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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황제 선물까지 돌려보낸 포청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단주의 관사 벽에 쓰다(書端州郡齋壁)        포증맑은 마음은 정치의 뿌리요바른 도리는 이 몸이 추구하는 것.빼어난 나무는 훗날 용마루가 되고좋은 쇠는 갈고리가 되지 않는 법.창고가 가득하면 쥐와 참새가 즐겁고풀이 다하면 토끼와 여우가 근심한다.역사책에 남긴 가르침이 있으니후세에 부끄러움을 남기지 말 일이다.* 포증(包拯, 999~1062) : 청렴했던 송나라 재상.포청천으로 유명한 송나라 재상 포증(包拯)의 시입니다. 제목 ‘단주의 관사 벽에 쓰다(書端州郡齋壁)’에 나오는 단주(端州)는 광둥성 조경(肇慶)과 운부(雲浮)의 옛 이름이지요. ‘군재(郡齋)’는 군수가 사는 관사를 가리키니, 단주 군수로 재직할 때 관사 벽에 써놓은 시를 뜻합니다.좋은 목재가 동량이 되려면…‘맑은 마음(心)’과 ‘바른 도리(直道)’는 그가 근본으로 삼던 정치 덕목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목재도 ‘동량(용마루)’이 될 수 없다고 믿었죠. 훌륭한 인재가 부도덕한 관리로 추락하는 것은 이 덕목을 잃을 때 일어나는 비극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좋은 쇠는 갈고리가 되지 않는 법’이니, 꼼수를 부려 남을 해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곳간에서 제 배 채우기에 급급한 쥐와 참새는 탐관오리의 또 다른 상징이죠.그가 얼마나 청렴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환갑이 됐을 때였죠. 그는 아들 포귀(包貴)에게 모든 선물을 사절하라고 단단히 일러뒀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일 먼저 환갑 선물을 보내온 사람이 하필 인종 황제였지요.아들은 매우 난처했습니다. 고민 끝에 선물을 갖고 온 태감에게 “이 특별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행복으로 가는 일곱 가지 길을 선택하라

    건강의 사전적 의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함”이지만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건강을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웰빙 상태”라고 정의한다. 웰빙을 추구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이어지지만 힘든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어떻게 해야 웰빙을 실현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37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마음이 아픈 사람 3만 명 이상을 치료해온 서울성모병원 채정호 교수. 면담 건수만 40만 회가 넘는다. 강연과 워크숍에서 만난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조사를 통해 많은 데이터도 쌓였다. 채정호 교수는 수만 명의 가슴 아픈 사연과 힘든 이야기를 듣고, 데이터를 분석해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이유 일곱 가지를 발견했다.‘수용하지 못해서, 변화하지 않아서, 연결되지 않아서, 강점을 발휘하지 못해서, 지혜롭지 못해서, 몸으로 살지 않아서, 영성이 부족해서’원인을 파악한 후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인격적 성장과 삶의 가치를 회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실을 담은 책이 <진정한 행복의 7가지 조건>이다.수용·변화·연결, 웰빙과 직결된 요소채 교수는 ‘수용, 변화, 연결, 강점, 지혜, 몸, 영성’이 결핍되면 암흑같이 어둡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되고,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삶의 빛으로 작용하면 웰빙의 삶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수용, 변화, 연결’은 웰빙과 직결된 요소로 주관적 웰빙, 심리적 웰빙, 사회적 웰빙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한다.‘수용’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

  • 교양 기타

    윤동주 시집 원래 제목은 '병원'이었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병원윤동주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윤동주(1917~1945) : 북간도 명동 출생.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가 처음 준비한 시집의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아니라 ‘병원’이었습니다. 아픈 시대 상황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제목이었죠.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아홉 자의 긴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연희전문(현 연세대) 4학년 때인 1941년, 윤동주는 자선 대표작 19편을 묶어 시집을 내려고 했지요. 먼저 필사본 3부를 만들어 한 부는 자기가 갖고, 나머지는 스승인 이양하 교수(영문학, 수필가)와 가장 가까운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습니다.세상이 온통 앓는 사람들로 가득정병욱은 훗날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에서 이렇게 회고했지요.“동주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 기념으로 출판을 계획했다. ‘서시’까지 붙여서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한 다음 그 한 부를 내게 건네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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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았을 땐 죽이려 하고 죽은 뒤엔 아름답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연히 읊다(偶吟)                              조식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대하는 것은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 같아살았을 땐 잡아죽이려 하고죽은 뒤엔 아름답다 떠들어대지.* 조식 (曺植, 1501~1572): 조선 중기 대학자.16세기 유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세상의 속된 인심을 호랑이 가죽에 빗대어 쓴 풍자시입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지요. 언행이 올바른 사람을 보면 모두가 존경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마뜩잖고 불편해서 시기하고 헐뜯기 바쁘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깎아내리고 없애려 듭니다.그러다 ‘눈엣가시’가 없어지고 나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참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아깝다”며 칭송합니다. 호랑이가 가축이나 사람을 해치니까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그 가죽으로 옷이나 장식품을 만들고 나서는 참 좋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지요. 벼슬 않고 임금 잘못 신랄하게 비판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조식은 어릴 때부터 의기(義氣)가 남달랐습니다. 18세 때 물 한 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밤새도록 움직이지 않고 서서 자신의 의지를 연마할 정도였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과 경의도(敬義刀)라는 칼을 지니고 늘 방심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처음부터 벼슬의 뜻을 버려 과거 시험은 보지도 않았습니다. 당시는 기묘사화와 을사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선비가 희생되는 격변기였죠. 그런 상황에서 권력 근처에 가지 않고 초야의 처사(處士)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실제 생활도 그랬습니다. 김해로 옮겨 살던 30~40대 때 그의 학덕이 널리 알려져 벼슬이 계속 내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낯선 이야기

     멕시코 작가 후안 룰포는 생전에 단편집 <불타는 평원>과 장편소설 <페드로 파라모> 단 두 권만 발표했다. 단편집은 별다른 반향이 없었으나 1955년에 발표한 <페드로 파라모>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사의 영원한 고전으로 불리며 1967년에 영화화되었고, 다양한 음악의 테마가 되었다.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읽히고 있다.룰포는 6세 때 아버지가 피살되는 아픔을 겪었다. 13세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고아원에 들어갔다가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중등 과정과 대학 과정을 청강하며 실력을 쌓았다. 21세 때 내무부 이민국에 다니면서 틈틈이 창작 활동을 해 세계적인 문학가 대열에 올랐다.룰포가 30년 만에 찾은 고향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 얻은 영감으로 쓴 <페드로 파라모>는 책장을 넘기자마자 라틴아메리카의 향취를 듬뿍 풍긴다 “코말라에 왔다. 이곳은 내 어머니의 남편 페트로 파라모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마을이다”로 시작할 때부터 이국적이면서 비틀린 관계 속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 나 후안 프레시아도를 코말라로 인도한 마부와 마부가 소개한 사람, 나는 둘을 분명히 만났으나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인 듯하다. 텅 빈 유령 마을 어디선가 사람인 듯 유령인 듯한 인물들이 계속 나타나 말을 한다. 혼돈으로 이끄는 모호한 이야기아버지 페트로 파라모의 행적을 좇는 프레시아도의 움직임이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다양한 화자가 등장한다. 70편의 짧은 글로 구성된 소설은 회상이 이어지기도 하고, 다른 인물이 이야기를 끌어가기도 한다. 전반부는 1인칭 화자가 이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내게 말을 걸듯 매혹적 문장에 줄이 그어져 있다면?

    누군가가 줄을 그어놓은 책을 읽을 때면 그 문장이 마음에 가기 마련이다. 연속적으로 그어 놓은 문장이 마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밑줄 긋는 남자>는 프랑스 작가 카롤린 봉그랑이 1993년에 출간한 두 번째 작품이다. 2000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 2008년 문고판이 나왔고, 2017년 표지를 바꾸고 열린책들 블루 컬렉션으로 다시 선보였다. 카롤린 봉그랑은 자신의 책을 읽는 한국인에게 경탄을 금할 수 없다며 아홉 번째 소설을 썼다는 소식과 함께 “누군가와 조금이라도 삶을 공유할 수 있다면, 서로 잘 이해하고 좋은 시간을 은근하게 나눌 수 있다면 소설적 환상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했다.카롤린 봉그랑이 자신을 많이 닮았다고 말한 <밑줄 긋는 남자>의 주인공 콩스탕스. 로맹 가리를 좋아해 그의 책이라면 갖가지 판형을 모조리 사들인다. 25세 콩스탕스의 고민은 가리가 쓴 책이 31권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다른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갖기 위해 빌려온 책 맨 마지막 장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노름꾼>을 읽으라는 글씨를 발견한다.본 적도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노름꾼>의 줄거리도 마음에 드는 데다 줄이 그어진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게 순종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같은 문장에 끌리고 만다.친구의 아이를 봐주고 간혹 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무료하게 지내던 콩스탕스는 밑줄 그은 사람이 같은 층에 사는 이웃집 남자일 수도 있고 프랑스 대통령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며 점점 빠져든다. <노름꾼> 맨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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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인에게 이런 장난기가… [고두현의 아침 시편]

    만돌이                윤동주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전봇대 있는 데서돌짜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전봇대를 겨누고돌 첫 개를 뿌렸습니다.-딱-두 개째 뿌렸습니다.-아뿔싸-세 개째 뿌렸습니다.-딱-네 개째 뿌렸습니다.-아뿔싸-다섯 개째 뿌렸습니다.-딱-다섯 개에 세 개……그만하면 되었다.내일 시험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손꼽아 구구를 하여 봐도허양 육십 점이다.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그 이튿날 만돌이는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흰 종이를 바쳤을까요,그렇잖으면 정말육십 점을 맞았을까요.*윤동주: 1917년 북간도 명동 출생.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5년 타계.사진 속 윤동주는 아주 과묵해 보입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여동생 윤혜원 씨에 따르면 가끔은 장난스럽고 짓궂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우스개는 조금 싱겁긴 해도 어떨 때는 아주 배꼽을 잡게 했다는군요.“오빠가 할머니와 함께 맷돌로 두부를 만들다가 갑자기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오빠, 누가 왔어?”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천연덕스럽게도 “아니, 그냥 심심해서”라고 하잖아요. 할머니가 “요 녀석이 또 할미를 놀렸구나” 하며 꿀밤 주는 시늉을 하자 우리 모두 배를 잡고 넘어갔죠.”중1 때부터 축구선수로 뛰었던 동주이런 동주의 모습은 작품에도 그대로 배어납니다. 그가 쓴 동시가 30편이 넘는데, 그중 ‘만돌이’에는 공부하기 싫은 소년의 심리가 능청맞게 그려져 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뛴 동주의 모습이 ‘볼 거 있나 공 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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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랭이꽃과 카네이션에 얽힌 이야기 [고두현의 아침 시편]

    패랭이꽃(石竹花)                          정습명사람들은 모두 붉은 모란을 좋아해뜰 안 가득 심고 정성껏 가꾸지만누가 잡풀 무성한 초야에예쁜 꽃 있는 줄 알기나 할까.색깔은 달빛 받아 연못에 어리고향기는 바람 따라 숲 언덕 날리는데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는 귀인 적어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정습명(鄭襲明, ?~1151) : 고려 문신.초야에 묻혀 사는 처지를 패랭이꽃에 비유하면서 세속의 모란과 대비시킨 시입니다. 고려 문신 정습명의 오언율시이지요. 패랭이꽃은 꽃 모양이 옛 민초들의 모자인 패랭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문학작품에서도 소시민을 비유하는 꽃으로 자주 쓰이지요.이 시에서 패랭이꽃은 시인 자신을 의미합니다. 정몽주의 10대조인 정습명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다고 해요. 예종 때 과거에 급제해서 내시(內侍, 이때까지는 문신이 맡았으나 의종 이후 환관이 차지)에 임명됐습니다. 임금의 잘못 바로잡지 못하고 끝내…그러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이 시 ‘패랭이꽃’을 읊으며 혼자 한숨을 지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예종이 감탄해 그를 옥당(玉堂, 한림원)에 특별히 천거했지요. 그러니 이 시가 그의 출세작인 셈입니다. ‘파한집’에 이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그는 예종에 이어 인종의 총애를 받았고, 의종의 태자 시절 스승까지 맡았지요. <삼국사기> 편찬 감독관으로 김부식, 김효충 등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년의 인종에게 “의종을 특별히 잘 보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의종을 가르쳤기에 누구보다 장단