사이에서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원작자 중 한 명이다. 전문적인 법 지식을 바탕으로 빠른 전개와 팽팽한 문체,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법정 스릴러 영역을 구축해왔다.크루즈 여행을 떠나려던 부부스릴러 작가인 만큼 존 그리샴의 작품은 죽거나 다치는 가운데 음모와 추적, 폭발음이 난무한다. 하지만 는 주인공이 잠시 수갑을 차긴 하지만 단 한 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상황에서 크리스마스 대소동이 벌어진다. 루터와 노라 부부의 집이 위치한 헴록 스트리트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요란한 장식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민들은 집 안팎을 트리와 화려한 전구로 장식하는 것은 물론 지붕에 플라스틱 눈사람 ‘프로스티’를 세워 환하게 불을 밝힌다. 마을 사람 모두 카드와 선물을 보내고 파티를 여느라 12월 내내 분주하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 루터와 노라의 외동딸 블레어가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페루의 오지에서 1년간 봉사하기 위해 떠난다. 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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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각박한 세상 위로해줄 따뜻한 꿈 팝니다
“책이 안 팔린다.” 출판계, 서점, 작가들이 입을 모은다. 1990년대 출간된 국내 창작 소설 가운데 100만 부를 돌파한 책은 17권이었다. 2000년대에 좀 줄었다고는 하지만 10권이나 됐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는 (조정래), (조남주) 단 두 권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서서 3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3권의 밀리언셀러가 탄생했다. 와 함께 (손원평), (김호연)가 그 주인공이다. 의 이미예 작가는 기존의 작가들과 다른 순서로 책을 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부산대학교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했다는 점도 독특한 이력이라 할 만하다. 은 2019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펀딩을 시작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목표 금액의 1,812%를 달성해 2020년 4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제목의 전자책이 출간됐다. 나오자마자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에서 4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크라우드 펀딩 통해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이후 독자들의 빗발치는 요청으로 같은 해 7월 종이책으로 출간됐고, 전자책의 열기가 곧바로 종이책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이야기는 1권을 출간한 지 딱 1년 만에 나왔다. 이 각광받은 이유는 단연 참신함에 있다. 우리는 엄청나게 즐겁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꿈에서부터 또렷이 기억나는 기분 나쁜 꿈까지 매일 꿈을 꾸며 잠잔다. 그 꿈을 내가 원하는 대로 꾼다면 어떨까. 그러려면 다양한 종류의 꿈을 파는 상점이 있어야 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상을 소설로 옮긴 것이 이다. 많은 소설이 우리가 아는 무대에서 등장인물들이 여러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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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소동파를 키운 '3주(州)'의 공통점 [고두현의 아침 시편]
금산에서 그려준 초상화에 시를 쓰다소동파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 같고몸은 마치 매여 있지 않은 배와 같네.그대가 평생 한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황주이고 혜주이고 담주라고 하겠네.心似已灰之木 身如不系之舟問汝平生功業 黃州惠州州* 소동파(蘇東坡, 1037~1101) : 북송 시인이 시는 소동파가 65세 때 하이난섬(해남도) 유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쓴 것입니다. 당시 유명한 화가가 동파의 초상화를 그려줬는데, 그 그림 옆에 이 시를 적었다고 합니다.이 시에 나오는 황주(黃州), 혜주(惠州), 담주(州)는 어디일까요. 황주는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 동부에 있는 황저우, 혜주는 광둥성(廣東省) 중부의 후이저우, 담주는 하이난성(海南省)의 북쪽에 있는 단저우를 말합니다.소동파는 왜 이 세 곳을 일컬어 ‘평생의 공업(功業)’을 이룬 장소라고 말했을까요. 이들 ‘3주(州)’의 공통점은 소동파가 온갖 고생을 다한 유배지였습니다.그가 황주에 유배됐을 때는 나이 43세 때였지요. 조정을 비판하는 글을 지었다는 죄목으로 파직돼 감옥에 갇혔다가 이곳으로 쫓겨난 그는 농사를 직접 지으며 겨우 연명했습니다. 동쪽 언덕에 밭을 가꾸고 숨어 사는 선비라는 뜻의 ‘동파거사(東坡居士)’를 호로 삼은 것도 이때이지요.그는 너무 가난해서 지출을 하루 150문(文)으로 정해놓고 매월 초에 4500문을 꺼내 30등분을 했습니다. 봉지에 싸서 천장에 매달아놓고, 매일 아침 150문이 든 봉지를 하나만 꺼냈죠. 커다란 대나무통 한 개를 따로 준비해 쓰고 남은 돈을 거기에 넣었습니다. 이 돈을 모아 손님이 찾아오면 겨우 접대를 할 수 있었지요.그 와중에도 그는 이곳에서 사망률이 높은 어린이들을 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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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저 숲을 따스히 밝히는 단풍나무처럼… [고두현의 아침 시편]
그 젖은 단풍나무이면우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비가 내렸다 오솔길 초록빛 따라가다가 아, 그만 숨이 탁 막혔다 단풍나무 한 그루 돌연 앞을 막아섰던 때문이다 젖은 숲에서 타는 혀를 온몸에 매단 그 단풍나무, 나는 황급히 숲을 빠져나왔다 어디선가 물먹은 포풀린 쫘악 찢는 외마디 새 울음, 젖은 숲 젖은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살면서 문득 그 단풍나무를 떠올린다 저 혼자 붉은 단풍나무처럼 누구라도 마지막엔 외롭게 견뎌내야 한다 나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이 숲의 단풍나무라 생각했다 그대 바로 지금, 느닷없이 고통의 전면에 나서고 이윽고 여울 빠른 물살에 실린 붉은 잎사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멀리서 보면 초록 숲이지만 그 속엔 단풍나무가 있고 때론 비 젖은 잎, 여윈 손처럼 내밀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말없음표 같은 빗방울 후두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내미는 낯선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아직 몰랐다 다만 여름 숲은 초록빛이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그 젖은 단풍나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고통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이렇게 살다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세운 두 무릎 사이에 피곤한 이마를 묻을 때 감은 눈 속 따스히 밝히는 한 그루 젖은 단풍나무를 보리라.지금이 꼭 가을이 아니라도.* 이면우: 1951년 대전 출생. 중학교 졸업 후 보일러공으로 일하다가 마흔 살 넘어 시 쓰기 시작. 시집 <저 석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십일월을 만지다> 등 출간. 노작문학상 수상.이면우 시인은 문단에서 ‘보일러공 시인’으로 불립니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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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꿈을 쓰고, 꿈을 향해 질주하면 길이 열린다
매년 수능 광풍이 몰아닥치고,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세상’이라는 말은 마뜩잖으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너끈히 합격한 이들이 있다. 방황하느라 한참 뒤처졌다가 마음먹고 자신의 앞날을 개척한 흙수저도 얼마든지 있다. 를 쓴 김수영 작가를 보면 ‘꿈을 꾸고, 꿈을 향해 질주하면 길이 활짝 열린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2010년에 발간한 이 책은 3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로 2019년에 개정증보판을 냈으며 중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도 출간되었다. 힘든 길을 명쾌하게 헤쳐나간 김수영 작가의 삶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힘을 얻고 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다 반항기가 겹쳐 중학교 때 자퇴하고 가출했던 김수영 작가는 여수정보과학고 시절 KBS 에서 50문제를 다 맞혀 일찌감치 이름이 알려졌다.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집중고교 졸업과 동시에 인근 공단 사무직에 취업하는 게 정해진 수순이었으나 그녀는 기자의 꿈을 꾸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연세대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최고 학력이란 게 전문대 진학이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3학년 때 유일한 위안이던 PC 통신도 끊고 삐삐도 해지하며 결심을 단단히 했다. SNS를 차단하고 휴대폰을 해지했다는 뜻이다. 혼자 열심히 공부했지만 5월이 되어도 330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 굴하지 않고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공부해 두 달 만에 수학 점수를 크게 올렸다. 2학기 때는 시끄러운 교실을 피해 화장실이나 옥상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0월 모의고사 점수를 385점까지 올렸다. 꿈꾼 대로 연세대학교 인문대학에 진학했고, 온갖 아르바이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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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연애편지에 은행잎을 붙이는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은행나무 부부반칠환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삼백 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그러나 모를 일이다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오늘쯤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반칠환: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전쟁광 보호구역> 등 출간. 서라벌문학상 등 수상.은행나무에는 암수가 따로 있지요. 암나무는 수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를 받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도 수십 년 자란 암나무에만 열립니다. 어린 묘목으로는 암수를 구별하기 어렵죠.은행나무를 ‘공손수(公孫樹)’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에 할아버지가 심은 뒤 손자 때에야 열매를 보니까요.괴테를 매혹시킨 은행잎의 비밀한자로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를 의미합니다. 열매가 살구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해요. 전 세계에 1종 1속만 있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이어서 ‘살아 있는 화석’으로도 불립니다.유럽 사람들은 18세기 초까지 은행나무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원산지인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은행나무의 후손을 한 독일인 의사가 일본 근무 후 귀국할 때 갖고 간 뒤 유럽에 퍼졌지요.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